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부활
어제 우리는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였고 오늘 새아침을 또 맞이합니다.
항상 드리는 말씀이지만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가장 공평하게 주어진 것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이 시간입니다. 이와 같이 시간만큼은 악인이나 선인이나, 부자나 가난한자나, 문제로 고통을 당하는 자나 근심이 없이 평온한 자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집니다. 어떤 이 에게는 시간이 가지 않았으면 좋겠고, 다른 이에게는 시간이 가버렸으면 좋지만 그 시간은 정확하게 어김없이 우리에게 찾아오고 우리를 향하여 지나갑니다.
부활의 아침도 하나님의 아들에게 동일하게 지나간 시간입니다.
시간이 지나가고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 왔습니다.
주님은 부활하셨고 새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아들을 거절했고 이방인은 하나님을 아들을 죽이므로 죄를 죽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과 함께 이방인에게 죽임을 당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스스로 고통을 짊어지시는 엄청난 아픔을 당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이방인들을 존재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이방인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있어서 잉여의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낳아도 되고 낳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상당수 그리스도인들은 잉여의 자식이라는 논리에 대해서 의아해 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터부시 해왔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지식으로 복음의 진실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스스로를 진리의 편에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 이방인은 본질상 하나님의 창조 계획과 관계없는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말미암은 정욕으로부터 태어난 정욕의 열매들로서 가인의 후예들입니다.
아무리 논리를 거스러 반박을 하려고 해도 우리는 정욕의 자식으로서 죄의 열매일 뿐, 하나님의 아들들의 반열에 들 수 없는 그리스도 밖에 있으며 약속들에 대해서는 외인이요 하나님도 없는 자입니다. 사도바울이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을 향하여 분명히 언급한 증언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의 신학은 언제나 미로를 벗어나지 못하는 꼬여있는 학문일 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우리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인식하였다 치고 주 예수의 죽음과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을 죽인 이방인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이방인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 것은 곧 하나님을 죽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이방인에게 내어 주셨고 스스로 죽임을 당하시되 하나님의 아들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 자신을 이방인에게 내어주시는 것을 듣게 됩니다.
이런 말은 성경 안에 직접적으로 언급한 말씀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깨우친 것도 아닙니다.
성경에 충분히 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온 세상의 부활입니다.
예수님은 혼자 죽으셨으나 실지로 온 세상의 생명의 근원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음은 온 세상의 생명이 단절되는 원인이 되고 결국은 온 세상도 궁극적인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는 상태가 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온 세상의 부활이 되고 우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으나 실지로는 그 죽임이 우리 자신을 죽임과 같이 우리의 모든 죄를 죽이는 것과 같은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와 함께 죽었고, 이제 예수와 함께 부활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시간이 임했고, 우리 안에서 주님을 중심으로 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질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한 가지 중요한 사명이 있는데 그것은 곧 우리 영혼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채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의 정체를 알고 그 정체대로 우리의 삶에 반영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영혼에 온전히 유입되고 새겨져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으로 살아야 합니다. 바로 그 그리스도의 영이 곧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고 창세 때 아담에게 주셨던 하나님 형상 안에 있는 본유지식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지식은 이미 죄로 말미암아 깨어져 사라졌고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에게 남기신 말씀과 성경을 통해서만 그 지식을 대신하여 얻을 수 있습니다. 그중에 가장 먼저 우리에게 복음이 심겨져야 하고 그 복음에 의해 우리가 새 생명을 얻고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럴 때 우리 안에 심겨진 복음이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성장시켜 결국은 우리의 영혼의 지성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세상으로 나와 세상을 건설하는데 그 나라가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로부터 천국은 확장되어가고 이 천국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강림 하셔셔 영원한 왕 노릇을 하실 것인데 예수님과 우리의 부활은 이 천국을 건설하기 위해 시작된 삶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의 부활의 삶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우리에게 부여된 사명을 보면서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 사명은 가르쳐 제자를 삼고 이 세상을 예수를 믿는 백성들이 가득 차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아직 하나님의 아들로 가입하지 않은 세상 사람들을 향하여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삶의 윤리는 산상수훈에서 배우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이 세상의 사람들의 삶과 같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로 선택된 백성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의 의식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아가면 가장 먼저 이 세상에서 생명을 걸고 이 세상 사람들을 섬기다가 온 우리의 형제 자매들의 고통과 아픔을 먼저 나누고 그 아픔의 고통에서 신앙의 삶을 살아온 승리를 나누며 서로 위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의식이란 세상을 섬기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아직 그들의 영혼에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이 심겨지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증오와 분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면 우리를 죽이려고 달려 들 것입니다.
그들의 영혼은 본질상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증오와 분노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의 의식을 가졌다는 것은 우리가 정욕을 일으켜 세상 사람들을 낳았다는 생각도 함께 가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범죄로 말미암아 정욕을 일으켜 낳은 저들은 이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의 선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하고 영원한 고통의 지옥을 향하여 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그들을 존재하게 한 사실에 대해서 진심으로 회개하고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참으로 우리는 저들을 낳았고, 저들은 우리의 정욕 때문에 이 세상에 태어나서 영원한 불타는 지옥을 향하여 가고 마는 것입니다.
지옥의 고통이 저들의 뜻이 아니라 우리의 정욕 때문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우리가 저들을 세상에 있게 한 것이 저들에게 커다란 죄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저들을 섬겨야 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저들이 우리와 화목하게 지내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오리를 가자하면 십리를 동행하고, 달라하면 거저 주고, 겉옷을 달라하면 속옷까지 주며, 달라고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며, 오른편 뺨을 때리거든 왼편 뺨도 돌려 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이방인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복음이 영혼의 지성에 심겨져 그들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우리처럼 하나님의 아들의 삶을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그 모든 삶을 실천하여 보여주셨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아들의 삶이 무엇인지 분명히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이 세상에 속한 우리의 형제들을 한 사람씩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여 서로서로 섬기며 사랑하는 그 나라를 건설하고 그 나라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성취하시려는 새로운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