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임재 (3)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출 25:22).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심은 창세기 1:26~28에 말씀하신바와 같이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라고 하시며 남자와 여자를 지으셨습니다.
사람을 지으시는 목적을 살펴보는 가운데 희미하게 발견한 사람의 임무에 관하여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사유를 넓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부여하신 임무의 중요성을 살펴보고 하나님께서 왜 이 일을 사람에게 주셨는지 잠시 살펴 볼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영이신 하나님의 선하심과 완전하심 또한 충만하심이 천지 만물로 발현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충만하심의 발현은 천상의 세계와 지상세계를 나뉘고
천상세계는 하나님을 보필하는 천사들을 지으셨고 하나님께서 직접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며,
지상의 세계는 물질을 지닌 피조 세계로 지으셨는데 이곳에는 하나님을 대리하는 존재가 필요하셔서 사람을 만들었습니다.
사람을 만드실 때 분명한 목적을 성경에 기록 하셨는데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목적은 하나님의 궁극적인 최종목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Jhonathan Adwards 의 하나님의 천지 창조의 목적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천지를 지으신 창조의 목적은 “하나님 자신”이라고 했습니다. 이 분야 대해서는 차후 말씀을 드릴 시간이 충분히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여러번 반복적으로 말씀을 드릴 것입니다.
“정복하는 것”은 총과 칼을 가지고 침범한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충만하심에서 나온 아름다움이 피조세계에 나타난 필연적인 환경의 문제들을 개선할 수 있는 밴쳐 정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만약 사람이 선한 마음으로 가득 채워지고 하나님의 신에 의해 영혼의 지성의 정상적인 작용을 하면 놀라운 지혜로 인해 하나님의 뜻을 잘 순종하여 하나님의 명령에 놀랍도록 완성하였을 것입니다.
이 정신은 하나님의 지으신 유한 자원을 이용하여 새로운 것들을 창조하는 모험 정신에서부터 효과적인 관리를 위한 기능 등을 정복이라 말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과 같은 능력과 동일한 의식구조, 그리고 하나님과 교제가 가능한 존재로 지으셔야 했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영광을 볼 수 있는 존재로서의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이렇게 피조세계는 하나님을 대리해서 사람에게 관리되도록 하심으로 저와 여러분을 지으신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입니다.
여기에 사람 지으심의 독특성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독특성은 지으심부터 다릅니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영광으로부터 흘러나와 주님이 말씀하심으로 “빛이 있으라” 하심 같이 만물이 지어졌으므로 그들이 생명을 다하면 흙으로 돌아가고 무의 상태로 돌아갑니다. 사람은 흙을 빚어 그 육체에 영혼을 불어 넣으셔서 지으셨기 때문에 육체는 그 생명을 다하면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지음을 받은 것이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므로 영원히 존재하는 불멸의 존재로 남아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남아 있는 영혼이 영혼으로만 있는 것이 완전하지 않으므로 이미 흙으로 돌아간 육체를 부활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완전한 영화의 옷을 입게 됩니다. 주님께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시고 산 소망이 되게 하셨으며 불멸의 옷을 입은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사람의 지으심이 다른 모든 피조물들의 지으심과 구별됨은 모든 피조물에게 주어지지 아니한 영혼을 사람에게만 주어졌다는 것이고, 영혼에는 지성과 의지를 가진 하나님의 형상이 분명하게 새겨져 있으므로 하나님과 교제가 가능하며 Comunication을 할 수 있는 존재로서 구별된 것입니다.
다시 화제를 에덴동산의 하와에게로 돌아갑니다.
하와는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에 가까이 다가갔을 때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존재가 있었습니다.
그는 뱀으로 보였습니다.
분명히 뱀이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것이 하와에게 말을 걸어 왔고 하와는 의심 없이 뱀과 대화를 했었습니다.
하와는 아무런 비판적인 의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피조물들은 사람과 같이 대화를 할 수 없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음을 받은 영혼이 있는 사람만이 하나님과 대화를 할 수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영혼을 지닌 사람은 피조물들이 드러내는 하나님의 영광을 마땅히 돌려드릴 수 있으며 자기 자신의 존재에 드러나는 하나님의 형상 역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므로 그것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하나님의 기쁨이 되게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교제가 가능한 언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의하면 하와는 뱀과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언어로 교제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뱀의 정체에 대해서 분명히 성경이 말한다면 그 답을 알 수 있습니다.
과연 뱀이 언어를 할 수 있는 영혼으로 지음을 받은 존재인지에 관해서 알아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오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오시는 것을 알고 나무사이로 숨어 자신의 몸을 감추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자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나무사이에서 대답하기를 “우리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죄의 효과는 하나님을 피할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었고, 하나님의 얼굴을 대할 때 두려움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은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추궁했습니다.
너희가 선악과를 먹었느냐?
아담이 대답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셔서 함께한 여자가 내게 주므로 먹었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즉시 여자에게 물으셨습니다.
어찌하여 네가 그리하였느냐?
여자는 뱀이 나를 꾀므로 먹었나이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뱀에게 묻지 않으셨습니다.
뱀에게는 말씀만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 3:14~15”),
하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뱀에게 대화를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뱀에게 대화할 수 있는 영혼을 부여하시지 않았습니다. 뱀은 말씀으로 “있으라” 하시므로 지으셨기 때문에 이 땅에 태어나 존재하다가 흙으로 돌아가 무가 되어 버립니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성경 어느 곳에서도 하나님께서 사람이 아닌 피조물과 대화를 하시는 말씀을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사람이 얼마나 탁월하며 완전한지 스스로 의지를 행하여 선악을 아는 존재로 까지 나아간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사람이 선악을 아는 존재가 된 것은 범죄로 말미암았기 때문에 좋은 의미의 발전이라고는 말할 수 없으나 기능상 진보된 모습은 놀랄 만큼 빈틈이 없고 정확한 것입니다.
피조물이라는 객관적인 시각으로 볼 때,
사람이 의지로 선을 행하거나 악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은 피조물로서의 완성의 상태를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피조물인 사람이 선만을 행하고 악을 전혀 모르는 존재로 드러난다면 피조물의 완전성을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어쩌면 약간 모자라는 존재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반면 피조물이 악을 행하고 나타난 결과로 인하여 슬퍼하고 괴로워하며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소원해졌으며 완전히 선을 행하는 것이 좋았을 것이라는 후회를 하고 악을 행하므로 나타난 자기 인생의 슬픔을 깨닫고 괴로워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은 더욱 완전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볼 때
사람이 비록 죄에 빠져 지옥을 가는 불쌍한 존재가 되었으나 악을 행하고 괴로워하고 슬퍼하고 후회하는 그런 모습을 나타내고 더 나은 자신의 인생의 삶을 선택할 수도 있었는데 그것을 하지 않고 반대되는 삶을 선택한 것에 대한 큰 후회를 하는 것은 피조물로서는 정말 놀라운 기능을 가진 것이며 객관적인 입장에서 볼 때 큰 기쁨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택한 악이란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입장에서 조금도 신경을 쓸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악을 선택한다고 해서 하나님께는 조금도 손해가 되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여전히 드러나고
하나님의 일하시는 섭리하심은 계획에 조금도 차질이 없이 진행되며
2,000여년 전에 핀 꽃은 오늘도 그 자리에서 피게 할 수 있으며
조금도 변함이 없는 세상을 유지 시키실 수도 있습니다.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시고,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에 따라 질서대로 유지 되어 있다가 결국은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입니다.(롬 11:36)
하나님의 계획에 아무런 차질이 일어나지 않으며 계획이 어긋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이미 다 아시고 계셨고
사람이 택한 악으로 인해 피조 세계와 하나님의 영광에 조금도 흠을 입히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드러난 악은 사람에게 전적인 피해가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 악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더욱 드러나고
피조세계에 하나님의 영광의 모습이 더욱 확실하게 나타난바 되었습니다.
이것이 예수그리스도의 오심과 죽음과 부활인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가운데 이런 질문을 하실 분이 계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시고 그들이 선과 악 중 어느 것을 택하여 어떤 상황이 될지 모르고 계셨다가 사람이 악을 택하였을 때 비로서 사람의 완전성을 이해하실 수 있는 것 아닌가?
사람이 악을 택하여 자유 의지의 선택을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타났을 때 완전한 피조물을 확신하셨다면 그 이전에는 불안한 마음으로 아직 완전에 관한 확신을 가지고 계시지 않은 것 아닌가? 라는 의문을 제기할 것입니다.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악을 매우 두려워하고 경계하시고 계시는 분입니다.
결국은 악은 하나님보다 더 큰 존재로 비취질 수 유일하신 하나님에 관한 큰 문제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께 악이 드러나는 사람에게 나타난 죄악들은 정말로 골치 아픈 것입니다.
어떻게든지 이것을 정리해야 하는데 사람이 악을 해결하지 않고 더욱 악독해지며 어려서 생각부터 악하니 결국은 하나님의 심을 거두워 가시는 상황에 이른 것입니다.
얼마나 하나님을 무능하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이런 하나님을 믿는 분들은 정말로 매일 불안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악을 이기셔서 자신의 편에 서 주시지 않으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악을 이기실 때 까지 고통스런 인생을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현대 대부분의 교회들이 이런 사상에 깊이 뿌리를 박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시기 때문에 사람도 완전합니다.
사람이 악을 행함에도 있어서 완전함이란 전제된 결과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범죄에 대한 결과를 아시고 계셨고, 사람이 악을 택한 결과에 따른 처벌을 위해서 지옥을 이미 만드셨습니다.
이것은 완전한 사람이 의지로 어느 것을 택할 것인지 사람의 의지에 완전히 부여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완전하게 지으신 사람에게 있어서 선택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사람들이 스스로 감당해야 합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불완전하게 지으시고 사람에게 죄에 대한 책임을 물으신다면 하나님께 부족하신 결과를 나타내신 것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오늘날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신 11:26”,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신 30:19”
이 말씀은 타락한 이스라엘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라 최초의 사람 아담에게도 명확하게 알려진 것입니다.
자칫 우리는 성경이 말하지 않은 것은 아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에게는 성경이 필요 없었습니다.
그는 자연을 보고 또한 하나님을 대면하여 충분히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었고 뜻을 알 수 있었으며 마음의 교통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 지혜로서 성경이 필요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악을 택하여 범죄하고 난 이후에는 그의 상태는 하나님에 관해서 완전히 소경이 되고 무지한 자가 되어 악의 방향으로만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죄를 짓지 않도록 지으시면 되지 않느냐 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완전한 상태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능히 할 수 있습니다.
너무 간단합니다.
사람이 마음에 죄를 지을 수 있는 마음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를 모르는 영혼이 되도록 하면 완전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확실히 여러 가지 면에서 불완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완전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분명히 미완성입니다.
하나님의 완전함은 피조물인 사람이 안전히 독립적인 객체이어야 합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하나님처럼 스스로 마음에서 우러나와 결정하고 깊이 사유하여 하나님의 기쁨이 되어야 하며 스스로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자기의 의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사람의 불행에 관하여 지나친 주관적인 사고에 치우쳐 있었습니다.
사람이 자기의 의지로 악을 선택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으며 죄가 세상에 들어 왔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으며 하나님과 피조물과의 관계는 단절되고 말았습니다.
피조물들은 마땅히 하나님께 돌려야 하는 영광을 사람이 정욕적으로 빼앗아 자기 것으로 취하고, 하나님의 천지 창조를 멸시하며,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의 생명을 단절시키자 사람을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악을 택한 것은 참으로 불행한 것이며, 그 결과로 영혼은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 되었습니다.
결국은 정욕의 노예가 되어 피조물과의 관계있어서 원수가 되었으며,
하나님과 관계에서도 원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모든 피조물들은 사람이 자기에게 다가오는 것을 두려워하여 가시와 엉겅퀴를 내며 하나님께서 관리하라고 하신 생명이 있는 모든 동물과 식물들은 사람을 원수로 생각하고 도망치거나 숨어버리고 심지어는 잡아먹기 위해 공격하기도 합니다.
게다가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모든 생각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하나님의 신을 사람에게서 거두워 가심으로 하나님으로 부터나 피조 세계로 부터 완전히 버림받는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인생의 삶이 얼마나 괴로우며,
하나님 없는 인생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요?
인간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지으신 우주에서 본 인간이란 생각해 보셨습니까?
그의 존재의 가치를 찾아볼 수나 있겠습니까?
어두운 밤하늘을 한번 보십시오.
안개와 같이 펼쳐진 은하계에 박혀 있는 수많은 별들을 보십시오.
저 멀리 또 다른 태양계에는 지구보다 5백만 배나 밝은 태양계가 2백 만개 이상 있습니다.
이 우주는 지금도 쉬지 않고 팽창하고 있어서 그 정점을 모르고 있습니다.
자 광할한 우주에서 여러분의 존재를 찾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여러분의 눈에 보이는 아주 작은 먼지보다 몇 백만 배나 작은 존재가 여러분입니다.
그런 여러분이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께 인생을 이야기하고 불평을 하소연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꽝스런것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존재의 가치라도 있다고 생각하고 계십니까?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알아주시며 인생이 무엇이관대 저를 생각하시나이까 [시 144:3],(시8:4, 히2:6, 욥 7:17)
사람은 헛것 같고 그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은 인생을 살피사 사랑하시고,
사람의 죄를 사하시고 용서하시어 완전함을 드러내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무한한 감사와 찬송가 영광을 돌려 드려야 할 뿐입니다.
이 무가치한 사람의 영혼 기능의 탁월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비에 가까운 하나님의 완전하신 창조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수준에 이르게 보이는 이성의 판단과 의지의 행함,
하나님과 교제가 가능한 불멸의 영적인 존재,
스스로 판단을 할 수 있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을 가진 존재, 로서 사람들이 행하는 일을 하나님이시라도 감당할 수 없는 탁월함이 존재합니다(창 11:6).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행동을 결정하고 선과 악을 분멸하며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놀라운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 지으심을 아름답게 보시는 것은 육체의 아름다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기능의 완전함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이는 이런 말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의지 선택의 자유를 주신 것이 선과 후의 과정이 있었으며 선택은 자유이지만 먼저 [전]이 있었고 나중에 [후]가 있도록 하셨다면 점진적인 완성을 의미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입니다. [전]을 “선”이라고 하고 [후]를 “악”하다고 하여 사람의 타락이 이와 같이 점진적인 과정에 의해 사람의 완전성을 드러내 준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사람이 의지로 악을 택하지 아니하고는 완전성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없는 하나님 안에서 불완전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으신 사람이 악을 행할 수 있는지 없는지 지켜보시고 사람들이 의지로 악을 택하였을 때 비로서 하나님의 창조의 완전함을 나타냈다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더 말할 가치가 없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신을 거두워 가셨지만 영원히 사람을 떠나시지 않았습니다.
우주를 보거나 피조의 세계를 볼 때 인간의 미미함을 말할 수 없는데 하나님은 지속적으로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시고 늘 가까이서 보호 하시고 지켜 주셨습니다.
결국은 아브라함을 불러 하나님의 백성을 삼으시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셨습니다.
한쪽에는 더욱 악이 가득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들이고,
아브라함으로 이음을 받은 약속의 백성들은 세상 속에 잉태되어 성장하여 나라를 이룰 수 있는 백성의 수를 증가시켰습니다.
때가 되어 하나님의 인도를 받은 그들은 이스라엘이 되어 세상으로 부터 나와 하나님이 주신 땅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 길에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임재를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친히 임재 하셔서 말씀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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