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연구

의롭다 하실이는 하나님 한분이시니라(롬3:30)

생명있는 신앙 2014. 1. 14. 06:41

할례자도 믿음을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분이시니라

 

의롭다 하실은 의롭게 된 것이 아닙니다. 아직 의롭지 않지만 의로 여겨주는 것입니다. 사도는 본문에서 의롭다 하실이유를 믿음으로 말미암아라고 말함으로, 실지로 사람이 의로운 것이 아니라 믿음이 그 사람을 의롭게 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의롭지 않은 사람을 의로 여겨주시는 분은 하나님 한 분 뿐이시니라

 

우리의 이런 주장은 누가 문제로 제기한 것과 어떻게 보면 개혁교회의 신학에서 크게 벗어난 아주 위험 신학적인 사상에 빠져 있는 함정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은,

1) 믿음은 사람의 본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는 것,

2) 우리의 본성과 우리 안에 또 하나의 새 생명을 갖는 것처럼 보이는 이중적 존재의 거듭남,

3)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사람의 완전함으로 인한 사람의 타락에 대한 부정,

과 같은 오해를 가질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거듭난 사람의 완전성은 결국 사람에게 타락한 면과 타락하지 않은 완전한 면을 강조함으로 온전한 사람의 존재를 주장하는 것 같은 완전신학으로 비춰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위험하게 보이는 완전론을 주장하는 것 같은 우리의 주장은 사도바울이 더 강하게 주장하는 내용임을 너무 잘 알 것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이런 사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소위 개혁신학과 같은 왜곡된 신학들이 교회가 존재해온 그날부터 지속적으로 교회를 괴롭혀 왔다가 오늘에 와서는 교회를 완전히 점령해 버린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개혁교회는 18세기에 이단이라고 배척하는 알미니안 주의 신학과 과감히 손을 맞잡고 교회라는 한 가족에 속하여 한 상에 둘러앉아 떡을 나누며 그리스도의 형제로 함께 어우러지며, 딩굴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그들을 배척하고 마치 교회를 파괴하는 아주 흉악할 이리처럼 여기며 사형 판결을 내려잔혹하게 죽이기도 했었으나, 지금은 그들과 함께 손을 맞잡지 않으면, 오히려 세상으로부터 배타적인 사람이고 위험한 편견에 빠진 사람으로 평을 받고, 알미니안 주의 사상을 가진 사람이 자칭 개혁주의자라고 당당히 주장하여도 아무도 그가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없는 마치 사마리아 땅처럼 혼탁한 세상이 되고만 아이러니한 시대에 살 고 있는 것입니다.

 

앞에서 수없이 믿음이라는 말에 대한 사람들의 사상이 일치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왔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본성이 타락했고, 하나님을 믿을 만한 지식을 가지지 못하였으므로, 믿는다고 말하는 것은 논리적인 모순과, 사도가 말한바와 같이 사람에게 없는 그 믿음을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고 사람 안에 믿음이 일어나게 함으로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하는 두 가지의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개혁신학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로 주어진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신학을 온전하다고 말하고 타락한 본성이 자기의 의지로 믿음을 드러내는 그런 믿음을 온전한 믿음이 아니다고 힘주어 말합니다. 우리가 완전한 신학적 사상을 말하는 것 같은 오해를 받는 이유가 바로 하나님의 선물인 믿음을 가진 경우 우리의 타락한 본성에서 나오는 믿음을 대비하여 볼 때 완전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주장을 비난하려는 소수 사람들의 주장을 볼 때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임에도 불구하고 그 선물이 완전하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타락한 사람의 본성에서 나오는 것과 같이 불완전한 믿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이 불완전하면 주신 하나님도 불완전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주장이 완전신학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주장이 틀리고 왜곡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과감히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에는 이처럼 많은 모순들이 소위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신자를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진리는 언제나 항상 변함이 없이 완전한 것처럼 우리가 진리를 받았으므로 우리 안에 진리가 있는 것처럼, 진리는 우리 안에서 우리는 완전한 믿음의 사람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타락한 본성이 자기의 의지로 믿음을 고백하는 이 믿음은 자기 안에 진리가 없으므로 진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본성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완전한 믿음이 되지 못합니다. 이 믿음의 사상으로 완전한 사상을 이해 할 때에는 완전한 믿음이라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완전하다고 말할 때 그들은 우리를 비난하게 될 것입니다.

사도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고 말하는 것은 타락한 본성이 자기의 의지로 믿음을 드러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믿음을 일으키는 진리를 자기 안에 있고, 그 진리가 사람으로 하여금 믿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도의 주장에 의하면 사람에게 있어 믿음을 일으키는 이 지식 곧 진리는 바로 복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라고 담대히 말했고, 자신이 이 복음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참된 믿음을 드러내고 하나님께서는 이를 의롭다 칭하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안에 복음이 있습니까?”라고 말하는 것은, 여러분의 믿음이 복음으로 말미암았습니까? 라고 묻는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의롭게 되는 것은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행위란?

사람의 영혼에 있는 지식이 전인의 기관인 의지에서 작용하여 육체의 사람으로 하여금 지식대로 활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식과 육체는 살아있는 사람에게 있어서 불가분 관계입니다.

지식이 있는 사람이 움직일 수 있는 것이지 지식이 없는 사람이 움직임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육체는 지식대로 움직입니다. 그 지식이 진리이면 진리대로 움직이고 거짓이면 거짓대로 움직입니다.

사람은 타락했습니다.

타락은 지식이 왜곡된 것을 의미합니다.

타락된 지식을 가진 사람은 거짓된 행동만 할 뿐입니다.

의는 진리대로 행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믿음이라는 말은 복음의 지식이 사람을 행동하게 하는 것입니다. 복음으로 행위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하나님께서 의롭게 보실 수 있는 행위는 복음의 지식이 사람의 영혼에 있어서 사람으로 행동하게 하는 경우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