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연구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에 계시거늘....

생명있는 신앙 2011. 1. 18. 07:17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창 28:1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 5:3). 주님께서 제자들과 수많은 무리들에게 선포하시는 첫 마디의 말씀이었습니다.  아직 부름을 받지 못한 마태는 멀리서서 이미 도래하신 메시아를 바라보면서 그 음성으로 흘러 나온 말씀을 영혼으로 받아 새기고 있었습니다. 잠시라도 그의 말씀을 벗어나지 못한 마태는 세리였고 동족의 피를 빨아 자기 배를 불리는 배반자라는 낙인을 받고 있었습니다. 비록 가정 형편 때문에 자기가 희생을 자처한 일이지만 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으며 동족들의 눈총을 받는 일이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다가온 비극은 요단강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한 선지자가 나타났습니다.

 

그가 외치기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라고 말하면서 자기 뒤에 오실 한 사람이 있다고 선포하면서 백성들에게 회개를 외쳤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다가가 세례를 받았고 회개 하기 위해 그의 음성을 듣기를 기뻐했습니다.

 

종교의 지도자들도 그의 외침을 받아들이고 있었으나 쉽게 그에게 다가가 세례를 받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정치적인 문제와 종교적 울타리가 그들이 행동으로 다가가도록 하지 못했습니다.

 

마태는 세리였기 때문에 세례 요한에게 다가가 세례를 받고 싶어도 마음대로 할수 없는 상태 였습니다.

 

마태는 성경을 자주 읽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메시아가 온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었던 사람이며, 자기 대에 메시아가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될것이라는 믿음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세리가 될 수 밖에 없는 자신의 환경을 두려워하면서 항상 마음 한편에는 메시아가 오실 것이라는 두려움에 대한 괴로움이 있었던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요단강에 나타난 세례 요한은 메시아 이상의 충격을 마태에게 던져 주었습니다.

 

세례요한의 선포는 메시아의 도래가 임박했음을 의미하고 있었고, 임박한 메시아의 도래와 함께 진노를 외치고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외침을 듣고 있는 마태는 어쩌면 자신의 운명이 송두리체 망가뜨려진 절망의 나락에 빠지고 말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의 상태는 돌이킬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름에 붙어 있는 세리라는 딱지는 그 어떤 세제로도 결코 씻어낼 수 없는 추한 더러움이었습니다.

 

그가 기록한 마태 복음서를 살펴 보면 그는 얼마나 많은 성경을 읽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의 기록에는 여러곳에서 구약 성경을 인용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는 예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기 이전에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산상수훈과 같은 내용은 그가 가슴 깊이 새기며 들었고, 그 메시지는 철필로 기록하여 영혼을 채우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마태는 그의 기억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팔복산에서의 감화를 성경으로 기록하였습니다.
 

 

이런 정황을 살펴 볼때 세례요한의 출현은 그에게 큰 충격으로 받아들였고, 그의 영혼은 급속도로 가난해 졌을 것이라고 생각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사람의 영혼 상태는 육체의 오감으로 습득한 지식 보다는 종교적 경향을  강렬히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태는 사람이 자기의 힘으로는 자기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입니다. 즉 사람이 육체의 오감으로 얻은 지식의 영혼 활동으로는 결코 자신이 처한 어두운 상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신을 찾는 마음을 가진 상태가 심령이 가난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모든 고민자를 심령이 가난한자라고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다만 인생의 고민속에 깊이 빠져 있는 사람은 그만큼 복음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야곱이 형 에서의 축복을 갈취하고 외삼촌 라반의 집을 향하여 도주하다가 광야의 산에서 하룻밤을 지세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인생을 살펴보며 자기가 처한 상황에 대해서 아주 갈급한 마음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가 돌베게를 하고 잠을 자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너무도 뚜렸히 약속해 주셨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때 야곱은 약속을 합니다.

내가 여기에 돌아오게 되면 반드시 그때 가진 모든 것의 십의 일을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꿈에 나타난 하나님이 생전의 하나님으로 바꿔지는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약속을 기뻐하십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꿈을 꾸는 동안에는 생생한 상태처럼 약속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야곱은 꿈이 아닌 상태처럼 분명 했습니다.

하지만 꿈을 깨고 일어나 보니 그게 꿈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나 그 꿈이 너무 생생하여 하나님이 그곳에 계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꿈을 마음에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의 성취를 은근히 기대하였습니다.

그것은 그가 의지할 것이 그 꿈 뿐이기 때문입니다.

 

꿈을 의지하며 외삼촌 라반의 집을 가는 야곱의 마음이 얼마나 가난한 마음이었습니까?
그의 마음에는 벧엘에서의 꿈이 들어 있었고, 꿈에 나타난 하나님을 의지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야곱의 인생을 통해 비춰보이는 한 순간에서 가난한 심령을 뚜렷히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돌배게를 하고 잠을 청하는 야곱의 모습에서 말입니다.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된 야곱이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의지할 그 어떤 것도 없습니다.
외 삼촌 라반에게 가고 있는 그의 발걸음은 천근 만근입니다.
지금 당장에 그가 살 수 있다고 생각 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는 오직 외삼촌 라반에게 있습니다.
미래의 삶을 담보할 수 없는 캄캄한 어두움속을 바라보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오로지 근심과 걱정 뿐이었습니다. 

고 그 꿈을 의지하고 산 야곱에게 하나님은 함께하여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에 계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지금 그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십시요.

 

하나님께서 반드시 도와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