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대로 살면

Second merriage of sin, 죄의 전가

생명있는 신앙 2011. 2. 16. 12:28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롬 8:13)

 

 죄책(죄의 책임 전가)


아쉽게도 개혁교회에서는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말미암은 죄에 대한 그 책임을 우리가 물려 받는 다는 죄책에 대한 의견들이 있어 왔고 그것이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에서 채택되는 등 죄에 대한 책임 있는 전가에 대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이 논의에 있어서 주된 논점이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여 범죄한 그 죄(The sin) 가 오늘, 아담이후 후손들에게 어떤 관계가 있느냐?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였으면 그들이 죄를 범한 것이지 왜 우리에게 죄가 전가되는가? 라는 생각에서 시작된 의문이었던 것입니다.

물론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는 분명하게 어린이들을 가르치기 위한 교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린이들은 다소 이해력이 떨어질 수도 있으나 성인들에게는 필요하지 않은 교재라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교재는 비록 어린이들을 교육하기 위한 교재이면서 동시에 성인 신앙인들 가운데 신앙이 연약한 어린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교육하기 위한 교재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소 연약한 부분들이 있는데 죄책에 관한 문제가 이에 해당한 갓이라고 말씀드립니다.

앞에서 말씀을 드렸듯이 죄의 책임이라는 말은 아담과 하와가 범한 죄에 대한 책임이 우리와 어떤 관계가 있느냐? 라는 것이었습니다.

스터민스터 6장 3절에서는 그들이 온 인류의 시조이기 때문에, 그들이 범한 이같은 죄의 죄책은 모든 후손들에게 전가되었고(창1:27,28; 2:16,17; 행17:26; 롬5:12,15-19; 고전15:21,22,45,49) 그로 인하여 바로 그 사망과 부패한 성품이 통상적인 출생법에 의하여 그 시조들에게서부터 후손들에게 유전되었다(시51:5; 창5:3; 욥14:4; 15:14).:라고 분명히 말함으로 이와 동일하게 책임있는 개혁신앙의 선생들이 죄의 책임에 대한 전가는 모든 후손들에게 주어졌다고 언급해온 주장입니다. 
여기에는 묘한 늬앙스가 존재합니다. 
죄를 범한 인류의 조상과 후손들 사이에서 죄의 위치라는 것입니다.
곧 후손들은 죄의 행위를 하지 않았거나 할 의사도 가지지 않았는데, 이미 그들에게는 죄가 부여되었고, 죄에대한 책임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죄는 댐에 저장된 물처럼 모여 있었는데 조상들이 실수로 댐을 헐어버리게 되자 댐에 모여 있던 죄들이 조상을 덮쳤고, 나아가 조상들과 함께한 모든 사람들에게 덮쳐 죄에 물들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곧 죄와 사람사이에서 개별적 존재를 의식하게 합니다. 
이것때문에 죄의 위치에 관한 의문이 생겨난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유전적인 문제입니다. 
이는 죄를 행위라고 했을때 지음을 받았을때 죄의 요소를 가지고 있었느냐? 입니다.
이는 유전적이라고 한다면 아담안에는 이미지음을 받았을 때부터 죄에 대한 유전적 요소가 존재하고 있었으므로 그 책임은 아담을 지은 하나님께 돌릴 수 밖에 없습니다. 
이는 죄의 위치문제가 아니라 죄의 요소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이 두가지의 의문을 명확하게 이해하지 않고서는 죄의 본질과 전가에 대한 문제를 결코 이해하지 못하고 결국은 죄를 대항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죄의 유전과 죄에 대한 책임의 전가의 의미는 무엇이며 어떻게 다른가? 에 관한 문제가 드러납니다.

분명히 언어적 표현에 있어서 죄의 유전은 죄를 물려받는 것이고, 죄의 전가는 아담에게 부과된 죄가 모든 후손들에게 넘겨져 후손이 그 부담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전과 전가와의 차이점은 암환자가 암세포를 자신의 자녀의 세포 속에 남겨지도록 하는 것처럼 자기의 원인자를 후손에게 부여되게 하는 것과 후손은 죄에 대하여 아무런 책임의 요소를 가지지 않았는데 조상의 죄가 전가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자는 아담이 그의 후손들에게 자기의 유전자를 물려주는데 당신의 상태에 따라 현존하는 상태를 후손에게 물려주므로 후손은 죄의 요소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고, 후자는 아담과 하와가 후손을 생산한때는 에덴동산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네어 쫓겨 에덴동산 밖에서 태어났으므로 환경적 원인에 의해필연적으로 죄에 물들인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여기에는 죄의 본질에 관한 명확한 의식을 가지지 않은 상태에서 밝혀냔 결론이라고 한다면 유전이나 전가의 의미가 별다른 구별이 없이 후손들에게 죄를 물려 받을 수 밖에 없는 필연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으므로 구별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는 이상 이의 두가지 요소중에서 필연적으로 죄에 잇어서 가장 근접한 답을 고르라면 전가보다는 유전에 적합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죄는 앞에서 말한바와 같이 1 지식입니다. (지식에는 두가지 지식이 있는데 선한 지식2과 악한 지식3이 있습니다.)

잠언기자는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언 14:12, 16:25) 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중에 "그들이 종일 내 말을 곡해 하며 나를 치는 그들의 모든 생각은 사악이라, 사56:5" 라고 말하면서 사람의 생각이 하나님을 대적하기 때문에 악한 것이 아니라 실지로 하나님을 향하여 의롭다고 스스로 생각한 모든 사상들이 하나님보시기에 악한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를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으로 구별하여,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의 모든 생각을 육신의 생각이라고 했고, 이는 필경 멸망에 처해질 수 밖에 없다고 선언합니다.4 
사도 바울의 말을 살펴 보면 명확하게 "생각"을 생명과 사망에 속한 구별을 말합니다. 

생명에 속한 생각과 사망에 속한 생각은 이미 사람에게서 행동으로 드러나게합니다.
예수께서도 사람을 더럽게하는 것은 입으로 들어가는 먹는 식물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온갖 지식들이라고 하셨고,(마5:11)

하나님께서는 아벨을 죽이려고 마음에 품고 있는 가인에게 경고하시기를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윈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4:7)" 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결국 이것은 사람의 내면에서 사람으로 행동하게 하는 지식을 의미하고 이것이 죄의 본질입니다. 


죄의 전가의 의미는 자기에게 부여된 책임 있는 부과된 결과들을 자기뿐만 아니라 자기의 피를 물려받은 후손에게도 부과된다는 의미입니다.1)

반면에 죄의 유전은 생물학적인 의미에서 아담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범죄하여 부과 받은 것은 사망이었습니다. 아담이 죽은 것과 같이 그의 후손들도 사망에 이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하나님 형상과 본유적 지식을 상실한 채로 영혼과 육체가 결합된 자연적인 상태로 자녀들을 생산하여 그 상태의 존재를 부여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의 자손들은 영혼에 하나님의 형상과 본유적 지식이 전무한 상태로 태어나게 된 것이고 영혼의 활동을 하지 못한 무지한 상태로 태어난 것입니다.


이것이 죄를 낳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물려받은 유전 상태입니다. 

그러나 두 가지의 과제 가운데 언급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죄의 유전과 후손의 상태, 죄의 전가와 후손의 상태입니다. 전자는 아담의 상태를 그대로 유전적으로 물려받는 것을 의미에서 인간본성의 상태가 타락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후자인 전가는 물려받은 인간의 본성의 상태에 관해서 구체적인 언급이 없으며 시종일관 인간의 상태에 대한 관심과는 큰 거리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인식 방법론에 있어서 유전은 인간론적인 반면 전가는 신론적인 입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죄의 책임 있는 전가에 관한 교리가 웨스터 민스터 신앙고백서와 정통적인 모든 교리들, 교부와 책임 있는 신앙의 선배들이 말하여온 바입니다. 그럼에도 책임이 있는 전가보다는 유전이 더 성경적인 주장은 Calvin 주의의 Tulip교리가 말하는 인간의 전적인 타락, 사도가 사람이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임을 말하고 있고2), 구체적인 유적의 증거들을 볼 수 있는 이 시점에서 사도가 말하는 사람의 상태가 전적으로 육신대로 살아 반드시 죽게 될 사람의 상태에 있어 선한 것이라고는 조금도 찾아 볼 수 없는 순수한 죄인 자체라는 것을 뒤집어 가능성으로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가능성이라는 말은 사도가 말하는 전적인 타락 상태의 사람일지라도 어느 정도 선한 의지가 있는 상태의 사람이며, 혹 온전한 상태의 영혼과 육체를 물려받은 사람에게 죄에 대한 책임이 부과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위험한 주장을 할 여지가 남겨져 있습니다. 바로 그것때문에 같은 신앙안에서 많은 논쟁들이 있어 왔고 복음주의 안에서도 다른 주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책에 관한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에서의 의미도 전적으로 죄의 유전을 전제로 한 죄책이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의 죄를 그대로 물려받고 태어난 후손은 그대로 죄에 태한 책임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며, 태어날때 곧 바로 원죄(곧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멸시하는 행위언약을 거부하는 죄)상태로 태어나는 것이며 그 죄는 하나님을 불순종하는 죄입니다.

 

  1. http://blog.daum.net/godwithus/16050839 [본문으로]
  2. 무지와 결함을 함의하지 않은 안전한 지식, [본문으로]
  3. 무지와 결함을 함의 한 왜곡된 지식 [본문으로]
  4.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롬8:6)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