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연구

복음을 부끄러워 아니하노니(롬1;16)

생명있는 신앙 2013. 3. 21. 19:58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 아니하노니|(롬1:16)

 

동영상보기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다음은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 관하여 사도는 앞절 1:2~4절에 분명히 선언합니다. "2, 이 복음은 하나님의 선지자를 통하여 그 아들에 관하여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3,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 되셨으니 곧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 시니라" 입니다. 이를 요약하면 "약속된 아들이 다윗의 혈통을 이어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 이고 더 요약하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죽으시고 살아나셨다, 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 복음이 우리의 영혼에 심겨지고 심겨진 영혼을 조명하여 어두움을 밝히고 우리안에 한 새사람을 지어 믿음을 일으켜 그리스도인이 되게한다고 설명드려 왔습니다. 
이 복음이 구원받을 사람의 영혼에서 일어나는 작용은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이해하면 우리안에 지어진 그 새사람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우리가 이 복음을 선포해야하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사도는 이 복음을 통해 예수그리스도께서 왜 오셨으며 죽으셨고 살아나셔서 다시오실 것인지를 이방인에게 선포함으로 이방인들이 사도의 전하는 말씀을 들을 때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구원의 사역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성령의 사역중에 하나이고 사도가 복음을 선포하는 것은 성령께서 역사하시도록 자기가 해야할 일만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는 자기의 역할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았고 그 다음에 열매를 맺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알았으며 그래서 자기의 역할을 어떻게 하는 것이 충실한 것인지도 너무도 분명히 이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는 구원사역은 전적으로 성령의 역사라고 주장합니다.
자기가 복음을 전하지만 그 열매를 맺게하시는 분이 성령일때 자기의 공로를 주장할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을 너무도 잘알았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을 자세히 읽어보면 사도가 복음을 전하려 가는 그 길에 성령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너무도 분명히 증거하고 있고 고린도인들에게 전하는 서신에서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자라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라(고전 3:6)" 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복음을 신속하게 전해야 하는데 어떤 자세로 복음을 전해야 하는지 알게 됩니다.

 

바울은  항상 그의 마음에 기도하는 자세로 진리만을 외칩니다. 
바울은 그가 가진 지식과 능력으로 얼마든지 복음에 맞춰 말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했습니다. 로마인과 유대주의의 우월사상을 강조하지도 않았습니다. 
학식과 배경을 자랑으로 하며 그것을 이용하지 않고 오히려 버렸습니다. 
그는 오직 복음 뿐이었고, 결과를 항상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의지하였습니다.
사도는 그것이 자기가 할 일이라는 것을 잘알았고, 자기의 임무의 범위를 잘알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도 복음을 전할 때 여러가지 방법과 자기의 지식 그리고 배경을 통해 사람을 설득하고 보이지 않은 권위를 이용하여 전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가 반드시 한가지 자기의 자랑할 것은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을 자랑해야 합니다. 

불신자의 영혼에 이 것을 자랑하면 영혼이 하나님의 아들에 대하여 어떻게 대하는지에 관하여 아주 많이 말씀을 드렸습니다.

다시한번 말씀을 드리면, 불신자의 영혼은 하나님의 아들에게 "왜 너희가 범죄하여 정욕을 일으켜 지옥에 가는 우리를 낳았느냐? 너희가 우리를 낳지 않았다면 우리가 지옥에 가지 않을 것이고 비참한 인생을 살지도 않을 것이며, 하나님의 버림받은 사람으로 살지도 않을 것인데 왜 낳았느냐고 분노하고 미워합니다"라는 말씀을 많이 했습니다. 
불신자의 영혼은 태어날때부터 버림을 받은 자들로 태어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과 아무런 관계도 없이 이 세상에 오는데 유기되기 위해서 올 뿐입니다. 
그들이 바로 우리였습니다. 
우리의 비참이 하나님의 아들들의 범죄로 인한 정욕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을 전할때 불신자들의 미움과 분노와 침벹음을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죄 때문에 채찍에 맡아야 하고 머리에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처럼 죄인이라는관을 쓰고 손과 발에 못박혀 죽이는 것을 당해야 합니다. 

이것은 죄인들에게 내리는 형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을 전할때 우리의 자랑을 전하면 불신자들의 영혼은 더욱 우리에게 분노하여 우리를 죽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진리만을 말하고 오직 성령의 역사하심만을 기대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사도가 이것을 분명히 고백하여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내가너희 가운데 거할때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고전 2:3~4)"라고 한것을 보면 너무도 분명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현대 교회들의 복음전도 방법이 얼마나 세속적이고 철학적이며 자기 자랑과 인간적인 것인지 여러분은 잘 알것입니다. 

대부분 인간의 행복을 주장하고,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복을 주장하며, 잘되는 것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 농장인차인들에게 보내는 종으로 가야 합니다. 

아벨과 같이 구약의 선지자들과 같이 마지막 보냄을 받은 선지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보냄을 받아 죽임을 받는 것이 사명이라는 것을 알야 합니다. 

왜냐하면 불신자들의 영혼은 하나님의 아들을 만나면 두말않고 죽이려합니다.

자기를 지옥에 가도록 죄의 정욕으로 낳았으니 참지 못하지요.게다가 영원히 고통을 당하도록 태어나게 했다면 하나님의 아들을 가만히 두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보낸 모든 선지자들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영혼에게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셔서 죽이라고 했고 너희가 그를 죽이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들과 너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오히려 너희를 구원하실 것이다. 라는 말을 분노하는 영혼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개혁교회는 이런 의미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이 말하는 의미를 다시 재고하여 수정해서 해석해야 합니다.

지금과 같은 스콜라 철학으로 위장하지 말고 사도의 마음을 닮아 가야 합니다.

아멘

2013, 03, 22(캐나다 토론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