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신앙

넘치는 세속화!

생명있는 신앙 2010. 11. 15. 04:04

오늘도 주일이 되었습니다.

토론토에 있었으면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을 탠데 약 6주 동안 한국에 머물러 있어 지역에 교회를 가야 했습니다.

꽤 크고 성도는 약 2000정도 된다는데 이사를 갔을때 그 교회 목사가 동내에 새로 왔다고 전에 알던 집사님과 함께 심방을 왔었습니다.

토론토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고 했는데 굳이 와서 심방을 한다는데 목사로서 심방을 받는 것고 감사하고 해서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몇주간 그교회에 계속해서 나갔습니다.

새벽에도 참여하여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함께 했었습니다.

몇주간 기독교 TV를 보기도 했지만 설교 내용들이 지나치게 세속화 되어 있어서 마음을 정하고 볼수 있는 설교 방송이 없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모두가 성경을 말하는데 어쩌면 이렇게 다를까?

마음을 둘곳이 없어 고민하고 있는데 몇주간 참여한 예배에 슬슬 엉덩이가 괴로웠던가 생각을 했습니다.

아내는 나의 이런 불평을 내가 잘 못되었다고 책망한답니다.

교회에 나갔으면 함께 어울리고 동화되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지 무슨 자기 생각에 맞추려합니까? 라고 핀잔을 계속주어 말하기도 어려워졌습니다.

세속화속에 있으니 자신이 세속화 되었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첫째 모습은

강단이 형편없이 매말라 있습니다.

생수가 쏟아져 흘러야 할 강단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휴먼 스토리 보다 더 힘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목사는 힘있게 설교를 합니다.

그러나 강단에서는 생수가 흘러내려오지 않아 내 영혼을 적시기에 너무 부족했었습니다.

둘째 모습은

강단에서 선포되는 내용은 적극적 사고방식입니다.

믿음면 됩니다.

믿으십시요.

믿음이 없기 때문에 병고침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할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물론 제가 장황하게 많은 근거들을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만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육체에 믿음을 뒤집어 씌우고 그것을 신앙이라고 생각합니다.

셋째 모습은

거듭나지 않은 종교에 속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선포합니다.

언제 부터인가 제게서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사랑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말들이 입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아주 흔하게 그것도 설교시간에 불려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제가 천주교회에 왔는가 하고 착각을 했습니다.

교회에 발을 들이면 하나님께서 사랑하십니까?

교회에 발을 들여 놓는다고 하나님의 은혜가 자동적으로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 시간에 찬양을 하고 설교를 듣고 성도들과 손잡고 인사를 햇다고 해서 예배의 의무를 한 것이 아닙니다.

예배를 정말로 모르고 있었습니다.

예배는 자기의 살을 찢고 육체를 죽이는 고통의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죽는 시간입니다.

자기 죽임을 만나는 시간이어야 합니다.

물론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느냐고 할 것입니다.

넷째 모습은

키타를 치며 단정한 복장을 하고 앞에서서 감정을 돋우기 위해 찬양을 이끌어주는 찬양단들의 인도가 없으면 찬양이 안되나요.

손을 올렷다 내렸다 하면서 감정을 표현해가며 눈에 눈물을 흘리면서 까지 감동섞인 찬양을 하고 있는데 과연 하나님이 우리를 보시고 뭐라고 하실까 한번 생각들을 해보는지요.

이런 찬양은 정말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저도 이것을 아주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나친 감정이 필요할까?

온통 무슨 잔치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누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교회는 축제이어야 한다고!

맡는 말인지 아니면 네가 틀리는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다섯째 모습은

성가대 찬양이 끝났는데 왜 박수를 칩니까?

성가대가 성도들에게 찬양을 했나요?

아멘으로 함께 해야 되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하내요,

박수를 치는 것은 잘했다고 하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영광을 받으세요"라는 의미라내요.

언제부터 하나님에 영광의 박수를 올럈나요?

 

교회

주님이 피흘려 값주고 사신 교회

그러나 그 교회의 이름이 더럽혀져 이제 희망이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습니다.

강단으로부터 흐르는 생수는 말랐고, 예배에 드려지는 양들은 없습니다.

지성소 안에 뿌려지는 피는 그림으로 대체 되었고

예배당에는 성도가 아닌 참여자들에게성도라고 불리우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찬양은 흥겨운 즐거움이지만

갈곳없고 헌금없는 가난한 성도들은 항상 외면을 받고 있습니다.

몸으로라도 때워야하나요.

그것도 한두번이지.

 

"교회는 경건은 없고 사람들의 축제만 있었습니다. "

제가 발견한 것은 '거룩이 아니어도 예배는 되는 구나'였습니다.

 

주님!

어디에 계십니까?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은혜를 부어 주십시요.

 

"나의 구속자가 살아계시니 말일에 그가땅을 밟고 서실 것이라.(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