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34편
1,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그를 송축함이 내 입에 계속하리라
2, 내 영혼이 여호와로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가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3,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 이름을 높이세
4, 내가 여호와께 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5, 저희가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입었으니 그 얼굴이 영영히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다윗이 이 시로 노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행하신 어떤 놀라운 일을 경험하였기 때문입니다.
1절에 보면 ‘내가 항상 여호와를 송축함이여,’ 라고 할 때 “송축”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말에는 송축이라는 의미로 번역되었는데, 이 단어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송축”이라는 의미는 히브리어에서는 בָּר֤וּךְ (바룩)이라고 합니다. 영어에서는 blessed 라고 하고, 번역하면 ‘축복’이라는 의미입니다. 영어의 의미로 본다면 사람이 하나님을 축복한다고 하는데 이 말은 의미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국어 번역은 송축이라고 했고, 영어는 그대로 blessed 라고 합니다.
축복은 위에서 아래로 전해지는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하나님을 축복한다는 말이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국어 성경의 의미가 매우 좋은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동일한 의미로 번역된 “송축”이라는 의미가 무엇인가 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역대상 16장 36절을 보면 알게 됩니다.
בָּר֤וּךְ יְהוָה֙ אֱלֹהֵ֣י יִשְׂרָאֵ֔ל מִן־הָעֹולָ֖ם וְעַ֣ד הָעֹלָ֑ם וַיֹּאמְר֤וּ כָל־הָעָם֙ אָמֵ֔ן וְהַלֵּ֖ל לַֽיהוָֽה׃ פ
한글 번역은
여호와 이스라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할찌로다 하매 모든 백성이 아멘하고 여호와를 찬양하였더라.
영어성경은
Blessed be the LORD God of Israel for ever and ever. And all the people said, Amen, and praised the LORD. 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송축과 찬양이라는 말이 대비되어 사용되는 문장구조가 나타납니다.
단어로는 Blessed와 praised 라는 말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송축한다는 것은 찬양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지지만 송축은 찬양 그이상의 의미를 함의한 말입니다.
그래서 한글 성경은 blessed, 축복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의미적으로 옳지 않기 때문에 송축이라고 번역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송축이라는 말은 어떤 뜻인가 하면, 삶을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찬양하는 의미로서 내려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이렇게 일하시는 하나님께서 더 복되시다. 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시편의 의미를 잘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자기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일하심에 감사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무엇을 하셨는지 나타나지 않으나 그의 삶에 드러나게 역사하신 것을 감사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분명한 사역이 모든 사람들에게 인식되게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 지식을 알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니고, 어떤 공부를 하여 하나님을 배우려고 모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 가운데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모인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이고 그 교회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소입니다.
그리고 지금 여러분과 함께한 제가 원하는 것은 “초대교회에 나타난 성령강림으로 말미암은 강력한 역사가 있었던 그 교회 재현”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우리의 신앙에서 벗겨져야 할 비 정상적인 사고들과 우리를 얽매고 정상적인 신앙을 갖지 못하게 하는 왜곡된 사고들을 벗어버리자 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것”이 저의 소원입니다.
다윗에게 역사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보고 우리도 이 시편을 통해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송축할 것인지 이해하는 시간이 되어야겠습니다.
4절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구하였더니 내 모든 두려움에서 건지셨도다. 5절, 저희가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입었으니 그 얼굴이 영영히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구체적으로 송축하게 된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두려움에서 자신들을 건지셨고, 자신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으니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에게 행하신 것을 말하라면 뭣을 말할까요?
이것일 겁니다.
여러분이 지난 1년 동안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을 두고 한마음으로 기도하였더니 오늘 이렇게 새벽기도를 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새벽에 기도할 수 있도록 하신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내가 너희의 기도를 듣겠다고 하신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 일하시고 계십니다.
지금은 기도를 들으시려고 여기에 모이게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기도 해야할지 잘 이해해야 합니다.
6,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7, 여호와의 사자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치고 저희를 건지시는 도다.
저는 이 의미가 사울에게서 건짐을 받고 난 다음에 이 노래를 부른 것이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다른 의미가 될지 모릅니다만. 오히려 불레셋에 잠시 피하여 있는 그때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무엘상 27장
사울을 끝까지 자기를 해하려고 쫓아다닙니다.
자기의 왕위가 위태하니까, 드러나는 경쟁자를 처치해 버리려는 권력자들의 야비한 생각들입니다.
그 자리를 누가 준 것입니까?
하나님이 기름부어 세운 것이 아닙니까?
다윗은 하나님 앞에 의롭게 행함으로 자기의 의를 세우려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사람,
하나님이 이루어 주시기를 바라는 사람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기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자 정말로 그의 삶속에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는 사건들이 자기뿐만 아니라 함께한 모든 사람에게 분명히 드러나 보이도록 나타난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을 향하여 은혜를 감사하는 찬양이 아니라 송축을 올렸던 것입니다.
8,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9,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 부족함이 없도다.
10,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 찌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다윗은 담대히 말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경험해 보라.
하나님이 너희에게 일하시는가? 아니하는가? 한번 보라는 것입니다.
분명히 일한다.
너희들도 볼 수 있다.
이런 의미로 노래함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 노래를 할 때마다 그들의 영혼이 더욱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일에 경고해 질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 것이다.
11, 너희 소자들아 와서 내게 들으라. 내가 여호와를 경외함을 너희에게 가르치리로다.
12, 생명을 사모하고 장수하여 복 받기를 원하는 자는 누구뇨,
13, 내 혀를 악에서 금하며 내 입술을 궤사한 말에서 금할찌어다.
14,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 지어다.
15,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 도다.
내게 와서 들어라. 라고 말하는 다윗이 얼마나 성령에 충만하여 담대하게 말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일하시는 것을 보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가?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노래를 부르면서 하나님을 어떻게 예배할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신앙 생활을 할 것인지 다짐합니다.
다윗은 말합니다.
너희가 생명을 사모하고 복받기를 원하느냐
1, 악을 버려라
2, 화평을 따를 지어다.
왜 하나님은 의인을 향하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인의 기도를 들으시기 때문이다.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악인에게 귀를 기울이시지 않습니다.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들의 흥왕을 기뻐하시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드러내는 것을 원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이 땅에 존재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 필요합니다.
극단적으로 그들의 생산을 끊어버리면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하지 않고 하나님의 선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노아 홍수와 같은 진노의 사건이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도 이를 알았습니다.
16, 여호와의 얼굴은 행악하는 자를 대하사 저희의 자취를 땅에서 끊으려 하시는 도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마음을 가지셨습니다.
곧 행악 자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것입니다.
종국적으로는 우리와 같은 이방인의 존재가 태어나지 않고 오직 경건한 이스라엘만이 존재하는 그런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죄인이 계속 태어나고 그들은 계속 죄를 범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 중 하나를 구원하시거나 하는 구속사역을 계속하시는 것이 아니라, 죄인이 더 이상 태어나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선하고 평화로운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할 수 있을까요?
지금 이 순간부터 이방인으로 속한 사람들이 더 이상 자녀들을 낳지 않은 것입니다.
아마 이것은 불가능합니다.
이것이 필연적 종말, 곧 악의 종말을 의미합니다.
17, 의인이 외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저희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
이 세상에서는 의인과 악인이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악인들이 무절제하게 정욕을 쏟아냄으로 의인들보다 훨씬 숫자가 많습니다.
이들이 자기도 알지 못하는 가운데 교회에도 들어오고 회원이 됩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들의 악을 드러내 교회를 혼란스럽게합니다.
그러면 의인들이 살기 힘듭니다.
하나님은 의인을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건져내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일에 진저리가 날 정도로 약 7천년 동안 해왔습니다.
아직도 우리 가운데에서 그 일을 하시고 계십니다.
우리를 여기에 모이게 하신 것은 악인의 세계에서 우리를 건져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존재를 드러내시려고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일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 살면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 것을 드러낼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우스꽝스러운 것인지 모르지만 우리는 심혈을 기울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고 말하는 삶을 살 것입니다.
그것이 삶의 흔적이고 문화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실 것입니다.
우리가 열심을 다해 하나님이 살아계시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일들 위에 하나님이 존재하시다고 높이 세워 세상의 빛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다윗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뭐라고 말합니까?
내 혀를 악에서 금하며 내 입술을 궤사한 말에서 금할찌어다.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 지어다.
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 도다.
19,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 도다.
20, 그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도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
21, 악이 악인을 죽일 것이라 의인을 미워하는 자는 죄를 받으리로다.
22, 여호와께서 그 종들의 영혼을 구속하시니 저에게 피하는 자는 다 죄를 받지 아니하리로다.
그러나 의인의 삶이 형통하지 않습니다.
악인이 우리 가운데 함께 하기 때문에 항상 힘듭니다.
다윗은 말합니다.
결코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붙들고 나아가라
하나님은 의인을 도우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것이다.
함께한 사람에게 말합니다.
보라!
사울과 불레셋의 위협과 두려움 속에서 하나님은 매순간마다 한시도 우리를 떠나지 않으셨고 오늘까지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하여 주셨다.
고 선언합니다.
우리는 이 시편의 노래를 종종 부르면서 우리는 악인들 가운데에서 건지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 결국은 하나님의 우리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라는 확신을 더해 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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