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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 아래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롬3:19) 4.

생명있는 신앙 2013. 10. 31.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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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는 율법이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율법은 예수께 대하여는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면서 인성으로는 영혼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었고, 형상 안에 있는 본유지식의 조명으로 지식을 생성하여 인식하시기 때문에 예수께서 가지신 모든 지식은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지식만 가집니다.

반면에 우리의 영혼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없으므로 본유지식의 조명을 받지 못합니다. 이로 인하여 우리의 지성은 이미 가진 부족하고 결함이 많은 지식으로 조명하여 지식을 가지기 때문에 모든 지식들은 율법과 젼혀 관계가 없고, 율법에 대해서 무지할 뿐만 아니라 율법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할 뿐입니다.

그러나 본래 처음 지음을 받은 때부터 타락하기 까지 본유지식의 조명으로 지식을 생성하였기 때문에 이때 생성한 지식들에는 율법의 향기가 세미하게 남아있습니다. 이것이 사람으로 하여금 선악을 구별 하게 하는 양심이 되고, 선에 대한 감각을 가지게 하지만 그것이 사람을 좌우하게 움직일 만한 구체적인 지식이 아닙니다.

율법은 바로 처음부터 사람의 영혼에 주어진 본유지식에 있었던 것으로 사람들이 점차적으로 자기지식을 생성하는 과정에서 자기 영혼의 지성에 온전한 지식을 가질 때 율법도 함께 가질 수 있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영혼에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형상이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은 완전한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지식을 가지고 사람으로 살도록 지식을 조명해주는 역할만 하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한바와 같이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의 지식을 그대로 사용하여 산다면 그 사람은 자기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이시면서 인성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신성이 있으실 뿐만 아니라 인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신성으로 살지 않으시고 인성으로 사셔셔 완전한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의 삶 곧 창조 때 지음을 받은 아담과 같은 삶을 사셨습니다. 그것은 육체로는 피조물이 되셨고, 영혼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으셔서 그 형상의 조명으로 사신 것입니다. 이것이 완전한 사람으로서 인자의 아들이시고, 사람의 아들이 되신 것입니다.

사람은 지음을 받은 상태에서 자기스스로 지식을 생성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피조물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지식을 생성하기 위해서는 지식이 주어져야만 합니다. 만약 이지식이 하나님의 지식이면 사람이 하나님의 삶을 살게 되고, 사람의 지식이면 사람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사람의 지식이 주어져야 하는데 사람의 지식은 본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지식을 하나님의 형상에 담아 사람에게 주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본유지식입니다.

이 본유지식의 조명에 의해 사람은 자기지식을 생성할 수 있고 이 생성된 지식으로 생각하고 활동하고 할 때 비로써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처음 지음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들에게는 율법이 그들의 영혼에서 자기지식으로 생성할 수 없으므로 하나님의 형상에 있는 본유지식이 지성에 조명하여 율법에 대한 지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율법이 아무렇게나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조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육체의 오감에 의해 감각하고 그 감각한 객체에 대한 지식의 조명을 본유지식으로부터 받을 때 자기지식을 생성함으로 율법에 대한 지식은 사람이 살면서 점차적으로 지식을 가지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성하여 가진 율법은 사람의 영혼에 있어서 사람으로 선에 이르도록 하였으나, 타락으로 말미암아 아직 율법의 지식을 가지지 못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해버리게 됨으로, 율법을 포함한 모든 지식을 함께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이로써 사람은 무질서하고 부조화된 삶을 살 수 밖에 없었고 자기의 양심에 따른 선악의 판단에 따라 행하게 되었습니다.

타락한 상태의 사람이 온전케 되기 위해 영혼의 지성에 율법에 관한 자기지식을 갖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사람으로 하여금 온전한 삶을 살도록 율법을 다시 일러주심으로 율법이 구체적으로 사람에게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율법을 읽을 때, 영혼의 지성에 반영되고, 하나님의 성령께서 지성에 있는 그 율법을 조명하여 주시므로 사람으로 하여금 조명 받은 율법에 대한 자기지식을 생성하여 가지게 합니다. 사람은 자기 안에 율법에 대한 자기지식을 생성되면 그 율법대로 살 수 있게 되는데 이렇게 되는 것이 사람이 온전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이 율법을 잃어버리고 무질서하고 혼란스럽게 사는 것을 불쌍히 여기시고 영혼에 가질 수 없는 율법을 직접 음성으로 들려주셨고, 이를 성문화하여 읽을 수 있도록 모든 사람의 위에 두신 것입니다.

그러나 실지로 이 율법은 하나님의 아들들 곧 이스라엘에게만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죄를 범하고 정욕을 일으켜 낳은 이방인들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버림을 받은 사람들일 수 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들은 하나님의 관심 밖에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방인으로 출생되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불행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완전한 불행 속에 태어난 비참한 존재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계획에 의하면 이방인은 태어나도 되거나 안 태어나도 무방한 존재들입니다.

이들은 순전히 하나님의 아들들이 질서를 어기고 죄로 말미암아 정욕을 일으켰기 때문에 잉태 되었고 사람으로 낳아졌을 뿐입니다.

이 사실에 대해서 이방인들은 하나님께 있어서 관심 밖의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하나님의 아들들인 이스라엘이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방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그 영혼이 하나님의 원수로 태어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심겨지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심겨질 수도 없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이방인이 자기들이 정욕을 일으켜 태어난 비참한 존재라는 사실을 통감하고 책임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이 땅의 인류를 불행하게 한 근본적인 불순종의 죄에 대한 책임을 왜면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그들의 정욕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창조세계는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고 미움과 분노와 원망 살인 시기, 그리고 온갖 악행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

우리가 여기까지 성경을 상고해볼 때 이 이름만 들어도 영광스런 사람으로 분류된 축복을 받은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행위가 비참한 우리를 낳았고,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더럽히는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그들의 추악하고 더러운 삶을 밝혀 영광스런 하나님의 작정에 의한 아들들임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정죄하여 하나님의 아들들의 더러운 모습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율법으로는 하나님앞에 온전한 사람이 한사람도 없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롬3:10)

오늘날!

누가 하나님의 아들들입니까?

하나님께서 참 하나님의 아들들을 정말로 버리셨습니까?

사도는 분명히 말합니다.

이방인의 수가 차기까지 이스라엘이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11:25)”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들인 이스라엘을 버리신 것이 너무도 분명합니다.

이방인의 수가 차기까지,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고 외인처럼 대우되었습니다.

그로인하여 그들이 정욕으로 낳은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기회가 왔고, 바로 저와 여러분들이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아들로 양자 된 것입니다.

언젠가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구원을 회복할 날이 올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고 자기들의 죄를 철저히 고백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입니다.

이 복음이 그들에게 들어갈 날이 옵니다.

그리고 그들의 대대적인 구원이 이방인인 우리 형제들의 구원의 막이 내려질 것입니다.

그날은 다가오고 있고, 이스라엘은 점차 하나님 앞에 돌아오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할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그들이 두터운 세마포를 벗어던지고 그동안 생명처럼 유지해온 성문 율법을 자기들의 영혼의 지성에 새겨 그 율법대로 사는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후예들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이방인들을 향하여 자기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추하고 더러운 정욕에 매여 이방인들을 낳은 것에 대해 회개하고 용서를 구할 것입니다.

그리고 화해를 청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내어주셔서 이방인의 손으로 죽게 하시고 화목하신 것처럼 화목하게 될 날이 곧 이르게 됩니다.

 

정말로 이 지식은 이방인인 우리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도 섬뜻하고 무서우며, 하나님의 사랑의 입장에서 볼 때 도무지 이해되지 않은 지식이지만, 이 지식을 온전히 깨우치지 않고서는 결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율법 아래 속한 사람들이고 이방인들은 율법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그 안에 있는 본유지식은 본래 선하고 완전하게 지음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들의 몫이었습니다. 정욕의 결과로 말미암아 태어난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형상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존재한 사람들은 두 부류의 사람이 존재합니다.

한 부류는 하나님의 아들들이고, 다른 한 부류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정욕을 일으켜 낳은 하나님의 허락에 의해 존재하게 된 그야 말로 이방인입니다

이를 일컬어 신학적으로는 선택 자와 유기 자들로 구별하지만 실지로 선택 자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포함하여 모든 이방인들 가운데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의미하고, 유기 자들은 곧 이방인의 구원이 시작될 때 버림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들도 포함되는 것으로 광의적 의미의 교리인 반면, 하나님의 아들들을 일컬어 작정에 속한 자들이라고 하고, 이방인을 일컬어 허락에 의한 사람들이라고 말함으로 작정과 허락을 말하며 이 교리를 협의적 의미라고 합니다 .

그러면 이제 율법아래 있는 자들이 누구인지 여러분은 알 것입니다 .

이방인들은 율법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관심 밖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아들들을 대신해서 언제나 이방인들과 화목하시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그들의 영혼에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지식이 없으므로 하나님에 대해서 화목하려는 의지를 가질 수 없었고, 하나님에 대해서도 인식을 가질 수 없었으므로 하나님에 대해 무지한 상태여서 하나님의 뜻을 조금도 받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정욕으로 말미암아 태어난 유기된 자들이요, 하나님의 아들은 범죄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죄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죄가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는 이런 악순환이 거듭되는 사람의 세계에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났고 하나님의 아들들에게 율법을 비춰 주심으로 죄에서 돌이켜 선에 이르도록 기회를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 율법을 자기의 지식으로 판단하고 이해하고 해석함으로 참뜻으로부터 왜곡시켜 버리고 결국은 진리에 이르지 못한 비참한 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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