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는 유대인에게며 또한 헬라인이게며(롬 2:9~10)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란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며,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롬 2:9~10)
이제 사도는 사람의 행위에 있어서 선악을 뚜렷이 구별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선을 행하는 사람에게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지만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그 영이 환란과 곤고가 있을 것이이며 먼저 유대인에게 그런일이 있을 것이고 다음에는 헬라인에게 있을 것이라고 구별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대표로 헬라인을 말하고, 이 두 구별은 성경이 말하여온 바, 하나님의 아들과 정욕의 열매로 구별하는 것입니다.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이전이 이 구별로 유대인에 관한 분명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는대 유대인은 혈육과 족보를 통해서만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라고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들이란 아브라함으로부터 약속의 아들 이삭과 야곱의 열두 아들의 족보를 이어받은 할례의 표를 가진 하나님의 아들의 반열이었으나, 사도가 다메색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난이후 그의 영혼에 심겨진 복음으로 조명에 의해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인식은 선택된 백성이라는 구별개념은 허울뿐인 과시용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실지로 이스라엘백성들 조차도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분명한 지식을 가지지 않았으며, 복음의 조명으로 말미암은 그런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별로 없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유일신 사상이라고 말하는 그 지식이 다신론적인 사상으로부터 인식되어지고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신들이라고 섬김을 받은 많은 신들이 사람들에게 있었고, 실지로 섬김을 받은 신들은 신이 아니지만 신이라고 불리우고 있고, 사람들이 신이라고 섬기는 그 신은 아브라함을 불러 이스라엘백성을 삼아주신 살아계신 하나님과 분명히 구별되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유일신이라고 할때 이방이 섬기는 모든 신들은 신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들이 보는 바와 같이 이방인들이 신들을 섬기고 있는 그 현실은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신이 아닌 존재를 신이라고 섬기고 있고, 자기들은 존재하시고 나타내 주셨으며 계시하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로 구분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시말하자면 이스라엘의 시각으로 볼때 이방은 신이아닌 존재를 신이라고 섬기고 있고, 자기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고 있으니, 이 구별은 생명이 있는 신과 생명이 없는 신으로 구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생명이 없는 신을 신으로 볼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생명이 없는 신을 어떻게 신으로 볼수 있느냐고 말하겠으나 그것은 분명히 신으로 불리우고 있고 사람들의 섬김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실지로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신이 아닌 존재를 신이라고 만들어 놓고 섬기고 있으니 그 행위가 미련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이런 행위 자체로 하나님의 아들들인 유대인으로 하여금 정체를 흐리게 하여 판단을 잘 못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은 생명이 없는 이방인들이 섬기는 신을 신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이것은 정당한 판단입니다. 그러나 이 판단이 가져온 유대인의 마음에는 교만과 배타성과 미움과 원망을 쏟아내도록 합니다. 그들은 항상 신이 아닌 우상과 하나님을 대비하여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상을 섬기는 이방인들을 멸시하고 천대하며 죄인 취급하고 불결하게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이 가져 온 배타성과 독선은 결국 이방인들이 섬기는 신아닌 신을 신으로 인정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상태로 만들어 버립니다.
저는 이와 같이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신이 아닌 이방인의 신을 "부정의 신"이라고 말하겠습니다. 결국 이렇게 이름을 붙여 놓고 보니 유대인들의 사상을 드러다 볼 수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의 신을 인정하지 않고 믿지도 않으며 신이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한마디로 부정합니다.
그런대 그 신은 이방인에게 있는 것이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부정의 신이 있느냐고 물으면 분명 신은 아니지만 이방인이 섬기는 신이 있다고 대답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없다고 말하는 신아닌 신을 의미합니다.
결국 이방인에게 신이 아닌 없는 신은 있지만 실재로 신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하려 하는 것은 "부정의 신"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부정의 신은 "신 아닌 신"입니다.
곧 신은 아닌데 사람들이 섬기고 있는 신입니다. 이 신은 유대인들의 사고에는 "신아닌 신"이라고 말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신이 된 것은 "없는 신이라는 지식"을 하나님과 대비하므로 존재하신 신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결국 유대인들은 존재하지 않은 신아닌 부정하는 신과, 자기들의 하나님으로 두개의 신 사상의 지식을 가지고, 부정의 신은 분명히 없지만 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신"으로 그들의 사상속에 지식으로 새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의 실체는 없으나 지식으로는 존재하기 때문에 그들의 영혼에서 그 존재하지 않은 신에 대한 지식이 그들을 흔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 후에는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신은 한 분 뿐이시고, 신으로 부터 태어난 아들들(창세전에 작정된)과 그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정욕으로 잉태하여 낳은 아들들(정욕의 아들)만 보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유대인에게 나타나자 이방인에게 있었던 부정의 신은 그들의 지식에서 사라져 버리고, 예전에 사람편에서 하나님을 보았던 시각이 하나님 편에서 사람을 보는 시각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복음이 그들의 영혼에 새겨졌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개념이 확실하게 보였고, 구원을 받을 백성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중심에서 세상을 볼 때, 이방인은 선택을 받지 못하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원수가 되어 하나님을 대적하고 유대인들을 대적하는 사람들이었으나, 복음의 조명을 받은 후 그리스도를 중심 시각을 갖게 되자, 이방인들의 정체가 분명히 보였고,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한 유대인 자신들이 죄를 범하고 정욕을 일으켜 낳은 정욕의 열매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된 것입니다.
예전에는 대적자요 원수였던 사람들이 이제는 자기들의 정욕의 열매라는 사실을 깨닫고 난 다음부터는 정죄하고 미워할 사람들이 아니라 사랑받고 긍휼이 여김을 받아야 할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실지로 사도가 말하는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며라는 말은 유대인이라고 할때는 하나님의 선택과 긍휼을 입은 사람이라는 뜻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먼저 은혜를 입고 다음에 헬라인이며, 버림 받은 진노를 당하는 것도 유대인이 먼저이며 다음으로 헬라인이 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 있어서 유대인의 위치와 헬라인의 구별된 위치에서 평등을 말하는 것이지만 복음을 알기 이전에는 헬라인에게 대하여 하나님을 거론하는 것 조차 허용하지 않았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2013, 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