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창조
9. 창조
전능하시고, 무한하시며, 스스로 자존하시는 하나님은 피조물이 인식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을 하셨다. 창조는 하나님께서 자신 안에서 행하시는 많은 일 가운데 피조물인 사람의 의식 영역에 지각된 유일한 영역이다.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에게도 많은 의식 활동영역이 있는데 그 가운데 어떤 한 활동을 특정한 영역으로 지정하여 살펴보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의식 활동의 가운데서 특별히 창조 사역을 피조물인 사람의 의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창조는 사람의 의식 구조에 의해 인식할 수 있도록 영혼의 지성에 의해 생성된 지식이 감성에서 지각되어 전인으로 인식된 지식인데 “하나님께서 피조물이 존재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의식 활동”이라고 정의한다. 이 정의에 의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피조물을 만드셨는지, 피조물을 존재하도록 하신 목적이 무엇인지, 그 존재가 하나님께 어떤 유익이 있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1) 창조 지식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성경은 창조 이전에 어떤 의도를 가지고 계셨으며, 창조하여야 하는 어떤 이유에 대해서 언급이 없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는 선언으로 시작함으로 사람들을 당혹하게 한다.
사람의 마음에는 다양한 지식들에 의해 피조세계의 시작에 관한 정의나 혹은 개념들, 그리고 구전이나 각종 전승들로 이루어진 분명하지 않은 지식들이 무지와 결함에 의해 오염된 채로 생성되어 반영되어 있었거나, 완전히 무지에 덮여 있거나, 다윈론자들의 지식 교육으로 자연발생과 진화론이라는 표상을 영혼의 지성에 반영하여 자기가 인식할 수 있는 자기지식을 반영되어 있는 상태이다. 무지나 결함, 구전이나 전승설화, 그리고 다윈론자들의 견해들은 어떤 사람의 지성에서 생성된 지식에 의해 교육이나 경험에 의해 생성한 자기 지식이지만, 그 지식이 사람으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에 지식을 생성하는 지성에 적용하는 공통 규칙에 의해서 거부감 없이 쉽게 받아들여진다.
성경이 말하는 창조 선언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계시하시고, 그 계시 지식을 영혼의 지성에 반영하여 생성된 지식으로 무지와 결함에 오염된 채로 구전으로 전승되어왔으나, 하나님께서 창세기의 기록자 모세에게 특별히 역사하셔서, 시내산에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시므로 모세의 지성에서 무지와 오염을 털어낸 순수한 창조 지식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도록 확실히 조명하여 인쳐 주심으로 믿음에 의해 받게 된 지식이다1). 이와 같은 성령의 조명으로 인쳐진 믿음에 의해 얻어진 지식이 아닌 단순히 경험이나 교육을 통하여 받아들이는 창조 지식은 상당부분 무지와 결함이 포함되어 있는 오염지식으로 동일한 언어나 문자를 사용할 지라도 그 의미가 결코 성령에 의해 인쳐진 믿음으로 받은 창조지식과 같지 아니하다.
모든 지식들과 같이 창조에 관한 지식이 사람에게 선언으로 다가왔을 때, 사람에게 나타난 반응은 진리의 지식을 자기의 영혼의 지성에서 오염된 개념으로 인식하거나, 아니면 자기의 지성의 지식생성 체계가 하나님께로부터 믿음에 의해 받아들여진 하나님의 지성의 지식체계와 동일하지 않음으로, 근본적으로 배타적인 거부감을 드러내게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누구든지 창조에 관한 지식을 감각 되도록 들려주어 경험을 갖도록 하면, 그 지식으로 인하여 이유 없는 거부감을 드러낸다. 그것은 진리의 창조 지식이 타락한 사람에게서 생성된 창조지식과 코드가 일치하지 않음으로 드러내는 결과이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는 창조지식이나 다른 모든 지식을 타락한 사람이 편리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첫째로, 성경은 하나님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적용되는 지식을 생성하는 규칙을 적용하였으므로 타락한 사람의 지식 생성 체계가 동일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있는 모든 지식 내용이 하나님께서 사람의 지성에 지식을 생성하는 규칙을 적용하였을지라도 타락하지 않은 사람의 지식 생성규칙을 적용하여 생성한 지식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과 타락한 사람의 지식이 동일한 규칙의 일치점이 갖지 못한다. 따라서 경험적으로 인식하는 창조지식과 성령의 조명에 의해 받아들이는 창조지식의 차이로 인해 타락한 사람은 성경이 말하는 창조지식을 편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두 번째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접한다는 것은 사람이 육체의 오감으로 감각을 갖는 것이다. 이렇게 감각을 갖게 될 때 지식을 인식하기 위해 표상화 하여 영혼의 지성에 반영하는데, 그때 그 표상을 조명하는 성경을 접한 사람의 영혼의 지성에 있는 선재하는 지식이 타락되었거나 표상을 조명하기에 부족하여 무지와 결함이 함께 조명함으로 창조에 관한 왜곡된 지식을 생성하여 인식을 갖게 됨으로, 성경의 창조지식의 의미와 개념이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이 말하는 의미와 개념으로 인식되게 하기 위해서 반드시 성령 하나님의 조명에 의해 인식되어, 성경이 말하는 의미가 가감 없이 인식되어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지식으로 저자는 성령이시다. 성경을 생성한 지성의 지식코드는 타락한 사람의 지성의 지식코드와 결코 일치하지 않다. 성경을 접한 사람의 지성은 성경이 드러내는 의미와 개념으로 진리대로 받지 아니하고, 성경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자기 지식을 생성하여 영혼의 감성으로 지각을 갖게 된다. 감성이 지각을 가졌을 때 비로서 인식할 수 있는 지식이 되는데, 지성은 지식을 생성할 때 표상대로 지식을 생성하는 것이 아니라 선재한 지식이 조명하여 표상을 밝혀 주어야 하는데, 타락한 사람은 선재한 지식이 무지와 결함으로 오염된 타락된 지식이므로 진리인 성경을 오염된 지식이 조명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로 인해, 결국은 진리를 왜곡시켜 본래의 의미와 개념이 전혀 다른 지식을 생성하여 인식하게 된다.
구체적으로 성경이 말하는 창조는 창조자이신 하나님과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지식이 선언된 지식이다. 그런데 사람의 지성에 있는 지식은 하나님이라는 지식이 없고 감각을 통하여 성경말씀이 표상으로 지성에 반영될 지라도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조명할 수 없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에 관하여 무지하고 결함된 지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알지 못하는 하나님에 관한 무지가 창조지식을 조명하는 것이다. 이렇게 표상을 조명하면 창조지식은 왜곡된 지식을 생성하여 지각을 갖고 인식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이 진리의 지식을 서로 다른 의미와 개념으로 인식하거나 다른 개념을 드러내게 되는 원인이 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의 말씀 지식은 성령께서 조명하셔서 사람의 마음에 지식으로 반영되고 곧 바로 영혼의 지성에 새겨져 자기의 지식이 되도록 함으로 영혼의 감성이 지각되기 까지 받아들이므로 진리대로 인식을 갖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성경을 접하면 그 지식을 조명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하신 대로 살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발견한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사람의 영혼에서 생성한 그 어떤 지식도 진리를 가까이 하지 못하고, 진리의 의미대로 생성할 수 없으므로, 역으로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영혼의 지성에 새기는 이것이 원리이며 최초 사람을 지으실 때 하나님께서 원하신 사람의 모습대로 회복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사람이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반드시 죽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그 지식의 규칙이 우리가 발견한 기대 가능한 믿음으로 말미암은 영혼의 지식을 새기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선언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사람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1)고 지식으로 가르쳐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타락한 그 사람은 반드시 죽어야 하고 결코 하나님의 진리의 지식을 자기 영혼의 지성에 새겨 진리로 살아가는 일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예수께서도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3)”고 말씀하신 것이 곧 육으로 난 것을 죽이고 영으로 거듭날 때에만 진리의 지식을 가지게 되고, 하나님나라를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싸움의 삶을 살아야 한다. 자기 영혼의 지성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지식들이 생성되고 지각되어 자기 인식을 갖고, 그 지식을 자기 마음에 반영하여 더욱더 추하고 더러운 죄인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은 사람의 일을 중단시키기 위해, 매순간 자기를 죽이는 일로 전 힘을 다하여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사람을 상대하여 의사를 전달하시는 말씀이 사람의 마음에 반영되어 그 말씀이 가진 의지에 의해 진리대로 인식하는 의식 활동을 하게 함으로 창조의 목적에 부합한 삶이 사람에게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창조지식을 다른 사람을 통해 귀로 듣거나 기록된 글을 눈으로 보는 감각을 통해 접한다. 어떤 지식이든지 사람이 지식을 접하였을 때, 그 지식에 대한 지각을 통해 인식하고 지식의 의미와 내용대로 의식 활동을 하게 된다. 창조지식을 접한 사람이 창조의 의미와 내용을 가지기 위해 지각하여 인식하기 위해서는 접한 지식을 자기 지식화를 거쳐 지각을 갖게 된다. 왜냐하면 모든 지식은 의미와 내용을 가진 의식 활동의 근원이 되기 때문에 지식에 담긴 의미와 내용에 따라 의식 활동이 나타나게 된다. 기쁨과 슬픔의 감정의 의미를 가진 지식을 사람이 접하면 그 지식의 의미와 내용을 자기 지식화 과정에서 자기가 인식할 수 있도록 생성하는 것이다. 만약 자기 지식화로 생성되어지지 않은 그 어떤 지식도 결코 인식되지 않고 의식활동을 일으키지 못하고 그냥 존재하는 지식으로 사람과 관계없이 세상을 떠돌 수밖에 없을 것이다. 피조세계에는 사람이 인식하지 못한 창조와 관계된 무궁무진의 지식이 있고, 그 지식과 맞닿아 접하게 되지만 결코 조우를 가지지 못한다. 사람이 조우하지 못한 지식에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도 있고, 자기 자신에 관한 지식도 있다. 이 모든 지식은 피조세계에 이미 충만하게 주어졌으며 사람이 이미 가진 경험이 있었던 지식들이다. 하지만 이런 지식들을 인식하지 못하고 의식 활동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은 먼저는 사람의 영혼의 감성으로나 육체의 오감으로 감각되지 않았으며, 사람이 인식할 수 있도록 영혼의 지성에서 생성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창조지식은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하여금 육체와 영혼의 감각에서 감각 되도록 특별히 말씀하셔서 들을 수 있게 하셨고, 사람이 시공간에 있기 때문에 직접 듣지 못한 후대의 사람들이 감각을 가질 수 있도록 기록으로 남겨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창조지식은 하나님의 말씀인 지식이고, 하나님께서 사람의 수준의 지식을 주셨을지라도 감각한 사람이 하나님께서 주신 지식대로 의미와 내용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를 자기화 지식으로 변환과정을 거처야 인식할 수 있는 지식을 지각하게 된다. 이 변환을 즉, 육체와 영혼의 감성에 의해 감각된 하나님의 말씀의 창조지식을 표상화 하여 영혼의 지성에 반영하고, 지성에서는 이미 선재한 자기지식으로 조명하여 사람이 인식 가능한 자기지식으로 생성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필연적인 변환과정에 의해 서로 다른 두 개의 의미와 내용을 가진 창조지식이 있게 된 것이다.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선포된 원 창조지식과 그 지식을 재해석하여 사람의 지성에서 변환한 생성된 창조지식이다.
사람은 지식을 생성하여 지각을 갖고 인식함으로 의식 활동을 하게 된다. 지식이 없다면 사람은 감정만 가진 짐승들과 같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별도로 지으시고 하나님의 형상을 부여하신 것은 피조물 가운데 유일하게 사람과 Communication을 가지시려고 지식에 의해 의식 활동을 하는 존재로 지으신 것이다. 그 사람은 하나님과 관계에 있어서 상대적인 독립성을 가지도록 지으셨으므로 완전히 사람자신이 스스로 의식 활동을 하여 하나님과 상대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의 결정으로 말미암은 어떤 행위도 하나님께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아니하는 완전한 독립성을 가진다. 예를들어 사람의 범죄는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사람 자신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생성되어진 행위이지,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셨기 때문에 어느 정도 원인을 회피 할 수 없다고 말하지 못하는 완전한 독립성을 의미한다. 사람이 완전한 독립성을 가지려면 행위의 주체가 사람에게서 나와야 하고 사람으로부터 생성되어야 한다. 그래서 최초 사람에게는 진리대로 지식을 생성하여 인식하고 의식 활동을 하도록 하나님의 형상에 본유지식을 부여하여 모든 감각된 것을 조명하여 지식을 생성하여 그 지식으로 지각을 갖고 인식하여 의식 활동을 하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지음을 받은 완전한 존재로서 사람이 많은 지식을 생성하여 폭넓은 인식과 의식 활동을 할 수 있게 되고, 더 나아가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되는 욕구를 일으킬 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본유지식의 범위를 넘을 수도 있는 탁월한 존재로서 스스로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아셨다. 그래서 피조물이라는 제한적 존재인 사람을 사랑하시고 그가 완전한 모습으로 영원히 유지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사람을 위해서 그들에게 한 가지 의무를 부과하시고 그 의무를 이행하도록 그들과 행위언약을 맺으셔야 했던 것이다.1)
모든 행위에 있어서 완전하여2)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던 사람은 그 독립성에 있어서 피조물로서 탁월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은 지식을 생성하고, 그 지식으로 의식 활동을 하는 놀라운 피조물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께로 지음을 받은 피조물이라는 의식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모든 지식에 있어서 이 지식의 조명을 받아 진리대로 지식을 생성하는 지식을 지각하여 인식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창조지식이 곧 피조물이 자신을 지으신 하나님의 창조행위를 지각한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이것은 자신의 근원을 살펴보는 시공을 초월한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역을 객관적으로 관찰하여 인식하는 일이다. 하나님의 아름다움, 완전하심, 조화로우심을 감상하는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을 객관적 시각으로 살펴 볼 수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순간의 경험을 가진 사람을 지켜보고 계신다는 두려움을 느끼고 창조지식을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마치 히브리인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기록 할 때마다 붓을 빨고 하나님의 이름을 기록한 것과 같이 우리도 창조지식을 생각할 때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면전에서 그 지식을 언급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