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창조목적[1]

죄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으므로 2

생명있는 신앙 2010. 4. 3. 08:18

무수한 재앙이 나를 둘러 싸고 나의 죄악이 내게 미치므로 우러러 볼수도 없으며 죄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으므로 내 마음이 사라졌음이니이다.(시편 40:12)


계속해서 말씀을 드린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목적이 피조물을 관리하고 피조물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돌려 드리는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고 하나님과 온전한 친교 가운데 있을 때 사람은 참된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거듭나 주안에 있는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을 가장 우선으로 생각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주와 함께 기쁨을 누려야하겠습니다.


어제 제가 자연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이 하나님께 돌려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어제까지 소란스러웠던 저 바다를 보십시오.

물결치는 파도,

하늘의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금빛 가루들

넓은 바다의 품속에서 미끄러져 가는 아주 작은 거룻배,

어제의 소란스런 재앙을 숨기며 위태롭기만 한 물위를 어머니의 품에 안긴 것 처럼 떠있는 새들,

바위에 부숴지는 파도들

부서저 깨어져 만들어진 폼알들

금방이라도 모래를 쓸어버리고 가져갈 듯한 밀려가는 썰물,

바다의 모든 것들을 가져 올 것 같은 밀려오는 밀물들,

저 넓은 바다가 감추고 수많은 아까운 꽃다운 청년들의 생명을 앗아간 바다의 겉모습을 보십시요.


산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소나무들이 일렬로 하늘을 향하여 솟구쳐 오르고 있었습니다.

들판과 경계한 면에 있는 소나무나 산 깊은 곳에 있는 소나무가 다 같이 크기와 모양이 아름답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누가 조절하지도 않았는데 소나무들은 크기와 모양이 비슷했고

두 팔을 벌리고 있는 가지들과 산과 들판의 경계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상태에서 조화롭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소나무들이 여럿이 사이 간격이 빽빽한 곳에서 자라나는 산속의 소나무들과

사람들이 캐내어 도로가에 심은 소나무의 모습이 달랐지만,

그것들이 제 눈에 보기에 아주 작은 흠도 발견할 수 없는 조화로운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빽빽한 곳의 소나무는 자라나 하늘을 솟구치면서도 서로가 연합하여 주위의 환경과 조화를 이룬 듯 사람의 눈이 보기에 좋았으며 도로가에 홀로 자라고 있는 소나무는 아래에 큰 가지와 위의 작은 가지가 조화롭게 자라 전체로 정 삼각형을 이루고 하늘을 향하여 오르고 있었고, 들을 나는 새들이 깃들일 수 있도록 어깨를 내어주고 새들이 그곳에 둥지를 틀고 배설물을 배설하고 시끄럽게 노래해도 나무는 활짝 웃고 있었습니다.

또하나 빽빽하게 심겨진 나무들과 따로 홀로 드믄드믄 심겨진 나무들과 자라나는 모습들이 달랐고 그것들이 사람들 눈에 보기에 전혀 흠이 없는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작은 언덕은 푸른 잔디가 아지랑이를 불어내며 대기의 공기를 따뜻하게 하는것은

한겨울 어린 소년이 눈을 뭉쳐 뭉치를 만들고 손시려서 호호부는 것과 같고

그 잔디 가운데 비짇고 올라온 민들레와

또 다른 알 수 없는 크고 작은 풀들이 꽃망울을 머금고

위로 얼굴을 내밀고 금방이라도 고운색을 드러낼 것 같습니다.

발에 밟힌 꽃들이 아파하며

아무런 항거도 하지 않고 다시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쓰고

부숴진 자기의 몸에 온힘을 다주어 몸을 세우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밟아버린 그 꽃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손으로 세워주려고 했으나 다시 쓰러지며 저에게 말하기를.

“나는 당신을 욕하지 않습니다. 저는 욕이 뭣인지 모릅니다. 당신은 밟았으나 하나님께서 나를 다시 세울 것이고 하나님께서 은총을 베푸셔서 다시 세우시니 저는 행복합니다.”라고 노래하고는 내 힘을 의지하지 않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을 의지해서 일어났습니다.

이것도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옮겨 심어 도로를 아름답게 가꾸는 꽃들은 형형색색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아무런 불평도 불만도 없이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지으심을 나타냈고 들판에 어지러이 널부러진 지푸라기 가운데 무수히 많은 생명들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봄의 햇빛을 받아가며 자연을 아름답게 꾸미려고 발 돋음하고 있었습니다.


누가 이 자연들을 기획했습니까?

누가 이 자연들에 무수히 많은 생명들을 설계했습니까?

누가 저 많은 생명들에게 영양분과 물을 공급하고

저들이 적당한 때에 형형색색이 아름다운 꽃들로 들판을 장식하게 하고

누가 저 많은 하늘을 나는 새들의 먹이를 주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했습니까?

여러분은 들판을 일구어 먹을 것을 심고 땅을 뒤집어 잡풀들을 뽑아내고 여러분의 생명을 위해 여러분이 필요한 식물들을 심고,

집을 짓고 가둘 수 있는 망을 치고 닭이나 오리 그리고 각종 새들 집짐승들을 키운 다음에 조금도 미안한 마음도 없이 그것들의 생명을 빼앗고 칼로 치고 팔을 잘라 피를 내고 불에 굽거나 도리쳐 찌개를 끓여서 먹어버리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그리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지으시고 어려분이 적당히 자라나니까

아주 잘 자랐다 이제 잡아먹자

그러고는 살코기가 많이 붙은 엉덩이와 허벅지를 불에 굽고 갈비는 살이 없으니 들짐승에게 던져 주고 내장은 사람들이 온갖 더러운 것을 먹었으니 땅에 묻어 버리든지 아니면 더 잔인하게 잡채로 부추 등 각종 양념으로 간을 치고 내장을 세탁기에 빨아 더러운 지방을 뜯어내고 순대를 만들고, 골은 맛있으니 얼굴채 쟁반위에 올려놓고 여러분이 랍스타 가제의 두꺼운 갑을 뜯어내 속살을 파먹듯이 퍼 뇌의 뚜껑을 열고 잡수시려고 여러분을 이 땅에 지으셨습니까?

여러분이 살기위해 한 짓들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여러분의 생명을 위해 하나님이 지으신 수많은 생명들에게 얼마나 잔인하게 대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여러분들의 잔인한 행동을 알고 그것들이 얼마나 여러분을 싫어하고 두려워하는지 아십니까?

짐승들의 눈에는 여러분의 이중적인 마음을 가진 그것이 밥을 줄때에는 천사와 같으나 칼을 들고 잡아먹으려 할 때에는 바다가 그 모습을 감추고 여러분들의 영혼을 삼키려 하는 것과 같은 숨겨진 재앙들입니다.


여러분은 그 생명들이 여러분 주위에 두신 하나님의 뜻을 아십니까?

그러고도 여러분들이 죄가 없다고 목을 세우고 하늘을 향하여 조금도 부끄러움도 없이 빤빤한 얼굴로 거리를 활보하십니까?

어디 여러분들의 죄가 그것뿐인줄 아십니가?

성경은 여러분의 죄에 대해서 낱낱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발 산속에 있는 소나무들에게서 지혜를 배우십시오.

그들은 서로 하늘을 향하여 솟구치되 함께 뭉쳐 솟구쳐 오르고 있습니다.

그들의 가지들은 거의 비슷하게 같은 높이에 있고 그들의 팔들은 서로서로 엉켜 붙잡고 있으며 그들의 얼굴들은 서로 맞대고 비비고 있습니다.

그들은 같이 자라고 같이 기대고 같이 힘을 알맞게 합하여 서로를 의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적당한 힘을 합하여 서로에게 의지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아름다움을 조금도 손색이 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들판과 경계한 곳에 있는 소나무가 힘겨워 보이지만 들판으로 넘어질듯 넘어지지 않고 자라고 있습니다.

그 경계의 힘의 균형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제 입으로는 도무지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넘어지지 않고 안쪽에 있는 나무가 힘들이지 않도록 적당하게 아주 잘 버티고 있습니다.

이것들이 하나님의 주시는 힘으로 유지한다는 것을 아십니까?

지혜를 얻으십시오

이 지혜를 가정에 도입하고

학교에 도입하고

회사에 도입하고

나라에 도입하여

서로 사랑하고 어깨를 같이하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마음을 가지고

서로서로 의지하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생명을 주는 날까지 그리하십시오

그리고 날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자연이 드러내는 아름다운 모습을 지으시고 붙드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또 그것들이 얼마나 지혜로운지 아십니까?

그것들 가운데 하나를 캐내어 따로 심어 보십시오

뿌리를 내리고 힘을 지탱할 수 있을 때까지 안감힘을 쓰고 마치 병든자와 같이 고생하며 자리를 잡습니다.

자리를 잡고 난 다음에는 어떻게 하는지 아십니까?

자기가 혼자 있다는 것을 압니다.

사람이 옷을 입고 매무세를 살피듯이 그것은 자기의 모습을 자연과 조화롭게 하려고 자기 메무세를 자연에 맞추어 살핍니다. 그래서 그가 그 자리에 있어서 가장 보기에 좋은 상태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그리고는 사람이 보기에 가장 아름다운 상태로 자리를 잡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발견하고는 그들이 왜 내 눈에 보기에 아름다운 모습을 가지려고 하는가? 으아했습니다. 하나님보시기에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야하는데 왜 제 눈에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는가?

그때 저는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하찮은 나무 한 그루가 제 눈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이려고 메무세를 하고 아름다운 여인처럼 자태를 뽐내려고 하는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마땅히 하나님께 해야 하는데 제 눈에 그렇게 보이도록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제 눈에 아름답게 보이지 않으면 제가 그것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습니다.

 

그렇게 저더러 자기를 만드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이 땅에 지음 받은 모든 피조물들이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자기에게 가장 적당한 모습으로 자연에 어울리게 조화를 맞추고 적당하게 알맞은 크기로 자라서 사람의 눈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고 사람의 눈에 비취며 자연에 있는 피조물들이 스스로 하나님을 향하여 영광을 돌리지 못하므로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사람의 눈높이에 맞춘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제눈에 보기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연이 메무세를 갖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먹고 마시고 하나님의 영혼으로 살고 있으면서 하나님께 대한 감사는 조금도 없고 영광을 돌리는 모습도 없습니다.

저의 생각으로는 하나님께서 저의 잔인한 행동들을 보시고 심판하시지 않는 것이 이상합니다. 제가 하나님의 지으신 목적에 이르지 못해서 가장 먼저 희생되는 죄악 형벌의 먹잇감이 될터인데 지금도 살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살기등등한 눈으로 잡아먹을 짐승들을 살피고 있는 추악한 모습을 가진 제가 너무 너무 싫습니다. 게다다 사람들에게 온갖 불신을 조장하고 미워하고 원망하고 사기하고 도적질하며 사랑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는 제 모습이 싫습니다.

아무리 회개를 해도 죄악을 앃을 수 없습니다.

사람은 타락하였어도 자연은 쉬지 않고 천지를 지은 그날부터 오늘까지 하나님을 향하여 천지를 지으심에 영광을 돌리고 찬양해 오고 있었습니다만 그 영광의 찬양을 그들이 하나님께 돌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오늘이야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모습을 살펴 볼 차례입니다.

 

고난주간 다석째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