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를 견고하게(롬8:11)
너희를 견고하게 (롬1:11) 0317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롬 1:11)
사도의 생각은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흔들리지 않은 견고한 신앙으로 서서 주를 만나는 날 까지 참된 행복으로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사도뿐만 아니라 오늘날 모든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전도를 받은 그리스도의 형제들이 신앙에 굳게 서서 세파와 이단, 그리고 고난 중에서도 주를 버리지 않고 주 앞에 견고히 서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자기 자녀들을 돌보는 것처럼 형제들을 돌보는 사랑의 마음으로 권고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끔 인생의 문제와 세속에 휩쓸린 마음, 각종 이단들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이끌려가는 형제들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사도는 그 원인을 성령께서 그들과 함께 계시지 않은 원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것이 오랜 경험에서 비롯되었을 것이지만 그보다 더 에베소에서 아볼로제자들에게 나타난 성령강림의 경험이 더욱 확신을 갖게 했을 것입니다.
사도의 생각일지는 모르지만 성령강림으로 인하여 사도의 마음에 신앙에 관한 분명한 확신이 생겼을 것입니다.
사도가 남긴 모든 서신의 기록시기가 에베소에서의 성령강림 이후에 기록된 것이기 때문에 모든 서신에서 성령과 신앙을 하나의 고리로 연결되어 말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고린도전서12:3에서 “누구든지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예수를 주라 시인할 수 없느니라”라고 말하고 자신의 복음전도가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고전 2:4, 13)”오직 성령의 능력에 의한다고 하고, “하나님께서 우리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딛 3:6)”라고 말하여 성령의 새롭게 하심(딛3:5)에 의해 성령으로 사는 것이 신앙임을 말함으로 거듭나는 것은 곧 성령의 내주로부터 일어난 변화의 시작임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사도가 로마인들에게 말하는 무슨 신령한 은사는 에베소에서의 성령강림과 같은 역사를 의미하며 이것이 견고한 신앙의 기초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가 사도바울이 에베소에 도착했을 때 아볼로 제자들에 묻는 말을 기록합니다. “너희가 믿을 때 성령을 받았으냐” 그러자 아볼로의 제자들이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행 19:2)”라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대면한 인류의 최초의 사람의 아들 가인의 지식, 하나님의 기적적인 사건을 열번이나 본 애굽의 바로 왕과 그의 백성들, 자칭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확신하는 이스라엘과 대제사장들, 그리스도인이라 자칭하면서 온갖 은혜와 은사를 독차지한 것 처럼 자랑하던 교회를 떠난 배교자들, 예수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신 것을 부인하던 역사적인 이단들, 예수이름으로 자기의 배를 불리는 거짓 그리스도들, 이들에게서 본 것은 그들의 지식이 하나님을 인식하는 지식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에 도착해 있었던 아볼로의 제자들과 같이 변화되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은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하시지도 않았는데, 그들은 스스로 교회 안에서 열심을 품고 일하고 있었습니다.
사도가 고백하는 것처럼 “내 말과 전도함이 성령의 나타남으로 하여”라고 말함과 같이 우리를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자녀로 세우시는 것이 우리의 능력이나 지혜가 아니라 성령으로 말미암아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바로 이것을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 견고하게 하려고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하십니까?
성령께서는 타락한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하십니다.
그것은 우리의 영혼에 복음 곧 하나님의 말씀을 심으시는 사역을 하십니다.
그 말씀이 우리의 영혼에 심어지면 영혼 안에서 새로운 일들이 있는데, 어두운 영혼을 밝히는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우리에게 나타난 반응은 이전에 가졌던 모든 지식들이 거짓되었다는 것을 알고, 그 지식들이 우리의 영혼을 주도하던 것이 어디론가 물러간 것처럼 힘을 잃고 제자리를 감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혼에서 일어난 새로운 반응은 나 자신에 관하여 하나님께 온전하지 못하는 것을 알고, 나의 온갖 행위들의 추악함을 느끼며,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들이 거짓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내주로 말미암은 영혼의 변화입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의 내주는 실지로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우리 안에 심으시는 일입니다.
사람의 영혼에는 모든 지식들을 가지고 그 지식으로 사람을 활동하는 존재가 되게 합니다. 지식이 없는 사람은 짐승과 같이 감각적인 전재일 뿐입니다. 복음은 하나님께서 새 사람을 만드는 하나님의 말씀의 지식입니다. 복음이 사람의 영혼에 심겨지면 빛을 발하여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조명하여 비춰줍니다. 이때 거짓되고 죄악 된 지식은 이 빛에 의해 물러가고, 우리가 그 지식을 생각하여 꺼내 쓰려고 하면, 복음의 빛이 없을 때에는 그 지식들이 옳고 정확한 답이며 진리라고 판단하지만, 복음의 빛이 조명하면 그 지식은 옳지 않다는 판단을 갖게 됩니다.
사람의 변화는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그 사람의 영혼에 심겨지므로 영혼 안에서 모든 지식들에게 빛을 조명하여 옳은 판단을 가지도록 합니다. 이렇게 새 사람이 되고, 복음의 사람이 되어 진리를 사모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자라나게 됩니다. 바로 이런 변화의 역사를 행하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결코 사람이 하나님 앞에 견고히 서서 진리의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가인을 비롯한 이 땅에 태어나 불행한 인생을 살고 그리스도를 배반하며 온갖 거짓에 휩쓸려 하나님의 지식을 왜곡한 수많은 사람들, 사도가 직접 경험한 쓰러지고 배반하여 교회를 떠나거나 다시 유대주의 그리스도인으로 돌아가버린 많은 사람들이 곧 성령의 은사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넘어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가장 급한 일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 보다, 먼저 성령께서 우리의 영혼에 복음을 심어주셔서 새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시는 일입니다. 이렇게 심겨진 복음에 의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라가 완전한 새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이런 견고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결코 넘어지지 않은 진리의 사람이기를 사도가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아멘
2013, 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