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11-시편11편
시편 11편
1,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더러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찜인고,
하나님 아들의 삶의 가장 기본은 마태복음 5:1~7:29에서 말한바와 같이 세상을 섬기는 삶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좌절되고 인생의 쓴맛을 경험하게 되면, 이 세상에서 성공적인 삶을 지향하는 종교들이 갖가지 신의 이름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고난과 고통 중에 찾아온 그들의 달콤한 말은 생수를 만나는 것 같고, 어두움에서 빛을 만나는 감동을 느끼게 됩니다.
왜 실패 할 수밖에 없는지,
인생의 수렁에서 허우적거리는 이유를 말하는 신적인 유혹에 빠져 또 한번의 좌절의 수렁에 빠져들게 됩니다.
시편 기자는 인생에 놓은 위기의 함정들을 보면서 하나님 품안에 있는 영혼의 침체를 경험하는 사람에게 다가 온 유혹자로부터 대처하는 고백을 노래합니다.
시편기자는 어떤 영문인지 알 수 없으나 영혼의 침체에 빠져있었던 날들을 기억합니다. 그때 자기는 하나님 안에 있었지만 거의 실족할만한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감당할 수 없는 시험받으시는 것을 허락하시지 않으시지만, 사람이 당하는 삶의 쓰라린 아픔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이라고 불평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사람에게 부딪혀진 어려움은 경험이 반복 될수록 더욱 짙어지는 경향이 있고, 어느 때에 이르게 되면 마침내 자기를 포기하고 내려놓을 때가 이르게 됩니다. 그때 비로써 고통이 떠나가고 승리하게 되는데 사실 고통이 떠나간 것이 아니라 고통을 고통으로 여기지 않은 얽매임에서 풀림을 얻고 미혹의 괴로움을 벗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느낌이 있으면 고통은 사람을 더 이상 얽매인다고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떠나가 버린 느낌을 갖게되고 결국은 자유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아마도 제가 보기에 여러분은 그런 경지를 충분히 터득하신 분들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고난당한 사람들을 돕고 위로한답시고 세상의 터전에서 삶의 방향을 강구하여 보라고 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 피한 사람을 삶의 터전에서 문제를 해결하라고 권고하는 말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삶의 근원이 세상에 있습니다.
그들은 모든 문제를 세상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께 피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찾으려 합니다.
세상 사람과 하나님의 사람은 삶의 근원이 다릅니다.
2, 악인이 활을 당기고 살을 시위에 먹임이여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데서 쏘려 하는도다.
시편기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을 악인이라고 합니다. 이 악인이 하나님을 아는 사람을 충고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은 말이지만 오히려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을 해하려고 유도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을 세상으로 유도하여 더욱 넘어뜨리고 진창에 빠뜨리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을 향하여 귀가 열려 있어야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가 매여 있어서 진리로 삶을 영위하려고 해야 합니다.
영혼의 침체가 다가올 때 넘어져 낙심하게 되면 스스로 일어날 힘 마져 상실하고 결국은 하나님의 간섭을 받지 않으면 않되는데, 이럴 때를 일컬어 고난의 때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으면 고난이 고난으로 여겨지지 않습니다.
시편기자는 어떻게든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을 붙들고 있어야 한다고 고백합니다.
3,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할꼬
4, 여호와께서 그 성전에 계시니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 안목이 저희를 감찰하시도다.
인생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오늘 우리의 삶을 들여다 보시고,
웃으시고 기뻐하실 것인데,
혹시라도 사람들은 자기들의 영혼의 감독자들이라고 믿는 목자와 사역자들에게 하나님을 대신하라는 우를 범하는데 그것은 매우 잘못된 자세입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 주와 하나님을 대신할 자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보내신 적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하실 수도 없습니다.
이유는 하나님과 우리 주를 제외한 어떤 사람도 하나님께 대한 불의와 불충을 대신하여 판단해줄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 안목이 저희를 감찰하시는 도다.
다시 말하면 조를 비롯한 모든 사람의 행위를 하나님이 직접 감찰하시고 지켜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안에서 공적인 예배를 통한 말씀을 재외하고는 모든 말씀을 우리의 양심에 직접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지성소에 직접 출입하는 대 제사장과 같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이 문을 열어두시고 모두에게 직접 상대해주십니다.
여러분이 이 문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직접 아뢰면 하나님께서는 즉시 여러분의마음에 말씀하십니다.
가인에게 경고하신 것처럼,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시고, 야곱에게 약속하신 것처럼, 오늘도 우리에게 직접 말씀하시므로 이 아침에 지성소의 문을 열고 들어와 말씀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제에게 물을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저의 역할은 무엇이냐고,
분명히 아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차별이 없이 똑같은 인생으로 보시고 감찰하십니다.
다만 한 가지 구별한다면 자주 말씀을 드릴 것이지만 하나님의 진리의 서고에서 진리의 말씀을 꺼내와 여러분의 영혼에 심어 성령 하나님으로 하여금 자라나게 하는 일을 협력할 뿐입니다. 그 외에 어떤 일도 여러분에게 할 수 있는 임무나 사명을 받은 것이 없습니다.
5,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강포함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
하나님의 안목에서 의인과 악인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가진자와 가지지 않은 자입니다.
우리의 영혼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지지 않고 이 사역의 범위를 초월하여 월권을 행하는 것은 사명을 잘모르는 자들입니다. 이는 당신들이 하나님의 충실한 사역자라고 생각하고 사람 앞에서 하나님의 대리자로 판단을 받기를 좋아할지 모르지만 어리석게도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6, 악인에게 그물을 내려치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저희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에게 내려지는 인생의 비참은 이미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는 바와 같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은 부득이 그들을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있는 고통의 세계에 처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생 동안에 얻어야할 가장 중요한 일은 곧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득체우는 일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을 모르는 악인이 날이 갈수록 악의 지식이 더해 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의 영혼에서 분노와 미움을 더욱더 쌓거나 아니면 더욱 하나님과 멀어져 가는 악한 지식이 깊어진다면 그 영혼은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또한 거짓 지식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지 못하게 하고 자기를 신뢰하게 하는 지식을 생산해낸 사람이나 하나님을 왜곡되게 이해하도록 하는 사람들의 영혼의 고난이 어떠할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사람의 영혼에 지식이 전무한 사람이 내세에서 당하는 고통의 크기는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나라에 이를 수도 없습니다. 반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고, 세속이나 세상의 철학적 깊은 사상을 가지고 수많은 사람을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게 하고, 가까이 가지도 못하게 하는 사람의 고통은 얼마나 되는지 생각이나 하십니까? 그는 혼자 감당하기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다음 세상에서는 이런 지식이 나오지 않아야 합니다. 나오지 않으려면 그 사람에게서 생각되지 않아야 합니다. 생각되지 않으려면 필수적으로 고통이 수반될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의 가족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보다 세상을 아는 지식을 오늘 하루 얻지 않기를 바라야 합니다.
만약 새로운 지식을 하나 더 얻었다면 그 얻은 것 때문에 고통은 더욱 가중됩니다.
7,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 얼굴을 뵈오리로다.
From וְיָשָׁר yashar; straight (literally or figuratively) -- convenient(편리), equity(공평), Jasher, just(정직), meet(-est), + pleased well right(-eous), straight, (most) upright(-ly, -ness).
(우리 스스로 설수 없고 그리스도 이름을 힘입어 설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5:8에 예수께서 산상에서 제자들과 예수를 따르는 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요”
청결함이란? [καθαρός] katharós (a primitive word) – properly, "without admixture" (BAGD); what is separated (purged), hence "clean" (pure) because unmixed (without undesirable elements); (figuratively) spiritually clean because purged (purified by God), i.e. free from the contaminating (soiling) influences of sin.
라는 의미로 혼합되지 않은 ‘순수한’ 의미입니다.
마음에 오염되지 않음이란, 사람이 처음 지음을 받아 타락하지 않은 상태의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고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전무합니다. 거듭난 사람이라도 이 세상에 있는 날 동안에는 결코 하나님을 볼수 없습니다. 그러나 유일하게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자기 안에 하나님의 지식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이웃과,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의 지식을 하나라도 더 알아서 복음을 받아들이는데 방해가 되는 요소를 추가하기 전에, 속히 복음을 전하여 그 영혼에 진리의 말씀이 새겨지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보다 더 급한 일은 세상에 없습니다 .
우리는 이 일을 위해서 눈물을 뿌려 기도해야 하고, 목자 없는 양처럼 유리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들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하루를 보낼 때,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그 어떤 일보다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천하 만물들이 그 떨림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한다면, 마땅히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우리는 모든 생각과 행동, 언어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라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힌 영광된 삶이 되시기를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