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교도회심준비론

2, 개혁파 스콜라적 회심준비론

생명있는 신앙 2025. 2. 18. 06:41

2, 개혁파 스콜라적 회심준비론

 

헨리 8세의 수장령 선언 후 잉글랜드 교회는 로마 카톨릭으로부터 독립하고 개혁이 본격화되자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사상 받아들여 전통적인 스콜라철학과, 인문주의 사상으로 해석하여 교회를 개혁을 전개하였다. 당시의 사회는 유럽전체를 휩쓸고 지나간 흑사병으로 인해 인구 1/3 감소되었고, 도시에서는 양모의 산업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농촌혁명으로 불릴만한 인클로져 운동(Enclose Movement)이 일어나 카톨릭 교회의 윤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봉건적 공동체 농업 체제가 붕괴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이주해야 했고 중산층 이하 농민들과 저소득 도시민들은 자신들도 의식하지 못한 체 자연스럽게 종교 개혁사상이 가져온 자본주의 체계로 흡수되어, 각 개인의 신앙이 카톨릭의 권위에서 이탈되는 현상을 가져왔다. 교회는 윌리엄 틴데일(William Tyndale 1526)의 영어 성경 바탕으로 번역한 그레이트 바이블(Great Bible, 1539)을 공식적으로 베포하여 사제가 라틴어로 읽어주는 성경을 들을 수 밖에 없었던 하나님의 말씀을 누구나 보고 읽고 듣을 수 있게 되자 직접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경험이 일어났을 뿐만 아니라, 영어 성경 번역이 단순한 언어적 번역 작업을 넘어, 교회의 본질을 재정의하는 혁신이 일어난 것이다. 1560년경 제네바 성경(Geneva Bible)이 유입되고 모든 번역서가 로마 가톨릭 교회의 계급적, 조직적 특성을 내포하는 라틴어 “ecclesia”를 단순히 교회 church”보다는 때로 회중 congregation”으로 번역함으로써, 성경을 직접 읽고 해석할 수 있는 신자들에게 교회의 개념을 성직자나 특정 제도에 의존하지 않고, 보다 민주적이고 회중이 중심이 된 독립교회를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로서 잉글랜드는 전통적 스콜라철학과 인문주의의 사상으로 종교개혁사상을 해석하여 정치적 형태에 따라 자생적 개혁교회로서 국교도와 장로교, 독립교회(회중파))로 나타났는데 이것이 개혁파 스콜라주의의 시작이 되었다.

 

1) 개혁파 스콜라주의

종교 개혁이후 개혁파는 칼빈(Jean Calvin, 1509-1564)의 제네바 교회를 모델로 한다. 제네바 교회의 개혁은 국가와 사회 전체의 정치, 경제, 문화에까지 인류의 환경을 총 망라한 조직적인 개혁으로 유럽 전역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전 유럽은 헬라 철학의 기반인 플라톤사상과 기독교 신앙이 결합된 교부철학의 영향을 받았고, 스콜라철학이 논리학과 변증법을 활용하여 신학적 사유를 체계화하였다. 이를 통해 교회는 학문과 사회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중세 유럽에서 지적·사상적 중심 역할을 하였다. 이것은 전통적 관습처럼 사람의 마음에 적용 되어져 있었고, 모든 권위를 쥐고 있는 교회가 이것들을 무기로 성경으로 하여금 아무런 권위를 드러내지 못하게 했다. 교회 개혁은 교회 안에 깊숙이 뿌리내린 세속적 철학을 벗어던지고 성경만이 모든 권위를 갖게 하며 성경에 기반한 사회를 조직적으로 재건하는 일이었다. 제네바 교회는 어두움 속에 갇혀 있는 성경으로 빛을 높이 치켜들고, 역동적인 하나님 말씀이 사람의 영혼으로부터 빛을 발하여 도시 전체를 환하게 밝혔다. 제네바 교회는 유럽의 나라들과 교회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는 모델이되었고 유럽 세계로 확산되어 나갔다. 제네바교회 개혁 사상이 발을 닺는 곳마다 사람들의 마음을 일깨워지고 사회와 정치까지 개혁을 향한 욕망이 솟구쳐 그 여파가 경제에 이르기까지 변화를 일으켰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입고 있는 전통과 영혼 깊은 곳에 자리를 틀어잡은 사상들은 개혁 사상을 순수하게 가감없이 수용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당시 온 세상을 휩쓸고 있는 인문주의와 교회의 권위, 자연법을 강조하며 신앙과 이성을 조화시키려는 형식인 전통적인 카톨릭 스콜라주의가 제네바 개혁사상을 해석하고, 이성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성경의 절대적 권위와 예정론, 하나님의 주권, 신앙의 중심성을 강조하며, 각각의 상황에 따라 적절한 새로운 개혁 교회의 양태를 잉글랜드 중심으로 강하게 나타났다. 이것이 개혁파 스콜라주의(개혁파 정통주의) 토대이다.

 

2) 잉글랜드의 개혁파 스콜라주의

잉글랜드는 교회 독립과 개혁이 본격화 하면서, 1546년에 옥스퍼드 대학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Christ Church College)케임브리지 대학에는 트리니티 칼리지”(Trinity College)를 세워 루터와 쯔빙글리, 칼빈의 개혁사상을 받아들이고 수장령에 적합한 신학을 연구하여 성직자를 양성하게 했다. 1584년에 케임브리지 대학교 안에 청교도인 월터 밀드메이 경이 청교도 설교자를 양성하기 위하여 임마누엘 칼리지(Emmanuel College)를 설립하고,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배출된 로랜스 채드턴(Lawrence Chaderton. 15361640)”을 초대 총장으로 한후 40년간 봉직하며 청교도 신학자들을 양성했다.

 

(1) 케임브리지(Cambridge University)의 청교도 운동

16세기 케임브리지는 논리학과 철학 중심의 스콜라적 학문 전통이 독특하게 혼합된 곳으로 중세 대학의 전통을 유지하면서, 종교개혁의 신학적 흐름을 학문적 훈련의 기초로 하였다. 이는 논증적이고 체계적인 사고를 장려했으며, 복잡한 신학적 주제를 분석하는 데 유용했다. 예컨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Organon)과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적 체계는 여전히 개혁 신학 연구에 적용했다. 대학 내에서 개혁주의(Reformed) 전통을 따르는 장로교파 신학자들에 의해 주요 신학적 방향이 설정되어 칼빈주의 신학과 장로교 정치체제를 강조한 신학자들이 많이 배출되었지만, 교회 정치와 교리의 자유로운 변형을 주장하고, 교회 독립과 자율성을 강조하는 회중파 신학자와 목회자들도 배출했다. 회중파들은 국교회와 장로교 체제에 반대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학교 내에서 신학적 논쟁을 벌였고, 그 결과로 회중파의 신학적 독립성이 더욱 강해졌다.

케임브리지에서 배출된 신학자들로는 캔터베리 대 주교인 토마스 크랜머(14891556), 독일 스트라스 부르크 종교 개혁자이면서 토마스 크래머의 초청으로 캐임 브리지 레기우스 신학교수가 된 마틴 부처(Martin Bucer, 14911551 칼빈에게 영향을 줌), 국교회 감독제를 반대하며 장로교적 교회정치 주장한 토머스 카트라이트(Thomas Cartwright, 1535~1603), 국교도로서 온건한 청교도이며 임마누엘 칼리지 총장이 된 로랜스 채드턴(Lawrence Chaderton, 15361640), Golden chain의 저자이며 국교도로서 온건한 청교도 아버지라고 불리는 월리엄 퍼킨스(William Perkins,1558~1602), 리처드 십스(Richard Sibbes 1577~1635), 회심론을 발전시키고 경건주의 강조 존 프레스톤(John Preston, 1587-1628) 등이며, 특별히 스콜라 철학의 전통을 폐기하지 않고, 개혁 신학과 결합하여 성경 중심적 신학을 체계화하고 목회적으로 적용하려는 독창적인 개혁파 스콜라를 추구했다.

 

(2) 옥스퍼드(Oxford University)의 청교도 운동

옥스퍼드는 케임브리지보다 더 보수적인 학문적 전통을 유지하여, 중세 스콜라와 에라 스무스의 인문주의의 영향을 받은 성경 원어 연구와 르네상스적 사고방식이 점차 확산 되고 있었다. 1520년대 이후 루터와 쯔빙글리, 칼빈의 종교개혁사상이 유입되면서, 개혁 신학과 전통 신학이 충돌하기 시작했다. 1534년 수장령 이후 수도원이 해산되고 개신교 신학이 점진적으로 유입되면서 카톨릭 신학 약화로 교황 주의적 요소가 제거되자, 국왕 중심의 교회론이 강조되어야 했다. 에드워드 6세 시기 급격하게 칼빈주의적 개혁신학을 받아들이게 되자 1548피터 마터 베르미글리(Peter Martyr Vermigli, 14991562.이탈리아)’와 같은 외국 개혁 신학자의 유입하여 성경원어 연구와 개혁파 교리의 신학적 기반을 강화했다. 메리 1(1553~1558)동안 개혁신학을 억압하고 카톨릭으로 복원하기 위해서 1555년에 토마스 크랜머, 라티머, 리들리 등이 화형에 처하자 다시 카톨릭적 신학교육이 강화되었으나, 메리 1세의 사망 후 엘리자베스 1세의 통치로 인하여 리쳐드 후커(Richard Hooker, 1554~1600)”의 개혁파 신학과 카톨릭적 전통사이를 절충하는 성공회 중심의 교회정치론(Law of Ecclesiatical Polity)으로 성경적 권위와 교회의 전통과 이성의 조화를 강조하는 전형적인 개혁파 스콜라적 신학이 정립되어 성공회 신학적 기초가 확립 되었다. 옥스퍼드는 국교회 내의 개혁적인 분파로 회중파 신학이 활발하게 발전한 곳으로, 당시 청교도 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신학자들이 많았으며, 성공회의 종교적 권위와 제도적 장로교 체제에 반대하며 독립적인 신학적 입장을 취하고 1658년 사보이 선언의 대부분을 구성했다.

그 인물들은 루터와 칼빈을 연구하여 영국 교회의 개혁적 방향의 기초를 놓음 토머스 스미스(Thomas Smith, 15131577) , 카톨릭의 반대 논리를 세운 존 제웰(John Jewel, 15221571), 크랜머의 개혁을 지지하며 공동 기도서 작성에 참여 리처드 콕스(Richard Cox, 15001581), 퀸스 칼리지(Queen’s College)에서 고전 언어, 철학, 신학을 공부하며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라틴어 학문 전통을 배운 존 오웬(John Owen, 16161683), 오웬과 함께 사보이 선언을 이끈 신학자들로, 토마스 굳윈(Thomas Goodwin, 1600-1680), 웨스트민스터 총회 독립파로 참여한 3인으로 필립 나이(Philip Nye, 1595-1672), 월리엄 브리지(William Bridge, 1600-1670), 윌리엄 그린힐(William Greenhill, 1591-1671), 사보이선언문 작성자 조지프 카릴(Joseph Caryl, 1602-1673), 모두 잉글랜드 청교도 독립파(회중파)의 지도자들이었고 크롬웰이 이끌던 공화국 체제에서 장로교와 국교회(성공회)에 반대했던 인물들이었다.

 

(3) 임마누엘 칼리지(Emmanuel College, Cambridge) 의 청교도 운동

임마누엘 칼리지(Emmanuel College)는 케임브리지 대학교 안에 있는 부속 대학교로 1584년에 청교도인 월터 밀드메이 경에 의해 청교도적 설교자를 양성하기 위하여 설립되어, 로랜스 채드턴(Lawrence Chaderton.15361640)을 초대 총장으로 스콜라 철학(Scholasticism)과 더불어 인문주의(Humanism) 요소를 결합한 교육 방식을 채택하였다. 이곳은 장로교파 신학자들이 많이 활동했던 장소였으며, 특히 칼빈주의 신학과 장로교 정치 체제를 지지하는 신학자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 와중에 임마누엘 칼리지에서도 회중파 신학자들이 존재했지만, 장로교파 신학의 영향을 받은 교수들이 더 많이 배출되었고, 이들은 장로교 정치 체제와 교회 내 장로들의 역할을 강조하며, 교회의 조직과 규율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려는 신학적 경향을 보였다. 개혁주의 신학(Reformed Theology)을 기반으로, 칼빈주의 교리를 체계적으로 가르치며,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 등 성경 원어 교육을 강조하며, 성경 본문에 대한 깊은 이해를 추구하고, 성경 해석학(Hermeneutics)과 주해(Exegesis)에 중점을 두고, 청교도 정신과 학문적 엄격함을 중시한 학교로, 영국 개신교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임마누엘 칼리지는 단순히 학문적 성취를 넘어, 영국과 신대륙의 종교 및 사회 변혁에 큰 기여를 한 인물들을 배출하여 영국 청교도 운동미국 청교도 정착에 중요한 기반을 제공하고, 종교개혁 정신을 실현하며, 신대륙에서 정치적, 사회적, 교육적 발전에 중대한 역할을 한 대부분 청교도들로 신앙 경험으로서 회심을 강조하는 회중파들이다.

미국 민주주의와 자치 정부의 기초를 닦은 토머스 후커(Thomas Hooker, 15861647), 하버드 대학교(Harvard University)의 설립자 존 하버드(John Harvard, 16071638), 미국 코네티컷주 하트퍼드(Hartford) 설립에 기여한 목회자이며, 종교적 자유와 교회 자치의 원칙을 지지 새뮤얼 스톤(Samuel Stone, 16021663), 매사추세츠주 콩코드(Concord) 설립에 중요한 역할을 한 피터 벌클리(Peter Bulkeley, 15831659) 목사, 모두가 임마누엘 출신의 회중파이며, 네덜란드로 이주한 회중파 청교도로 메이플라워호(Pilgrims)의 리더 중 한 명이자, 플리머스 식민지의 총독 윌리엄 브래드포드(William Bradford, 15901657)등이다.

이와같이 잉글랜드에 밀려오는 종교개혁 사상을 자기 사상적 기반 위에서 정제하여 수용하여 개혁파 스콜라주의를 낳았고 그것으로 회중파 청교도와 스코틀랜드 청교도 장로교와 구별된 독자적인 청교도 장로교를 낳았다. (다음호 3, 성경적 회심 준비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