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연구

믿음으로 된 의(롬4:11)

생명있는 신앙 2014. 6. 8. 07:00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

 

우리의 구원은 영혼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짐으로 시작됩니다.

아브람에게는 갈대아 우르에서 부르심을 입은 그날 하나님의 지식이 처음 반영되었습니다.

그동안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반영되어 그 지식으로 하나님을 인식하도록 허락되어진 사람은 없습니다. 창세기 14장에 나타난 멜기세댁이라도 아브람처럼 하나님의 음성이 영혼에 새겨진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멜기세댁과 그 휘하의 백성들이 섬기는 하나님이 과연 누구인지는 성경이 분명히 말하지 않지만 제사장이라는 사도의 고백으로만 확증할 뿐 아브람과 같이 하나님의 지식이 직접적으로 영혼에 반영되어진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아브람에 관하여 어떤 지식을 가져야 하는지 정말 냉철하게 우리 영혼의 지성을 집중하여 진리의 조명을 받으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 장에서 얻어진 아브람의 믿음이 의로 여겨진 것이 무엇인지 거울처럼 선명하게 밝혀보고 우리에게도 아브람과 같은 선명한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잠시 잠간이면 설명이 가능할 것 같은 창세기 15장과 로마서 4장을 아주 우리의 손에서 내려놓지 않은 것입니다.

그 이제는 그 마지막으로 의로 인정을 받은 믿음에 대해서 어두운 구름이 다 걷힌 것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아브람에게 믿음이 과연 무엇인가?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집을 떠났을 때 이 믿음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가나안 모래 상수리 나무에 이르렀을 때 이 믿음을 가진 것도 아닙니다.

기근으로 인하여 애굽으로 내려갔을 때 아내를 빼앗기는 위기에 처해 있을 때에도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믿음에 있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브람에게 들려 주셨으나 그의 영혼의 지성에 채워지지 않아 아브람이 삶을 시작할 때부터 가졌던 지식을 몰아내고 주도적으로 영혼의 지성에 자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받거나 가지기 전에 완전한 세상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아브람 영혼의 지성에 세상 지식이 가득한 상태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해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람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와 기쁨을 누리고 있을 때, 그의 영혼을 스쳐 지나가는 한 생각이 그를 두려움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아브람이 이 전율하는 위기를 느끼게 된 것은 자기 영혼이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두려웠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아브람은 어떤 방법으로도 현재 자신의 상태를 구할 방법이 전혀 없었습니다.

자기는 광야에 있고 적군들은 자기보다 훨씬 강하고 유리했습니다.

자신의 상태는 햇볕에 바짝 말라버린 풀무를 뒤집어쓴 상태나 다름이 없고, 강한 바람이 불어 닦친다면 남겨질 것이 없이 걷어져 버릴 보잘 것 없는 천막 속에 거하고 있었습니다.

이 상태에서 자신을 구원할 그 어떤 보호막도 없는 그야말로 풍전등화와 같은 연약하기 이를 대 없는 자신의 상태를 자기 영혼이 발견하였는데 이 문제에서 해결할 수 있는 그 어떤 방법도 지성에서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아브람의 두려움은 컸던 것입니다.

저는 이처럼 아브람 영혼의 지성이 바로 이점을 명확하게 밝혀 아브람의 전인에게 반영하여 고민하게 한 것은 본성인 아브람의 지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동안 들어 왔던 하나님의 말씀이 아브람 영혼의 지성에서 주도하게 된 것이라고 있습니다. 본래 타락한 아브람의 본성의 지식들은 오류투성이고 진리인 참이 아니기 때문에 아브람으로 하여금 왜곡된 판단을 하게 하여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게 했을 것입니다. 우리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실패하는 원인은 자기 안에 있는 자기 지식의 결함이 첫 번째의 원인이 되고, 다음은 영혼의 지성이 주는 경고를 스스로 무시함으로 인하여 착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저는 지금 여러분 자신의 영혼 안에 있는 지성에서 일어나는 일이 어떻게 여러분을 이끌고 있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영혼에는 두 가지의 지식이 있습니다.

하나는 본성인 타락된 지식과, 다른 하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어진 지식 곧 복음의 지식이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의 영혼이 타락된 지식의 주도로 신앙생활을 한다면 여러분은 필연적으로 왜곡된 신앙에 빠지게 되고, 복음의 지식이 여러분의 영혼을 주도한다면 여러분은 구원을 얻는 생명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살아있는 사람 중에는 그 어느 누구도 영혼의 지성에 완전하게 복음이 주도하는 삶을 살지 못합니다. 주님의 제자들을 포함하여 사도 바울이라 할지라도 언제나 타락된 본성의 옛 사람 지식의 주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우리 영혼의 지성이 온전히 복음의 주도에 따라 지식을 전인에 반영하는 삶을 살기 위해 우리 자신을 쳐 옛 사람의 지식이 영혼에서 주도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아브람은 그 영혼에 하나님의 말씀이 주도적으로 그의 정체성을 조명하지 않고 위기를 만났을 때 언제나 그 환경을 피하여 다른 곳으로 내려가는 행동을 했습니다. 가나안에서 여기저기 안식처를 찾아 헤매는 가운데 기근을 피하여 애굽으로 내려가기까지 이르렀던 그의 삶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그 본성의 지식이 영혼에서 주도함으로 그렇게 행동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조카 롯을 구하여 돌아온 이날 밤은 상황이 달아졌습니다.

이제 아브람은 어디로 피하든지 강한 적군들의 눈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적들을 이기고 조카를 건져 내 왔으나, 앞으로 또다시 그런 일이 있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었고 정면으로 적들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결코 적들을 이길 수 없다는 분명한 사실을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홀연 단신으로 서 있는 인생 앞에서 아브람에 다가온 위기를 보게 한 것은 참된 진리의 지식이었습니다. 저는 이 지식이 본성인 아브람의 지식이 전인에 반영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지식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브람 영혼의 지성에서 주도하여 아브람이 인식할 수 있는 지식으로 반영된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이 지식은 타락한 본성의 지식이 아니라 아브람안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브람의 영혼을 주도하여 생성된 지식입니다.

본래 아브람은 이런 지식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의 본성은 타락된 지식으로부터 지식을 가지기 때문에 왜곡되고 거짓되며 자기 자신을 온전히 지키고 이기는 거짓된 지식을 가져 승리에 도취하여 빠지게 하고나 교만하여 다음을 예측하지 못하고 방관하다가 공격을 받을 때 무너져 버리는 어리석은 지식만 반영할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께서 분명히 말씀 하시기를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자요 진리가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 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8:44).”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거짓을 가지고 거짓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 말은 모든 사람의 영혼의 지성에는 왜곡되고 거짓되며 진리가 아닌 지식으로 가득 채워져 있고 이 지식이 지성으로부터 사람의 전인에 반영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거짓에 따라 살도록 하는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아브람을 통해서 사람이 거짓으로 살 때와 진리로 살 때가 어느 것인지는 볼 수 있습니다. 실지로 아브람이 거짓된 삶에서 진리의 삶으로 전환되는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을 지라도 우리는 그의 삶을 통해서 진리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보여주시고 증거 하심으로 우리는 그 증거를 참이라고 믿고 면밀히 관찰함으로 복음의 지식으로 조명해주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진리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조카 롯을 적들로부터 구해오고 승리를 만끽함으로 즐거워하고 우쭐하여 미래를 대비하지 않은 삶은 아브람 영혼의 지성이 하나님 말씀의 조명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이는 미래와 당시 아브람의 정체성에 대핸 분명한 인식을 가지지 못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바와 같이 아브람이 두려움이 휩싸여 있었던 것은 그동안 아브람을 만나신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아브람 영혼의 지성에서 조명하여 아브람의 정체성을 진리대로 명확하게 볼 수 있게 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람에게는 두 가지의 지식이 있고, 사람의 지성이 어떤 지식의 조명을 받아 지식을 가지고 전인에 반영하는지에 따라 사람이 달라지는 것을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 한 지식은 타락된 본성의 지식이고 다른 한 지식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으로부터 들은 말씀 곧 지식입니다. 타락된 지식은 거짓과 왜곡으로 인하여 교만을 가져 옮으로 패망을 향하여 달음질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인 지식은 사람으로 하여금 안전하고 편안한 곳으로 인도하여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게 하는 것입니다.

전쟁에서 조카를 구해 돌아온 아브람의 영혼은 위기를 만난 자신의 삶을 보게 되었고 이렇게 자신을 명확하게 보여준 지식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었으며 결론적으로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의 확실한 보장을 받게된 믿음을 가진 것이 곧 하나님의 말씀의 근원으로부터였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아브람이 믿음의 사람이 된 것은 그가 타락한 본성으로 어떤 것을 깨우쳐 알고 깨달은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는 그렇게 할 수 없는 본성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왔고 그 말씀들이 결정적인 위기의 순간에서 아브람의 영혼을 주도함으로 아브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이미 들었던 하나님의 말씀과 그가 이해하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들이 영혼의 지성에서 주도한 삶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신 의를 바로 이것입니다. 본성의 지식으로 행하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영혼을 주도하여 아브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신뢰하게 하는 행위, 곧 하나님의 말씀의 행위인 것입니다. 이것은 의로운 것이며 이 말씀의 행위는 전적으로 믿음을 낳는 행위가 될 뿐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행위가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한 행위이기 때문에 당연히 의로운 행위가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