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입을 막고(롬3:19)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롬3:19)
하나님의 아들들은 자기들이 온전하며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인하여 온 세상으로부터 거룩하게 구별되며 사람들의 공통된 상태에서 면제된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으나 사실은 율법이 자기들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을 자기들이 거룩한 은혜로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자기들만 사랑하시는 표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 그들은 이방인들을 향하여 언제나 속죄하는 마음으로 대하고 사랑하고 섬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은 그들의 범죄와 정욕을 억제하지 못하여 하나님께서 작정하지 않은 생명을 잉태하므로 이방인들을 이 세상에 있게 했기 때문에, 정욕의 속죄행위에 대한 대속의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들에 책임을 통감해야 하는 것입니다.
실지로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아들들과 하나님에 대해서 감당할 수 없는 분노를 쏟고 있습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을 원수로 여기고 하나님의 아들들에게 인정사정 두지 않고 죽이는 것입니다.
인류의 처음 사람, 가인이 하나님의 아들 아벨을 죽였습니다.
이스마엘이 하나님의 아들 이삭을 미워합니다.
애굽이 히브리인 이스라엘을 까닥없이 미워하고 원망하고 죽이는 것에 양심의 가책을 갖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세상에서 제사장의 나라가 되고 하나님의 은총이 그들과 함께 하지만 이방인은 그들의 존재를 세상의 가시처럼 여기고 짓밟고 죽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강렬한 보호는 이방인들이 결코 그들을 완전히 없애도록 하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하나님의 아들들의 죽음을 대신 당하시고 더 이상 하나님의 아들의 특별한 관계를 벗어던져 버리시는 하나님의 엄청난 결단을 나타냅니다.
그때 하늘의 천사들이 이 세상에 보냄을 받았습니다.
“하늘에는 영광이요, 이 땅에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에게 평화로다(눅2:14)”라는 노래가 이 세상에 울려 퍼졌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 보냄을 받은 것입니다.
예전에는 지음을 받은 아들이 이 세상에 사람으로 왔으나 하나님께서는 한 아들을 보내어 지음을 받은 사람을 대신하게 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들과 같은 사람임을 믿고 받아들이며, 그 아들의 후예가 되게 하시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왜냐 처음 작정이 완전한 실패를 가져왔기 때문인데 이 실패는 하나님께서 처음 작정하실 때부터 이미 아셨고 그것을 계획하신 것이 분명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에 관한 지식은 이렇게 출발합니다.
죄에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자기들의 정체를 분명히 파악하게 하고, 현재 상태에서 자기는 누구인지를 밝혀줌으로 사람으로 하여금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신앙은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우리의 모습을 살펴보지 않고는 우리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비참이 무엇이며 우리의 삶이 무엇인지 파악하지 않고는 우리는 아무 소용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의 영혼은 우리를 존재하게 한 하나님의 아들들에 대한 분노로 미움을 쉬지 않고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에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이 심겨지면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지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녀의 의식을 가지게 될 때(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미든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2,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은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롬8:14)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에게 행한 악독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의 영혼의 지성에 있을 때 우리는 누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지 성령의 조명으로 밝히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그 영혼에 하나님의 영이 있는 사람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지식이 그 영혼에 조명되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 지식을 가지지 않고는 결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하나님의 영의 지식이고, 이 지식은 우리의 영혼에서 하나님을 알게 하는 지식으로 성령께서 이 복음을 조명하실 때 우리는 이 복음에 대한 지식을 갖게 됩니다. 우리 영혼이 이 복음에 대한 지식을 가질 때 비로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군가 알게 되고,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에게 행한 일을 알게 됩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죄를 밝혀주고, 그 죄가 행한 일을 분명하게 보여주는데 그 행위가 바로 죄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 살인죄라는 엄청난 결과를 지워주는 것입니다.
선지자는 말합니다.
아직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지 않았는데 분명하게 말하기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을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5)”
하나님의 구원의 열심은 자기의 죽음으로 열매를 맺게 하셨습니다.
거기에는 그렇게 하실 수 밖에 없는 많은 이유들이 있습니다. ᄒᆞ나님께서 이렇게 하실 때에 이 방법이 가장 완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시기 때문에 완전하신 길을 가실 수 밖에 없습니다.
누가 이 방법을 알 수 있었습니까?
사람은 자기 지혜로 결코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고전1:21).
자기 지혜는 타락하고 왜곡되며 무지와 결함을 함의한 불완전한 지식이기 때문에 완전한 하나님을 결코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도록 복음을 그의 지성에 심어주셔야만 합니다.
이렇게 복음이 심기워진 사람에게 하나님의 성령께서 심겨진 복음을 조명하여 주실 때 사람의 지성은복음에 대한 자기지식을 가지고 감성으로 지각하여 비로써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이 복음이 아니고는 그 어떤 지식으로 든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길은 복음이 자기의 영혼에 심기워지는 것 뿐입니다.
복음은 진리로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진리가 있는 곳에 반드시 거하셔서 복음을 조명하여 주시는 일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복음과 성령은 언제나 함께 하십니다.
이 복음이 우리의 죄가 행한 일을 우리 자신에게 고발하고 있습니다.
“바로 죄인 네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죽였다;”
무슨 터무니 없는 말을 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2천년 전의 예수와 무슨 관계가 있다고 복음이 우리 영혼 안에서 우리는 고발 합니까?
우리는 복음을 원수로 대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나 복음과 함께한 성령께서 그 복음을 조명하면 우리의 영혼의 지성은 복음에 대한 지식을 가질 때 우리의 죄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는 사실을 알게 합니다.
예수를 죽이는 것은 우리의 직접적인 행위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죄였고, 그 죄가 자기의 죄를 죽였는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덧 씌우고 죄를 죽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죄는 예수그리스도께 씌워졌고 예수는 그 죄로 인하여 죽으셨는데 그 죄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의 불순종의 범죄와 정욕으로 인하여 우리를 존재하게 한 것으로 우리의 출생을 저주하고, 우리의 근원이 되는 죄를 죽임으로 죄와 관계를 단절하려는 우리 영혼의 호소 였던 것입니다.
이방인의 영혼은 하나님의 아들을 죽임으로 자기의 분노를 쏟아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정욕을 일으켜 하나님의 작정과 관계없는 사람을 낳고 그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지지 못하여 지옥에 던저져도 아무런 책임을 가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의 영혼이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림으로 모든 질서로운 책임 의식마져 완전히 잃어버리고 무책임한 사람이 되므로 죽임을 당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형상에 있는 것이었으나, 하나님의 아들이 죄를 지음으로 율법을 상실하게 되자 하나님께서 율법을 드러내 주심으로 다시 자기의 죄를 깨닫게 했습니다. 율법은 본래 영혼에 있었던 하나님의 형상 안에 있는 지식이 드러나도록 하나님의 말씀으로 주어졌으나 죄로 말미암아 사람 밖에서 사람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곧 영혼의 지성에 있어야 할 하나님의 지식이 사람 밖에 있어 감각되도록 주어졌으니 이 율법은 사람이 언제나 듣고 보고 만질 수 있으며 관심만 가지면 율법으로 살수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에 빠져버린 사람은 율법도 제 멋대로 해석하여 본질을 왜곡시켜 회개의 기회를 갖지 못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