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설교

믿음이 있는가(마 8:15-16)

생명있는 신앙 2010. 1. 31. 04:19


이것을 바탕으로 오늘 성경의 본문을 간단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과 함께 자기 집에 갔습니다.

옆에는 구경꾼들이 많이 있습니다.

바리세인들도 있고 백부장이 보낸 군인들도 있습니다.

베드로의 집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여러 가지 문제가 있으나 그중에 가장 급한 문제는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라 여러 마을을 다녀 집에 온 것입니다.

본문은 3 복음서 저자가 기록하고 있는 공동 이야기입니다.

마가복음 1:30의 본문을 보면 이렇게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는지라 사람들이 곧 그 여자에 대하여 예수께 여짜온대”

이것은 베드로의 설교를 마가가 기억하고 있다가 기록한 내용입니다.

 

마태는 문둥병자를 고치시고 백부장의 하인을 고치신 사건을 보이셨고 곧바로 베드로의 집을 이야기합니다.

이는 베드로는 충분히 예수께서 행하신 사역을 알고 있고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집에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있는 상황에서 예수님께 아무런 청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가장 시급한 일은 질병에 고통을 당하는 것을 해결하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가장 많이 하신일이 질병을 치료하시는 일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 앞에 나서서 자기의 믿음을 보일 필요가 있었습니다.

장모님의 아픔을 예수님께 고하고 고쳐 주시기를 요청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마땅히 장모님의 질병을 고치는 일이 가장 급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다른 일에 관심을 두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아직 예수님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인지 잘 모르고 아직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믿음이 일어나지 않은 상태인 것입니다.

 

믿음이 있습니까?

예수님께 적극적으로 기도하고 호소하고 부르짖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도움을 청하는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자기 신상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말하고 도움을 청하는 것처럼........

하나도 숨김이 없이 자신의 주위에서 일어난 일들에 관해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고 믿음이 있는 행동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다고 하는 사람이

예수님께 기도하지 않는 것은 예수님을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면 자신을 맡기지 못하고

자신을 맡기지 못하면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는 아직 예수님에 의해 정복 당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아직 자기 자신으로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그분에게 여러분을 맡기고 도움을 청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있는 문제를 그분에게 말하고 도움을 청하십니까?

베드로와 같이 문제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예수그리스도께 말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과 멀리 떨어져 각방을 쓰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자기의 고민을 예수님께 말하기 전에 자기의 공로를 예수님께 보이려고 노력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남편과 각방을 쓰고 있는 아내가 돈을 벌어다 남편에게 준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남편에게 기쁨이 되겠습니까?

남편과 아내에게 즐거움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아내는 남편을 믿어주고

남편은 아내와 가족을 돌보며

관심을 가져주고 사랑해주는 것입니다.

이런 가정에는 돈이 없어도 사랑으로 이겨 나갈 수 있는 무한한 에너지가 있습니다.

둘이 함께 하기 때문에 어떤 어려움도 이겨 나갑니다.

그러나 각방을 쓰면서 돈다발을 던져 준다고 행복이 있겠습니까?

 

믿음은 서로에게 아픔과 허물이 있어도 덮어주고 용서하고 사랑하고 함께하는 것입니다.

이제 주님과 한방을 쓰십시오.

화해하십시오.

주님께서는 여러분의 아픔을 아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치료해주십니다.

여러분의 남편은 전능자이십니다.

여러분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실 분이십니다.

 

보다 못한 구경꾼들이 예수님께 요청합니다.

예수님 안방에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장모에게 다가가셨고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그 여인이 즉시로 일어나 예수님의 수종을 들었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바라 보십시오.

베드로와 같이 예수님께 뭘 해드리려고 신경 쓰시지 마십시오.

예수님은 그런 것 보다 여러분이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오시는 것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기뻐하십니다.

여러분이 행동으로 예수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 한다고 생각하는 그런 열심은

믿음이 없는 사람들의 허울에 불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만 하십시요.

그의 아내가 되십시요.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것은 우리의 지식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생성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바탕이나 근원이 없습니다.

본래 우리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셔야만 합니다.

이것이 태양 빛이 우리에게 와야만 밝은 빛을 볼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계시이고 즉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오면 우리의 영혼에 그대로 들어오고 그 들어온 말씀이 우리를 점령하여 우리로 인식을 갖게하는데 그것을 믿음이라는 반응입니다.

이 믿음은 철저히 듣고 나타나는 들은 지식에 반응하게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사도는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롬 10:17)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