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롬3:13)
하나님의 형상에는 모든 것이 하나님과 닮은 속성을 가졌고 모양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영혼에 속한 부분이나 육체를 포함한 모든 면과 내부에 영혼의 기능과 역할이 하나님을 닮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사람과 다른 피조물 가운데 생명이 있고 기식하는 짐승들이나 기타 존재들과 구별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계시를 영혼의 기능인 지성이 지식으로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분명하게도 모든 동물이나 기식하는 피조물들은 자신의 존재를 지식으로 드러내지 못합니다. 사람을 재외한 모든 피조물들은 자기의 존재를 다른 객체가 감각하여 인식함으로 존재가 확인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하지만 그 존재는 모두에게 주관적입니다. 이는 감각되지 않으면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 존재하지 않은 것으로 인식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은 감각하지 않았어도 이미 알 수 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알고 있으며 여기에 감각을 더하여 공간적 인식을 하게 됩니다. 게다가 공간적 감각에 인식되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으로 잘못 판단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이것을 일컬어 공간 감각에 대한 무지와 결함의 인식이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두려움과 위협 지식이 생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은 지식을 포함하여 그 기능적 역할까지 포함하여 사람의 생존하는 방식과 그리고 모양까지 통틀어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오늘 까지 교회는 하나님의 형상의 지적인 기능에 대해서 많은 부분을 간과하여 말하여 왔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의 역할에 관한 무지 때문일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인류의 후손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경험하지 못하였습니다.
최초 인류가 타락함으로 인해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은 더 이상 그 역할을 드러내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은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어떤 역할을 위해 주어졌습니다.
모양뿐만 아니라 지적이 기능에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지식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 지식으로 온 세계와 만물을 지으시고 이 지식에 의해 모든 일을 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상역시 이 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사람으로 하여금 지식을 생성하도록 지식을 조명해주시는 본유지식의 역할입니다.
본유지식이라는 말은 사람이 직접 인식할 수 없는 영혼 안에 부여 받은 지식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다윈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환경에 의해 존재된 존재라 할지라도 지식은 생물체의 존재로부터 생산된 산물이 아니라 사회적 환경으로부터 진화되어진 것이라고 말하지만, 사회적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도덕관념을 가진 지식의 체계를 생성할 수 있는 근거에 대해서는 결코 명쾌하게 말하지 못하는 것으로부터 지식은 사람에게서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닮은 존재로 살도록 부여하신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유지식은 피조물인 사람이 지식을 가질 수 있도록 거울처럼 조명해주는 하나님의 지식으로 피조물인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처럼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피조세계와 관계한 모든 지식을 담은 지식인 것입니다.
이 지식에는 4가지의 지식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으로 피조물인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하나님을 사람의 지식으로 생성하여 가지도록 조명하는 지식이고, 둘째는 하나님에 대하여 지식으로 사람이 하나님께 어떻게 대하여 소통하고 교제할 수 있는지에 관한 지식을 생성하여 가지도록 조명해주는 짓기이며, 셋째는 창조에 관한 지식으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가졌던 모든 지식이 본유지식에 담겨져 창조에 관한 모든 것을 조명에 의해 사람으로 하여금 지식을 생성하도록 하고, 넷째로는 사람 자신에 관한 지식으로, 자신을 분명히 진리대로 알 수 있도록 조명해주는 지식인 것입니다.
사람은 이 내가지의 지식으로 인해 하나님처럼 완전한 피조물로 살면서 하나님께서 지식을 생성하여 내시는 것처럼 제한된 피조물로서 자기지식을 생성하여 내면서 하나님처럼 살도록 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된 상태에서 하나님처럼 사는 피조세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배반하여 대적한 사건입니다.
우리는 피조물인 사람이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건에 대해 그다지 충격적인 감각을 가지지 않습니다. 이 지식이 우리의 영혼의 지성에 표상으로 반영되고 우리의 지성에 있는 지식들이 조명하여 이를 인식하기 위한 지각을 가질 때 이는 반영된 표상의 지식과 지성에 있는 지식들의 구조와 일치하기 때문에 충격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이는 마치 도둑이 견고하게 잠겨진 열쇠를 해체하고 문을 넘어와 물건을 훔치고 돌아가면서 소득을 계산하는 것과 같은 마음입니다. 자기 소위를 살피지 못하는 영혼의 상태로서 자기의 영혼에 들어온 지식이 자기에게 충격을 주는 어떤 특별한 점을 전혀 발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이 영혼의 지성에 반영되면 사람은 그 말씀을 자기 지식으로 조명하여 자기에게 적당한 의미의 지식을 가지고 지각하게 됩니다. 사도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진리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들의 생각대로 판단하고 이해하는 모습에 관하여 분명히 말하기를 하나님의 계시를 거짓인 자기지식으로 조명하여 결국은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어(롬1:25) 지각을 갖고 인식한다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 아니하며(롬1:21)” 라는 말은 그들이 하나님을 진리대로 알지 아니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가인과 같이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 그 만난 하나님을 계시하여 주신 그대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진 것이 아니라 자기지식으로 조명하는 것, 곧 거짓된 지식으로 조명하여 하나님에 대한 자기지식을 가지므로 하나님은 본질 그대로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지어진 전혀 다른 하나님을 인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의 지성에 자기가 만난 그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자기 마음대로 자기지식을 생성하여 지각한 후 인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도표에서 보는 것 처럼 하나님의 형상에는 본유지식있고 그 지식에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습니다. 타락 이후에는 성령의 조명이 그 역할을 대신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 대신에 자기지식만 가진 타락한 사람은 자기지식으로 하나님을 인식하여 본질과 다르게 하나님을 인식하게 됩니다.
지식에도 생명이 있는 지식과 생명이 없는 지식이 있습니다. 사도는 자신이 생명의 말씀을 밝혀 왔음을 빌립보 교회에 고백하고 있습니다.(빌2:16) 그는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너무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직접 목격하였고, 자기의 동족들의 권위자들의 심판에 의해 이방인에게 내어주고 십자가에 죽은 사실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이 한마디 한마디는 바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분명히 이해하는 중요한 요소들이 있습니다. 보냄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이 자기의 백성에게 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들의 백성들은 예수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이방인에게 죽이라고 내어주었습니다. 이방인들은 예수를 죽입니다. 그리고 예수를 죽인 이방인들이 자기가 하나님을 죽였다는 승리에 도취할 때 자기들의 손으로 행한 죄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에게는 직접적으로 너희들의 죄를 회개하라는 선포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셨으나, 이방인에게는 자기들이 행한 일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시고서야 하나님과 화목(골 1:20~22)된 것이 무엇인지 말하였습니다.
사도가 말하는 그리스도의 비밀은 이와 같습니다.
“자기 백성에게 보냄을 받으신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아들들을 대표해서 이방인들에게 내어주심, 이방인들이 직접적으로 죄와 관계가 없는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을 죽임, 이것으로 이방인과 하나님과의 화목,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이심,” 이것이 바울 복음의 내용입니다. 바울 서신의 모든 사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인데 그 비밀이 이방인의 구원에 관한 중심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 복음을 들고 아시아 지역을 두루 다니며 전파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온 세상에 전파한 것입니다.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로마를 지나 서바나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이 그의 목표였습니다. 서바나는 그들에게 접하여진 세상의 끝이었습니다. 그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아레오 바고에서 세상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도 했습니다. 생명이 없는 지식으로 사람들을 현혹하고 미혹하여 결코 하나님께 인도하지 못하는 거짓된 지식들의 난무한 세상을 보았습니다. 그들의 입에 있는 지식들은 한결같이 거짓뿐이었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칼과 창이 아니라 그들의 생명없는 지식이었습니다. 온 세상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한 결과 그들은 생명에서 떠났고, 그들의 지혜와 지식은 생명이 없는 죽은 지식들 뿐입니다. 모든 사람은 이 지식으로 살고 활동합니다. 그 지식은 사람을 죽이는 독이 있는 지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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