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연구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야(롬2:16)

생명있는 신앙 2013. 5. 14. 03:57

https://youtu.be/YaThqhE7vvU

곧 나의 복음에 이른바와 같이 하나님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라(롬1:16)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에 새긴 율법은 과연 문자 그대로 돌비에 계명을 새김과 같이 새겨져 있는 그것을 말하는 것인가요? 이점에 대해서 마음에 새긴 율법에 관하여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새겨졌다는 것은 마음판에 글을 쓰셨다는 것을 의미라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왜냐하면 비록 율법이 사람에게 주어진 지식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사람이 지어낸 사람의 지식이 아닙니다. 이 지식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지식으로 하나님의 지식입니다. 이 지식이 사람에게 쓰여졌고 사람의 마음에서 사람으로 행동하게 한다면, 사람은 하나님의 행위를 하는 것이지 사람 자신의 행위를 하는것이 아닙니다. 곧 사람은 하나님의 한 속성인 지식을 마음에 받아 그 속성으로 행한 것이 됨으로 이는 피조물이 하나님의 행위를 하는 것으로 율법을 받은 사람의 모든 행위에 대한 책임은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식과 사람에 대해서 사람은 언제나 피조물인 자기정체를 분명히 인식한 상태에서 진리를 접근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마음에 새겨졌다"는 것을 성경은 마음판에 손가락으로 글씨를 쓰신 것처럼 기록되어졌다는 의미를 표현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도 이점을 결코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실지로 하나님의 지식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커다란 문제를 야기해 옵니다.

사람의 범죄와 타락. 은혜와 구원의 문제는 흐트러지고 혼란스러으며 정리되지 아니한 무질서한 지식들이 됩니다. 

범죄와 타락에 있어서 마음에 기록되어진 하나님의 지식인 율법이 행한 행위로 볼 수 밖에 없고, 결국은 그 행위가 피조물인 사람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식으로부터 행한 것이기 때문에 죄책에 대한 형벌은 부당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도리 수도 있습니다. 나아가 마음에 율법이 새겨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타락하였다면, 그것의 무능함과 무가치함을 드러내는 결과밖에 다른 말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율법이 사람의 타락 이후에 새겨졌고 구원에 이르는 시기에 적용되어지도록 한 것이라면 이 지식이 이방인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지 않은 것에 대한 의문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도가 말하는 "마음에 새겨진 그 지식",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닌 본래부터 사람의 마음에 있는 율법의 지식에 관하여 우리가 진리로서 이해하도록 진리의 서고에서 답을 찾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영혼의 지성의 작용을 원리로 답을 접근해 보는 것도 결코 나쁘지 않을것입니다.

물론 이런 방법으로 우리가 도출하는 답과 실지 사도가 의도하는 의미와 일치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명석한 지성을 가진 사람은 사도의 지식과 일치한 지식을 진리안에서 발견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우리 영혼에 만족을 주는 어떤 지식이 영혼의 지성이 이미 생성하여 지각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 지식을 지각하여 우리의 전인이 진리를 인식함으로 기뻐할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사도의 말을 표상화하여 지성에 반영하였다고 가정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표상에 집중하여 복음을 조명하여 비춰보는 것입니다. 

복음의 조명에 의하여 "마음에 새겨진 그 율법"은 과연 무엇을 드러내 주고있습니까?

그것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그리고 마음에 새겨진 그 율법은 왜 이방인들을 하나님께서 인도하는 일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선한 것이고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발견하게 하고 정의와 부정의를 알게하는 것이라면 왜 하나님에 관하여 찾아가도록 하는 것이 못되나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빛이 마음에 새긴 이 율법을 조명하는데 있어서 둘 사이에 어떤 일치감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사도가 말하는 마음에 새긴 율법, 곧 양심은 그리스도와 어떤 점에서 일치점을 주고 있나요?

우리가 발견한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방인의 마음에 새겨졌다고 하는 그 양심은 복음과 일치한 그 어떤 점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과연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몇일째 율법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율법을 복음과 조명하는 시도를 해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방인의 마음에 새긴 율법과 이스라엘에주어진 율법의 차이점을 찾아 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율법은 복음의 빛에 비취면 일치하는 많은 점들이 드러나 보입니다.

첫번째 그리스도의 죽음과 같이 율법은 사람을 정죄하고 죽입니다.

두번째 율법은 사람으로 하여금 소망을 끊어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는 점에 있어서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죄를 대속하셨으므로 사람으로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게 합니다.

세번째 율법은 그 내용에 있어서 하나님을 희미하게 보여주는 조명역할을 하는데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완전히 보여주시는 역할을합니다.

이와같이 율법과 그리스도는 많은 점에서 일치한 역할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의 마음에 새겨진 율법이라는 양심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도가 본 이방인의 마음에 새겨진 그 율법인 양심이 무엇인지 이제 분명히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지식이었고, 그 지식이 사람들의 세계에 있어서 질서와 조화를 드러내는 본래부터 있는 것으로 이방인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에게도 있는 본성의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는 이런 양심 위에 더 율법이 주어졌으나, 이방인에게는 율법이 주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분명히 보여 주심으로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지식으로 보여주신 반면, 이방인에게는 그것이 감추어진 상태로 본성에 그대로 남아있을 뿐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창조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발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보이신 하나님의 은혜는 아들들을 향한 사람으로부터 온것이지만, 이방인에게는 자연의 본성에 맡겨진 사람을 대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순간 생명을 가지고 태어났다가 안개처럼 사라져버리는 모든 존재들에게 결코 의미없이 존재하도록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아닙니다. 비록 하나님의 아들들의 범죄로 이 땅에 태어났다가 영원히 지옥으로 돌아가는 비참한 운명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방인들에게 있어서 그들은 하나님의 관심으로부터 떠나 있는 비참한 존재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반열에 들지 못한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저주받은 존재들이지만, 세상에서 잠시 있는 그 시간동안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살기 위해 우리의 삶을 질서있고 조화롭게 살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이방인에게 주는 큰 유익이 있습니다.

우리는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만족하고 우리의 영혼이 심판을 받아 지옥으로 덜어진 그날에 우리가 가지고 간 영혼에 새겨진 그 지식들에 의해 지옥이라도 가벼운 고통으로 살 수 있는 그런 결과들을 위해 우리가 이세상에서 얼마나 질서롭고 조화롭게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의 아들의 반열에 들지 못하는 버림받기에 충분한 유기자들이라도, 존재하게 하시고, 우리의 영혼을 지으셔서 육체와 하나 되게하신 하나님의 창조를 감사하며,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있도록 한 것이 곧 마음에 새겨진 율법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들에게도 동일하게 있었던, 바로 최초 지음을 받았을 때 있었던 "선"으로 "질서와 조화"입니다.

최초 사람이 지식 갖기 이전에 그냥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라고 비로서 말씀하시자 하나님의 지식이 사람의 육체에 감각되어 영혼의 지성에 들어왔고, 이렇게 들어온 하나님의 지식을 하나님의 형상안에 있는 지식이 조명함으로 사람은 비로서 처음 자기지식을 생성하여 지각을 갖고 지각된 지식에 따라 인식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눈을 열과 세상의 객체들에 대하여 영혼의 지성이 하나님의 형상안에 있는 본유지식의 조명을 받아 자기 지식을 생성하여 가진 타락이전까지 모든 지식들에는 선함, 곧 질서와 조화가 충만한 지식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타락하게 되자 질서와 조화가 충만하여 선한 지식을 가지던 영혼은 하나님의 형상이 깨어지고 본유지식이 사라짐으로 인하여 빛을 잃고 어두워지게 되었고, 그동안 가졌던 자기 지성이 생성한 자기지식으로 세상의 객체들에 대한 지식을 갖게 도리 수 밖에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바로 이 지식안에 질서와 조화가 있었고, 그 지식으로부터 생성한 모든 지식안에는 질서와 조화가 전이되어 근본적으로 사람의 모든 지식에는 질서와 조화가 함의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식을 가진 모든 사람은 그 마음에 질서와 조화가 들어 있고, 그것들이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감성을 자극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질서롭고 조화로운 삶을 즐거워하는 마음을 복돋우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이방인들에게 양심적인 행동을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사도가 말하는 그리스도의 심판에 대해서 말하려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심판을 그리스도에게 부여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을 심판하시는데 "은밀한 것"을  심판하신다고 사도가 말하고 있습니다.

선에 이르지 못하는 모든 피조물들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지옥을 향하여 나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동물들도 지옥으로 갈까요?

아마도 동물들이 지옥에 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입니다.

왜?

 

2013, 05,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