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연구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롬2:6~8)

생명있는 신앙 2013. 4. 2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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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로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2:6~8)

 

이제 사람은 자기가 행한 것이 진리에 의한 행위인지 거짓 행위인지 스스로 충분히 판단할 수 있습니다. 자기 안에 복음에 대한 감각이 없으면 진리의 행위를 결코 할 수 없고 자기지식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하나님에 관한 아무런 이해를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사도는 이제 당당히 사람들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사람이 행위는 무엇으로 비롯되는가? 

감각적인가?

아니면 의지적인가?

이를 구별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사람과 야수와의 중간 정도의 사람일 것입니다. 

감각적이라고 하면 그는 동물과 같은 존재이고 의지적이라고 하면 의지가 어떻게 일어나는가?에 대해서 궁금해 하지 않을 수없습니다. 여기에서는 사람의 행위에 대해서 살펴 보도록 하겟습니다. 

 

사람이 행동을 한다는 것은 어떤 기전으로 말미암은가? 

앞에서 많이 언급해 왔습니다. 그것은 영혼의 지성에서 생성된 지식이 감성에서 지각을 갖고 그 다음으로 지각된 지식을 의지로 보내어지면 그 지식대로 행동을 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지식을 의지에서 행동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사람의 영혼은 좋은 지식이든지 나쁜 지식이든지 인식하기 위해서 객관적으로 감각한 모든 것에 대해서 지식을 생성합니다. 그래서 다툼을 일으키는 사람에 대해서 감각을 가지면 그에 대한 지식을 생성하여 지각하고, 나쁜 행동을 감각하면 나븐 행동에 대한 지식을 생성하고, 그 지식을 의지에 반영하여 객체의 행위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식이 생성하는 대로 의지가 행위를 드러내게 되면 사람은 객체에로부터 감각을 가진 대로 행동을 하게 될 것이지 때문에 나쁜것을 보고 접한 사람은 그 나쁜 행동을 따라하는 사람이 되어 결국은 온세상이 나쁜 사람이 넘처나고 결국은 피조 세계는 파멸하고 말것입니다. 그래서 의지에서는 자기의 영혼의 지성에서 자기가 인식할 수 있는 지식을 생성하면 그지식에 대해서 행동으로 옮길 것인지 옮기지 않을 것인지 판단합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에 죄를 행하려고 대기하는 가인에게 죄를 다스리라고 말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행위에 대해서 분명하게 성경이 말하는 것은 지성에서 생성된 지식이 지각되고 마음에 반영되면 마음에서는 어느 지식대로 행할 것인지 판단하여 행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 판단은 행위에 대한 선택적 작용을 말하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사실은 전혀 선택적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영혼에서 생성되는 그 지식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사람의 행위의 선악을 구분하는 것이지, 마음에 반영된 지식을 선별하여 어떤 지식대로 행할 것인지 판단하여 선한 행위를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근본적으로 타락한 사람의 영혼에서는 선을 행할 지식을 내지 못합니다. 모든 지식이 무지와 결함을 함의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왜곡되어 있고 그 지식이 죄의 본질뿐입니다. 결국 우리가 보기에 선한 것처럼 여겨지는 행위도 곧 죄이고, 정직하게 행동하는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죄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판단이 선악을 가름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 오직 선한 지식을 생성하도록 해주는 지식이 진리어야 선한 것이비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객관적 객체를 복음으로 조명해서 자기지식을 생성하여 가짐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진리입니다. 이 진리에서는 최초 사람에게 주어졌던 하나님의 형상에 있는 본유 지식처럼 우리가 알고자 하는 모든 것이 조명해 줄 것입니다. 그래서 실지로 우리의 영혼에서 일어나는 지성의 작용에 관하여 느낄 수 없으나 의식되는 감각으로 사도의 말씀을 복음으로 조명 해 보면 사람이 겉으로 드러내는 행위에 대해서 말하는 것 보다 앞서서 사람의 영혼 안에서 일어나는 지성의 작용을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복음은 사람의 행위에 따라 받게될 하나님의 판단에 대해서 말하지만 실지로 복음이 조명하는 것은 사람의 모든 행위에 대해서 그리스도께서 죽으셔야 한다는 것을 조명함으로 수 없이 많은 하나님의 지식들을 사도의 말씀에 조명해주고 있습니다. 결국 사도가 행한대로 보응하신다고 한 이 말씀에 대해서 사람의 마음의 판단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선명하게 두가지에 대해서 말씀하는 것을 주명해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영생을 언급하시고, 다음으로 노와 분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선과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추구하는 이런 사람의 지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십시요. 이들은 복음을 아는 사람이며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만이 가진 지식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를 쫓지 않고 불의를 쫓는 다는 것은 그의 영혼에 진리의 지식으로 조명을 받지 않았다는 분명한 증거들을 언급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두 사람을 뚜렸이 구분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과 하나니을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 구분되고, 하나님을 아는 사람에게는 영생으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신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행한대로 보응하시되" 라고 한 것은, 행위가 그 사람의 최종 판단의 기준이기 때문에 행한대로라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행위는 그 사람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드러내 주는 표준이 되고, 진리가 있으면 진리를 행하고, 거짓이 있으면 거짓을 행합니다(요8:44).

모든 사람은 자기 의식이 있어 최소한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심어 놓으신 자신을 판단하는 양심으로 타락된 세상이 최대한 보존되게 하는 은총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행한 행위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자기의 행의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을 것이라는 판단을 스스로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행위를 제어할 수 있는 판단 능력도 양심에 의해 가지고 있지만 이런 제어능력은 최대한의 능력이지 실지로 모든 사람이 이런 자기제어 능력으로 행동을 절제하거나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나타나셔서 가인의 마음에 죄가 있음을 경고하여 주시면서 죄를 다스리라고 충고하셨으나 가인은 이런 충고를 무시하고 마음에서 대기하고 있는 죄의 행동으로 동생 아벨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사람의 마음에 거하셔서 사람의 행위에 대해 경고하시므로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자기의 행동을 억제할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래는 사람의 지성에서 쏟아져 나오는 모든 지식은 무지와 결함으로 말미암아 왜곡된 지식으로 죄의 본질들 뿐이지만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거하셔서 지성에서 생성된 지식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억제하도록 하시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중에 사람의 마음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행위는 사람으로 하여금 죄의 행위에 대한 억제하심인데 이를 무시하고 아무런 판단도 하지 않고 행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하나님의 심판은 결코 부당한 것이 아니고, 사람이 마음을 기울여 자기의 행위를 살펴 보면서 죄에 대한 각성을 가지기만 해도 이 세상에 죄를 덜 드러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아주 가까이 계시되 마음에 거하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선을 행하는 사람에게 상을 주시며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 벌을 주시는 분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복있는 사람들과 같이 주야로 성경의 말씀을 묵상하여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의 영혼에 밝게 비춰지도록 우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아멘 

 

2013, 0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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