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연구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3:10) 1,

생명있는 신앙 2013. 9. 27.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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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3:10)

 

하나님의 의는 앞에서 살펴 본바와 같이 주님의 부활을 의미한다고 성경의 증언을 들어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의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의미한다고 할 때 우리의 지성으로는 뜻을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예수께서 분명히 언급하신 말씀에 의하면 의에 대하여 라 하면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는 나를 보지 못함이요(16:10)”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베드로도 그의 서신에서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밷전2:24)”했습니다.

 

사람의 예대로는 의를 항상 죄와 대비하여 생각합니다.

반면에 주님의 말씀의 의도는 사람들의 생각과 같지 않습니다.

그것은 친히 말씀에 따라 보내심을 받은 대로 순종하시는 삶속에서 보여졌고, 복음서의 내용을 보더라도 하나님의 아들들의 죄의 삶을 종결지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주께서 사람들의 죄를 없이 하기 위해서는 친히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고 대속의 죽음을 죽는 것으로 하나님의 아들들의 죄를 사하셨으므로 죄의 시대는 종결되었습니다.

이것으로 하나님의 창조의 대 단원이 막을 내린 것입니다.

골고다 언덕!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죽을 수 없는 사람이 죽음이고,

하나님의 창조의 완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인간의 타락, 타락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아들의 대속적인 희생, 이런 줄거리를 통해서 대단원이 막을 내린 것이지만 그것은 불명예스런 완성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끝이 죽음으로 마무리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어두워졌습니다.

하나님의 창조계획은 마무리 되었고, 완성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완전하게 지으신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두 보여주셨고 확인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이시지만 친히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하나님의 위격을 버리시고 사람으로 오셨을 때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사람을 드러내시고 그 사람으로 영광을 얻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사람의 옷을 입으심으로 친히 하나님으로 사신 것이 아니라, 철저히 낮아진 사람으로 사셨고, 하나님께로부터 지으심을 받은 그 사람으로 살으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사람으로서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했고, 하나님과 언제나 교제하며 살아야 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에 거하시는 것처럼 함께 계셨고, 언제나 우리의 영혼을 조명해 주시는 삶을 살았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피조물이기 때문에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으면 안되는 것을 아셨고, 우리를 모든 피조물보다 더욱 탁월하게 지으셨기 때문에 더욱 우리 안에 함께 계셨어야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을 주셨으며, 그 형상으로 함께 계셨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모습을 완벽하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래 아버지와 나는 하나라고 말씀하셨고(요10:30) 언제나 아버지의 음성을 듣고 계신다(요15:15)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삶을 살도록 강력하게 요구하셨습니다.

그것은 친히 본을 보이시되 우리가 죄인인 것을 아시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며, 자기의 삶을 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라고 하셨으며, 우리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도록 그 말씀을 우리의 영혼에 심으시려고 옥토에 씨앗을 뿌리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뿌리셨습니다. 그리하여 말씀을 받은 사람은 그 말씀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 수 있었고, 그 말씀이 그들의 영혼에 심겨지면 그들이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는 새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것을 거듭남이라고 하셨고, 유대인의 최고의 학자인 공회원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3:5)”고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는 아직도 이 말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일관적으로, 이곳에서 외쳐지는 말씀은 사람의 영혼에 하나님의 말씀이 심겨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씨를 뿌리셨기 때문에 사도의 사명을 따라 동일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뿌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말씀은 우리의 지성이 만들어낸 무지와 결함을 가진 왜곡된 지식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현란하고 조직적으로 미사여구를 꾸며낸 지적인 말도 아닙니다.

더우기 달콤하고 사람의 간장을 녹여 내리는 감동적인 말은 더욱 아닙니다.

주의 보냄을 받은 모세와 선지자들 그리고 사도들이 남긴 성령으로 감동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생명 있게 여러분의 영혼에 뿌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의 영혼에 모세와 선지자들과 사도의 말들을 전해주고 듣게 하여도 아주 이해하기 어렵다고, 이 말씀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파악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신비한 것은 모든 성경은 쉬운 문맥으로 기록되어 있고,

진리이지만 진리처럼 들리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역사나 교훈처럼 들리며,

또한 재미있게는 한 사람의 생애나,

하나님을 향한 열정적인 신앙 고백,

찬양하는 노래,

철인의 깨우친 지혜,

세상 종말에 있을 예언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통항 교훈, 감동적인 이야기 등으로 들려집니다.

이것은 우리의 지성은 이미 가진 자기지식으로 성경의 말씀을 매치하여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혼에 가진 이미 있는 모든 지식에는 무지와 결함을 함의 하고 있고, 그 지식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한말씀도 완전히 매치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모든 지식에는 무지와 결함을 함의된 진리로부터 왜곡된 지식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하여 무지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고 결함이 없는데, 세상에 뛰어난 학자적인 지혜와 철학이라도 그 지식에는 무지와 결함이 덕지덕지 붙여 있기 때문에 세상의 지혜로는 성경의 말씀과 일치되는 말씀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인 하나님의 말씀 안에는 무수히 많은 의미와 내용,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해석을 요구하고 있지만 우리의 영혼 안에 있는 지식들이 무지와 결함을 함의한 지식들이어서 결코 필요한 의미들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셔야만 했었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거룩한 영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의 말씀을 모두 알고 계시고 그 말씀을 기록하도록 사람을 감동시켰기 때문에 이미 그 말씀의 의미를 알고 계십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께 요구하셔서 사람들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셨고, 성령은 각 사람에게 오셔서 사람이 모세와 선지자, 그리고 사도의 글인 성경을 읽을 때 그 말씀들을 조명하여 우리의 영혼에 비춰 하나님의 말씀들을 새겨 우리로 새로운 진리의 말씀을 갖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음을 듣거나 성경을 읽을 때 성령께서 읽은 말씀을 조명해 주시므로 인하여 지성이 참된 진리의 말씀을 가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