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죄의 상태에 있는 인간- 죄의 본질,
죄의 본질
Louis Berkofh 는 그의 책에서 죄의 본질을 특별한 악으로서 절대적인 성질을 가지며 하나님의 뜻에 관계하며 인간의 마음에 자리 잡는 외부의 행위만을 아니라고 했고, 미국의 에리조나주의 피닉스 신학교에서 성경신학과 조직신학을 교수하고 있는 Wayne Grudem은 그의 Systemic Theology에서 “죄란 행위, 태도, 본성 면에서 하나님의 도덕법에 따르지 못하는 것”이라하고, John M Frame1 은 "의에 반하는 행위"라고 정의한 반면, 복음주의 신학자들이나 개혁파 복음주의 신학자들은 Augustine 와 Calvin의 영향으로 죄를 “은혜에서의 결핍, 목적하는 바에서 벗어남”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Herman Bavinck(1854-1921) 는 "첫번째 죄는 의식을 가진 자유로운 행위였으며, 참된 의미에서 죄, 위반, 범죄, 불순종이었다.(롬5:12)" 라고 말한 것이 그나마 설득력이 있으나, 이는 인류의 처음 죄를 말한 것이라서 본질을 언급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아쉽다.
이처럼 보편적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는 죄의 본질을 정의되지 않고 있다는 불만족스런 의견들이 곳곳에서 스믈거리고, 개혁신학의 입장에서 조차 하나로 통일되지 않고, 이성의 사유속에서 미로를 해매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본질을 가능한 빨리 정의할 필요가 있다.
본질적으로 죄가 행위냐? 아니면 사람의 마음에 자리잡는 어떤 실체인가? 하는 문제는 쉽게 결론이 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실체로 표현된다는 것은 "하나님과 나란히 존재하는 악의 권세"로 볼수 있다는 점에서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성경은 죄를 하나의 인격체로 의인화하고 외부로부터 사람의 내부로 침임하여 들어오는 것으로 표현 된다. 는 점에서 부정하지도 못한다. 하지만, 기독교 신학은 죄는 실체가 아니라고 처음부터 주장했다. 개혁교회는 대부분 죄를 사람의 본성으로부터 나오는 행위로 본다는 점에서 사람이 행동을 하기까지 정신 내면의 사유의 과정과 행위에 이르는 과정을 살펴 볼필요가 있다. 이요구는 행위의 주체가 죄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행동을 하는가? 라는 논점으로 전환 된다. 사람이 죄를 행하면서 이것이 죄인줄을 알고 행하는가? 아니면 죄이지만 다른 방법이 없어서 무의식상태에서 수동적으로 행동하게 되는가? 또 다르게는 구조적으로 의식과는 전혀 관계없이 죄의 행동을 하는가?라는 죄와 사람과의 관계를 먼저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다.
어거스틴이 말하는바 사람의 구성은 영혼과 육체로 되었는데 영혼이 육체로 하여금 활동하게 한다고 했다. 영혼은 육체와 마찬가지로 지, 정, 의의 인격적 요소로 구성되었는데, 이는 육체가 가진 생물체로서의 구성이 아니라 영혼의 상태로서의 구성이며, 육체도 영혼과 다른 생물체적으로서 인격이며, 이 두 가지 요소의 구성이 유기적이며 조화롭고 질서 있게 작용함으로 완전한 사람을 구성하지만, 각기 뚜렷한 목적으로 지음을 받았고 육체보다는 영혼이 더 우선이며, 영혼은 인격적 작용에 의해 어떤 결과들을 생산하고, 그 결과를 육체에 육체는 반영된 결과대로 행동하므로 살아있는 사람을 드러낸다.
육체의 행위는 능동적인 자각
Self-consciousness
행위2와 수동적인 지각행위3로 구분된다. 자각행위는 영혼이 생산한 결과가 육체에 반영되었을 때 행하는 적극적인 행위와는 상관없이 자기자신의 감각에 따라 반응하는 행위인 반면, 지각 행위는 객체와의 관계에서 유기적으로 주어진 조건대로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지적인 행위는 육체의 작용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영혼에 있고, 감각적인 작용은 육체가 반응하는 행위이다.4 결국 사람이 의식을 갖거나 인식을 하고 행동을 하는 것은 영혼이나 육체가 개별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개별적인 작용으로 볼 경우 영혼의 행위는 지적인 행위로 천사와 같은 영적 존재의 행위이고, 육체만의 개별적인 행위는 감각적인 행위로 동물적인 행위일 뿐이다. 사람은 영혼과 육체가 각기 개별적인 행위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죽음에 이른 사람의 영혼이 육체로부터 분리될 때 천사와 같은 존재가 되고, 육체는 썩어 다시는 감각을 가지지 못하는 존재로서 흙으로 돌아가지만, 주님께서 재림하시고 모든 육체가 부활하여 완전한 사람이 될 때 천사와 같은 영혼이 새로운 육체를 입으므로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육체와 영혼의 개별적 존재가 연합하여 질서롭고 조화로운 상태로서 서로의 의지를 연합하여 마음을 구성할 때 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참 사람은 육체로는 감각을 갖고, 감각을 영혼의 지성에 반영하여 지식을 생성한 후 영혼의 감성에서 지식에 대한 지각을 갖고 이 지각을 사람의 중심기관인 의지의 집, 곧 마음에 반영하여 전인으로 인식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영혼은 지적인 작용을, 육체는 감정적인 작용을 하지만 마음이 없다면 두 작용의 결과들뿐 인식하여 감각과 지식을 드러내는 결과를 드러낼 수 없었을 것이다. 만약 지적 작용으로 존재하는 천사 같은 영혼이 인식을 가진다면 이 세상을 먼저 살고 죽은 수많은 영혼들이 육체로 살아 있는 존재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혼이 느끼는 감각적인 일들, 곧 하나님의 영적인 세계를 알려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의 조상인 선조들이 우리를 그들의 몸에서 생산한 후손들이 아직 죄 가운데 육체로 살고 있는데 그것을 전달해 주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생명을 다하고 썩어 흙으로 돌아간 육체가 모든 감각과 지식들을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에 지금까지 인류가 가진 모든 희망은 물거품이 될 것이다.
이처럼 영혼과 육체가 하나 안에서 각기 개별적인 작용을 하는데 이를 드러내는 기관을 마음 곧 전인의 인식 기관인 의지의 집이 구성되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의지의 집인 마음은 육체와 영혼을 지으심과 같이 하나님께서 별도로 지으신 것이 아니라, 사람이 탄생할 때 영혼에 있는 의지와 육체에 있는 의지가 하나로 결합하여 마음이라는 전인으로서의 인식 기관을 생성되게 하고 이를 사람이 행동하고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인식기관이 되게 한 것이다. 죄의 본질은 “사람의 영혼의 지성에서 직접적으로 본유지식5의 조명에 의하지 아니하고, 본유지식에 의해 생성되었던 순수지식6이 표상을 조명함에 있어서 순수지식과 표상이 일치할 수 없는 부분이나 혹은 표현하지 못하는 결함이나 무지가 함께 역할하여 조명함으로 결함을 가진 획득지식7을 생성하고, 그 지식을 영혼의 감성에서 지각하여 의지로 마음 반영된 육체가 느낌을 가진 지식이다.” 그러므로 지성에 반영된 표상은 죄의 본질이거나 아닐 수 있으며, 선재한 본유지식이나 순수지식에 의해 조명을 받게 된다. 범죄 하지 아니한 첫 사람 아담 영혼의 지성에서 일어난 사건은 본유지식이 지성에 반영된 표상을 조명하여 하나님과 관계하여 죄를 지각하고 그에 대한 의지를 마음에 반영하였고, 순수지식으로는 하와와 관계하여 왜곡된 지식을 생성하여 의지를 마음에 반영하였다. 이때 마음은 본유지식의 조명에 의하여 생성된 지식을 따르지 않고 하와와 관계하여 순수지식의 조명에 의해 생성된 지식을 선택하여 의지대로 행한 것이다. 그러므로 죄를 선택하여 악을 행하는 것은 의지에서 행한 것일지라도, 죄는 이미 지성에서 생성되어 의지에 반영된 것이므로, 죄의 본질은 지성에서 생성한 지식이지만 본성이 죄를 생성한 것이 아니라, 반영된 표상에 의해 죄의 지식이 생성되었으므로 “외부로부터 첨가된 성질이라는 것”이라고 Calvin 이 말한 것이 가장 타당한 말이다. 그는 베르나두스의 말을 인용하여 “처음 사람이 사탄에게 귀를 열어주었기 때문에 죽음이 들어 온 것과 같이(렘9:21) 외부로부터 들어온 것이라는 말은 지극히 타당한 말이다.
성경은 타락한 사람의 마음을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 마는.(렘 17:9)”라고 선지자가 말했고. 예수께서는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 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마 5:18).”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마음은 이미 더러운 지식으로 말미암아 오염되어 선한 것이라고는 조금도 낼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마음이 죄를 만드는 기관은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대로 죄는 분명히 마음에 들어왔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라고 말씀하신 것은 아직 의지를 발동하지 않은 가인의 마음에 반영된 죄의 모습을 보시고 언급하신 말씀인 것이다. 그러므로 죄는 마음에 있으나, 마음에서 만들어지지 않았으며, 마음에 들어왔고, 사람이 이미 행동할 수 있는 완전한 상태로 들어 와서 육체로 하여금 행동을 드러내도록 준비된 상태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가인에게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죄의 본질은 마음에 들어 올 때 이미 완전하고, 의지를 일으킬 수 있는 상태로 들어 왔으므로 그것은 영혼의 지성에서 전인인 마음으로 반영한 지식이 분명하다. 이 지식은 영혼의 지성에서만 생성되어 사람의 마음에 반영시킨 것이 아니다. 본래 지식은 하나님 외에 어떤 다른 존재에서 생성되거나 발생하여 인식되도록 생성되는 곳은 없다. 지식은 오로지 하나님과 사람의 지성에서만 생성되고 사람이 생성한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의 조명을 받음으로만 생성된다.
그러므로 죄의 본질이 지식이면, 하나님은 진리이시고, 죄된 거짓 지식을 내실수도 생성하실 수도 없는 존재이시므로 오직 하나님가 관계 없이 사람 영혼의 지성이 무지와 결함을 함의된 생성된 지식인 것이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선의 결핍, 혹은 빗나간 화살”이라고 했고, 개혁주의자이면서 청교도인 Jhon Owen은 로마서 7:23을 인용하여 말하기를 “죄를 법”이라고 했다.8 사도 바울이 깨달은 “죄의 법”을 Owen은 사람 속에 침투하여 심겨진 ‘호르몬’과 같은 역할을 하는 실체는 없으나 드러내는 경향성으로 본 것이다. 즉 사람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많은 의지들을 자극하여 활동을 일으키는 원인자일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어떤 행위를 요구하여 지성과 의지로 행하게 하는 것이다. 이 법이 사람으로 하여금 행동하여 악을 드러내는 것으로 본 것이다.
- Westerminster (B,d) Yeil Uni (M,A,M.Phil) Bell heaven UNi(D,D) (현)Ollando Refprmed University 조직신학및 철학교수, *Systematic Theology 2013, chapter 36,) [본문으로]
- 육체의 자기의식은 감각이다. 지식을 가지거나 지적의식을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 육체가 지각행위를 하는 것은 수동적 반응행위를 의미한다. [본문으로]
- 이것을 이원론으로 보는 것은 무리이다. 육체와 영혼은 따로 존재하면서 하나에 속해있고, 유기적으로 하나를 이룬다. 곧 하나는 둘이 이루는 구성으로 된 것이고 각각의 역할이 분명히 구별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원론처럼 보일 수 있다. [본문으로]
- 하나님의 형상 안에 있는 지식:(하나님에 관하여, 하나님에 대하여, 창조에 관하여, 사람에관한 모든 지식) [본문으로]
- 사람의 지성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 안에 있는 본유지식의 조명에 의해 생성된 지식 [본문으로]
-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한 죄인들에게서 본유지식을 상실함으로 인해 순수 지식의 조명에 의해 생성된 지식 [본문으로]
- Jhon Owen, Indwelling Sin in Belivers, 김귀탁역, 부흥과 개혁사, 2009, P35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