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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은 진노를 (롬4:15)

생명있는 신앙 2014. 7. 31. 08:29

율법의 역할은 사람으로 하여금 최초 지음을 받은 상태로 돌리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으로 하여금 질서롭고 조화로운 삶을 살도록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주신 완전한 지식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죄의 상태에 있는 사람은 그 영혼의 지성에 무지와 결함을 지닌 왜곡된 지식들 뿐입니다.

타락 이후 사람들은 모든 객관적 지식과 객체를 인식하는데 있어서 왜곡된 지식으로 조명하여 인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인식되는 지식이 무지와 결함을 함의한 왜곡된 지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조명을 받지 않은 모든 철학자들의 철학이 왜곡되어 있습니다.

진리라고 주장하는 모든 지식들이 왜곡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낳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 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8:44)” 라고 하셨습니다.

사도도 역시 사람은 다 거짓되되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3:5),”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요일 2:4),” 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에게는 진리가 없습니다.

거짓 뿐입니다.

왜냐하면 지식을 가질 수 있도록 조명해주는 지식이 무지와 결함을 가진 왜곡된 지식이기 때문에 항상 거짓을 생성하고 그것을 인식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철학자들의 철학을 들어보면 진리일 것 같으나 정말로 많은 부분에서 문제가 있고 오류가 있습니다.

그들이 인생에 관하여 말하는 논리들은 진리의 조명을 받아서 생성한 지식이 아닙니다.

진리가 그들의 영혼 안에 없기 때문에 그들은 결코 진리를 생성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우리의 영혼에도 가인과 같이 진리가 없으므로 하나님을 만난다 할지라도 그 하나님을 진리이신 하나님으로 인식하지 못합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가나안을 돌아 애굽을 거처 다시 가나안에 이르기 까지 항상 하나님은 함께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가 인식하는 하나님에 대한 개념은 진리이신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그의 믿음을 인정받은 창세기 15장에 이르렀을 때 까지도 그는 진리이신 하나님을 완전히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믿음을 의롭다고 인정을 받은 후에도 아브람은 여전히 무지와 결함을 가진 이전의 자기지식으로 하나님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모든 지혜를 발휘하고 꾀를 내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은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믿음을 인정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는 하나님을 잘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우리가 믿음으로 살고 있으나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성취하려고 합니다.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이라고 충분히 잘못될 수 있는 왜곡된 주장을 늘어놓고 교회를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개혁주의 신학과는 전혀 다른 신학을 하면서 자신이 개혁주의자인 것처럼 주장합니다.

자기의 열심과 하나님의 일 사이를 전혀 구별하지 못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주신 율법과 하나님의 선택이라는 놀라운 은총을 받았으면서도 그들은 철저히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였고 지금 현재 까지도 왜곡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선에 비추어 자신을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부르신 것을 진리대로 이해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발견한 것은 하나님의 선으로 볼 때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구별이었습니다.

이는 죄를 행하는 자와 죄의 열매의 관계를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죄를 행하는 자이고 이방인은 죄의 열매입니다.

사도는 이것을 명확하게 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셨다.

그 대신 이방인을 이스라엘로 대체하셨다.

이는 참 아들을 버리고 아들들이 죄로 말미암아 얻어진 죄의 열매들을 아들로 삼은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보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죄에게 내어주셨습니다.

죄는 하나님의 아들을 죽일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죽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몰랐습니다.

그것은 그들 안에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 수 있는 지식이 없었고 그들이 가진 모든 지식은 가인이 하나님을 모르는 것처럼 왜곡되고 거짓된 지식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율법이 그들의 영혼을 조명했더라면 그들은 예수가 누구인지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을 가지고 있으면서 율법이 그들의 영혼에서 조명하는 것을 몰랐고 그들의 거짓된 지식으로 예수를 판단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진리이신 하나님의 아들을 진리로 조명하지 않고 거짓되고 왜곡된 우리 본성의 지식으로 판단합니다. 그러면 예수는 결코 하나님의 아들로 인식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보혜사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신다는 것을 이해하실 것입니다.

그가 와서 우리에게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알려주실 것인데 그 방법이 율법을 우리의 영혼에 조명하고 복음을 심어 우리로 하여금 복음의 조명을 받게하여 우리가 누구인지, 그리고 왜 태어났는지, 하나님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지금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조명해주는 하나님의 영입니다.

이제 율법이 무엇인지 아셨을 것입니다.

가인이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에서 분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성경은 가인이 하나님을 만나 대면하고 의견을 주고받으며 대화하는 장면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말씀하시면 가인이 하나님의 질문에 자기의 의견을 말하였습니다.

가인이 하나님과의 대화내용을 살펴보면 하나님에 대해서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연상하게 합니다.

한마디로 가인은 하나님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뭔가 성경이 말하는 전능하시고 전지하신 하나님으로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의 수준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자신의 행위를 숨길수도 있고, 심지어 하나님을 벗어나 별도로 자기의 세상을 만들 수도 있다고 인식합니다.

이렇게 인식하고 있는 것은 그의 영혼에 있는 지식이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가지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이 그를 조명한다면 그는 그렇게 인식하지 않을 것입니다.

너무도 쉬운 답입니다.

이제 우리의 영혼에 하나님의 지식이 지성을 조명하여 모든 객관적 사실이나 객체 그리고 지식을 진리대로 인식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식이 우리의 영혼에 반영된 예수 그리스도를 조명하면 우리의 지성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이 세상에 죄에 대하여 죽으시려 보내셨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