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강해1

십계명 3계명1

생명있는 신앙 2009. 4. 3. 08:23

본문:열왕기상 8장 22-30

하나님의 이름의 중요성에 대하여 성경은 많은 교훈을 주고 있읍니다.

무었보다도 가장 중요하게 말하고 있는 사람은 다윗왕입니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 된후에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려고 하였읍니다.

이대에 전을 건축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곳에 거하게 하시려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모실 곳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대답하시기를 왕상8:16, 내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내 이름을 둘만한 집을 건축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서 아무 성읍도 택하지 아니하고 다만 다윗을 택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였노라 하신지라. 내 부친 다윗왕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더니 여호와께서 내 부친 다윘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할 마음이 네게 있으니 이 마음이 네게 있는것이 좋도다 그러나 너는 그 전을 건축하지 못할 것이요 네 몸에서 낳을 네 아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리라 하시더니 이제 여호와의 말씀 하신대로 이루시도다 .라고 솔로몬이 기록하였읍니다.

이곳에 기록된 성전의 내용이 줄곧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집이라고 기록하고 있읍니다. 삼하 7:13절에 다윗에게 약속하신 내용이 “저는 내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지 않을 것이요” 다시 말하면 다윗이 여호와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읍니다.

그때 여호와께서 나단을 통해서 하신 말씀이였읍니다.

솔로몬이 이 약속을 지켜 솔로몬 하나님의 이름이 거할 성전을 지엇읍니다(왕상9:3).

여기까지만 읽어도 십계명에서 주는 의미와 예루살렘에 지어졌던 성전의 의미를 살펴 보면 하나님의 이름이 인간의 세계 즉 택함을 받은 이스라엘에게 얼마나 의미있는 일인가 확인을 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친수로 쓰신 계명에도 등장함으로 더욱 확실해 졌읍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영이시기때문에 그 어떠한 형상도 상상할 수 없읍니다. 다시 말한다면 피조물인 인간의 마음에 하나님의 어떠함이 형상으로나 상상으로나 기억되고 조성 되어진다는 것은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이 인간의 마음에 제한되게 그리므로 형상화의 가능을 말하게 되고 곧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에 미치게 될 것이 뻔한 모독이라고 말할 수 있읍니다.

크고 위대한 성전에 하나님의 이름을 두었고 그 이름은 하나님께서 감찰하시고 살피시는 대상이 됩니다.

그곳에서는 영광이 드러났고 하나님께서 언제나 응답해 주시므로 살아계신 것을 이스라엘에게 보여 주셨읍니다.

모세가 죄인이였으면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마음에 담고 애굽에 나아가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바로 앞에 서서 이스라엘을 돌려 줄것을 요구 한 것도 그 마음에 여호와의 이름밖에 없었읍니다.

그가 행한 능력과 표적들은 여호와께서 모세의 요구에 따라 이루어지게 하셨고 요구가 아닌 일을 하시지 아니하시므로 모세의 위대성을 바로에게 보이셨읍니다.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위대성을 바로에게 보이셨지만 여호와의 이름을 마음에 두지 않는 바로는 이러한 일들을 여호와의 능력이라고 믿을 수가 없었읍니다.

모세는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을 마음에 심겨지게 되었고 모세가 하나님을 부를때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응답하시므로 교제할 수 있게 되었읍니다.

우리가 해결하고 넘어갈 한가지 문제가 있읍니다.

그것은 모세가 여호와 앞에 선것이 죄인의 상태였지만 성경은 죄인은 하나님께서 그 얼굴을 가리우신다고 기록한 것을 보게 되는데 모세가 어떻게 하나님과 대면을 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읍니까?

먼저는 이것은 본질상 은혜에 기인 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한다면 여호와의 가까이 할 수 없는 죄인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로 죄인의 죄를 가리워 주셨다는 것읍니다. 이 것은 모세도 그 내용을 알지 못하나 여호와가 모세와 대면 했다는 것으로 모세에게 있었던 죄가 그 무엇인가에 의해 하나님의 눈에 가리워 지게 되었다는 것읍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성경을 읽을때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지금 말씀 해 주시는것으로 읽게 되면 이러한 가리움으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에 접근을 할때에 우리의 마음에는 여호와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는 것을 증거 하게 됩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에 성경을 향한 마음을 주시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서 성경의 말씀을 듣는것입니다.

 

변함이 없는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읍니다.

하나님은 무소부재 하시는 분이시다.

피조물이 하나님앞을 떠나서 존재할 수가 없읍니다.

그런대 사람은 자기가 하나님께서 보시지 않는 곳에 거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읍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이고 범죄함으로 여호와의 심판을 받아 하나님앞을 떠나가려고 「놋」땅으로 갔읍니다.

우리는 이러한 것을 하나님을 떠난 가인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생각은 하나님의 모소 부재라는 말을 인정하지 않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제 성경을 읽고 성경이 말하는 은혜를 받는자와 받지 못하는자를 살펴 본다는 것은 너무다도 중요한 일입니다. 이 일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확신을 주고 우리로 불변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있음을 확인하게 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게 합니다.

호랩산에서 하나님을 만났다고 하는 모세의 기록에서나, 하나님을 떠났다고 하는 기록에서나, 모두 제 2계명이 가르치는 의미를 위한 접근임을 우리는 확인해야 합니다.

제 2계명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히 일컫지 말라󰡕� 십계명이 본질상 인간의 마음에 기록하는 내용이라면 우리의 마음에 기록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히 일컫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불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본질상 피 조물은 하나님 앞을 떠날 수없읍니다.

죄인도 원수도 미움을 받는 불신자도 강도도 도둑도 모두 하나님앞에 서 있습니다.

다만 그의 마음에 여호와의 이름이 있느냐 있지 않는냐 라는 중요한 질문만 있을 뿐입니다.

모세에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우리성도들에게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함 과 같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모세를 보게 됩니다. 그런대 바로에게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지 못합니다. 바로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새겨져 있지 않습니다.

왜 바로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새겨져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이름을 바로의 마음에 새겨두지 않으셨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세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서 우리에게도 모세와 같이 마음을 새겨주시므로 신앙의 모습을 드러나게 하셨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하셨읍니다.

우리가 신앙의 생활을 한다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나셨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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