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롬3:13)
“그들”이라고 지칭한 사람들은 9절에서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선언 하였느니라”라고 말한 후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아담의 타락 이후 모든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우리도 포함되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모든 사람을 말합니다.
이 말은 죽은 사람을 받아들이려고 파여진 상태의 땅을 말합니다. 그래서 곧 장사지내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진 상태로 시체를 받아들이기 위해 준비 되어졌습니다. 사도는 이것을 목구멍에다 비유 했습니다.
세상의 땅은 존재하는 모든 사람을 받아들이는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 땅은 들어오는 모든 사람을 하나도 남김이 없이 다 흙으로 변화시켜 버립니다.
흙으로 돌아간 사람에게 존재가 무슨 의미가 있으며, 그의 삶이 남긴 흔적들이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그것도 잠시 사람들에게 기억되었다가 영원히 없어져 버릴 것입니다.
아무도 그를 다시 찾지 않을 것입니다.
그가 이 세상을 떠났다고 해서 슬퍼하고, 이 세상에 없음으로 인하여 땅이 슬퍼하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다 죽음을 결코 벗어버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도의 말은 그런 의미의 죽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반적인 죄로 말미암은 죽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있는 존재하는 사람을 죽이는 독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인 사람은 본래는 영원한 존재로 지음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받으므로 선에 이르는 존재가 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자기의 영혼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채워 더욱 완전해가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창조의 목표였으나 사람은 자기의 영혼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버리고 거짓과 왜곡된 지식만을 채워버리고 말았습니다.
그의 영혼에서 쏟아내는 모든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전혀 함의 되지 않고 오히려 무지와 결함을 함의한 지식입니다. 무지에서 두려움과 공포가 이에서 감각되고, 결함으로 말미암아 불신과 미움, 원망과 불만 등을 쏟아내고, 결국은 이로부터 서로 죽이고 파괴하는 큰 싸움과 악독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인류 최초의 탄생자들인 가인과 아벨에게서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앞에서 이 둘의 출생의 근원에 대해서 충분히 언급한바와 같이 성경은 이 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드린 제사로부터 삶의 일부를 조명하고 있습니다.
가인이 아벨처럼 자신이 드린 제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미움, 분노, 질투가 심장에 고동쳐 압박했고 터질것만 같아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의 영혼에서 쏟아내는 아벨을 향한 미움과 분노는 대적, 즉 원수에게서 느끼는 감정이었습니다.
가인은 그 원인에 대해서 파악하고 분석하여 자기의 실수가 무엇인지 회계하는 마음을 가졌어야 하는데, 영혼은 지속적으로 분노에 관한 미움을 보내 육체를 격동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밀려온 분노는 대지를 집어 삼키는 태풍처럼 가인의 육체에 밀려올라오고 있었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혼이 육체에 보내는 지식인데 이 지식의 행위는 하나님도 막을 수 없는 엄청난 감정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십시요.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나타나셔야만 했습니다.
그것도 특별히 드러내셔서 가인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게 했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가인의 전인에 감각됨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을 돌아보게 하시려고 합니다.
포악하고 인정이 없는 죄가 가인의 마음에 대기하고 있는 것을 보신 하나님은, 죄를 다스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하나님의 음성을 분명히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순종하는 마음을 갖지 못하였습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지식을 그의 영혼에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진리대로 알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제사를 받는 분이심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창4:7)" 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네가 부끄러운 것은 선을 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가인이 하나님께 행한 것은 성경에 분명히 언급된바와 같이 선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도 부끄러워 할 행위였기 때문에 자신의 행위로 얼굴을 들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아무렇게나, 무질서하고 조화롭지 못하게, 가인은 하나님을 향하여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것이 부끄러운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자기 안에 하나님이 누구인지에 관한 분명한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제 마음대로 행한 것이고, 그렇게 제사를 드린다고 해서 보지 않은 하나님이 아실리 없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앞에서 일어난 일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은 하나님이 그들이 드리는 제사를 받으시는데 아벨의 것은 받으시고 자기의 제사는 받아들여지지 않자 스스로 자기의 행위를 부끄러워함으로 낯을 들지 못한 것입니다.
가인은 자신 앞에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였습니다. 반면 아벨은 가인과 같지 않았고 그의 영혼에는 성령께서 조명하심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는 모든 일에 진실함으로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로 죄인인 것을 알고 있었고, 하나님의 아들의 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자신이 세상에 보내어졌고 비천한 운명을 가진 죄인이라는 의미를 알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아는 사람의 의식입니다.
성경은 가인의 의식과 아벨의 의식을 비교하여 우리에게 조명하고 있습니다.
가인의 영혼에서 드러난 죄의 본질과, 하나님의 아들의 의식을 가진 아벨의 영혼에서 드러난 죄인의 의식은 너무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진 영혼과 가지지 못한 영혼의 차이점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가인의 영혼에서는 무질서하고 조화롭지 못한 지식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이것이 선을 행하지 않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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