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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롬3:13) 2,

생명있는 신앙 2013. 10. 9. 05:00

우리는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을 찾지도 않았습니다.

말대로 의인이라고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깨닫거나 하나님을 찾지 않은 사람은 사람의 영혼에 지식을 가지지 못한 사람입니다.

여기에서 지식은 사람의 육체가 감각을 가지면 그것을 자연적으로 조명하여 지식을 가질 수 있도록 비춰주는 거울 같은 지식을 말합니다. 이 지식은 사람이 스스로 생성한 지식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지식이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를 본유지식이라고 했었습니다.

이 지식이 없이는 사람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식으로 감각한 객체에 대한 지식을 가져야 하는데, 이미 가지고 있는 지식은 지극히 제한된 타락 전에 가졌던 소수의 지식뿐이었기 때문에 이 지식으로 객체를 조명하여 지식을 생성하려고 하니 이미 가진 지식과 객체가 서로 같을 수 없으므로 다른 부분에 대한 무지와 결함을 함의한 지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무지와 결함은 사람이 지각을 가질 때 다양하고 많은 부정적인 반응의 근원이 되게 하는데 사람의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판단의 왜곡과 거짓, 혼란스러움 등의 지각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사람이 완전한 지식을 가진다면 결코 두려움이 지각되는 일은 없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찾지도 않았다는 말의 의미를 통해서 사람에게 나타난 반응을 살펴보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에 관한 지식에 관하여 성경은 최초 사람 가인을 통해 분명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가인이라는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인류의 최초 사람 아담과 하와가 낳은 아들입니다.

불행하게도 최초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서로 동침하여 잉태하였는데 첫 사람 가인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아벨을 낳았는데 이들이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난 후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는데, 하나님께서 동생 아벨의 제사는 받아주셨으나 가인의 제사는 받아주시지 않았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왜 이들의 제사를 구별하셨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께 대하는 사람의 행위를 살펴보아야만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거부를 봅니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하는 것이 가장 잘 이해되는 설명이 될까요?

하나님의 성품은 선이시고 선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행위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거부 행위를 한 것은 사랑이라기보다는 냉정하고 정확한 공의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에 거부가 있다면 그것은 선이 아니라 오히려 냉정하고 정확한 심판만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모든 행위가 선이라는 주장이 무의미해집니다. 하나님께는 선에 속하지 않은 행위도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비록 악은 아니고 정의로운 행위이지만 선은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면 참으로 하나님께는 선이 아닌 행위를 하시는가?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행위에 대해서 확인해야 할 중요한 판단객체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행위에서 선과 정의, 공의라고 판단하는 객체가 누구인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입니다.

어떤 행위에 대해서는 선이라고 하고, 다른 행위에 대해서는 심판이라고 말합니다.

또 다른 진노, 공의가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행위를 이런 저런 이름으로 구별하여 나누어 판단합니다.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사를 받으시는 것은 하나님의 판단에 의한 행위로서, 받지 않았다는 것은 공의에 근거한 행위로서 선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선이 아니기 때문에 악이라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가인의 제사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행위에는 선이 아닌 다른 행위도 있는 것입니다.

정말 그런가?

이처럼 생각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저는 단호히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행위는 선을 근거로 한 행위입니다. 이 행위를 원칙으로 다른 행위들이나 판단이 드러나는데 그것은 모든 피조물인 객체들의 행위가 하나님의 선의 조명에 의해 드러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의는 하나님의 행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는 선을 제외한 어떠한 행위도 드러내시지 않습니다. 선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행위는 오직 사랑뿐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행위가 하나님의 선에 비추어진 결과에 따라 선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의해 무한한 사랑을 주시지만 그것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선하심과 같이 사람도 선하게 지으셨으나, 그것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이 공의와 정의, 혹은 진노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선과 사랑은 그 어떤 세력의 힘보다 강합니다.

사람이 개발한 어떤 강한 파괴력보다 더 강한 힘입니다.

하나님의 선이 사람의 행위를 조명하면 사람에게는 선으로부터 스스로 진노로 인한 두려움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이 사람의 무질서와 부조화를 깨뜨리기 때문에 진노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큰 사랑은 사람에게 있어서 더 큰 심판이 됩니다. 바로 이렇게 나타난 결과적인 현상들이 하나님의 진노로 혹은 공의로 드러나 보이는 것입니다.

결국 가인의 제사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더 큰 사랑이 가인에게 다가가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아들들에게 비춰진 사랑 이상으로 가인에게 드러내신 것이 분명합니다. 그것은 가인이라는 존재의 특성이 더 큰 사랑을 하시게 했을지 모릅니다. 가인의 존재의 특성은 하나님의 창조 계획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사람이 죄를 범하고 정욕을 일으켜 태어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