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연구

내어주심과 살아나심(롬4:25)

생명있는 신앙 2014. 11. 20. 05:12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를 (4:24)

 

그러면 우리가 믿는데 있어서 그 요소가 무엇인가?

아브람에게 있어서 믿음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늘의 뭇별들을 보이시고 네 몸에서 낳을 자가 후사가 될 것이라는 것을 믿었을 때 이것을 그의 의로 여기셨다고 하셨는데 오늘 우리에게도 아브람에게 말하는 믿음의 의미를 동일한가?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적용하시는 믿음을 그렇게 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이 결코 그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먼저 우리는 아브람과 존재적 신분이 다릅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선에 있어서 창조적 관계에 속한 존재이지만 우리는 죄의 결과적 관계인 존재입니다.

물론 이 주장을 믿어도 되고 믿지 않아도 됩니다.

이를 여러분에게 적용하시는 분은 성령이시기 때문에 이것을 옆 사람과 토의해서 나는 이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어라고 말할 때 그 사람의 판단에 이끌리는 것도 성령의 사역이십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지구상에 지음을 받은 피조물들 가운데 사람은 하나님과 관계에 있어서 두 부류가 있다는 우리의 선언을 무시하거나 받아들이는 것은 순전히 성령 하나님의 사역에 있다고 우리가 말해왔고 어떤 요소에 이끌리든지 이끄시는 사역은 순전히 성령의 사역이라고 말해왔습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에서 살리시는 이는 하나님뿐입니다.

또한 이것을 확실하다고 중거하시고 스스로 그 증거가 되어주시는 분도 하나님뿐입니다.

예수를 내가 보냈고, 너희가 죽였고, 내가 그를 다시살렸으며, 너희에게 다시 보냈다

우리가 들은 이 말씀은 복음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이 복음을 들었고, 이것을 우리의 영혼에 적용시켜 믿게 하시는 분이 오직 성령뿐입니다.

또한 이것을 말씀하시는 분도 오직 성령뿐이십니다.

이 복음의 말씀은 사람의 입에서 나오고 선포되고 전파되며 전달되지만, 분명한 것은 근원이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의 역사에 의해 사람으로 역사되게 한 것입니다.

 

오늘날 이스라엘들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도 전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이스라엘에 속하였으나 하나님으로부터 왜면을 받은 불행자들일 수 있습니다.

우리도 예전에 철저히 왜면을 당했으니까요.

 

우리가 믿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도가 말한바와 같이 우리가 예수를 죽였으나 그 예수는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중풍병자를 고치시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고, 앉은뱅이를 고치셨으며, 이미 죽어 장사중에 있는 딸을 살리시며, 무덤에 있는 나사로를 살리시는 기적을 행하심과 같이, 당신께서 친히 그 기적의 대상이 되셔서 죽어 장사 지냈다가 무덤에서 분명히 살아나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시는 것을 믿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유익이 있기에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하는 열쇠가 되는 것입니까?

 

사도는 이것으로 중요한 교리를 이어가려고 합니다.

 

내어주심과 살아나심(4:25)

 

이방인에게 있어서 복음의 핵심은 이스라엘이 이방인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주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묵상해야 합니다.

복음의 주제는 처음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내어주시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하나님의 아들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방인에게 내어주셨습니다. 이방인은 이 예수를 죽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스라엘에게 내어주는가?

이것은 복음의 중심입니다.

이 복음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핵심이 될 것입니다.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방인에게 주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시지 않으시고, 이스라엘에게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시고 그들이 온전히 회개함으로 인하여 궁극적으로 온 이방과 세상은 복음의 빛을 충분히 받을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는 것은 하나님의 선이 결코 적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친히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마15:21).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스라엘에게 내어주는 것은 그들의 죄의 댓가를 치르는 것입니다.

사람들이나 오늘날 개혁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범죄와 타락에 대해서 지나친 신비에 자꾸 가둬버립니다.

최초 사람 아담의 타락은 이미 선재한 죄가 유혹해야 하고, 그 죄가 사람을 타락시키는데 그들의 영혼의 지성에서부터 타락함으로 모든 행위에 있어서 왜곡되지만 궁극적으로 악한 영의 사로잡음에 기인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말은 지극히 정당합니다.

처음 사람은 유혹을 당하였고, 그로인하여 이미 타락해버렸고, 그 타락의 결과가 정욕으로 나타나 죄의 열매를 드러내기 시작함으로 죄에 물들인 존재들이 이 땅에 태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곧 그들의 영적인 타락, 곧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림으로 왜곡된 지식을 가짐으로 타락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놀랍게 우리가 이곳에서 모든 지식이 영이라고 말한다면 새로운 이단이 나왔다고 쌍심지를 켜들고 덤벼들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할지라도 영은 지식입니다.

예수께서도 친히 보혜사를 진리의 영(14:17, 15:16, 16:13) 이라고 하시고, 당신을 친히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신 것은 말씀이 하나님의 지식이고 그 지식은 곧 자신과 보혜사 성령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결국 사람의 타락은 영혼의 중심에 영혼의 생명이 되는 지식 곧 영의 타락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이로인하여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모든 지식을 상실하였고, 그 영혼이 하나님에 대해 무지하게 되었으며, 스스로 자기에게서 일어나는 육적인 정욕을 억제하지 못하여 스스로 죽음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 그들은 정욕을 일으켜 한 사람을 낳았는데,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다가가 말씀을 하시나 그는 하나님을 진리대로 알 수 있는 지식을 가지지 못하므로 왜곡되게 하나님을 이해하고 결국 하나님을 떠나버리고 맙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을 만났으며 대화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진리대로 알지 못하는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요? 하나님의 지식인 성령께서 사람이 정욕으로 태어난 죄의 열매에 은혜를 베풀어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인도하려고 하실지라도 그에게 적용되지 못하는 이유는 곧 하나님의 선이 그것을 배제하는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타락한 하나님의 아들들에게는 그 선이 어떻게 적용하는지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최초 사람이 두 번째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는 아벨입니다.

이는 첫 아들 가인과 다르고 구별되는 것을 성경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첫 아들 가인에게와 같이 동일하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제사를 하라고 명령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제사를 받으시고 아벨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두 사람의 확실한 구별을 보여주었습니다.

가인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제사를 자기의 마음대로 생각에 따라 정성을 다하여 드렸습니다. 반면에 아벨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알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누구인지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두 사람의 제사에 대한 수납의 조건이 됩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세상에는 한사람 아담으로부터 두 사람이 태어났는데, 엄격이 구별된 두 사람이 태어난 것입니다.

한사람은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지면 그에 따라 은혜의 반응을 드러내는 아벨과 같은 사람과 다른 사람은 아무리 은혜를 부어주고 그 앞에 나타나서 말씀하시고 존재하심을 드러내 주어도 하나님을 진리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두 사람이 왜 구별되는지 그리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 앞에서 이미 충분히 살펴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눈이 악인과 선인을 구별하여 내리지 않음과 같이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그러나 나타나는 결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내린다는 것은 성령께서 그들에게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르게 적용되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선이 분명히 구별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결국은 그 원인에 있어서 분명한 구별이 있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결국 가인과 아벨은 확실히 구별되는 원인에서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는데 하나는 하나님의 작정과 관계없는 사람인 반면 다른 하나 아벨은 하나님의 작정에 의해 이 세상에 태어나도록 아담 안에 계획되어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에 속하지 않은 가인의 인생과 그의 미래 그리고 그에게 주어진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이방인의 운명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철저히 버려졌습니다.

태어날 때 부터 하나님을 알 수 없는 존재로 태어난 것입니다.

그의 근원은 철저히 사람의 정욕과 죄입니다.

그는 우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예수 그리스도를 이스라엘에게 보내셨습니까?

하나님은 창조시 계획에 속한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그 외의 사람들도 하나님은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그 사랑이 그들에게 적용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선이 그들의 적용을 결코 용납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창조계획에 속한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에서 완전히 재외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선이 이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떤 이유로도 하나님의 부당함을 말 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적용하는 원칙은 하나님의 선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억울하게 정욕과 죄로 태어나 영원한 고통의 지옥을 향한다 해도 원망하거나 하나님을 향하여 분노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순전히 우리를 존재하도록 죄를 범한 하나님의 아들들의 책임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죄를 범한 하나님의 아들들의 책임이 무엇인지 알 것 같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낳았고 우리는 그들에 의해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죄를 범하지 않고 정욕을 일으키지 않는 다면 우리는 아마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고통과 고난의 흑암의 세상을 살지 않을 것이고, 사후에 영원한 비참의 지옥을 가지 않을 것입니다.

반면 하나님의 아들들은 정욕으로 우리를 낳았으면 우리에 대한 최대한의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어떤 방법으로든지 우리를 하나님의 양자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고 지옥으로 가는 길을 막아야 합니다. 우리를 가르쳐 하나님을 알게하고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과 함께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항상 자기들의 죄로 말미암아 지옥을 가는 사람들을 양산하는 것을 막아야 하고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 죄를 멀리하며 특히 정욕을 억제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자기들이 정욕으로 낳은 이방인들을 향하여 대적하고 죽이고 빼앗으며 강도와 같이 대합니다.

그들의 그런 행동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을 욕보이는 악행입니다.

성경은 죄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증거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로 말미암아 죄를 중단시키기 위해서 예수그리스도를 보내 새로운 이스라엘을 만드시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산상 수훈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분명히 선포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