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연구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시려 (롬3:26) 7,

생명있는 신앙 2013. 12. 19. 07:28

우리는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말씀을 드리려다가 몇 일을 이렇게 믿음의 본질에 관한 설명을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로부터 우리가 알고자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의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말하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 죄인과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니까 참 사람이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신인양성을 내포하고 있있으나 우리는 범죄한 죄인으로 구별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모든 것은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는가 하면 사람에게는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형상의 유무 이것이 그리스도와 우리와의 구별되는 다른 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면서 참 사람으로 오셨기 때문에 피조물로 낮아지셨습니다피조물이 아니라 옷을 입으셨을 뿐입니다. 그래서 죽을 수도 있는 존재로 오신 것입니다.

반면에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실존적인 면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는 구별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피조물의 옷을 입으셨으니 피조물이 되셨고, 살고 죽는 문제를 가진 존재로서 동일합니다. 그렇지만 피조물이 가져야 하는 선재하는 지식은 구별되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있는 사람들은 두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되지만 하나님의 형상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제 멋대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예수님의 삶의 모습을 보고 깨우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구별성에 대해서 확신으로부터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의 삶의 모습으로부터 아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그리스도의 오심, 즉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심, 우리가 그를 미워하여 죽임, 그리고 하나님께서 예수를 다시 살리심 이라는 복음적 사실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요구되고, 사도가 복음의 의미를 강조하여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1:7)”라고 힘주어 말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의가 무엇입니까?

먼저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보좌를 버리시고 자기를 낮추어 인간의 옷을 입고 오시는 순종으로부터,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신체로 피조물로 살면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셨으며, 온전히 하나님의 형상의 조명에 의한 삶을 사셨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뜻을 벗어난 그 어떤 지식을 가지지 않은 것입니다. 실지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예수 그리스도처럼 하나님의 형상의 조명대로 자기지식을 생성하여 사람으로 살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가 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 즉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의 의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창조하실 때 까지의 계획과 섭리이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타락함으로 죄를 범하였고, 그 범죄로 인하여 많은 문제들을 산출해 냈습니다. 가장 먼저는 세상을 죄로 뒤덮어 더럽게 했으며, 자기 자신까지도 죄에 물들여 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정욕을 한없이 일으켜 하나님의 창조계획에 속하기 않은 수많은 정욕의 맺으므로 이를 부득이 허락하셔야만 했던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도출되었고, 하나님의 형상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고민이 대두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정욕의 열매들을 처리하셔야 하는 심각한 문제에 대해서 매우 슬퍼하셨습니다.

완전하신 선 자체이시고 모든 행위를 선으로 행하시는 사랑뿐이신 하나님의 성품이, 선으로서 가장 조화로운 방법을 택하였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영혼은 불멸하는 존재이고 정욕의 열매들은 부득이 이런 불멸하는 존재로서 완전한 사람이 되기 때문에 이 영혼에 대한 책임을 담당하시는 것입니다. 정욕의 열매들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지 않고 태어나기 때문에 그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심기우지 아니하면 결코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지 못합니다. 물론 범죄하여 타락한 영혼도 하나님의 형상을 가질 수 없으나 정욕의 열매들에게는 더욱 불가능한 상태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형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형상에는 피조물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연적인 지식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 지식은 본유지식이고 하나님에 관하여, 하나님에 대하여, 창조에 관하여, 사람에 관한 모든 지식이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세상의 사물과 객체에 대한 지식을 생성할 때 이 지식의 조명으로 지식을 가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어떤 상태에서든지 자기 스스로 지식을 생성하여 가질 수 없으므로 본유지의 조명을 통해서만 자기지식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철학자들의 높은 이상과 학문, 과학자들의 끝없는 도전, 예술가들의 혼을 담아내는 능력, 운동가들의 영혼을 담은 힘과 능력, 이 모두가 사람이 스스로 자기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들이 영혼의 지성이 선재하는 지식의 조명을 받아 생성한 지식으로부터의 결과들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영혼의 지성이 생성하는 지식에 따라 행동하는 존재입니다. 이 지식은 최초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에 있는 선재하는 본유지식의 조명으로부터 시작하였고, 타락 후 무지와 결함이 이미 생성한 지식과 함께 조명함으로 인하여 거짓되고 왜곡된 무지와 결함을 함의한 지식을 생성함으로 사람은 행동과 거짓된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완전하게 지음을 받은 사람의 타락과 그의 탁월함으로 인한 왜곡된 삶은 하나님의 의에 이르지 못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이처럼 초라하게 종말을 고할 수 밖에 없어 종국적인 하나님의 심판은 예고되었고, 이미 한 차례의 종말을 통해 건전한 사람만 이 세상에 심으시려는 하나님의 시도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창조시 지음을 받은 그 상태로 돌아오지 않았고 더욱 타락하여 온 세상에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 가득 채워지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일을 더하시게 되었는데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는 일로서 구원 사역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타락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신 하나님의 선이 드러내시는 사역으로 인하여 보내시는 일입니다.

이 일은 창조에 속한 일이 아닌 구원에 속한 일입니다.

창조에 속한 일이 아니란 사람이 범죄하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보내심은 필요 없는 일이라는 의미로 창조와 다른 구속사역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있어서 창조 사역과 구속사역은 분명히 구별된 사역이었습니다.

우리는 개혁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사역을 구속 중심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가진 사람들의 주장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창조를 구속을 중심으로 계획한 하나님의 사역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주장에 의하면 하나님은 사도가 말한 영원 전 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3:11)”라는 말에 어떤 의미와 답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도의 의도를 오해한 것입니다.

사도가 말하는 그리스도 안에서 입은 예정(1:11), 그리스도를 만물의 창조자의 관점으로 말한 것으로 삼위일체적인 의미로 말한 것입니다.

그래서 만물을 존재하기 하신 그리스도는 창조 사역의 주체로서 창조된 피조물들에게 나타나는 결과들을 미리 아시고 그에 대한 허락과 구속의 새로운 사역을 예비하셨다는 점에서 예정하신 뜻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자면 구속 사역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이 주는 아주 큰 유익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정욕을 일으켜 낳은 이방인들의 구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구원이 더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