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연구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는 사람은(롬4:8)

생명있는 신앙 2014. 4. 25. 07:05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는 사람은그 사람에게 있어서 복입니다. 라고 다윗은 말합니다. 어떤 행위가 다윗에게 있어서 죄를 범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 죄에 대하여 묵인하시는 것일까요? 자기 생각에도 충분히 죄인데 그것에 대하여 들춰지지 않으시고 묵인되어지는 것에 대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살펴보아도 우리 스스로 얼마든지 부끄럽고 도저히 용서 할 수 없는 수 많은 크고 작은 죄의 행위들이 있습니다. 아니 어떻게 보면 죄가 아니라고 생각되는 일들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돌아서서 보면 모든 행위는 하나님의 선에 합치하는 행위라고 보기에 너무도 터무니없는 행위이며 삶 자체가 죄라는 것을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평범한 일반인의 삶에서 조차 죄의 행위들 많이 느껴지고 스스로 얼굴을 떨어뜨리게 하는데, 절대 권력을 위임 받은 사람에게서 숨겨진 행위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성경에는 특별히 역사되어지고 기억으로부터 결코 지워질 수 없는 하나님과 관계된 죄들과 이로 인하여 역사적인 시간을 함께 이어지는 사건들을 기록되었으나 용서 할 수 없을 만큼 큰 죄이면서도 드러난 죄들과 같이 역사의 흐름과 관계되지 않은 사건들이 매 순간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한번의 잘못된 판단과 실수가 낳은 충격적인 일들로 슬픔을 남긴 큰 죄였지만 이런 일들이 자기 생각으로 분명히 징계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자신의 마음을 찌르고 아프게 함으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여 조용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 죄를 자복하였더니 마음이 가벼워지고 하나님의 용서를 느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우리 자신을 살펴보십시오?

우리에게도 무수히 많은 왜곡되고 거짓된 변명들로 우리의 죄들을 숨겨온 많은 죄들이 우리를 사로잡고 있습니다. 실지로 우리는 우리의 행위로 인해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억눌려 있는 사람과 같은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지금 우리 자신들 잘 살펴본다면 죄로 인하여 우리가 얼마나 우리 자신이 위축되어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감을 가지고 사람 앞에 나타나서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뭔가 부족한 사람처럼 실지 자신을 최대한 드러내지 못합니다.

이유는 자신의 내면이 나를 붙잡고 나로 하여금 행동을 위축시키는 것입니다.

이런 죄들은 우리에게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죄들을 덮어두시고 계십니다.

왜 그럴 까요?

하나님께서는 죄를 범하고도 뻔뻔스럽게 행동하고 큰 소리 치며 변명하며 죄에 대한 자각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진노하시는 분이십니다.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도 조금도 죄책감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백성들로 칭송을 받았습니다.

모든 것을 자기가 저질러 놓고 우리아를 덧에 걸려 죽도록 엄청난 죄를 저질렀으면서도, 그것이 죄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자기의 행위가 백성들이나 혹은 주위의 사람들에게 감동적인 왕의 선처라고 칭송이 자자했습니다.

나라를 위해 헌신한 우리아의 아내를 자기의 후궁이 되게 한 것은 두고두고 칭찬을 받을 일로 칭송되었습니다.

왕의 이런 마음은 모든 백성들에게 마음 놓고 나라를 위해 헌신하도록 독려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실지로 이런 일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큰 죄였던 것입니다.

당시 사회에서는 율법이 정한 바에 따라 남편을 잃은 여인은 그 남편으로부터 자유를 얻습니다.

이제 여인은 다른 남편에게 시집을 간다한들 아무도 정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편적인 사람의 마음에는 한 남자를 사랑한 여인이 남편이 죽었다고 해서 마음을 바꾸고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뭔가 미묘한 감정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도 여인이 한 남자를 사랑했으면 죽었어도 사랑해야지 자식도 있는데라는 묵시적인 요구가 우리의 마음에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이런 마음은 있습니다.

밧세바에게도 이런 마음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것을 심판하시는 정죄의 대상이라고 말씀을 드리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윗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서 모든 것을 함당한 이유와 원인을 조성하고 결국은 자신의 마음까지 속이고 떳떳하게 행동하는 이것이 더 큰 죄이면서도 자신은 이 죄에 대해서 무감각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일들에 대해서 드러내시고 밝혀서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의 지혜와 지식으로 바벨탑을 쌓아 하나님을 대적하려고 하는 능력을 드러낸 것과 같이, 자기의 지식으로 온갖 지혜를 모아 죄를 감추고 덮고 숨기려고 하는 악행이 결국 사람의 사회를 깡그리 망가뜨리는 교묘한 범죄이기 때문에 징계하실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다윗은 욕정으로 인하여 밧세바를 범하므로 하나님께 자신을 감추고 숨기는 악행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에 고백한 시편 32편에서 말하는 용서 받은 죄에 대해서는 자기 스스로 죄라고 느끼고 그것에 대해서 마음이 억눌러 고통을 당하여 괴로워하는 아픔을 이기지 못하여 늘 평안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조용히 하나님께 나아가 자기의 죄를 토설하였더니 마음에 평온을 얻고 죄에 대한 평화를 누린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