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말미암은 화목제물(롬3:25) 6,
아벨이 가인에게 맞아 죽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사실 것인지를 분명히 보여주셨습니다. 아벨에게는 하나님의 아들의 의식이 있습니다. 반면에 가인은 이방인으로 하나님의 아들과 하나님에 대한 분노를 드러내는 영혼입니다, 실지로 가인 자신에게는 그런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영혼이 가인의 전인으로 하여금 억제할 수 없는 분노와,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미움을 지속적으로 반영하려고 하고 질투를 일으키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우리 이방인과의 관계를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보다 먼저 하나님과 사람에 관하여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세상에 어떤 피조물을 사람과 같이 독립적인 행동을 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이 창조계획에 따라 되기를 원하셨으며, 실지로 모든 세상은 그 뜻대로 되어지고 있습니다.
모든 만물들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 창조의 목적을 벗어나지 않고 뜻대로 있습ㄴ다.
그런데 유일하게 사람만이 하나님의 창조가 뒤틀어지게 했고, 만물을 하나님의 계획에서 벗어나 자기의 마음에 맞도록 파괴하고 부서뜨려버렸습니다.
이 땅에서 벌어지는 모든 잔혹한 일들의 원인은 사람으로 말미암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는 행동을 할 수 있는 피조물”이라는 의미를 생각할 때마다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 사람을 이렇게 지으신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에 대해서 더 놀라게 됩니다.
실지로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서 제 뜻대로 행동할 수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사람의 탁월성은 증명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피조물 가운데 유일하게 사람에게만 적용한 것인데 “자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자율은 영혼의 지적인 기능, 곧 지식을 생성하고 모든 행동을 지식대로 한다는 지식에 대한 역할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닮은 것은 지식을 생성하고 그 지식으로 행동한다는 것이며, 이것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을 부여 하셨다는 분명한 사실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계획에는 하나님의 자녀들, 성경이 자주 말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가족, 이스라엘만 이세상에 존재하도록 계획하셨습니다. 이들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완전하며 탁월한 자율적인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범죄 할 경우, 그 범죄의 결과로 정욕이 일어나 창조계획과 관계없는 정욕의 아들들, 죄의 열매들을 잉태하게 될 것을 이미 아셨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럴 것입니다.
“이미 아셨다면 그 일이 일어나지 않게도 하실 수 있는 것이 아니냐!
물론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면 말대로 세상은 평온하고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에게 자율을 주는 완전함이 될 수 없습니다.
다른 피조물들과 조금도 구별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사람이라는 존재는 하나님의 꼭두각시에 불과할 것입니다.
우리는 완전함에 대한 오해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완전함은 선과 악의 어느 한편에 치우친 존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을 행할 수도 있고 악을 행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피조물이 자기의 의지로 선이나 악을 행하는 것을 완전함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만약 자기의 의지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도록 지으셨기 때문이라면 그 행위에 대한 책임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도록 부여하신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율에 따라 행동하도록 하셨는데 그것이 영혼에서 지식을 생성하여 그 지식대로 행하도록 하셨고, 자율로 자기의 뜻대로 행한 사람을 향하여 정죄하는 것이 정당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보시는 관점은 객관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부여하셨으므로, 사람을 하나님과 같이 자기의 의견으로 소통할 수 있는 존재로 여기시고 사람을 충분히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지성에서 나오는 지식을 보시고 즐거워하십니다. 친수로 지으셨으면서, 사람의 탁월함을 보시고 심히 좋았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사람의 탁월함은 하나님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고, 그 좋으셨던 기억이 영원히 떠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마음을 즐겁게 하셨던 사람이 범죄하였습니다. 그 범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였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사람에게 부여했던 하나님의 형상은 사라졌고, 하나님에게서 나와 사람의 영혼에 부여된 모든 지식의 본체인 본유지식은 온대간데 없어 다시는 지식을 조명해주지 않으므로 제멋대로 지식을 생성하고 행동하는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본유지식에는 하나님에 관하여, 하나님에 대하여, 창조에 관하여, 사람에 관한 모든 지식이 들어 있어서 사람이 육체로 감각을 가지면 그 감각대로 표상을 지성에 반영하고, 본유지식이 그 표상을 반영하여 본유지식대로 지식을 생성하게 하는데, 이것이 사라지고 없으므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만나주심으로 감각을 가져도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조명을 받지 못하므로, 하나님을 본체대로 인식할 수 있는 지식을 가지지 못하고 제 멋대로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가지는데 그것이 왜곡된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가인에게서 분명히 나타났고, 일부 하나님의 아들들에 속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조차도 나타났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완전하고 탁월하게 지으신 사람을 향한 처음 기억을 잊으실 수 없습니다. 모든 피조물 가운데 유일하게 하나님과 소통이 가능하고 완전히 객관적으로 자기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께 대하여 소통될 수 있는 존재는 하나님께서 지으셨지만 스스로 감탄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지극히 사랑하셨고 그 사람이 원래의 모습대로 돌아오도록 기대하셨습니다.
그런데 범죄한 그 사람들은 죄에 죄를 더하여 놀라운 일을 했는데, 그것은 정욕을 일으켜 하나님의 창조 계획에 속하지 않은 사람을 잉태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로 말미암아 잉태된 사람들의 탄생을 허락했습니다.
그들은 본유지식을 가지지 않고 태어났으므로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나, 관계, 창조, 사람에관한 그 어떤 지식도 없는 무지한 사람이었습니다. 오히려 영혼은 자기의 존재와 비참한 미래에 대해서 이미 인식하고 태어났으니 그들에게서 하나님의 아들들을 향한 분노와 원망, 그리고 미움을 드러내, 가인이 아벨을 질투하여 죽이는 것과 같은 무자비한 일만 드러내는 것을 보시고 크게 실망하셨습니다.
물론 죄의 열매로 태어나는 이방인들의 무자비한 분노와 미움을 쏟아내는 것을 이미 아시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불멸하는 영혼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들을 위한 다른 곳을 예비하셨는데 그곳이 바로 지옥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의 범죄행위와, 정욕으로 말미암아 태어난 죄의 열매인 이방인들, 이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음을 받았으나 이들이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들의 영혼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지고 그 지식으로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가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 지식만 가지면 영원히 살 수 있는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지식을 새겨주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사람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고, 그 말씀이 사람의 영혼에 새겨지므로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 수 일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범죄하고 타락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제 멋대로 해석하여 왜곡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만을 가질 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말씀을 사람으로 보내어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들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분명히 보았고,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복음서 첫 장 첫 줄에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에 관하여 시작함으로 복음을 말한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이유에 관하여 아셨을 것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었고, 그 말씀이 사람의 육체를 입고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습니다.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 것은 지음을 받은 아담의 후예와 일치한 사람이 되셨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삶의 본을 보이시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들에게 오셨던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아들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살펴보셔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이방인과의 관계에서 이미 밝혀진 것과 같이 범죄한 하나님의 아들들이 이 세상을 온통 악한 악의 소굴이 되게 해버렸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정욕을 일으켜 결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죄의 열매들을 낳은 것입니다. 사도는 이들을 하나님의 약속들에 대하여 외인요,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아주 분명히 말했으며 하나님의 원수들이라고 했습니다.
죄를 범한 하나님의 아들들에게 가장 시급한 일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율법을 묵상함으로 자기들의 죄를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먼저 파악하고 자기들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죄로 말미암아 정욕을 일으켜 낳은 이방인들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빨리 아는 것입니다.
아쉽게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율법을 읽고 듣고 행하며 살지만 스스로 의인이 되려고 노력만 할 뿐 율법이 말하는 참된 의미에 대해서는 결코 깨우치지 못하였습니다.
율법은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과, 그 죄로 말미암아 자기들이 행한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올바른 인식입니다. 여기에 정욕으로 낳은 이방인에 대한 인식을 가지는 것이지만, 이스라엘은 이런 지식에 접근하지 못하였고, 아직도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어두움 속에 갇혀 있는 것입니다.
실지로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아들의 삶은 피조 세계에서 자기들이 행한 일에 대한 회개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자기들의 죄를 회개함으로 하나님께 돌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 말씀에 의해 거듭나서 하나님의 시각을 가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그 말씀에 이끌려 가는 삶을 산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는 복음에 사로잡혀 거듭난 후에 복음의 사람으로 사는 것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사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살도록 본을 보이시기 위해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잉태하여 낳은 이방인들을 섬기는 삶입니다. 그 섦김은 단순히 돕거나 조력자가 되거나 가르치거나 혹은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죽는 것을 말합니다.
왜 죽어야 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죄를 범하여 정욕을 일으켜 잉태함으로 태어난 그 사람을 영원한 고통의 지옥으로 가게 한 그 죄는 자기의 죽음으로 결코 씻을 수 없는 죄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무수히 많은 죄를 범하지만 그중에 정욕을 일으킨 죄는 자기의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엄청난 범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들은 이방인들을 섬겨야 합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이 이 세상에 있게 한 그 원인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를 해야 하지만 이방인들은 그런 하나님의 아들들을 향하여 무자비하게 분노를 일으켜 가인처럼 아벨을 죽이게 됩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은 죄를 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그 죽음으로 말미암아 자기에게서 죄가 끊어지고 그 죄에 대한 대가를 다 치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을 죽여 자기와 같은 사람들이 더 이상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냥 자기의 미래의 비참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들을 향한 자비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을 정죄하고는 이방인들에게 죽이라고 내어주었습니다.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인정사정없이 잔인하게 죽였습니다.
그들이 죽인 사람은 범죄한 하나님의 아들을 대신한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를 존재하게 한 하나님의 아들들과 하나님에 대해서 동시에 분노를 쏟아냈습니다.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죽음으로 죄는 끊어지고 하나님께서 죽으심으로 자기는 존재하게하신 분에 대한 원수를 해결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에게 바로 이것을 믿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분노를 쏟아내서 죽인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그 아들은 너희를 세상에 있도록 허락하신 하나님이다. 너희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을 죽였다. 너희가 존재함으로 인하여 비참에 처한 운명적 탄생에 대한 비극을 너희의 분노함으로 원수 갚았다.
“이제 우리 화목하자!”
“이 사실을 믿으라!”
“믿고 너희가 하나님을 죽인 그 죄와 너희의 죄로 살았던 하나님을 모르던 삶에 대해서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너희를 아들로 삼겠다.”
“영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나니”
그러나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아들들인 이스라엘은 받아들이지 않고 사도 바울의 복음을 들은 이방인들이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복음이 이방인에게 심겨졌고, 그 복음에 의해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에 대해서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