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신앙3
종교개혁주일 우리의 소망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1517 중세의 암흑의 세계가 문을 열고 새 역사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수많은 사상가들이 교회의 피패한 모습을 보고 개혁을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고난과 아픔이 사람들의 가슴에 또다시 아주 작은 점이 되어 새겨졌고 사람들은 그리스도께 돌아오자 마자 그 처절한 아픔을 다시 생각했었었야 했습니다.
수많은 세월을 흘러 보내면서 우리의 후손들에게 무엇을 남겨줄것인가 생각하면서 교회를 날마다 새롭게 되어가려고 아픔을 겪었으나 오늘 교회는 하나님은 안계시고 사람의 모임으로만 전락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지구촌의 작은 땅 한반도에서는 교회의 대형화 물결이 거세게 일어나고 작은 교회들은 교회라고 불리우기기 부끄러운 상황이 되어 갔습니다.
대도시에서 , 소도시에서, 한국의 교회들은 성전 건축의 활기로운 경쟁의 장이 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목사들의 회에 가면 교회를 건축하지 않은 목사는 뭔가 부끄러워 고개가 숙여질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종교 개혁주일 이시간 저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가 정말로 해야할일이 무엇인가를 묵상해 봤습니다.
저는 John Calvin 선생의 글 기독교 강요 2권3장을 읽고 있었습니다.
"사람의 부패한 본성에서 나오는 것은 오직 정죄 받을 일 밖에없다" 라는 제목을 읽고 크게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래전 읽었던 John Owen 목사의 Mortyfication of Sin 이라는 글을 읽고 아주 크게 감동을 받고 나의 신앙생황을 완전히 새롭게 했던 그 시간들이 너무 놀라워 나의 친구 목사에게 읽었던 그 책을 선물로 주었고 어제 다시 읽으려고 주문을 했습니다.
종교 개혁주일을 맞아 무슨 말을 하려고 할까요?
"사람의 구성"에 관하여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개혁교회가 지금 아주 혼란스럽습니다.
성경을 절대 신앙의 중심으로 알고 전적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절대 권위를 두고 있는 그리스도인 개식교 신자들에게 사람의 구성에 관한 비밀을 다시한번 마음에 새겨야 한다고 말씀을 드리려는 것입니다.
지금 세상은 인간을 아주 중요하고 위대한 존재로 여기고 있습니다.
인간이 모든 세계의 중심이며
인간이 모든 철학의 중심입니다.
모든 세계가 인간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인간중심"
모든 광고의 모토가 인간중심 사상이 아니면 결코 세상에서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육으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육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롬 8:13)"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 3:4)"
이제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쫒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너희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엡4:22-24)"
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시기를 바랍니다.
인간을 죽이지 않으면 안됩니다.
주님께서 이땅에 오시는 그 목적이 무엇이었습니까?
육체를 죽이시는 것입니다.
사람이라는 육체는 죽여야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그것을 몸소 실천해 보이셨습니다.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리니"
이 말씀이 절대 신앙의 적극적 사고방식의 전환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도 수많은 교회에서 이렇게 말씀이 선포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교회를 사랑하십시요
그러나 성경은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살아 있는 너희를 죽이라
육체의 욕심을 버려라'
영으로 육의 행실을 죽이라
아마 뭔가이해하실 분이 있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이 말씀을 모두가 이해할수 없습니다.
이해가 안되거나 자기 중심으로 이해하거나 혹은 삐뚤어지게 이해할 것입니다.
이제 종교 개혁의 방향이 여기에 이렇게 제시되고 있습니다.
정말로 우리의 후손들에게 물려줄 교회는 덩치큰 건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식입니다.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후손들에게 물려 줘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가 할일입니다.
문화센타,
기독교의 문화,
그것은 큰 건물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지식에 있습니다.
그 지식을 위해서 교회가 투자해야 합니다.
종교 개혁을 위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