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왜 존재하는가?
사람이 왜 존재하는지 아십니까?
이 말은 우리가 잘 생각해 보지 않은 질문입니다.
하나님의 지식이 우리를 만들었습니다.
우리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지게 만드셨습니다.
우리의 영혼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목적입니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서 피조물을 지으시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이 존재하는 것을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셨지만 그 피조물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완전한 객체로 존재하도록 지으셨고, 모든 일에 인격체로서 자기의식으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행동하며, 하나님과 관계하여 소통할 수 있는 존재가 되도록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인격체란?
피조물은 존재하는 면에 있어서는 완전한 객체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지으심으로 존재하였으므로 모든 피조물은 철저히 창조자에 대한 의존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피조물이라는 단어는 “창조자에 대한 의존적 존재”라는 의미를 함의하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 범죄 한 후 정욕을 일으켜 낳은 죄의 열매들일지라도 분명히 하나님 창조사역의 결과물로서 피조물이므로 철저히 하나님에 대하여 의존적인 존재입니다. 이런 피조물들이 '인격적'이라 할때 의존적이지 않고 독립적인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곧 지음을 받은 실체로서는 의존적이지만 그 실체가 드러내는 인격은 자기 독립적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인격체는 형이상학적인 의미의 지,정,의의 실체를 가진 존재가 자기 존재를 드러내고 활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만약 지음 받은 피조물이 활동하지 않고 단순히 숨만 쉬고 있다거나 의식이 없는 상태는 인격체로서의 실체를 가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가운데 불의의 사고를 당하거나 혹은 수명을 다하여 죽음에 이르기 직전에 있는 의식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침대에서 존재로서 활동하지 못하고 누워있기만 한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피조물이지만 인격을 드러내지 못하므로 인격체가 아닙니다. 인격이 있을지라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를 '식물인간'이라는 명확하게 구별된 언어로 표현하고, 의식이 돌아왔을때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통상적으로는 엄격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동일한 사람으로 볼뿐입니다. 게다가 의식을 완전히 잃고 육체의 생명이 끊어진 상태에서는 사람이라고 명하지 않고 '죽은'이라는 단어를 추가하여 호칭합니다.
그러므로 인격체는 존재하는 피조물이 의식을 가지고 드러내는 살아 있는 실체인데, 육체와 영혼이 흠 없는 완전한 상태에서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피조물가운데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그 사람이 하나님에 대한 인격체로 독립된 실체를 드러내도록 지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가진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인격, 곧 지,정,의는 하나님에 대하여 객체로서 실체입니다. 모든 판단, 생각, 그리고 의지가 완전한 하나의 객체입니다. 이것은 사람이라는 한 객체에서 나온 결과물입니다.
이 객체는 의존적인 피조물의 실체인 생물학적인 실체로서의 존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피조물이 자기 인격으로 드러내는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 가운데 이런 인격은 오직 사람에게만 있고, 이 인격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점에서 더욱 분명합니다.
동일한 의미에서 천사들도 인격적인 존재이지만 사람과 큰 차이를 드러내는 존재로서 사람에 비할 수 없습니다.
머지않아 설명을 드리겠으나 천사의 인격은 사람의 인격과 같이 독립적이지 않고 의존적이라는 점에서 사람과 구별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인격체”는 피조물인 사람이 하나님의 지식으로부터 구별된 피조물로서 자기지식에 의해 감정을 가지거나 의지적으로 행동하는 것으로 철저히 의존적이지 않고 스스로 작용하여 인격의 상태 드러낸 것"입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더 설명하여야 할 것은 “하나님의 지식으로부터 구별된 피조물로서의 자기지식”에 관한 정확한 의미에 관한 것입니다.
이는 본래 지식은 하나님에게서만 나옵니다. 이 지식이 만물을 만들었고, 실체를 구성하게 하는 본질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식은 만물에게 있어서 존재 자체일 뿐만 아니라 존재하게 하는 근원입니다.
만물은 하나님의 지식이 아니고는 존재될 수 없습니다.
존재하는 피조물은 하나님의 지식이 객체로 드러난 것입니다.
육적이든 영원적이든 모든 형이상학적이나 형이하학적인 모든 세계는 하나님의 지식이 드러났고 창조한 것입니다.
게다가 이것들로 인한 모든 지식도 역지 하나님의 지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실지로 만물은 하나님의 본체에서 나온 지식이 드러났거나 창조된 것이고 , 존재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만물이 자신의 지식에 의해 드러난 것이므로, 지음을 받은 피조물이 객체로서 하나님께 대하여 인격적으로 드러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완전하신 생각이 계획하여 사람을 지으시게 되었고, 사람은 지식에 의해 지음을 받은후 완전한 피조물로써 원하시는 뜻대로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보신 하나님은 그 아름다움과 놀라운 지혜에 스스로 기뻐하시고 만물을 보시고 좋았더라 하셨습니다.
이것은 피조물이 자기지식을 가지고 그 지식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관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더욱 기뻐하신 것입니다. 이 지식은 물론 하나님의 지식에 의해 지식을 가진 것이지만, 분명히 하나님의 지식으로가 아니라 자기지식으로 감정으로 의지를 드러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하나님은 완전 하십니다”라고 말하고 "하나님의 선"을 찬양할 때, 하나님께서는 무한히 기뻐하시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은 피조물이 자기지식으로서 완전한 독립적 인격체가 드러내는 객체로 의지를 하나님을 향하여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층 더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웨스터 민스터 공회에서 제정한 고백서가 말하는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한다"라는 고백은 창세기 1:31절과 가장 부합한 인간이 하나님을 향하여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지식의 최고입니다.
결국 "사람은 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는 영원히 존재하시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에 있어서 부족함이 없으시지만 피조물이 자기의 독립 인격의 개체로 하나님과 관계하는 객관적 존재가 되는 것을 기대하시고 지으셨기 때문에 자기의 완전한 인격적 성품으로 하나님과 객체로서 관계하여 서로 교통하는 존재입니다. 피조물이 하나님과 교제하고 관계를 가진다는 이 놀라운 사실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이렇게 지으셨던 것입니다.
결국 사단이 하와를 유혹할때 "하나님과 같을 것"이라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으나, 이 지식 자체에 무지와 결함을 함의된 왜곡된 지식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같다는 위대한 피조물의 존재"라는 의미를 하나님을 상대적 존재로 비교하는 실수를 범하는 지식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사람은 얼마나 탁월하고 완전한 존재입니까?
타락된 사람이 세상을 발전시키고 변화시키며 하나님을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신에 이르는 도전을 거침없이 하는것을 볼때 피조물인 사람의 위대함은 결코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이렇게 위대하고 탁월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은 그 창조의 목적을 벗어나 창조주께 의존적이라는 "피조물"임을 망각하고 자기 만족을 위해 살려고 하나님을 떠나버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