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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동순종 무엇이 문제인가? 1

생명있는 신앙 2021. 6. 7. 21:56

 

능동순종이란 무엇인가?

이 주제가 왜 문제가 될까?

시끄러운 주장으로 청교도와 장로교를 분리하고 청교도를 이단시하려는 홰개 망측한 주장들이 일어나고 있다.

예수께서 율법을 순종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율법을 순종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율법주의자들로 몰아부치려는 이상한 획책은 대꾸할 가치조차 없으나. 싸움을 좋아하는 호전적인 사람들에 의해 마치 기독교 신앙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의 주장은 도무지 말도 안되는 주장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능동순종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율법을 지켜야 의롭다함을 얻는다고 하지 않는다.

철저히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를 믿는다. 

또한 능동순종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일방적인 자기주장을 하지 않는다. 

지적이고 성경이 말하는 주장을 겸허이 받아들일 뿐이다. 

 

잘못된 믿음이 목소리를 높이며 길거리에서 떠들어대지만 실상은 그들의 믿음은 심각한 오류에서 비롯되었다.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믿을 수 있고, 자기 마음대로 성경을 해석을 할 수 있다. 

해석하는 사람을 해석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도 없다. 

그들이 주장하는 성경의 해석과 갖가지 주장들에 대해서 옳고 그른 것에 대꾸할 가치가 없다는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또한 그들의 온갖 모순덩어리를 이론들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것이 오히려 시간낭비에 불과하다.

그러나 대꾸해야만 하는 이유는 그들이 사람들엑 관심을 받으려고 집안의 기둥을 뽑아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칼빈주의 신앙과 청교도는 교회의 양대 산맥이며 두 기둥이다. 
개혁주의 신앙을 일컬어 칼빈주의라고한다면 청교도는 개혁적 경건이라고 불러야 한다. 
이들은 같으면서도 분명히 다른 형태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단들이야 드러나게 오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언급할 가치가 없지만 장로교에 속한 신자이며 성도들을 가르치는 목사가 자기의 터전의 기둥을 뽑아 집을 무너뜨리려하는데 어덯게 방치할 수 잇는가?

 

마지막때가 다 되었나 보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멀쩡하지 않은 정신에서 나오는 말을 서슴치 않고 쏟아내는가?

 

이성의 어두운 빛에서 진리를 캐내려는 무모한 짖은 결코 그리스도를 진리대로 볼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셨고, 형제들과 같이 되셔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공생애 동안 의를 이루셔야하는 의미를 알기나 할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함께 못박힌 좌우편의 강도처럼 동일한 죽음이지만 예수의 죽음은 하나님의 죽음이시고, 강도의 죽음은 죄인인 사람의 죽음이라고 해석하는 어리석음이 아닌가?

 

마침내 십자가로 완성시키셔야 하는 의미를 이해 하기나 할까?

예수는 하나님이시니가 율법을 행하실 필요가 없다?

 

어처구니 없어서 할말이 없지만 명백하게 말해서 ποιέω와 ἔργον 의 "행위":를 바르게 알아야 할 것이다. 

영어로는 To do 와 Work 이다.

이를 뒤에 율법을 붙이면 의미가 명확하게 다가온다.

ἐξ ἔργων νόμου (롬3:20),  ἀλλ’ οἱ ποιηταὶ νόμου(롬2:13) 는 둘다 "율법의 행위"이지만 의미의 적용에서 완전히 상반돤 개념으로 언급되었다.  전자는 부정적 의미로 의를 얻지 못하고, 후자는 긍정적 의미로 의를 얻는 행위이다.  부정적 의미에서 율법의 행위는 모세오경의 문자적 의미를, 도덕적 계명, 613가지의 사람의 계명, 도덕적 의미에서 선행을 의미하며 행위의 주체가 사람의 육체를 의미하는 반면, 긍정적 의미로는 간단하게 포괄적인 사랑의 의미를 내포하며 행위의 주체가 사람의 육체가 아니라 율법 그 자체임을 의미한다. 이는 바울뿐만 아니라 야고보 사도도 이를 구별하여 표현하고 있다.  

죄에 빠져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율법을 행할 수 없다. 자기안에 율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행해야하는 대상으로 보고 자기가 판단하려고 든다. 즉 사물을 보고 이해하듯이 율법을 자기의 내면에 있는 지식으로 해석하고 판단하여 자기의 행위 기준을 가진다. 즉 이 말씀은 이렇게 하라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  Works 의 의미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다르다.  예수의 지성에는 이미 율법이 있다. 본래 율법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왔기때문에 의식이 율법 자체이며 생각하고 판단하는 모든 행위의 기준이 율법 자체이다. 

타락한 사람과 예수님을 비교해 봤을때 의식의 주체가 율법이나 사람의 자연 본성이냐에 따라 사용하는 단어가 다르게 적용된 것이다.

사람이 율법을 들을때 성령께서 조명하셔서 지성에 새겨 주셔야 한다. (겔36:26, 11:19) 그렇지 않고서 사람은 자기 능력으로 든 혹은 어떤 상태에서든지 스스로 율법을 행할 수 없다.  하지만 예수그리스도는 율법을 가지고 계시고, 타락한 세상에서 사람과 같이 되셨으니(히2:17,4:15;) 율법으로 의식을 가지시고 행동하시게 된다. 

만약 율법에 의한 행위를 하시지 않으신다면 본질상 하나님으로 사셨을 뿐만 아니라, 아담의 타락의 보편성을 부인하는 결과를 말하게 될 수 밖에 없다.   

바울은 이를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자기들의 지식으로 성경을 해석하려는 오류를 범해왔고, 자기들의 오류를 바르게 알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그들의 믿음은 하나님과 소통되는 믿음이 아니라 일방적인 자기들의 생각에서 나오는 믿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