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아들 1, " 주여 뉘시니이까?1"
하나님의 아들1
행 22:8 (주여 뉘시오니까?)
5, 이에 대제사장들과 모든 장로들이 증인이라. 또 내가 저희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을 받게 하려고 가더니,
6, 가는데 다메섹에 가까이 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서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취매
7, 내가 땅에 엎드려져 들으니 소리가 있어 가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8,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우리의 위대한 스승인 사도 바울이 자기의 형제들인 히브리 인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그리스도를 만나고 회심하였는지, 그리고 지금 자신이 왜 이처럼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었는지를 고백하는 신앙고백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에는 수많은 진리들이 우리의 영혼에 새겨지기 위해 대기하고 있고, 우리는 그 말씀이 우리를 조명하시기를 고대하면서 그리스도 앞에 모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오늘 이 자리에 모이게 된 것도 우리의 영혼이 진리를 너무 사모하는 마음이 있지만, 세상에서 예수를 믿는 신앙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마음을 모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힘을 다하는 그날까지 여러분과 함께하는 이 자리가 영원히 계속되어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이 자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만나는 축복된 날들이 더하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입니다.
만약 우리가 거듭난 주의 형제들로 이곳에 모인다면 이곳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나는 아름다운 곳이 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회개의 변화가 있는 오순절 다락방에서 있었던 성령강림의 역사가 나타나는 회개의 장이 되고, 여러분들은 여기에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신들이 이 세상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세상과 여러분과의 관계에 있어서 새로운 가치관을 갖게 되고, 진심으로 천지를 창조하시던 그때 사람을 지으신 그 사람으로 회복해 가는 여러분이 되어, 지으심을 받은바 대로 살게 되는 놀라운 일들이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모임을 갖게 되었는데 이것은 성령께서 하신 일이요,
이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김00 집사님을 오른손에 붙잡고 사용하셔서 집사님으로 하여금 힘든 일을 자처하여 이렇게 나서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김00 큰 상급과 이 일로 말미암은 즐거움을 더하실 것이고, 여기에 동참해서 함께 모여 진리의 말씀을 사모하는 여러분들에게는 매시간마다 진리의 말씀으로 거듭 성장하는 그리스도인, 곧 하나님의 아들의 즐거움을 누리시는 역사가 함께 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모임이 근본이 되는 00 교회에 덕이 되고 우리의 일이 교회에 본이 되어서 모든 교구들이나 구역들에서 이런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모태가 되는 00 교회의 담임 목사의 목회사역에 커다란 힘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렇게 되면 여기에서 모인 여러분들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역이 내향적인 활동이 아니라 외향적이 되어 주어진 복음을 들고 세상에 나아가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양자된 하나님 아들의 삶이 여러분의 삶에 나타나게 될 것이고 나아가서는 00 교회가 더욱 빛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이단적인 사설을 말씀 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의 열심으로 사역에 집중하는 그런 신앙을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인성을 고취시켜 여러분을 들뜨게 하는 그런 신앙을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감정을 복 돋아 흐느껴 울게 하는 그런 꾸며낸 말이 아니라,
여러분의 영혼에 진리의 글을 새겨 넣는 서기관 같은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을 말씀 드릴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아무리 진리를 말할 지라도 성령께서 여러분의 영혼에 조명해 주시지 않으시면 저의 노력은 헛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의 말씀이 여러분의 영혼에 새겨지도록 성령께서 조명하시고 그 새겨진 진리의 말씀이 빛을 발하게 되면 여러분의 영혼에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는 중생의 역사와 함께 진리의 빛이 여러분 자신을 조명함으로 죄로 살고 있는 자신을 적나라하게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진리의 말씀을 여러분의 영혼에 새겨 넣으려고 할 때, 여러분의 완강한 거부를 예상합니다.
여러분의 본성은 아직 죄로 물들어 있고, 죄의 지배 아래 있기 때문에,
제가 여러분의 영혼에 하나님의 말씀을 새겨 넣으려고 할 때, 여러분의 영혼을 지배하고 있는 여러분 자신의 지식이 제가 전하는 진리의 지식을 해석해 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로 인해, 여러분 자신이 여러분의 영혼에 진리의 지식이 새겨지지 못하고 진리의 지식을 해석한 여러분 자기 지식이 새겨지게 됨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왜곡하는 여러분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진리의 말씀을 전할 때 반드시 성령께서 역사하시지 않으시면, 여러분은 제가 복음을 전하는 이 말씀들을 완강하게 거부하는 결과를 얻을 수 밖에 없습니다.
본질상 모든 사람들과 저와 여러분의 본성은 죄의 죄의 열매인 죄 자체이기 때문에 죄의 본질만을 생성하여 그것 대로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영혼에서 우리를 행동하도록 하는 모든 지식은 우리 자신의 지식의 조명으로 생성된 죄의 본질들 뿐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영혼이 진리를 대적하는 그 행위를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죄의 본성이 무엇인지 저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이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거나,
어떻게 하든지 듣지 않으려는 구실을 찾아내든지,
아니면, 다른 것들에 관심을 쏟아 진리가 여러분의 영혼의 지성에 새겨지는 것을 방해할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말씀을 들으면서도 이 말이 맞을까? 하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말씀을 전할 때 여러분의 인성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영혼에 말씀을 심는 씨를 뿌리는 자로 설 것입니다.
사도가 항상 그런 자세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것 같았습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엇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으니 (고전 3:2)"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보면 놀라운 사건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말씀을 주셨을 때, 말씀의 씨를 뿌리셨고, 그 말씀이 가인의 영혼에 그대로 심겨졌어야 하는대도 불구하고, 그 말씀은 가인의 지성에서 자기 지식으로 해석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애석하게도 성령께서 가인에게서 그 말씀이 자라나게 하시려고 하셨으나, 성령의 사역은 가인에게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인은 자기 지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 되지 못하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성령께서 조명하시지만 그 말씀이 가인의 영혼에 새겨지지 않고 가인이 자기 지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는 이 비밀에 관해서는 차츰 말씀을 드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을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혹은 그 말씀을 자기 지식으로 해석해 버리는 놀라운 일이 있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불신자들과 자칭 그리스도인이라 칭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일들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수많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으나 가인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지식으로 해석하고 판단하여 진리가 진리 되지 못하게 했을 때가 아주 많습니다.
진리가 선포될 때 여러분에게 성령께서 역사하시지 않으시거나,
역사하실지라도 여러분이 창세 때 작정된 사람이 아니라면(엡 1:4),
오늘 이 자리에서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을 하실지라도 여러분은 가인과 같이 자기 지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자의로 해석하고 말 것입니다.
가인을 보십시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말씀을 듣고 충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들리는 말씀을 자의로 해석했습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창조주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의 지식으로 해석한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무시했고,
완강하게 하나님을 거절하는 인류의 대표적인 불순종의 열매를 드러내 보였습니다.
그의 정체는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지으실 때 그들 안에서 태어나도록 예정된 사람이 아니라,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정욕을 일으켜 죄의 정욕으로 낳은 죄의 열매이며, 정욕의 결과인 사람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뚜렷하게 두 종류의 사람이 함께 연합하여 엉키어 살고 있습니다.
최초 사람 아담과 하와가 낳은 두 사람 가인과 아벨로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자세히 살펴 보면 그들의 정체에 관해서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정체를 확인하고, 그 두 사람을 우리 자신에게 조명하여 보면, 우리가 어느 하나에게 일치하는 자신을 보게 될 것입니다.
가인을 조명하여지면 가인에 속한 사람이고, 아벨이 조명하여지면 아벨에게 속한 사람입니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결코 부정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을 제목으로하는 이 시리즈를 다 마치기 전에 이 진리에 설득을 당할 것입니다.
저는 이 진리를 여러분에게 줄기차게 증언함으로 여러분이 죄의 열매요, 정욕의 열매였고, 여러분의 영혼에는 죄의 본질인 지식이 가득채워여 있으며 가인처럼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지식으로 조명하여 해석한 지식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것입니다.
인류의 조상이 낳은 두사람을 보십시요.
이 두 사람은 서로 싸우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원망하지만,
나중에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아내로 삼아 함께 살고 정욕을 일으켜 자식들을 낳고, 이 세상에 사람들이 많아지게 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과 결혼하여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들끼리 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아니라 정욕의 자녀들인 가인편의 사람들끼리 서로 정욕을 일으켜 또 정욕의 열매를 생산하면서 이세상에 사람들이 많아지게 했습니다.
놀랍게도 저는 가인편의 사람으로 정욕의 열매 곧 죄의 열매로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저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오늘 여러분에게 진지한 마음으로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자답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어느 편에 속한 사람들입니까?
앞으로 저와 여러분이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여러분은 여러분이 누구이며, 여러분이 어떻게 이 세상에 왔으며, 여러분에 왜 이세상에 살게 되었는지 소개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소개를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하는 필연적인 요구를 듣게 될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을 원할 것이고,
그 하나님의 아들이 여러분에게 뿌리는 세례를 통해 거듭난 여러분의 자신을 보게 될 것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여러분에게 드리게 될 것인데, 이 말씀은 우리가 굳게 신앙하는 개혁교회의 교리를 중심으로 하는 신앙이 될 것입니다.
그때마다 여러분의 가슴은 요동치며, 흔들리고, 혹은 두려워하고, 혹은 의심하며, 심지어는 불안해 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 앞에 설 때 마다 두 가지의 각오를 가지고 섭니다.
한가지는, 제가 여러분을 진리의 말씀으로 설득하지 못하면 여러분이 던지는 돌팔매를 맞아 죽을 각오로 설 것입니다.
두 번째는 여러분의 영혼에 하나님의 말씀이 새겨지도록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도록 오직 진리만을 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나의 삶을 진리에 맡길 것입니다.
저는 어디에 가든지 이런 마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할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대표적인 신앙의 모범을 가진 사도는 어떠했습니까?
사도는 자기가 복음을 전할 때 항상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단에 선다고 고백했습니다.
바울 사도의 말을 한번 들어 볼까요?
고전 2:1~5 의 말씀입니다.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하지 아니하였노니
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4. 내 말과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주 잘 알 것입니다.
이 말씀은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가져야 할 아주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그래서 저도 이 자리에서 여러분에게 말씀을 전할 때, 성령께서 여러분의 영혼에 진리의 말씀을 새겨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성령을 의지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드릴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영혼에 새로운 지식 곧 여러분의 지성이 생성하지 않은 하나님의 진리가,
여러분의 영혼에 새겨지고,
그 새겨진 지식이 여러분의 영혼을 밝게 비추어 여러분으로 하여금 그 진리의 지식에 의해 새로운 삶을 살도록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머지않아 제가 여러분 안에서 행하는 죄의 정체를 설명하게 될 때 여러분은 가슴을 찢는 고통을 겪게 되고,
치를 떨고, 괴로운 마음으로 말씀을 받을 것이고,
그 죄로부터 한치도 벗어날 수 없는 여러분 자신을 보고,
여러분 자신을 한없이 미워할 것입니다.
그리고 괴로워 하며, '주님께서 명하신 대로 여러분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으실 것입니다.
제가 지속적으로 진리를 말씀드림으로 여러분 자신이 누구인지 분명히 알게 될 것입니다.
가슴을 치며 여러분 자신의 비참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굳게 붙잡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상태가 될 것입니다.
모든 삶에 그리스도의 삶을 살려고 발버둥을 치는 여러분이 되고,
날마다 여러분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삶을 살며,
그리스도를 떠나는 삶을 향하여 여러분의 마음이 열려져 있을때 여러분의 영혼은 여러분의 육체의 감정에 불안을 불어넣어 여러분으로 하여금 평안을 잃게 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주님께서 팔복의 말씀을 선포하시던 그 산에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주의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왕에 말씀이 나왔으니 오늘 그 산에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한 사람을 소개하겠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성경에 열심을 내는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집안은 가난했습니다.
형제는 많았고,
아버지는 할 일이 많지 않아 가정을 꾸려 나아갈 만한 수입을 가져오지 못하였습니다.
그의 아내는 아들들은 신앙으로 잘 가르쳤고, 이 청년은 어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신앙에 열심을 가진 사람이 되어 성경을 늘 가까이하고 읽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유대의 전통에 따라 그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성경에 관한 신앙교육을 잘 한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견고한 신앙으로 성장한 그는 자기의 집안을 살펴보면서 가난에 찌들은 아픈 상황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신앙에는 하나님의 메시아의 도래에 대한 확신 있는 종말론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정직하게 살려고 무척 애를 썼을 것으로 추측이 되는 사람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알패오(막 2:14) 였고, 레위족 사람으로 성전에서 제사를 맡아 봉사해야 하는 제사장직분을 가진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전으로부터 마땅한 녹을 받지 못한 것은 당시에 성전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의 수가 필요 이상으로 많았기 때문에 자기에게 까지 혜택이 미치지 못함으로 부득이 성전 밖에서 살수 밖에 없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 청년은 가족의 가난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가지를 생각해 냈습니다.
그것은 자신 한 사람의 희생으로 모든 가족들이 풍족하게 잘 살 수 있는 길을 생각했는데, 그것은 세리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희생하면 자기로 인해 가족들은 가난에서 충분히 벗어날 수 있다고 판단한 그는 세리가 되었습니다.
그가 세리가 되자 가족은 배불리 먹을 수 있게 되었고, 경제적으로 여유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너무도 많은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유대인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처지가 되었고
예전에 친한 친구들은 다 그를 떠나버렸고,
혹시라도 마주쳐 만나거나 함께 어울려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어 식사라도 한끼 같이 할라치면 그와 한자리에 앉아서 식사하는 것을 꺼려했습니다.
오히려 그 앞에서 침을 벧고 민족의 배반자라고 욕하며 떠나갔습니다.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에게 한푼이라도 동전을 던져주려고 하면 거지마저 고개를 돌리고 보지 않으려 했습니다.
스스로 정통적인 유대인들이라 자처하는 많은 사람들은 세리와 가까이 하는 것은 자기도 세리와같이 민족의 배반자가 된다고 생각하고 그들과 한자리에 앉아서 식사하는 것 까지도 죄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9:10~11, 막 2:16)
가난을 벗어 났으나 잃어버린 것은 너무 많았습니다.
그러니 마음에 기쁜 것이 없습니다.
육신으로 부자는 되었으나, 그의 영혼은 가난하고 피폐하며, 사막을 뜨겁게 불태울 것처럼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메마른 광야의 대지와 같이 풀 한 포기, 생명의 기운 전혀 없는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를 완전히 절망으로 빠뜨리는 또 하나의 소문이 그의 귀를 울렸습니다.
메시아가 나타났다는 소문이었습니다.
속된 말로 표현하자면 제수 없는 자에게 덮치는 재앙인 것입니다.
메시아는 모든 유대인이 고대하는 하나님의 구원자입니다.
유대인들을 죄와 세상의 압제로부터 구원하고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셔서 세상을 통치하실 꿈의 실현자였습니다.
이 메시아는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분으로 창세 때부터 이미 약속되었습니다.
모든 유대인들은 언제나 이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었고, 특히 로마의 식민치하에 있던 때에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런 메시아가 왔다는 소식을 들은 그 사실을 알아보기 위해 지목되는 장소에 달려가 보았습니다.
그곳은 요단강이었고, 약대 털옷을 걸친 한 사나이가 “회개하라”고 외쳤고, 새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거침이 없이 외쳤고,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인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폄하하면서 회개를 촉구하고, 세리들에게는 정한 세금 외에는 늑징하지 말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바리새인과 사두개인과 세리들을 향하여, 자신스스로 아브라함의 아들임을 신뢰하지 말라고 독설을 퍼 붓고 있었습니다.
요단강에서 다가오는 새 나라의 도래를 외치고 있는 그가, 회개에 관한 충고와 뒤에 오실 자를 선포하고 있었으나, 그것이 참으로 사실인지 분명히 확인할 수 없지만, 민중들이 그를 선지자로 알고 그에게 모여들어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청년은 세리가 되어 유대의 선민으로부터 죄인이 되어버린 자신의 입장 때문에 그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이 청년의 생각으로 저 선지자가 정말로 메시아라면 큰일이 난 것입니다.
왜 하필이면 이때 나타나서 자기의 운명을 송두리째 어긋나게 한단 말입니까?
청년은 자신에게 닥쳐온 운명적인 사건에 도저히 납득하지 못할 것입니다.
가난에 짖 밟혀 고통스럽게 살아온 것이 서러워 어떻게라도 가족들을 가난에서 건져내 풍족한 삶을 살도록 하려는 희생에서 비롯된 선한 인생을 돌아봐주지도 않으신 하나님이 원망스러웠을 것입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혼잣말이 여러분의 귓가에 들리지 않습니까?
왜 하필이면 이때야?
좀 더 있다가 오면 안돼,
가족이 살만하고 내가 세리를 그만두고, 죄인에서 유대인으로 회복될 그때 오시면 안 되느냔 말이야!
그는 일을 해도 손에 잡히지 않았을 것입니다.
머리 속에는 온통 메시아에 관한 생각과 망가져버린 자기의 인생을 회복할 길이 없다는 절망 때문에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제 그가 기대할 것은 메시아로부터 심판을 받는 한가지 일만 남았습니다.
유대 민족들의 배반자가 되어 심판을 받기 위해서 메시아 앞에 서게 될 것이 그의 미래에 주어질심판 뿐입니다.
그는 메시아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 곳에 자주 나아가 보았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은 메시아가 있는 곳으로 옮겨 졌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선지자가 하는 일과 외치는 말을 듣고 정말로 그가 메시아인가 자기 지식으로 판단해 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 청년의 마음에는 약간이나마 희망이 있었습니다.
메시아는 유대의 정통 혈통으로 태어나 다윗과 같이 선지자에게 기름 부음을 받아야 하지만 요단강에 나타난 선지자는 혈통은 유대의 정통 제사장의 혈통을 받았으나 그의 형색이 초라해서 앞으로 정치적으로 메시야로 등극하려면 많은 난관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약간이나마 희망을 갖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선지자가 한 사람을 지목하였고, 그 사람은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은 선지자에게 세례를 받았고, 그가 세례를 받고 물위로 올라올 때 하늘로부터 비들기 같은 성령이 임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리고는 곧 이어서 음성이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라는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 청년은 하늘로부터 임한 이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이는 분명히 메시아의 징조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자신은 변명할 수 없는 죄인의 상태에서 메시아로부터 주어지는 심판만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태에 놓이고 만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이 그의 삶이 되었을 것입니다.
매사 짜증을 부리지 않을 수 없고,
가족을 위해서 희생하다가 선한 상급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영원히 멸망을 받는 대표적인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원통하지요?
속히 세리에서 벗어나 손을 씻고 사람들로부터 용서를 받는 상태가 되었어야 했는데,
계획하는 목표를 이루기 전에 메시아가 나타났으니 자기의 인생은 이제 완전히 날아가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세관에 앉아서 세금을 받는 일을 제쳐두고 메시아가 활동하는 그곳에 자주 가까이 했습니다.
세례를 받으신 그 사람은 한동안 사라져 나타나지 않았다가 갈릴리 해변가에 나타나셨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가서 그의 동태를 살피며 과연 메시아인지 주의 깊게 살펴 보았습니다.
메시아 같은 그는 그곳에서 제자들을 불러 자기를 따르게 하였고,
가는 곳마다 이적과 기적을 행하시며,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고 있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팔복의 산에서 나타나셨을 때 수많은 군중들이 그를 보려고 올라갔고, 이 청년도그 곳에 올라갔습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무엇에 이끌리고 있는 사람처럼 메시아가 있는 곳으로 자연히 발걸음이 옮겨졌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었고 그의 제자들은 가르침을 받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아주 가까이 다가가서 그가 무엇을 말씀 하시는지 집중하고 그의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오늘날 모든 교회의 성도들이 이 청년과 같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쫑긋하고 집중하여 듣는 마음을 가졌으면 합니다.
메시아라는 그 사람이 입을 열어 말씀을 시작하였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메시아가 첫마디를 때자 이 청년의 마음에는 감당할 수 없는 슬픔과 복 받치는 아픔이 솟구쳐 올라왔던 것입니다. 마치 자기의 마음을 알고 자기에게만 말씀하시는 것 같은 따뜻한 말씀을 듣게 된 것입니다. 영혼의 깊은 샘에서 솟아오르는 샘 같은 그의 말씀은 육체에 선포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향하여 품어내는 샘솟는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심령이 가난해 보셨습니까?
애통해 보셨습니까?
지금 메시아가 선포하는 말씀을 듣고 계십니까?
여러분 더러 십일조를 많이 내라 감사헌금을 많이 해라 새벽기도를 열심히 해라 그런 말을 합니까?
여러분은 잘 할 수 있다. 기도하면 안 되는 것이 없다. 무엇이든지 믿고 하면 된다. 이런 적극적 사고 방식으로부터 이끌어내는 인성을 부추키는 그런 사상을 교육입니까?
청년의 귀에 들려온 말씀은 “심령이 가난한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였습니다.
이 말씀은 그가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 내리는 비둘기 같은 성령을 본 것과, 하늘로부터 들려온 음성을 듣는 것 보다 더 가슴에 파고드는 메시지입니다.
이 말씀은 그의 영혼에 깊숙이 새겨졌고 그의 지성을 밝혀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돈이 있으면 뭐합니까?
그 돈으로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을 수 없고,
함께 터놓고 이야기 할 사람도 없는데,
답답하고 숨막힐 듯한 그의 삶은
행복이 아니라 그야 말로 고통스런 삶뿐이었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영원의 삶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 절망스런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그를 심판할 메시아가 참된 진리로 교육하고 있는 그 교육은 자기의 것이 아니라 그의 발 앞에 모여 있는 선택된 제자들의 것이었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자신의 처지는 민족을 배반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거스린 배반자라는 낙인 뿐입니다.
아무도 그를 도울 수 없습니다.
자신이라도 자기에게 붙여진 죄인의 딱지를 떼어낼 수 없습니다.
가슴은 미어지고
숨은 차올라 오며
원통함과 억울함이 그를 억눌렀습니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씀은 여느 사람의 말이 아니라 진리 그 자체였고
이 청년은 그 말씀에 완전히 사로잡혀 버렸습니다.
계속되는 산상수훈은 들려오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지워지지 않도록 가슴에 새겨졌고
그의 마음에서 살아서 움직였습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세상사람들이 진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까?
그들이 진리를 이해할 수 있습니까?
철인들이 진리에 대해서 궁구하고 찾으려고 그토록 고뇌하고, 노력하였을 지라도
한줄의 진리를 발견하지 못했지만,
이 청년에게는 진리가 그의 가슴에 철필로 쓴 것 처럼 쓰여졌고
팔복의 산에서 그 진리를 말씀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죽으신 후 30년이 지났어도 그의 지성에서 또렷이 남아서 성경에 기록되었습니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집으로 돌아왔고 몇 일 동안 그의 소문을 들으며 그 앞에 나아가 그가 참 메시아인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그가 확실히 메시아라는 사실을 부인 할 수 없었습니다.
수많은 기적들과
그의 입에서 나오는 진리의 말씀들은 메시아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쏟아낼 수 없는 말씀들이었고 저 거룩하다고 하는 예루살렘의 성전에서는 들을 수 없는 진리였던 것입니다.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매일과 같이 세금을 거두러 세관에 나가 일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메시아는 오늘도 군중들을 몰도 가버나움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오시는 길에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셨고,
이 청년이 근무하는 세관을 통과하시기 위해 다가오셨습니다.
메시아가 오신다는 말은 들었고,
곧이어 자기 앞을 지나가는 메시아 앞에서 이 청년은 숨막힐 듯한 긴장으로 두려워 떨며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잠시라도 그와 얼굴을 마주치지 않는 것이 나중에 심판을 받을 때 변명이라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앞을 떠날 수도 없습니다.
발이 떨어지지 않았고 그렇게 긴장 가운데 고민하던 사이에 왁자지껄한 소리와 함께 그가 세관 앞을 지나 가시게 되었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경찰서를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어느 길거리에서든지 저만치 경찰이 눈에 보이면 그와 얼굴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괜히 얼굴을 돌리며 피해 가려는 것처럼,
이 청년은 의식적으로 앞을 지나가시는 메시아로부터 얼굴을 돌리고 일을 했습니다.
세관을 지나가시던 메시아가 안에서 일하는 이 청년보시고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좇으라”
마주치는 얼굴을 의식적으로 피하려는 이 청년은 의식적으로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알고 얼굴을 들고 메시아를 바라보고, 그 말씀이 자신을 향하여 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하던 일을 모두 내려놓고 메시아를 따랐습니다.
여러분은 이 장면에서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아무런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절망에 처한 이 청년에게 임한 일을 보고 있지 않습니까?
그가 누구인지 여러분은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교회를 이끌었던 12사도중의 한 사람인 세리 마태입니다.
그가 쓴 마태복음을 보십시오.
그의 글에는 종말론적인 유대주의적 사상이 배어있습니다.
그는 구약을 아주 많이 알고 이사야 선지자의 글을 즐겨 인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유대의 사상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고
그의 글을 보면 아주 학식이 있는 배움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세리가 되었고
그가 주님의 부름을 받은 그 장면을 고백했습니다.
오래되어서 잃어버릴 만한 산상수훈을 아주 오랫동안 잘 기억하고 있었고
그 산상수훈을 감격적으로 들었던 흔적이 그의 서술 방법에서 아주 잘 나타납니다.
그가 산상수훈을 들을 때 정말로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애통하는 자가 위로를 받는 다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의 삶 속에서 깨우치고 아는 사람이었고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으나 자신이 그렇게 하지 못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았던 사람입니다.
그 팔복의 산에서 들은 메시지가 기억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영혼에 새겨져 버린 것입니다.
누가 구원의 자리에 설 수 있습니까?
심령이 가난한자가 아닙니까?
주님께서는 오늘 심령이 가난한 여러분을 초대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품 안으로 다가와 위로를 누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전했을때 어떤사람이 저에게 다가와서 이렇게 공격했습니다.
목사님 마태가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다는 성경의 기록이 어디있습니까?
그리고 그가 불행한 환경이 가난이라는 것이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사변적인 말로 사람을 현혹시키는 것이 개혁주의 입니까?
제가 이런 공격을 받을때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변과 역사를 구별할 줄 모르면 진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사변은 아닌 사실을 자기의 사상과 추측으로 실제화 하여 꾸며낸 말이고, 역사는 밝혀진 찾아서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고고학에서 여러가지 유물들을 발견합니다.
오래전 옛날 사람들은 철기기구를 사욯하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돌을 갈아서 기구를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돌칼을 하나 발견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그러면 그 돌칼만 역사이고 돌칼을 사용한 그 배경들은 역사가 아닙니까?
아마도 형제는 제가드리는 말씀 모두를 사변적인 말로 들으실 것입니다.
그것은 형제의 지식이 어떤 규범을 가지고 있어서 제가 드리는 말씀을 그 규범에 넣어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드리는 말씀이 역사적으로 그러한가를 확인하십시요.
그리고 믿어지면 형제의 영혼에 새겨지도록 성령께서 역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말하자 그 사람은 돌아갔고 지금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그 날을,
그래서 저는 이 자리에서도 오직 진리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말함으로 여러분이 이곳에서 바울과 같이 하나님의 아들을 만나게 할 것입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을 들으면 여러분의 영혼이 진리를 들으므로 변화를 요구하는 호소를 느끼게 될 것이고, 그 동안 수박 겉핱기 식으로 알았던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에 관한 지식을 분명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저는 정통적으로 이어온 개혁교회의 교리에서 충실하게 진리의 말씀을 해석할 것이며,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말하는데 있어서 여러분이 미쳐 알지 못하는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 매시간마다 고뇌하며 괴로워하며 말씀을 연구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디에서든지 저는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뿐만 아니라 보냄을 받은 곳에,
주님의 말씀을 전할 때,
정욕의 열매이며, 죄의 열매로 태어난 가인의 후예들의 영혼에 하나님의 말씀을 새겨놓겠습니다.
그리고 기도하겠습니다.
간곡히 무릎을 꿇고 요청할 것입니다.
"하나님 성령을 보내셔서 제가 선포한 그 말씀이 그들의 영혼에 새겨져서 그들이 사도와 같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그리고 저는 진리의 말씀을 부지런히 더 연구하여 더 분명한 진리를 성도들의 영혼에 새기도록"
그래서 성령께서 그 말씀을 인치셔서 사람으로 하여금 새롭게 거듭난 사람이 되도록 저는 진리만 선포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삶게 되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보고 한 없이 기뻐하시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어떤 때에는 제가 드리는 진리의 지식이 여러분을 분노하게 함으로 저를 미워하게 되는 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진리이고, 여러분은 그 진리를 여러분 자신의 지식으로 이해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드리는 진리의 말씀을 듣고 여러분의 영혼이 즐거워하는 기쁨을 누리고 그 동안 경험하지 못한 영혼과 여러분 자신과의 느낌을 갖게 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의 영혼에 인치시는 역사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리의 말씀을 들은 여러분의 영혼이 그 진리의 말씀으로 한없이 기뻐하는 소생하는 즐거움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의 삶이 무엇인지 알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저는 이 일을 위해서 진리의 동산을 거닐고 그곳에서 진리를 꺼내와 여러분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다할 것입니다.
그 진리의 말씀을 들을 때 여러분은 자신의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삶에 지쳐 방황하는 갈 곳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여길 것입니다.
그때마다 여러분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분명히 길을 제시해 드릴 것입니다.
그 말씀을 듣고 말씀대로 걷는 여러분의 마음에는 한없는 즐거움과 기쁨을 경험하도록,
그 길은 우리를 한없이 사랑하시고 아들을 내어주기 까지 아끼지 않으신 하나님의 품 안으로 가는 길로 인도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사도가 자기에게 나타난 하늘에서 보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께 반문하는 질문을 제목으로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저는 이 제목을 오늘 다하지 못합니다. 사도가 만난 주님을말하기 위해서 아직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제목을 다음주에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오늘은 여기에서 마치려고 합니다.
한주간 동안 여러분의 삶에 주님의 동행하심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