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연구

인생 3

생명있는 신앙 2014. 3. 26. 04:12

신앙인의 삶이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신앙을 주시고 그 신앙을 가진 사람을 의롭다 칭하십니다.

그래서 사람의 의롭게 되는 것은 삶의 양태 속에 있는 의로움이나 혹은 희생정신, 그리고 법을 온전히 지켜 행하는 율법주의적인 삶이 아닙니다.

의로움은 신앙을 가진 것을 말합니다.

저는 앞에서 신앙과 삶의 양태를 혼동하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에 관하여 말씀을 드렸습니다. 신앙이 무엇인가? 그것은 들음으로부터 얻은 삶의 양태인데 그 삶이 드러나고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그런 것이 아니라 영혼 안에서 일어나는 지성의 변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타락의 속성을 물려받은 사람들은 자기의 영혼 안에서 일어나는 지성의 변화에 대해서 잘 감지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각 사람이 하나의 영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영혼에서 두 개의 사상을 가진 지식이 혼합되지 않고 삶의 양태를 만들어 냅니다.

타락하고 왜곡된 지식만을 가진 사람은 모든 생각에 있어서 타락되고 왜곡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지식이 자기만 이해하거나 인식하는 완전한 주관적이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사람의 사회에 속하여 사회 속에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자기의 지식을 사회에 투영하여 적응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만약 자기의 지식들이 사회에서 적용되지 않은 뒤틀어진 지식들이라면 그 사람은 사회로부터 적응하지 못하는 뒤틀린 지식 때문에 혼란스러운 삶을 살고 온전한 삶을 유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사람은 이처럼 자기 혼자는 살 수 없는 사회적인 관계를 가지고 자기 영혼으로부터 드러내진 사회에 속하여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이와 같이 사회와 사람은 유기적인 관계에 있고, 사회는 사람의 영혼의 지성에서 나온 지식에 의해 형성되어집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가정, 나아가 직장과 교회, 그리고 나라와 세계는 바로 여러분의 영혼이 지성에 있는 지식에 이해 만들어진 사회입니다.

이 사회는 여러분이 알거나 느끼지 못하는 세계의 일원에 속하는 구속의 관계가 있고, 이 관계를 벗어나면 우리는 사회로부터 거절당하는 아픔을 만나게 됩니다.

이 커다랗고 유기적인 사회는 물질과 같은 어떤 구조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지성에서 나오는 지식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지식이 여러분 개개인을 사회라는 하나로 융합시켜 유지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이념과 철학, 혹은 종교도 사람들의 개개인의 지성에서 나오는 지식에 의해서 철학과 종교를 형성하고, 그렇게 형성되면 커다란 사회속아 작은 사회가 구성되어 그 구성원들을 품에 앉고 사회라는 자기를 유지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사회는 사람들의 지적인 동의가 없으면 사라져 버립니다. 그것이 돔같은 어떤 형태를 가진 구성체가 아니더라도 구성했다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 온전히 사람의 영혼안에 있는 지식입니다.

그러면 신앙은 무엇입니까?

신앙은 개인이 자기의 삶을 총체적이고 객관적으로 견지하면서 사람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거울로 비춰주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본질적인 자기인식이라고 하는데, 본질적이라 할 때는 지음을 받은 타락하기 이전의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곧 사람에게 신앙이 있다는 것은 최초 지음을 받은 사람으로서 자기 인식을 가지는 것인데 이 인식은 자기의 영혼에 자기에게서가 아닌 객관적으로 자기 자신을 조명하는 지식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 지식의 말씀이 영혼에 들어와 조명하므로 그 조명에 의해 자기를 알게 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을 가질 때는 자기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심겨지고 그 말씀이 자기의 영혼을 비춰 조명함으로 자기를 그 말씀에 의해 지식을 가지고 인식하게 하는 상태가 된 것을 말합니다.

아브람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여기시고(15:6)”라고 말할 때 아브람은 타락된 자기의 본성으로 부터의 사회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께서 여러번 만났고 그 만남을 통해 말씀을 주셨으나 그의 영혼에서는 현재 자기의 삶과 직결된 사회를 의지하는 경향이 강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조명이 새로운 지식을 생성하고 그 지식에 의해 이끌어 지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람이 갈대아 우르를 출발한 때에는 자기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람이 믿음을 가지지 전까지는 아브람 자신도 알지 못하는 하나님 말씀의 이끄심에 이끌려 왔었습니다. 아브람이 가나안땅으로 가고자 한 의지는 아브람 자신이 믿음에 이끌린 계획이 아니라 자기의 생각이었으나 하나님께서는 이를 역사하셔서 그렇게 하도록 하심으로 아브람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성취해 오셨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아브람의 의식을 의식적으로 빼앗은 것이 아니라 순전히 아브람의 의식으로부터 행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이 하나님을 향하여 열린 마음을 가지고 받아들이게된 순간은 자기의 연약함과 자기의 무능함을 깨닫고 두려워 떨며 뭔가 의지하지 않으면 안되는 절대적인 상황에 부딪혔을 때였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보았습니다.

주위에 수많은 대적들이 진치고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굶주린 사자가 먹이를 삼키려고 움츠리고 있는 것을 느낀 것입니다. 주위에 수많은 가나안의 대적은 성안에 있고 자기는 장막에 거하는 초라한 상태입니다. 기마병들이 횃불을 들고 장막 안으로 던져 버리면 순식간에 아브람의 모든 것이 흩어지고 아수라장이 되어 버립니다. 아브람은 자기가 길리운 개인 군대가 충분히 자신과 자기의 부족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의분이 일어나 잡혀간 조카 롯을 되찾아오고 나서는 완전히 상황이 뒤바꿔진 것입니다.

아브람은 이 사회에서 철저히 무능한 자신을 본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니고 순식간에 꺼질 연약한 촛불이라는 것을 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때를 기다리셨을 까요?

여러분은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아브람의 영혼을 보십시오.

아브람이 무엇으로 자기의 연약함을 보고 있습니까?

그것은 자기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의 조명에 의해 자신을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그가 하나님의 말씀의 조명으로 자신을 보지 않았다면 어떻게 생각을 하겠습니까?

저 같으면 성을 가진 파괴된 성으로 달려가 자기를 도와달라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성안으로 들어가 자신과 자기의 부족의 안전을 지키려 할 것입니다.

또한 주위의 우방들과 함께 강력한 약속을 받아 자기를 위협으로부터 지키려고 갖가지 방법들을 모색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람의 영혼 안에 보내어진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아브람이 자신을 보게됨으로 인해 자기가 의지해야 할 진지한 존재를 인식할 수 있게 됩니다.

바로 이때 하나님의 음성이 아브람에게 또렷하게 들려진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 보십시오.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15:1)”

아브람이 무엇을 생각하겠습니까?

두려워 떨고 있는 아브람이 이 말씀을 듣는 다고 두려운이 사라질까요?

물리적인 공격과 위협을 충분히 방어할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될까요?

아브람이 이렇게 생각하는 본성은 신앙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타락한 본성에서 나오는 반응임을 여러분은 잘 알 것입니다.

아브람이 하나님께 응대하는 말을 들을 때 여러분은 무엇을 생각합니까?

아브람은 실지로 자기를 거반 포기한 상태에 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들을 자기의 후계자 다메섹 엘이에셀에게 양도하려는 마음을 굳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내게 무엇을 주시려 합니까? 나의 후계자는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15:2)” 라고, 하나님께 응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말씀하셔서 처소에서 밖으로 이끌어 내시고 하늘의 뭇별들을 보이게 하십니다. 그리고는 아브람의 마음에 있는 자기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 언급하십니다.

그것은 아니다 네 몸에서 날자가 네 상속자가 될 것이니라(15:4)”라고 말씀하심으로 아브람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드러내 보이시게 됩니다 .

아브람은 여기에서 자기의 삶을 다시 보게 되었을 것입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에 이르고 애굽으로 돌아 다시 가나안에 이르는 동안 자기를 지켜준 하나님에 대해서 마음의 문이 열렸고 드디어 하나님을 향한 새로운 지식들이 영혼 안에 가득 체워졌을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아브람으로 하여금 믿음으로 이끌려지는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고 이것이 아브람에게 있어서 믿음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이 일들로 인하여 아브람은 하나님을 향하여 그 어떤 일도 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심으로 당신의 말씀을 보내셔서 아브람의 영혼에 심기어지게 하셨고, 자주 말씀하심으로 아브람의 영혼에 하나님의 말씀의 조명으로 인한 지식들이 많아지게 하였으며, 그결과 아브람이 그 조명의 말씀에 의해 자기의 정체를 볼 수 있을 결정적인 계기에 하나님에 대한 의지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는 일한 것이 없이 받는 복에 관하여 다윗의 시편 말씀을 인용하여 설명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더 궁금한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신앙의 삶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삶의 양태와 어떻게 다릅니까?

성경이 말하는 신앙의 삶은 자기의 삶을 살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의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신앙을 타락한 본성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신앙은 하나님의 아들의 관점으로 보는 사회를 말합니다.

문제는 신앙을 가지고 세상의 타락된 사회에서 살아야 한다는 과제입니다.

이것은 신앙의 본질과 다른 것입니다. 신앙이라는 본질을 가지고 타락된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는 신앙으로서의 삶의 양태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삶은 분명히 두 가지의 삶이 있습니다.

하나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심을 받은 기간 동안의 공생애를 말하고 그것으로 인하여 부활한 삶으로 구별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공생애 기간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사셨던 그 삶을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 신앙의 삶입니다.

그 삶은 하나님의 아들의 삶인데 그 삶은 이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