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롬 1:25)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하실이시로다 아멘(롬1:25)
사람의 지식은 한계가 있고 자기가 생성하고 지각하고 인식한 그 이상의 지식을 가질 수 없습니다. 사람의 지식은 지성에 저장되어 있고 이것이 생물학적으로는 육체의 뇌에 저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혼과 육체의 뇌는 하나의 결합체로 뇌안에 기록된 기억 즉 지식은 꺼내 쓸수 있고, 다시 저장할 수 있지만 그것이 자기의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지성과 감성의 역할에 의해서 저장되는 것입니다. 영혼이 육체를 벗어나면 뇌에서 지식을 꺼내가고 육체의 뇌에는 지식이 남아 있지 않게되며, 영혼이 가져간 그 지식으로 하나님 앞에 서서 자기의 지식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이때 그 영혼의 지성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다면 그 영혼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지 못하는 비극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찬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라(요 17:3)"에 말씀하시는 것은 영혼의 지성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진자만이 영생을 얻게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도가 "진리를 거짓것으로 바꾸고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설령 성령께서 조명하심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하여도, 타락한 사람이 자기지식으로 하나님을 이해하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을 진리대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지식으로 이해한 만들어진 하나님이라는 것을 안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이 우상을 만들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한 선명한 지식이 우리에게 제공되어지고, 우리의 영혼에 다가오면서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에서 의심이 없이 확고한 신앙을 갖게 될 것이지만, 그 동안 세상 지식을 이용하여 하나님을 알려고 해왔던 오류들 때문에 많은 시간동안 숙고 했었어야 한 것 같습니다. 이제 사도가 자기가 배운 모든 지식들을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십자가의 지식만 자랑한다고 하는 그 이유를 아주 선명하게 이해 됩니다. 이런 지식을 바탕으로 "피조물을 조물주 보다 더 경배하고 섬긴다"는 말에서 사람이 어떻게 신을 만들 수 밖에 없는지 그 이유는 이미 설명한 말씀을 통해 분명히 인식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반대로 아벨을 통해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벨을 통해서 가인이 하나님을 왜 잘못 이해하였는지 알수 있습니다.
아벨도 역시 가인과 같이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고 정욕을 일으켜 잉태하여 낳은 아들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아벨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남기지 않았습니다.
아벨은 양치는 자였고, 그가 하나님께 제사하며 제물을 바쳤는데, 하나님께서 그의 제물을 받으셨고, 형 가인에게 맞아 죽은것만 기록되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아벨이 믿음으로 제사를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칭함을 받았다(히11:4)에 기록하였고, 12:4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아벨의 피를 거의 동등으로 적용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작은 분량만 성경이 기록하고 있으니 아벨에게서는 우리가 발견할 어떤 지식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아벨이 우리에게 주는 지식은 참으로 거룩한 것입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제사를 드렸다"고 말하는데 이 한마디는 아주 많은 지식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누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제사를 드릴 수 있습니까?
그 사람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뭣을 원하시는지 아시고 그 뜻대로 제사를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아벨은 하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성령의 조명이 임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할 이유를 얼게 되도록 조명했을 때 아벨은 가인과는 달랐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출생의 비밀까지도 제사를 통해서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에게는 동일한 성령의 조명이 있었으나, 아벨은 하나님을 알았고, 가인은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아벨의 영혼에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는 진리의 조명이 있는 것을 의미하고 그것은 성령이셨고, 가인에게도 동일한 성령의 조명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지식으로 하나님을 지각하여 인식하였습니다.
그들에게 동일한 성령의 조명이 있었어도, 각기 다른 결과 나타난 것은 성령의 조명에 의해 진리의 말씀이 사람의 영혼의 지성에 심겨지는 여부에 따라 반응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결국 두 사람에게는 성령의 조명에 의해 육체의 감각으로든지 아니면 영혼의 감성으로든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졌습니다. 그때 아벨에게는 그 말씀이 그대로 아벨의 영혼에 심겨졌고, 가인에게는 그 말씀을 자기지식으로 이해하였던 것입니다. 결국 가인의 영혼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심겨지지 않았고, 아벨에게는 그 말씀이 심겨졌으며 심겨진 그 말씀이 조명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가 지각하고 인식할 수 있는 자기지식을 생성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본래 데라의 집안에서 살고 있을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명령하셨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그 말씀이 자기의 영혼의 지성에 심겨졌고, 그는 그 말씀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앞에서 설명 했듯이 사람은 하나님과 다릅니다.
사람은 육체를 가진 피조물이지만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식과 사람의 지식이 같을 수 없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지식을 그대로 적용하여 지각을 가지고 인식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성령의 조명에 의한 주어진 말씀 그 자체의 조명에 의해 자기지식을 생성하여 지각 할 때만 인식이 가능한 것입니다.
아벨은 이와같은 질서 있는 지식체계를 통해 하나님을 진리대로 이해하는 지식을 가졌지만, 가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의 지식으로 조명하셔 자기지식을 가진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는 악인과 선인에게 동일하게 부어집니다. 그러나 그 은혜를 어떻게 받느냐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과 세상 사람으로 구별되어 나타납니다.
이것은 사람의 출생의 비밀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아벨은 창세전에 아담의 후손으로 잉태되어 낳을 것을 작정되어진 사람이고, 가인은 사람이 죄를 범하여 정욕을 일으켜 낳은 허락된 사람으로 구별되며, 사도는 이것은 약속의 아들과 종의 아들로 구별하였고, 약속의 아들을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하고, 종의 아들을 유기된 이방인들을 말합니다.
이제 이방인들이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만들고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는 이유가 이해 됩니다.
2013, 04,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