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설교

설교연구의 예6 (믿음이 있는가? 마8:14~15)

생명있는 신앙 2010. 1. 2. 17:02

본문: 마 8:14~15

예수께서 베드로 집에 들어 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누운 것을 보시고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1. 등장인물

예수님

베드로장모

무리들

베드로

제자들

2. 사건의 내용

예수께서 베드로의 장모를 고치셨습니다. 이 내용으로 보면 예수를 믿지 않은 사람이 누구인지 드러내 준다.

3. 본문 요약

베드로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누운 것을 보시고 고쳐 주셨으나 이는 순전히 예수님의 뜻에 의한 것이며 예수께서 세상에 병든 자들을 찾아다니셨음을 보이시는 내용이다.

4. 신학연구

1). 공통본문연구

마가복음 1:38

누가복음 4:38~39

2). 역사적 배경연구

3). 저자의 사상적 배경연구

저자와 분문과의 관계: 마태가 이 사건을 목격하고 있었고 이 사건은 마태뿐만 아니라 많은 유대인들이 같이 목격한 사건이다.

저자가 본문의 자료를 이용하는 기록당시의 관계: 직접 목격함,

본문이 저자에게 미치는 관계: 병을 고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능력을 목격함으로 더욱 자신의 세리인 상황이 더욱 비참해짐,

4). 본문의 의도

본문이 설교를 듣고 있는 청자들에게 주는 의미:

본문을 통해서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사람의 삶을 직접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보여주고 인간이 빠져 있는 상황이 어떤 것인지를 열어 보이시고 있다. 인간은 지금 비천에 빠져 있다. 질병과 고통과 아픔과 로마의 식민 지배로 인한 주권을 상실한 상황 그리고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하여 질병의 아픈 상황에서도 문제의 해결을 받지 못하고 열병으로 고통을 당하며 누워있어야 하는 비천한 사실을 볼 수 있게 한다. 이런 사건이 본문을 통해서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본문의 앞뒤 내용에서 극명하게보이고 있다.

인간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의 상황에 직면해 있으며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뿐 이시고, 하나님으로부터 문제를 해결 받지 아니하고서는 수없는 문제에 직면하고 고통 속에서 낙망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본문과 본문의 저자를 통해서 알 수 있게 한다.

5). 성령의 의도

성령께서 본문에 나타난 사역을 통해서 진정한 신자가 어떤 사람인지 보이시고 있다.

공통본문에 의하면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낫게 해주시기를 구한 사람들은 무리였다. 무리란 예수님이 사역을 구경하고 따라다니는 무리들인 것이다. 베드로는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있으며 고난을 당하고 있으나 이 문제에 대해서 주님께 요청하여 장모를 열병으로부터 자유를 얻을 수 있도록 간청하지 않는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간청하지 않는 베드로에 대한 믿음이 없음을 보이시고 그가 어떤 과정을 통해서 믿음을 얻게 될지 마태복음 전체를 통해서 보이시고 있다. 이런 주장은 저자 마태가 의도하지 않았다. 마태는 단순히 예루살렘의 멸망에 관한 예수님의 예언의 확실한 증언을 위해 교회가 이를 자주 확실히 인식하도록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마태의 의도 외에 수많은 사실을 오늘 우리에게 보이시고 계신다. 우리에게 우리가 구하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을 책망하시고 계신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하나님을 믿는 크리스챤이라고 당당히 말하는 것을 보게 된다. 믿는 신자는 자기의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확실한 믿음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크리스챤이라고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삶 깊숙이 관여하시고 개입하시는 것을 부정한다. 마치 베드로처럼 자기의 삶의 환경에 지배하고 있는 문제들은 자기 스스로 해결하려고 안감 힘을 쓰고 있으면서 자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만 직성이 팔린다. 다시 말하자면 문제를 예수님 앞에 내어 놓지 않고 감추며 숨기려한다. 베드로는 예수님에 의해서 부름을 받아 제자가 되었고 가정의 어려운 상황을 뒤로한 체 예수님을 따라다니고 있다. 베드로는 무수히 많은 기적을 목격했다. 그런데 진작 자기에게 닥쳐진 문제에 대해서 예수님께 해결 받기를 요청하지 않는다. 성령께서는 베드로와 같이 신자들이 문제에 대해서 예수님께 진실한 마음으로 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책망하시고 계신다.

5. 교리적 연구

1). 하나님의 섭리하심

인간의 삶속에 개입된 모든 사사로운 문제라 할지라도 모두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만이 해결될 수 있음을 보이신다. 고도의 정밀도를 가진 로봇인간이나 최첨단 기계들도 문제의 해결은 인간이 하는 것 처럼, 인간의 삶이 비록 자기에게 있을지라도 고도의 정밀한 계산에 의해 지음을 받았으므로 결국은 인간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해 주셔야만 한다. 인간은 문제를 일으키기 위해서 위험한 상황에 빠져들고 위기에 봉착하여 어러움을 만날 수 있으나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것은 인류의 역사가 계속된다 하더라도 결코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께 지음을 받은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여러 번의 위기를 만날 수 있다. 여러 번의 위기는 인간의 삶에 일대의 전환을 가져 올만한 위험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또한 직면하여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위기와 직면된 위험한 상황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뿐이다. 교리적으로 인간이 직면한 수많은 위기와 어려움들은 믿음으로 만이 벗어날 수 있으므로 자기가 처한 상황을 분명히 하나님께 구하고 해결 받을 수 있는 신앙이 요구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본문이다.

2). 하나님의 주권

인간이 자기의 생명을 자기의 육체 속에 가지고 있을지라도 분명한 삶은 주인이신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의 것이란 존재하는 모든 인간이 자의적인 생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지음을 받았을 때 분명한 목적이 주어진 상태에서 이 세상에 보냄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인간의 자유를 빼앗아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자유를 가지고 있지만 자유로운 삶이 인간이 이해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에 앞서지는 않는다. 하다못해 성경에 잠시 등장하고 그의 삶이 전혀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베드로 장모의 삶이 예수님을 만나기 위한 목적으로 이 세상에 보내어 지므로 태어나게 되었고 베드로의 아내를 낳을 수 있었으며 베드로의 집에서 열병이 걸려야 했는지 우리는 이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존재방식이 인간의 존재 방식과 같지 않기 때문에 인간의 두뇌로는 이해가 안 되는 것처럼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방식과 계획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고 다만 이 세상에 보여주시는 것만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의 보여주심이다.

6. 적용

본문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communication의 중요성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Communication을 위해서는 교제가 필요하고 교제는 서로간의 깊은 신뢰와 서로에 대해서 알 수 있는 폭넓은 인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인간의 한계와 인간의 삶의 배경과 상황 그리고 문제의 출발과 종점까지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오히려 인간은 하나님을 인간수준으로밖에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인간 이상의 수준으로 이해하여야 하는데 인간이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존재 양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하나님은 삼위일체시며 무한하신 신이십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지으셨고 단순히 유한한 존재에 불과합니다. 인간이 무한하신 하나님과 교제를 하려면 무한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데 알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지적인 수준으로 낮아지셔서 보여주십니다, 이것을 계시라고 합니다 계시는 하나님의 존재 양식뿐만 아니라 인간이 가지고 있는 최대한의 지적인 능력으로 하나님을 깨달아 알 수 있는 유한한 범위에서의 지식입니다. 이 지식에 의해서 인간은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베드로에게 예수그리스도 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모이시는 분명한 여러 가지의 사건들이 많이 나타납니다. 자신을 부르실 때 나타난 이적들, 그리고 수많은 여러 가지의 사건들, 등등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이 분명히 보여 주셨으나 베드로는 아직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해결해야 하고, 무엇이 중심인지 전혀 모르고 그져 부름을 받은 상태에서 끌려 다니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는 대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앞에서 많은 기적의 사건들을 보면서 자기에게 있는 문제에 대해서도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도

 

사랑

 

교육

 

하나님의 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