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 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자기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게 받았느니라(롬1:27)
사도는 욕정이 들끓은 퇴패적인 모습이 나타난 세상에서 남녀간이 서로 음욕을 일으키며 추한일을 드러내는 모습이 순리대로 서로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분명 사람에게 주어진 질서는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은 관계를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자 그들에게 느껴진 감정은 부끄러움이었습니다. 이것을 그들이 욕정을 발하여 서로 성관계를 행한 것이 범죄한 것이라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함으로 그들이 성욕을 일으키게 된 것을 억지로 해석함으로 성경과 하나님의 지식을 모르는 무지에서 비롯된 해석입니다. 그들이 부끄러움을 느낀 것은 죄를 범한 것이 원인이 되었고 그들의 지성에서 인식된 부끄러운 감정은 어떤 지식에서든지 서로 자신들을 볼때 완전하지 못한 어떤 지식들이 생성되어 완전한 피조를 무지와 결함이 함의된 지식이 생성되어졌기 때문에 부끄러운 감정을 갖게 된 것입니다. 결국 이 부끄러운 감정이 그들에게 인식되었다는 것은 그들 스스로 존재로서의 결함을 함의하였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완전하게 지으신 것을 사람의 지식으로는 부끄러움을 인식하는 그 지식이 잘못된 것을 분명히 드러내는 것입니다. 사람의 지성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완전하게 지으셨기 때문에 환전한 지식을 생성하여야 정상입니다. 부끄러움도 없고 두려움도 없는 완전한 지식을 인식할 수 있는 지식을 지성이 생성해야 하나님의 지식과 일치한 인식을 가짐으로 두려움과 부끄러움을 몰아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담과 하와가 타락이전에는 부끄러움을 인식하지 못하였는데 타락이후 부끄러움을 인식하였다는 것은 그들의 지성이 지식을 생성하는데 있어서 부끄러움을 느끼는 지식을 생성하였다는 것은 부끄러운 부분을 완전한 지식으로 볼 수 있는 지식을 가지지 못한 결함이 지식안에 함의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Calvin 은 이 부끄러움은 그들이 신적 의상을 벗어버린 상태였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지극히 옳은 해석입니다. 그들의 신적인 의상을 벗어버렸다는 것은 단순히 지적인 것만으로 인식을 갖는 것이 아니라 실지로 하나님형상을 잃어버린 것이 신적 의상을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이것으로 사람에게는 결함을 가진 존재가 되었고 사람의 지성은 결함을 가진 상태를 그대로 인식함으로 서로를 볼때 신적인 의상을 볼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고, 신적 의상을 잃어버린 것을 인식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잘못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상태만을 인식할 수 밖에 없었으며, 이렇게 부끄러운 상태로 빠져버린 것과 부끄러움을 그대로 인식하는 사람의 상태는 결함을 가진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을 스스로 증언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두려운 마음을 가진 것이 더욱 타락의 상태에서 가진 지식이 결함들을 드러내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타락이전에는 그런 느낌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상태는 완전하였고, 하나님의 완전한 지식이 그들을 조명하였기 때문에 그들에게서는 완전함을 볼 수 있었고 하나님 형상으로 말미암은 신적 의상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부끄러움 뿐만 아니라 두려움도 없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지성이 결함을 가진 지식을 생성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지식을 생성하였기 때문에 하나님보시기에 좋은 상태 곧 질서롭고 조화로운 아름다운 선한 상태를 가졋던 것입니다.
사도는 남자와 여자가 서로 음욕을 불일듯 일으키는 그런 상태와 게다가 동성애의 모습까지 드러낸 상태를 부끄라운 상태라고 말한다는 것은 무질서하고 조화롭지 못한 세상이 되어버린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상태에서의 어떤 결과가 나타나겠습니까?
여인들의 잉태는 죄의 열매 곧 정욕의 자식들을 낳을 것이고 남자들과의 동성애는 피조물의 질서를 파괴하는 무질서가 판을 치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문명과 과학이 발달한 현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신앙을 세상과 구별된 별개의 삶을 살아 세상과 갈등을 가지고 살 것이 아니라 간격을 좁혀 보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결과 세상과 기독교와의 간격이 종이 한장차이 밖에 없어졌습니다.
우리는 너무도 쉽게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고, 너무 간단하게 배교자가 될 수 있는 그런 자유가 있는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진리를 생명처럼 여기며 붙들고 살아야 하는 그런 고리타분한 보수적인 삶은 뭔가 쾌쾌묵은 창고에서 꺼내온 기분나쁜 냄세를 풍기는 지식처럼 여겨지기 때문에 아무도 환영하려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인이 되는 것은 반드시 진리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면 그것이 진리라고 생각하고, 남이 어떻게 판단을 하든 그것은 자기의 생각일 뿐인 것입니다.
세속화된 기독교 속에서 진리를 찾는 그리스도인들을 발견하는 것은 쉬운일이 아닙니다. 모두가 굽을 길을 진리라고 생각하고 그것이 확실한 것으로 믿고 있는데 진리를 말하면 받아들일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구별하셔서 성령의 조명을 받지 아니하고는 믿음을 가질 수 없는 것은 오순절 다락방에서 제자들을 통하여 분명히 보여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3년동안이나 주님과 함께 동행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주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간간히 성령께서 조명하셔서 진리의 지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하셨지만 그들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를 보았을때 모든 믿음이 부숴지고 말았읍니다. 그러나 오순절 다락방에서 성령이 강림하여 각 사람의 영혼에 확실히 복음이 심기워졌을때 그들은 이전 까지 자기지식으로 예수그리스도를 이해하였던 그 상태를 인식하게 되었고 성령께서 그들의 영혼에서 진리를 조명하심으로 그들은 참 진리의 지식을 가질 수 있었고 그리스도를 참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자칭 개혁교회의 신앙인임을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 그들이 주장하는 신앙이 오순절인지 혹은 알미니안주의인지 분명하지 않은 지극히 세속주의적인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한결 같이 인생의 행복을 기독교의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할때에도 순수한 복음을 선포하는 것 보다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복음을 도구로 삼고 있습니다.
사도는 복음을 말할때 인생의 행복을 주는 것이라고 덧봍이지 않앗습니다.
그가 아덴의 아레오바고에서서 복음을 전하는 그 모습을 보면 너무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오직 십자가 외에는 아무것도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는 처음 하나님을 말합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죽은 에수 그리스도를 말햇습니다. 그것은 복음이 복음되게 하기 위해 성령의 도움을 간절히 기대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사도는 오직 십자가의 지식외에는 사람을 구원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너무도 잘알았고, 이 지식이 아니고는 오히려 사람을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복음을 들을 때 "예수 믿으면 복받는 다"는 말에 이끌려 왔습니다. 그러나 그 신앙으로는 아주많은 어려움과 갈등을 겪어왔습니다. 오히려 교회를 떠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저에게 다가온 소식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복음이었습니다. 이 복음을 예수 믿는 한 친구에게 다시 전해 들었을때 나의 마음에 새로운 지식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아브라함이 아버지 데라의 집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처럼 새사람이 나의 영혼에서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개혁교회는 진리로 부터 너무 멀리 가 버렸습니다.
복음으로 사람을 새롭게 하기 보다는 복음을 이용하여 사람의 지식으로 사람을 설득하려는 왜곡된 신앙에 빠져 세속화를 가속시키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혼과 성적인 욕망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는 음탕한 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고개를 돌리지 않을 수 없는 추한 곳이 교회가 되어 버렸습니다. 눈에 드러나는 그런 추악함 보다는 세상사람들이 구별하지 못한 더욱 정교한 추함이 교회안에 아주 깊숙히 뿌리내리고 교회를 온통 개인의 사욕을 채우는 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2013, 0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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