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연구

율법을 의지하며(롬 2;17)

생명있는 신앙 2013. 5. 16. 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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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이라 불리는 내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2:17)

 

사람은 지식으로 지식에 따라 행동하고, 지식은 영혼의 지성에서 만들어질 때 선재하는 지식의 조명으로부터 생성된다고 많이 이야기 해 왔습니다. 최초 사람에게 있어서 선재하는 지식은 사람이 생성한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 안에 있는 본유지식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지식이었습니다. 이 지식이 사람의 육체가 객체와 객관적인 환경과 상황을 감각한대로 표상를 지성에 반영하면 이를 조명하여 지성으로 하여금 자기가 인식할 수 있는 자기지식을 생성하여 영혼의 감성에서 지각하고 전인으로 반영하여 인식함으로 지식이 완전히 생성 되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런 영혼의 작용을 통해서 지식을 생성하지 않고 하나님의 지식을 받아 그대로 적용하여 행동한다면 엄밀히 말해서 그 행위는 사람의 행위이지만 원인은 하나님의 지식으로부터 행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빌어 자기지식으로 자기 행위를 하는 것과 같은 것이 됨으로 그 행위에 대한 책임도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식과 사람의 지식은 본질적으로 같을 수 없습니다. 첫째는 존재론적인 의미에서 다르고, 두 번째는 적용 면에 있어서 구별되며, 세번째로 지식이 드러내는 행위에 있어서 다릅니다. 결론적으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이해하지 못합니다.( 55:8)

1, 존재론적인 의미에서 다르다는 것은 하나님은 영이시며, 사람은 육체가 결합된 피조물입니다. 영은 영원이나 시간에 제약을 받지 않지만, 사람은 특히 시간에 제약을 받으면서 영원에는 능동적입니다. 하나님은 영원과 시간에는 별개이면서 아무것도 의지하지 않으시고 스스로 존재하시지만, 사람은 영원과 시간에 의지하면서 존재할 수 밖에 없는 피조물인 것입니다. 이런 분명한 구별과 함께 하나님께서 지식을 내셨고, 그 지식이 만물을 지으셨으며 영원과 시간을 펼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있게 하셨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지식에 이 세상의 모든 우주와 사람이 사는 만물을 존재하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과 같이 만물을 존재하게 하는 그런 본질과 전혀 다르고 피조물에게 필요한 사회를 발전시키고 구성하는 것 이상 다른 창조적인 결과를 드러내지 못합니다.

2, 적용 면에 있어서 다른 점은, 하나님의 지식은 완전함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사람의 지식은 광의적이나 협의적으로 존재로서의 자기행위를 위한 자기 삶의 목적과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하나님을 더 완전하게 하시기 위해 지식을 내시는 것이 아니라 완전하시기 때문에 지식을 내시는 것입니다.

3, 지식을 드러내는 행위에 있어서 다릅니다.  먼저 사람에게 있어서 지식은 자기의 행위의 원인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지식대로 행하시는 것이 아니라 내신 그 지식이 하나님으로부터 객체가 되어 하나님께 감각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전혀 다른 하나님의 지식과 사람의 지식을 구별 없이 판단하고 이해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하나님에 관한 오해와 왜곡된 이해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율법을 사람이 자기지식으로 이해하고 판단하며 심지어 해석하여 그 뜻을 찾으려 하는 용감한 도전자들을 많이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이 율법을 내실 때에는 하나님의 행위를 위해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필요한 지식을 생각해 내신 것이 아닙니다. 만약 이렇게 하신다면 하나님께서 내신 처음 지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이 지식은 새롭게 내신 것이 아니라 처음 내신 지식으로부터 나오는 지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처음 내신 지식은 완전하여 흠이 없고 완전하다면, 율법도 흠이 없고 완전한 하나님의 지식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율법이 하나님의 완전한 지식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율법이 완전함을 의미하시는 말로 일점 일획이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반드시 다 이루리라(5:18)”,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하나님의 지식을 이해하고 판단하는데 있어서 자기의 지식으로 궁구하며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지식은 피조물인 사람이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지식이 아닙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이해되도록 낮아지시는 지식으로 보내셨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지식입니다. 그래서 본래는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지식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형상에 본유지식을 주셨고,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본유지식이 조명하여 주므로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자기지식을 생성하고 이 지식을 지각하여 비로서 인식하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말하는 것은 사람은 타락하였고, 본유지식은 상실하였으며,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지식으로 생성할 수 있도록 조명하여주는 지식이 없는 상태가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그 말씀을 자기지식으로 조명하여 이해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상태이든지 사람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 이해할 경우 무지와 결함을 함의한 오류투성이인 자기지식을 생성함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의 의미를 사람 입장으로 이해하는 왜곡된 해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율법을 바르게 생성하도록 반드시 하나님께서 주신 지식의 조명이 필요하기 때문에  주님께서 보혜사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 주셨고 그가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한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혜사 성령께서 조명하심으로 사람이 진리대로 지식을 생성하여 인식하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도의 말에 의하면 유대인이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한다고 말했습니다.

유대인이 율법을 의지한다는 말은 단어의 의미로는 유대인이 율법에 기대어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는 율법을 끌어안고 자기 것으로 하여 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율법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성령의 조명에 의해서 자기지식을 가지고 이해하여야 하는데 유대인은 그렇지 않고 율법을 자기 것으로 생각하고 그 지식에 의하여 하나님을 자랑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피조물로서의 사람의 한계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간섭이나 도우심이 아니고는 결코 최초에 지음을 받은 그래도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나 능력으로나 지혜로운 지식으로 하나님을 발견하거나 지혜의 지식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무능함과 무지와 결함의 지식이 영혼 안에서 더 이상 생성하지 않도록 우리 자신을 날마다 죽이고 성령의 인도를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눈을 열고 하루를 사는 날 동안 우리를 죽음으로 이끌어갈 오염된 지식을 얼마나 생성하게 될지 모릅니다.  죄로 말미암아 어두워진 영혼에는 우리 자신의 지식이 가득체워져 있어서 진리의 조명을 받지 못하고 죄의 본질인 오염된 지식을 생성하게 됩니다. 우리의 비참과 아픔 그리고 어두움에 빠진 영혼의 고통을 우리는 속히 깨닫고 우리의 삶이 진리의 조명 아래 이르도록 하나님께 호소해야 할 것입니다. 더욱 구원 받지 못한 사람에게는 그 생성한 지식이 영원한 세상에서 활동하지 못하도록 그 지식만큼 고통이 더해지게 될 지옥에서의 고통의 무게를 더하게 하는 것 밖에 다른일이 되지 않은 삶에서 벗어나도록 우리가 입을 열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복음이 그 사람의 영혼에 새겨지도록 선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우리의 영혼에 보혜사 성령의 조명된 지식 생성하도록 기도로 도움을 구하여야 합니다.

이스라엘을 보십시요.

사도가 말한바와 같이 그들은 율법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 율법을 자기들의 생각과 지혜대로 해석하여 자랑하고 있다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을때 그 율법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는데 사용하였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자기들의 편리한대로 해석했습니다.

성령의 조명을 거절하고 오직 자기지식대로 판단하고 해석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죽이는 일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2013, 0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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