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 3:19)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말씀하시는 관점이 있습니다.
이 관점은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하시는가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사람과 대화를 해도 상대방의 수준에 따라 대화 방법이 달라집니다.
어린아이에게는 어린아리의 수준이 맞는 대화법을 구사하고
지식인에게는 지식인의 수준에 맞는 대화법을 구사합니다.
물론 어른이나 청년들에게 그에 적당한 수준의 대화 수준을 따르지 않는 다면 결코 의사 소통이 이루어 지지 않을 것입니다.
어린아이에게 어른들과 대화를 하는 지적인 언어를 통해 의사 소통을 하려고 시도한다거나
불신자에게 신자의 신앙지식 수준으로 대화를 하려고 한다면 서로간의 의사 소통은 이루어지지 않음으로 공연히 시간만 허비한 결과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과의 대화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악과를 먹기 이전에는 영혼의 지성에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은 다음에는 육체의 귀에 말씀을 하셔야 했습니다.
선악과를 먹기 이전에 아담과 하와의 영혼은 항상 하나님을 향하여 열려있는 영혼의 감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고난 이후에는 영혼의 감각을 느길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오직 육체의 감각을 통해서만 영혼의 감각을 가질수 있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범죄한 아담에게 범죄로 말미암아 받게된 삶의 상태를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저주가 아니라 아담이 선택한 자기의 삶입니다.
하나님께는 악이 없으시고 자체가 선이시며 질서로우신 분이라는 사실을 늘 망각하고 살며, 타락한 본성 때문에 사람에게 화를 내시고 진노하시는 분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그런 악에 속한 본성은 전혀 없으십니다.
사람이 느끼는 모든 진노와 저주는 스스로 택한 삶입니다.
범죄한 아담에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은 그들의 범죄를 아셨습니다.
그리고 아담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이것은 범죄한 아담이 미워서 심판하시는 것이라기 보다 사실을 알려주신 지식입니다.
아담이 어떤 상태에 처하게 될 것인지를 지식으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은 이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아마도 범죄한 자신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1. 말씀하시는 하나님.
1) 하나님께서는 사람과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사람과 말씀하십니다.
모든 피조물 가운데 유일하게 하나님께서 대화할 수있도록 지으신 존재가 사람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을 뿐만 아니라 자율적으로 스스로 모든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지으셨기 때문에 비록 하나님과 같은 생각은 미치지 못하지만 하나님과 의사를 소통하는데 부족함이 없이 지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과 대화를 하시기를 원하셨고 사람에게 말씀으로 명령을 하셔서 사람에게 불필요한 일들에 관해서 관여하지 않도록 하실수 도 있었습니다.
선악과를 동산 중앙에 두시고 그것을 먹지 말라고 자율에 맡긴 것이 사람의 피조 상태를 잘 나타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마땅히 사람이라는 존재의 기능적인 문제들이 대화를 하는데 적당한 상태이어야 합니다.
2) 하나님께서는 육체의 귀에 들리도록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말씀하는데 있어서 사람의 의식으로 이해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의 적용가능한 상태적인 변화가 필요합니다.
우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는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기본적인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실때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인것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영혼의 지성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수 있는 기본적인 지식들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런 과정이 없거나 영혼의 지성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해 될 수 있는 기본적인 지식이 없다면 들은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판단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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