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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롬3:29)

생명있는 신앙 2014. 1. 11. 06:41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3:29)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3:29)

 

유대인과 이방인, 사도의 의식 속에 있는 이런 구별은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사도는 이삭으로부터 난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9:7)” 이렇게 말하고 그 다음에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김을 받느니라(9:8)” 라고 말합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4:28)”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4:22)”

 

이와 같은 바울의 사상은 세상의 사람을 약속의 아들과 종의 아들곧 이스라엘과 이방인이라는 구별로 나뉘어 있습니다. “약속의 아들이란 선택 곧 하나님의 아들들의 가족이고 창세전에 아담안에 계획된 자들이고, 종의 아들은 육체를 따라 난 아들로서 하나님의 약속과 관계없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정욕으로 낳은 아들들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과 이방인은 하나님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하나님의 계획에 속한 사람과 허락에 의한 사람, 율법을 가진 사람과 가지지 못한 사람, 하나님을 아는 사람과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 구별됩니다. 나아가 이들이 가인과 아벨의 구별에 까지 적용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본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로 이방인들입니다. 하나님도 없고 약속들에 대해서는 외인이며, 하나님도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구별되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우리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이방인, 본래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계획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과 순전히 죄로 말미암은 정욕으로 잉태되어 탄생을 허락하실 수밖에 없는 존재이며, 이로 인하여 우리들의 미래는 지극히 비참한 환경에 처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가진 지극히 무익한 존재일 뿐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지지 못한다는 사실은 참으로 비극입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의 영광의 강렬한 빛이 비취고 있는 영원한 나라에서도 결코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하여 그 나라를 온통 더럽게 하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영원한 나라에 이른 그곳에서 육체로 사는 날 동안 경험한 감각의 경험을 통해 지식을 가진 것처럼 새로운 경험이 그들의 영혼으로 지식을 가지게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지옥을 만드시고 사람들을 거기에 가두시고 영원한 불못의 고통에 처하는 것은 지극히 부당한 일이 됩니다.

사람이 영원한 지옥에 처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들의 존재의 특성상 영혼과 육체로 지음을 받았고 육체로 감각하고 영혼으로 지식을 가지도록 한 것인데, 천국 간 영혼은 육체에서 분리되었기 때문에 사물과 객체에 대한 객관적인 감각을 가지지 못하여 영혼에 더 이상 표상을 반영하지 못하므로 지식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 영혼은 육체에 있는 동안 가졌던 지식으로만 존재하게 되는데, 그 지식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면, 어떤 방법으로도 하나님을 알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를 가질 수도 없기 때문에 하나님과 소통조차 못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영혼에 나타나주셨어도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 지식이 영혼에 없기 때문에 인식조차 못하는 것입니다.

영의 세계는 사물과 사물이 감각하여 지식을 가지고 인식한 후 소통하는 그런 나라가 아닙니다.

영원한 영혼의 세계는 지식과 지식만이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17:3)”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방인이란?

하나님의 아들들이 죄를 범한 후 육체의 정욕을 일으켜 낳은 아들을 말합니다.

이들이 창조 계획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에 적용하면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적용되어질 가능성은 조금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은 창조 시부터 피조물에 적용된 규칙과 같은 룰(ruler)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은 피조 세계의 존재의 규칙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선에 적합하지 않은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부패하게 하는 하나님의 계획과 관계없이 생겨난 유입된 세균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존재는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오염시키는 존재일 뿐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작정과 관계없이 단순히 허락으로만 태어난 사람에게 하나님의 선은 조하를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작정인 계획에 의한 아담의 후손들조차 그들의 행위가 하나님의 선으로부터 스스로 벗어나 버리는 불순종의 죄를 범하고 말았는데, 단순히 죄로 말미암아 정욕으로 인하여 태어난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스스로 온전한 삶을 산다는 것은 기대조차 할 수 없는 기적중의 기적이 되며 이런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설령 있다 가정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선이 이를 용인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유는 하나님의 영이 이방인들에게 조명하여 지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 해도 이방인의 영혼은 그 조명으로 인하여 자기지식을 생성하여 가지는 우를 범하여 결코 진리의 지식을 가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사람들의 영혼에 말씀을 뿌리는 사역을 하셨던 것입니다. 곧 사람들은 육체로 나는 것이 시작이라면 영으로 거듭나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 영이 하나님의 지식인 말씀이고, 그 말씀에 의해 사람은 새롭게 태어나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지식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니고데모에게 영으로 나는 것은 영이요(3:6)”라고 말씀하셨고, 사도바울은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8:6)”로 했습니다. 이를 인류의 조상 가인에게서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이방인!

우리도 이방인이고 하나님의 아들들의 정욕에 의해 태어난 하나님의 원수들입니다.

우리는 육체의 사람으로 하나님을 알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알 수도 없는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지식을 가지고 반응한다는 것은 기적중의 기적적인 사건입니다. 다시말하자면 이방인이 스스로 하나님께로 나아간다는 것은 결코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도의 의식에 있었던 이방인은 유대적 전통에 따라 단순이 하나님의 선택으로부터 제외된 것을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에 있어서 이방인은 이미 버림을 받은 존재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의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이후로 이방인에 대한 사고가 달라졌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사명을 받을 때 이방인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라는 사명과 함께 보냄을 받았으므로 이방인들이 바로 구원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들에게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기에 이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