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롬3:14)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입으로 들어가는 먹는 음식입니까?
음식은 육체의 삶을 위해 필요하지만 사람은 육체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인식하지 못하는 영혼에 의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영혼의 기능은 지성으로 육체가 감각한 객체에 대한 지식을 생성하고 생성된 지식을 보관하고 지식을 육체로 보내 육체로 하여금 살아있는 행동체로 활동하게 하는 삶을 드러내게 합니다. 영혼이 지식을 육체로 보내지 아니하면 육체는 감정으로 활동하게 되고, 짐승과 같이 무지한 삶을 살게 되므로 사람의 삶을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처럼 육체가 없지만 지식 자체이시기 때문에 그 지식이 살아계신 존재를 드러내십니다. 지식으로 말씀하시면 만물이 창조되고, 지음을 받아 드러나고, 모든 피조물들에게 지식을 보내셔서 감각하게 함으로 하나님을 느끼도록 하실 수 있으며, 지식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게 하십니다. 그 지식은 사람이 가질 수 있고, 지식이 말씀하셔 사람으로 들을 수 있게 하며, 사람이 귀로나 마음에서 지식으로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고 영혼에 가질지라도 그 지식이 사람을 살게 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그 지식이 사람을 살게 하고 직접적으로 활동하게 한다면, 우상들에게 흔히 있는 신접한 사람의 행위처럼 그 사람의 행위는 자기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 안에서 행하는 행위가 되므로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사람의 영혼에 받아질 수 있어도 그 지식이 사람으로 하여금 활동하게 하는 삶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사람과의 구별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최초 사람을 지으실 때부터 영혼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주심으로 형상 안에 지식을 함께 주셨습니다. 이 지식은 하나님께서 가지진 모든 지식으로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처럼 지식으로 살 수 있도록 주셨고, 영혼 안에서 조명하여 지식을 생성하도록 비춰주는 거울 같은 역할을 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영혼은 이처럼 하나님의 형상의 조명에 의해 육체로 감각한 모든 것들과 하나님에 관하여 지식을 생성하여 가지고, 그 지식이 채워져 하나님 앞에서 채워진 자기지식으로 완전한 객관자로 서서 하나님을 대하도록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지음을 받은 사람의 영혼, 곧 하나님의 아들들이나 정욕으로 말미암아 태어난 모든 이방인들의 영혼은 빈 서판으로 이 세상에 보내어 졌습니다. 이들의 목적은 빈 서판인 영혼에 하나님의 형상의 조명을 받아 자기지식을 가지는 것인데 이 지식은 하나님의 형상이 비춰준 지식이므로 진리의 지식이 되지만 하나님의 지식처럼 전능자의 기운을 가진 것이 아니라 피조물의 지식이기 때문에 본질에서 구별될 뿐 내용에 있어서는 구별되지 않은 완전한 지식이 되는 것입니다.
이 지식은 육체나 영혼을 활동하게 하는 생명을 드러내는 지식이 됩니다. 이 지식이 있어 하나님을 대하게 될 때 그 지식들이 피조물인 사람에게 하나님을 인식하고 지각할 수 있도록 함으로 하나님께 상대적으로 대할 수 있게 하고, 사람이 육체로 사는 날 동안 객관적인 모든 객체들과 관계를 가질 때 지식으로 인식하여 자신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결국 사람은 지식으로 사는 존재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처럼 사는 존재이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이어서 하나님의 형상을 부여 하셨던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지식을 주시지 않고 다윈론자들의 주장과 같이 사람이 자연과 환경에 의해 자연적으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고 가정한다면 “피조물인 사람이 지식을 제 멋대로 자유롭게 생성하게 되고, 그 지식들은 객관적으로 제 역할을 할 수 없게 됩니다. 그것은 각 사람의 지식은 영혼의 감성에서 자기지각을 통해서 완성된 지식을 갖고 전인이 인식하게 되는데 이 지식이 개별적인 지식이기 때문에 객관적 지식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동일한 지각을 가져야만 합니다. 게다가 환경과 자연적 상황에 따라 가지는 지식 체계가 결코 같을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이 생성한 자기지식을 자기가 지각한 것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인식되어지는 지식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각기 자기의 지식 체계를 가지고 지식을 생성한다면 결코 공통적인 지식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의 지식은 각기 자기의 지식으로 지식을 가지기 때문에 이것을 통합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이 지식 통한이 자연의 환경의 변화에 따라 함께 변화하였다는 것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그야말로 신적인 상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살펴보아도 사람과 사람이 개별적인 존재관계에서 공통적 지식을 생성할 수 있는 본유적으로 어떤 모본을 가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결코 공통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지식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윈론자들에게는 생물체인 사람이 이런 지식을 공통적으로 가질 수 있는 본유 지식이 있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그것이 있어야 하는지 조차도 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윈론자들의 오류를 지식으로 분명히 알고 있을 지라도 사람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영혼에 지성이 있고, 그 지성이 지식을 가지며, 그 영혼 안에 지식을 채워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가득 채워졌다면, 그 영혼이 영원한 세상에 갔을 때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존재로서의 삶을 충분히 드러낼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영혼 안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없고 하나님에 관한 지식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하여 원수로 여기는 부정적인 지식만 가득 가진 사람이 영원한 세상에 들어갔다면 그는 그 세계에서 무질서하고 혼란스런 삶만 살 뿐입니다. 그의 지식은 하나님에 대한 개념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질서롭고 조화로운 선한 나라에서 무질서하고 부조화로운 삶을 드러냄으로 모든 관계가 깨어지고 말 것입니다. 이런 경우의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사람들은 생각할 것입니다. 영원한 나라에 들어간 영혼이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났다면 만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식할 것이 아니냐? 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영혼이 육체를 벗어나서 어떻게 되는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지금은 아무렇게나 말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실지로 영혼은 육체가 없으면 결코 새로운 지식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바로 이 신비가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고 사람으로 하여금 완전한 존재가 되도록 하신 뜻과 목표였던 것입니다.
결국 지금 우리가 육체로 살아 있는 이 동안 하나님에 관하여 지식을 가지지 못하면 영원한 저 나라에 가서 하나님을 아니 낙원에 관한 그 어떤 지식도 영혼은 가질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은 우리의 육체와 함께 있을 동안에만 지식을 생성하여 가질 수 있고 육체를 벗어나서는 다시는 지식을 가지지 못한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사람에 관한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아시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영혼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가득 채워 하나님의 나라에서 객관적으로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고 그 하나님과 교제를 가질 수 있는 존재가 되게 하시기 위해 모든 피조물보다 더 완전한 존재로 보내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비록 하나님의 아들들의 정욕으로 태어난 비극적인 존재이지만 생명체로 태어나는 것은 하나님의 허락으로 말미암았고, 그 허락에는 우리의 영혼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득채워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을 기대하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하나님의 기대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람은 자기의 영혼에 부여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습니다.
얼마간 하나님의 형상이 사람의 영혼에서 찬란하게 조명하여 지식을 가질 수 있었으나,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림으로 그 안에 있는 본유지식 마져 상실함으로 사람의 영혼은 어두워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지성의 어두움입니다.
어두움은 곧 무지와 결함의 상태를 말합니다.
이제는 사람이 새로운 객체에 대한 감각을 가지면 그에 대한 지식을 조명해주는 본유지식이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 상태가 자기에게 경험된 감각이나 객체에 대하여 인식할 수 있는 지식을 가질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부득이 하나님의 형상의 조명이 있었을 때 가졌던 자기 안에 있는 자기지식의 조명으로 지식을 가지려 하지만 이미 가진 지식과 감각된 객체와 차이로 인하여 드러난 무지와 결함 부분에 대해서 같이 무지와 결함의 상태로 지식을 가지게 됨으로 모든 지식에 무지와 결함이 함의되게 된 것입니다.
무지, 이것에 대한 감각이 무엇일까요?
이것은 없는 것이 아니고 지식이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존재하는 객체에 대하여 인식할 수 없는 지식을 무지라 하는데, 존재하는 객체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은 그것이 자신에게 대해서 어떤 영향을 주는지 파악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영혼은 이것으로부터 두려움을 지각하게 되고 이 두려움은 육체에 인식되어 사람이 두려움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모든 두려움은 무지의 감각에서 오는 것입니다. 무지는 또한 공포를 지각하게 하는데 곧 감각된 환경이나 객체의 상태 등이 이어질 행동이나 나타난 결과등이 자신에게 미쳐질 상황에 대한 두려움 이상의 감각을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자신에게 어떤 결과가 일어날지 모르는 무지의 지식이 지각되는 결과입니다. 이로부터 사람의 영혼이 쏟아내는 무질서하고 부조화로운 지식들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사람의 영혼은 혼란스럽고 조화롭지 못하며, 무질서합니다.
사람은 자기 존재에 대한 보호 본능이 작동하여 모든 지식이 삐뚤어져 있고 온전하지 못합니다.
자기 존재 이상을 생각할 수 없는 영혼은 모든 상황에서 자기 비상체제에 처하게 됩니다. 그래서 외부와 단절시키고 모든 의식을 자기 중심으로 하게 됩니다.
마음을 열고 세상과 연합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의 영혼은 패쇄적이고 지극히 자기중심적이어서 객관적으로 통용되는 질서를 가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일컬어 영혼에서 나오는 독화살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자기중심의 지식들은 결국 자기보호 본능에서 쏟아져 나오는 지식들이기 때문에 객체들에게 전혀 유익이 되지 않고 경계를 갖게하며 두려움을 주는 독사의 독과 같은 지식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는 사람의 입에 독사의 독이 있고 그의 입술에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다고 말하는 의미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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