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강해1

십계명 3계명2

생명있는 신앙 2009. 4. 3. 08:24

preach 20 십계명 강해 11 제 3계명

 

레위기 24:10-17 이스라엘 여인의 아들이요 그 아비는 애굽 사람 된자가 이스라엘 자손중에 나가서 이스라엘 진중에서 한 이스라엘 사람과 싸우다가 그 이스라엘 여인의 아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며 저주 하므로 무리가 끌고 모세에게로 가니라 그 어미의 이름은 슬로밋이요 단지파 디브리의 딸이였더라 그들이 그를 가두고 여호와의 명령을 기다리더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데 저주한 사람을 진밖에 끌어내어 그 말을 들은 모든 자로 그 머리에 안수하게 하고 온회중이 돌로 그를 칠지니라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자기 하나님을 저주 하면 죄를 당할 것이요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 온회중이 돌로 그를 칠 것이라 외국인이든지 본토인이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면 그를 죽일지니라 사람을 쳐 죽인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요 짐승을 죽인자는 짐승으로 짐승을 갚을 것이며 사람이 만일 그 이웃을 상하였으면 그 행한대로 그에게 행할 것이니 파상은 파상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을 지라 남에게 손상을 입힌대로 그에게 그렇게 할것이며 짐승을 죽인자는 그것을 물어 줄 것이요 사람을 죽인자는 죽일지니 외국인에게든지 본토인에게든지 그 법을 동일히 할 것은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 임이니라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니 그들이 저주한자를 진밖에 끌어내어 돌로 쳤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행하였더라

 

맹세에 관하여 (산상보훈참조)마태복음 5:33-37의 말씀을 읽고 제 3계명의 말씀의 결론을 듣겠읍니다.

 

또 옛사람에게 말한바 헛맹세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임금의 성이요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아니다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

 

읽은 내용이 무슨말인지 이해 할 수 없는 무수히 많은 내용의 성경의 말씀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권위를 인정하고 있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때에는 이러한 말씀을 하시고 어떤때에는 저런 말씀으,ㄹ 하신다고 말하는 사람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심지어 어떤 사람은 한 본문의 성경의 내용으로 삼백설흔 가지의 말씀으로 설교 할 수 있는 내용을 가르칠 수 있다고 신문에 광고하며 마치 자기가 설교에 능통한 사람인 것처럼 설교 방법론을 가르쳐 돈을 버는 사람이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사람들의 거짓된 모습을 앞으로 분명하게 고발하고 그들의 위선된 것을 들쳐 내어 거짓되어 있음을 고발하고자 합니다.

이제 우리에게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모든 기구를 만들어 주셨고 교회의 타락된 모습들을 밝혀 내어 교회가 진정으로 개혁되어야 할 것을 말하라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입을 주셨읍니다.

비록 우리 교회가 연약하여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연약한 신원을 확인해 주시려고 우리에게 커다란 일을 주셨던 것입니다.

머지 않아 여러분 앞에 드러날 교회에 관한 개혁의 제안들이 여러분을 더욱 확신케 할 것입니다.

교회는 항상 개혁해 가야 한다고 우리의 선배 신앙인들은 말하고 있읍니다.

교회가 개혁을 해야 한다는 것은 시대에 따라서 시대에 맞는 말씀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분명한 의미를 항상 재 발견해 나아가기 때문에 항상 개혁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성경에서 말하는 십계명중에 제 3계명도 아직 우리가 이해 할 만한 해석을 만족하게 나타난 것을 볼 수 없었읍니다. 물론 그때 그때 사람들의 행동에 따라서 권고에 대한 방향으로 해석하는 것을 신앙고백이나 요리 문답에서 발견을 할 수 있지만 참으로 성경의 의도에 맞는 해석을 발견할 수 없었읍니다.

자칫하면 행위 중심으로 치우쳐 버린 해석의 방향에서 이제 그 본질의 방향으로 해석할때 우리는 개혁되어가는 교회가 세워진다는 것을 우리는 발견ㅁ할 수 있읍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자들의 모임입니다. 성경은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것은 자기로 말미암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서 된다고 말하고 있읍니다. 이렇게 모인자들이 한자리에서 한 말씀을 듣고 교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교제하고 교육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건설해 나아갑니다. 이처럼 모인 자들에게 일정한 방향을 제시하고 그 방향에 따라서 앞으로 나아가고 그 방향이 설정되는 곳이 천국이든지 아니면 이세상이든지 교회는 분명한 방향을 세우게 됩니다.

이렇게 세워진 교회가 분명한 신앙고백을 갖고 있을때에 그들은 분명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그들이 목표하고자 하는 그 이상을 이루고 영광을 누리겠지만 그들이 신앙고백을 갖지 않을때에 그들은 목표없이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이리의 밥이 되고 만다는 것은 너무나도 분명한 일입니다.

이처럼 중요한 신앙고백을 한국교회는 소홀이 하고 있고 교회에 몰려든 많은 성도들에게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는 불행한 현실에 처해 있읍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서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성도 여러분들도 신앙고백은 배우지만 그 신앙고백이 마음에 자리하고 있지 않을을 볼때에 우리가 다같이 개혁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 수 있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여기에 왜 오셨는가 분명한 의미에서 고백되어지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의 고백이란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인정하는 분명한 마음의 활동에서 시작되고 이 활동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더욱 가까이 있게하고 그리스도로 모든 죄에서 보호받게하는 놀라운 축복이 준비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가 분명히 고백되어지고 또한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은총이 있다면 우리에게 밝혀진 내일의 소망이 내일의 것이 아니라 지금 이순간우리의 것이 되었다는 것을 확인 할 것입니다.

성겨의 해석은 개혁을 제촉하고 교회를 항상 새롭게 이끌고 있읍니다.

우리 교회는 목사님을 중심으로 개혁의 깃발을 높이 치켜들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읍니다. 교회는 이러한 가르침을 중심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이 가르침은 교회에 생수가 되고 또한 교회로 나아온 성도들이 어디로 가야 할 것과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할 것인지를 분명하게 제시되고 있읍니다.

삼백 설흔 세게의 설교방법을 가지고 설교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노력하고 배운 선배 신앙인의 바탕 위에서 성경을 개혁적으로 해석한다는 것이 여러분의 앞길을 제시하고 그 길을 분명하게 밝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교회는 이 일을 해왔읍니다.

교회의 개혁을 위하여 튼튼한 터전을 쌓으려고 열심을 갖고 회개를 촉구하면서 잘못을 지적했읍니다.

그러나 교회는 회개하지 않았고 또한 어떻게 해야 만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것인지를 알지 못하고 있읍니다. 또한 예수라는 분이 어떤 분인지 조차도 분간이 되지 않고 있읍니다. 목사님은 앞에서 회개를 촉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쳤어도 목사와 함께 앉아 있는 자리에서 불신앙적인 말을 서슴치 않고 해댄다는 것은 교회가 교회되는 것이 아니라 설교의 말씀을 전혀 들으려고 하지도 않는 것을 볼때 용서할 수 없는 또한 하나님께 용서 받을수 없는 엄청난 일들이 우리에게 있어 우리가 하나님앞에서 위선을 행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시낭ㅇ고백은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분명하게 인도를 받기 위해서 설교를 들었으면 그 설교의 말씀을 생명으로 알고 따르려고 마음을 다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설교가 무엇인지 조차도 모르고 무슨 설교를 했는지도 모르는 마음을 갖고 있을때 설교의 말씀을 듣는 여러분이 잘못하는 것이 아니라 설교를 하는 설교자가 잘못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읍니다.

소리쳐도 듣지 않고 다른 생각만 마음에 담아두고 있다가 신앙생활에서는 엉뚱한 일들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은 서로가 절망으로 달음박질치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읍니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자들의 모임입니다.

이 교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이 교회를 부끄럽게 합니다.

분명한 신앙의 표준이 없이 교회를 사랑한다는 것은 위선이요 거짓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께 회개를 요구하고 계십니다.

그 회개는 하나님께서 목자를 통해서 분명하게 여러분이 지켜야 할 길을 가르쳐 주었건만 여러분은 다른길을 가고 있읐읍니다.

회개를 촉구하는 목자앞에서 불신앙적인 발언을 서슴치 않는 것은 결국 나는 교회와 함께 하지 않갰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교회는 억지로 나와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억지로 나와서 마음의 문을 열지 않고 세상사람과 전혀 다름이 없다면 그는 불신자나 다름이 없읍니다.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입는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성도가 그 사람으로 말미암이 시험을 당하는 것을 구약에서 여러번 강조하고 있읍니다. 이스라엘이 불레셌과 싸우다가 졌을때에 그 이유를 살펴 보면 이스라엘에 불신앙적인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께 범죄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고통을 주었다는 것을 살펴 봅니다.

교회는 죄인들이 설교의 말씀에 따라서 순종의 길을 가고 또한 옳은 방향에 따라서 생활속에서 순교를 아낌없이 행하므로 교회에 빛의 역활을 다하는 것을 볼수 있게 됩니다.

이제는 우리교회의 성도들은 마음을 열고 설교의 말씀을 분명하게 듣고 그 말씀에 따라서 순종의 길을 가는 것을 생활화 하도록 부탁을 드립니다.

 

다음으로 교회가 개혁의 길을 가는 설교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입니다.

제 3계명이 말하는 분명한 의미를 오늘 우리가 깨달았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에게 교회를 견고케하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신약성경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다시는 맹세할것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주위에서 서원이라는 것이나 혹은 맹세에 대해서 토론을 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에 심각한 병폐를 초래하였읍니다.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면서 건축헌금을 강요 당합니다. 이때에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일정한 근액을 헌금하기로 작정하고 이를 성실히 이행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일들이 강요나 억지로 한다는 것은 교회에 도움을 준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또한 이것을 주의 이름으로 행하였다고 해서 지켜야 하는 불문율이 되기도 합니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이 계영에 대하여 설명을 해 주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서원이나 맹세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비난을 받게 될수도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