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위기의 때 어떻게 행동하십니까?
아브람처럼 행동하시지 않습니까?
진정으로 우리가 행동해야 할 우리 자신을 신뢰하는 것으로부터 탈피하고 피조물인 우리 자신을 바라보며 우리가 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도움을 청할 수 있어야 되지 않습니까?
사람이 무엇이며 무엇으로 사는가?
철학적인 의미로 자기의 본성에 근거한 질문에 앞서 나는 누구인가? 왜 여기에 있는가? 라는 아주 단순한 문제에서부터 탐구하는 자세가 진정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 아브람에게 질문 되고 있는 문제입니다.
아직 하나님을 만나지 전 아브람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롯과 그 가족들, 그리고 전쟁에 빼앗긴 재물들을 다시 찾아서 돌아온 후 여장을 풀고 집에 누워 앞으로 일을 곰곰이 생각했을 때 자기 앞에 닦쳐진 일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느끼고 두려워 떨고 있을 때를 생각해 보세요. 이는 마치 위기를 만난 우리가 닦쳐올 두려움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어려움에 사로잡혀 다른 방향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신경이 곤두서며, 심한 정신적인 압박을 받고 있는 상태와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상황은 다양합니다.
사업가에게는 경제적인 위기와 사업의 위기를 만났을 때,
가족들에게는 자녀들에게 위기가 닦쳐 왔을 때,
인생에 커다란 위험이 자신을 위협하고 있을 때,
이런 것들에 정신이 온통 사로잡혀 그 외의 다른 삶에 대하여 관심을 가질 수 없는 상태일 것입니다.
이런 상태를 사로잡힌 상태라고 말합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구체화 되었거나 되지 아니한 현실이나 예상되는 상황에 관한 지식이 바람에 부풀린 풍선처럼 우리 영혼의 지성을 가득 채워져 다른 지식이 자리할 수 없게 된 상태인 것입니다. 이것을 흔히들 몰두 된 상태라고 말하는데 실지 상황은 전혀 위기가 아니지만 아브람이 자기가 집에서 길리운 삼백십팔인의 가병들을 이끌고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왔으나 이것이 자기의 조카가 경각간에 놓인 생명의 위협에 빠져 이를 건져오는 정당한 행위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행위가 오히려 자기를 더 큰 위험에 빠뜨리는 결과를 가져 왔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아브람은 어느 편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광야를 떠도는 목축업자로 여겨졌으나 이후로는 목축업자가 아니라 그들의 위협이 되는 존재로 부각되었습니다. 언제든지 싸울 수 있는 적대적 관계가 되었고 주변의 부족들은 아브람을 그저 지켜만 볼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아브람이 배고프고 가난해질 위험에 처하면 언제든지 주변의 부족들을 공격하여 자기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공격해 올 수 있는 강한 상태임을 주변 부족들이 알았고 그들은 단독으로 아브람을 이길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알았기 때문에 이번 전쟁에서 잡아갔던 롯과 전리품들을 다시 빼앗긴 그 부족이 다른 부족과 연합하여 아브람을 공격할 수 있는 상황의 지식이 아브람의 영혼을 가득 채워짐으로 아브람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이 곧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앞에서 언급한 여러 가지 상황이 우리의 영혼의 지성을 가득 채워질 때 우리는 그 지식에 사로잡혀 두려워하거나 혹은 만족함으로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지식이 우리의 영혼을 사로잡고 있을 때 우리는 그 지식의 종류에 따라 우리에게 나타난 반응 또한 지식에 따라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치료하는 방법은 가득 채워져 있는 지식을 영혼의 지성에서 제거하는 것입니다.
곧 두려움으로 가득 채워진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지식을 극복할 수 있는 지식으로 제거하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우리는 지식이 곧 영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실지로 지식은 객관적 사물이나 무형의 지식에 관한 표상이거나 지식 자체인데 그 지식이 영혼의 지성을 생명력 있게 하는 원인자로서 영혼을 활동하게 하는 힘입니다.
영혼은 지식이 없으면 활동할 수 없습니다.
영혼이 활동하지 못하면 육체는 무질서하게 행동하며 감정적 반응을 할 뿐입니다.
동물들은 영혼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질서롭게 행동하지 못합니다. 지식에 의해서 어떻게 행동을 해야겠다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감각된 결과적 반응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사람은 영혼이 있기 때문에 행동을 하기 전에 생각하고 판단한 후 행동을 합니다. 곧 사람은 영혼으로 행동하는 것이지 육체의 감각에 반응하여 행동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이처럼 사람을 행동하게 하는 영혼을 작용시키는 것이 지식이고 이 지식이 곧 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의 지식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본문을 들어 예수님의 말씀이 곧 영이고 지식이라고 말하자 이를 잘못 해석한다고 비난하고 단어, 문구를 하나하나 해석하며 반론을 제기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의미는 자신 안에 가지고 계신 어떤 다이나믹한 에너지와 같은 힘을 드러내는 정체 있는 힘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반문하는 사람이 개혁 교회라고 스스로 자칭하고 보수교단이라는 교회 안에 있고, 그 사람에게 수천명의 성도들이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매주 모여들고 있어서, 우리는 수년 동안 그의 설교를 듣고 그의 주장을 파악해보았으나, 입만 열면 진리를 말한다고 주장하고 마치 자기가 진리를 대변하는 대변인처럼 외치고 있었으나 실상은 아직까지 한번도 진리를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지식과 하나님의 말씀, 그리고 하나님의 영과 사람의 영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무지한 설교자였던 것입니다.
“아브람이 하나님을 믿으매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 여기시고”라고 말씀하신 그 내용을 살펴 보면서 우리의 영혼에서 일어나는 영혼을 움직이는 에너지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실상 저는 오늘 이 시간에 성경에 나타난 아브람 이전까지의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신에 관하여 말씀을 드리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더 급하게 먼저 알아야 할 우리 영혼을 사로잡는 지식에 관하여 더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오늘 이 시간을 할애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브람을 사로잡고 있는 두려움의 정체는 실재가 아닌 가능성 있는 추측성 지식이었습니다. 그 지식은 자기가 공격하여 되찾아 온 그돌라오멜과 함께 연합한 부족들을 공격한 것으로 인하여 그들이 다시 연합하여 아브람을 공격해올 것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우리는 아브람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평온을 잃어버린 상태를 비교하여 우리가 처한 어려움이나 혹은 우리 영혼을 사로잡고 있는 지식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 지식이 하나님을 가까이하는데 유익하지 않은 것이라면 그것을 버리기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영혼에서 우리를 이끄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영혼을 가득 채워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은 단순이 외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말씀에 대한 의미가 우리의 영혼을 채우는 것입니다. 즉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연합한 자들이 복수를 위해 자기에게 달려와서 자기를 공격하고 보호하는 성도 없는 자기를 맹렬하게 쳐부수는 구체적이 상황이 지식으로 채워짐으로 두려움이 전신에 휩싸인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구체적으로 이해되는 지식으로 인하여 온몸에 전율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믿음을 보시는 구체적인 상황을 보십시오.
아브람의 영혼에 두려움이 작아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심겨졌습니다.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람은 이 말씀에 확신을 가지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자포자기의 대답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저에게는 아들이 없는 고로 저의 후계자는 다메색 엘이에셀이니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말에 대답하십니다.
“아니다, 네 몸에서 날자가 네 상속자니라”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세상에서 자식마져 없어서 외로운 인생길에, 두려움에 휩싸여 보호받을 수 없는 아브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그의 삶을 새롭게 해주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혜성과 같은 말씀이었습니다.
아브람은 이 말씀으로 인하여 지금까지 자기의 영혼을 가득 채우고 있는 두려움이 지식이 바람빠진 풍선처럼 꺼지고 아들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영혼을 사로 잡게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에게서 일어나는 믿음의 정체를 분명히 볼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신 믿음은 두려움에 휩싸인 지식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주시겠다는 지식으로 아브람이 반응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영혼을 가득채워 그 말씀으로 반응하는 것을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