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음 받은 자와 태어난 자.
제 딸이 결혼을 한지 3년이 지났습니다.
1년 쯤 되자 그들에게 가족이 하나 늘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조금도 틈을 주지 않으시고 새 사람을 하나 주셨는데 낳은 자입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내 손녀라는 사실에 문뜩 문뜩 충격을 받습니다.
천사!
맞아요. 천사를 만난 것입니다.
그가 우리에게 가져온 것은 행복과 기쁨입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사랑과 희망을 준 것입니다.
모든 좋은 것은 그 아이와 함께 온 것입니다.
보고싶고, 안아보고싶고, 만지고 싶고, 주고싶고,
무엇이든지 만족을 채워주고 싶은 아이입니다.
세상에 그 무엇이 이보다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또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습니다.
저는 하루종일 아니 한달 내내 집안 청소를 별로 못합니다.
마땅히 아내를 도와줘야 하는데 너무 게을러서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늘 미안하죠!
그런데 유은이가 생긴 이후로는 달라졌습니다.
어쩌다 유은이가 온다는 소식을 들으면 가장 먼저 집안부터 정리를 하게 됩니다.
물론 아이가 만지면 안되는 것들이나 혹은 아이를 위해서 주의할 것 또는 지저분한 환경에 접하게 하는 것을 싫으니까, 그럴 수 있겠다 싶지만 유별나게 신경을 쓰고 깨끗하게 하려고 합니다.
하루 중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할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손 씻는 일이 별로 없는데, 유은이가 오늘 날이면 수십번 손을 씻습니다. 혹시나 몸에서 할아버지 냄세나 나지 않을까 샤워도 부지런히 합니다.
이런일은 당연하지요!
건강을 위해서 마땅히 해야할 일이지만 마음은 그런 생각에서 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늘 조심하는 것입니다.
네 딸이 자랄 때는 이렇게하지 않았습니다.
있는 그대로 그냥 내가 하고싶은 대로 하고 그랬습니다.
그러나 손녀에게는 다릅니다.
왜 그럴까요?
그 숙제는 아무도 풀지 못한 사랑과 집착입니다.
아무튼 너무너무 사랑스럽고 이쁘고 좋습니다.
보기만 해도 행복합니다.
저는 성경을 보면서 늘 이런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자기 백성들을 사랑하시되 철저히 정해진 "선"의 규칙을 벗어나지 않으시고 원칙대로 사랑하십니다.하지만 이방인에게는 냉정하기 이를 대 없이 차갑게 대하신다고 늘 생각해 왔습니다.
다른 이들은 히브리인이나 헬라인이나 구별하지 않으시고 평등하게 대하신다고 하시지만, 실상 성경의 내용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백성과 이방인은 구별하시고 편애하십니다.
세상도 성경의 역사가 이스라엘 백성들 중심으로 기술되고 있기 때문에 편애하시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보내 직접적으로 말씀하시기를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말라기1:2), 에서를 미워하였으며(말1:3) 라고 하셨습니다.
야곱과 에서 뿐만 아니라 약속의 아들이 아닌 이스마엘에게도 아브라함의 가족에서 내어 쫓아버리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창21:10~12)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은 제한이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비난 받을 것을 감수하시면서도 엄격한 "선"의 원칙에 입각한 지독한 편애를 드러내십니다.
하나님은 편애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해하기에는 불공평한 일이지만 하나님은 이런 판단을 감수하실 수 밖에 없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부득이한 처사였고, 이 비난이 두려워서 완전하신 선의 원칙을 깨뜨리실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실 수 밖에 없는 원인은 지음을 받은 아담과 하와에게서 낳은 두아들 가인과 아벨을 통해 잘 드러납니다.
이 두 아들에게 나타난 구별의 표징은 "하나님을 아는 자"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입니다.
전자는 성령의 역사의 반응이 아주 잘 나타나는 반면 후자는 아무리 성령께서 역사하셔도 결코 성령의 조명대로 반응하지 않는 다른 구별이었습니다.
이들은 한 어머니의 태에서 태어난 사람이지만 성향이 완전히 비교되고, 달랐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종의 아들과 약속의 아들이라는 구별된 후손이 있는 반면, 이삭에게는 태안에 있을때부터 서로 구별되었고, 향후 이들이 자라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와 의지하지 않고 독립적인 자로 구별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직접 지은 사람이 아니라 지음을 받은 사람에게서 낳은 자들입니다.
이들에게 나타난 이런 결과들은 결국 하나님의 편애라는 판단을 가져왔고, 하나님께서는 이런 비난을 감수하시면서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선택받지 못한 이방인들을 사랑하지 않으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흐름은 선택을 받은자나 받지 못하는 사람이나 동일합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악인과 선인에게도 동일하게 내리고,
자연이 주는 모든 혜택들도 하나님의 아들들과 이방인들에게 동일하며,
한 울안에 있는 동류들에게 임하는 재앙과 축복도 모두 구별이 없이 임하며,
낮이나 밤이나 사람에게 비취는 햇빛과 달빛이 동일하게 주는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는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기 때문에 사랑또한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제한이 없습니다.
놀랍게도, 구원을 받는자나 받지 않는자나 한결같이 동일하게 사랑은 공급되고 있습니다.
제가 나의 손녀를 사랑하는 그 마음 같이,
하나님의 아들이 낳은 그 후손에게는 선택이나 유기를 마음에 두지 않고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친아들과 같이 동일하게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이런 하나님의 사랑에는 기쁨과 슬픔이 베어 있습니다.
당신께서 계획으로 말미암은 자손에게는 사랑에 기쁨이 베어 있지만,
계획되지 않은 자손에게는 슬픔이 베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이 계획된 자손, 곧 지음으로부터 예정된 자손에게서 얻는 마음은 기쁨이고 즐거움이지만,
계획되지 않은 자손에게서 얻는 마음은 감당할 수 없는 슬픔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한 것입니다.
그들이 죄를 범하지 않았다면 슬픔이 반사되지 않을 것인데,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모두에게 동일한 사랑을 베푸시고, 그들에게서 무한한 기쁨을 얻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