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신앙

창조 1

생명있는 신앙 2011. 6. 25. 19:36

1. 창조,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1:1)

 

무수히 많은 생각과 해석, 주장, 의문, 불신, 그리고 배척이 있는 본문을 우리는 접합니다. 더 나아가 성경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여러 신학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어렵다고 투덜거리고 미리서 본문에 관하여 꺼리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그것은 아무리 성경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신학자라 하더라도 천지 창조에 관한 주제는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창조를 이해하기 쉽게 접근해 보려고 하지만 전문적 사고를 가지지 않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 가늠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의 노력이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창조 지식에 관하여 첫째 본문 지식의 근원, 두 번째 본문 지식의 타당성, 세 번째 본문의 의미, 네 번째 창조 정의와 그 명료성을 살펴보고, 다음으로 창조 내용에 관한 규칙들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첫째 어떤 환경에서 창조 사역을 하셨는지, 둘째 하나님께서 어떻게 천지를 창조하셨으며, 셋째 무엇을 만드셨는지 살펴 볼 것입니다.

 

1) 창조 지식의 근원.

 

창조 지식의 근원이란?

창조라는 내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식이 어떻게 사람들의 언어로 불려지게 되었는가?

이것을 처음 말하는 사람이 누구이며 어떻게 성경의 첫 장에 기록되어 하나님의 천지 창조를 선포하고 그것을 글로 기록하게 되었는가? 에 관하여 사실적으로 탐구하여 그 지식의 출처를 살펴 보는 것입니다.

 

창조라는 언어가 히브리어나 헬라어나 혹은 아람어가 되든지 그 언어의 의미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라는 단어에 그 의미와 내용을 함축하여 표현되게 한 것은 창조의 형상이나 행위 사실의 지식이 먼저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창조가 어떤 사물체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형상이고, 활동하는 사물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것이라면 행위 사실을 의미하는 것인데 형상이나 행위 사실이 창조라는 단어로 표현된다면, 이것들을 목격하고 감각에 의한 표상지성에 반영하여 조명됨으로 비로서 지각될 수 있는 지식을 생성함으로 창조라고 말하는 졌는데, 사람이 창조라고 단어로 말하기 이전에 그 사실의 행위가 이미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행위 사실은 이미 존재하고 사람은 그것을 자기지성에서 창조라고 말하여 표현했다면 두 가지 분명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먼저는 행위가 있었고, 다음으로 창조라는 단어로 말하도록 조명해주는 지식이 있었습니다. 만약 사람이 사실을 감각하지 않았고 조명을 받은 것도 없이 창조라고 말했다면 이는 두말할 것도 없이 잘못된 지식을 발한 것이며 이것은 분명한 거짓 곧 사기입니다. 놀랍게도 사람들은 이런 사고로 감각하거나 조명을 받은 일이 없이 수많은 종교를 지어냈으니 그 어떤 종교도 결코 진리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수많은 철학자들이나 과학자들이 동일한 방법으로 자기 안에서 마음이나 혹은 사유함으로 지식을 이끌어내고 수많은 정의되지 않은 관념이나, 이성 등으로 학문을 발전시켜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창조의 사실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지적인 지성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감각되어지고 있으나, 그 감각을 표상화 하여 영혼의 지성에 반영할 수 있는 사람과 그 감각을 표상화 하지 않은 사람으로 나뉘어, 전자는 자기지식으로 표상을 조명하여 왜곡된 무지와 결함을 함의한 지식을 생성하고, 후자는 창조 사실을 감각하였을지라도 표상화하지 않으므로 조명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창조에 관하여 전혀 지식을 생성하지 않은 사람으로 창조를 거부하거나 부정하는 사람으로 구별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증명하는 천지 창조는 분명히 지식으로 확증되기 이전 행위와 사실로 분명히 존재함으로 그것들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감각됩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지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은 결코 부인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 존재하고 드러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상이나 행위 사실이 먼저 있고, 그것들을 감각하는 객관자가 있으며, 그 객관자가 자기의 지식 체계로 지각하고, 지각된 그것을 언어로 표현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창조 지식의 근원은 곧 최초의 객관자에 의해 지각되지 아니하고 감각되지 아니하는 형상과 행위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a. 형상이나 행위 사실의 지식

 

형상이라는 말은 사물이 있는 시간이나 공간을 점유하고 앞에서 말한바와 같이 사람이 감각하여 자기가 지각할 수 있는 지식이 생겨나든지 아니든지 행위의 사실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것은 실체이며 그 실체가 객관적으로 인식되기 위해 지식의 옷을 입었고 지식이 그 실체를 명확하게 경험하도록 합니다.

그러므로 존재하는 그 무엇이든 지식이 아니고서 그 실체가 실체로 드러날 수 없고, 지식이 없이 존재하는 것은 그 존재가 아니라 무 입니다. 그렇다고 실체가 곧 지식이 아닙니다.

행위 사실은 어떤 존재가 움직이고 활동하는 것이고, ‘창조는 하나님께서 일을 하시는 활동이며, 하나님은 일을 하시므로 지식을 내시며, 그 지식에 의해 하나님의 존재를 드러내시는데 그것이 창조입니다.

 

b. 감각하는 객관자

 

사물 자체의 형상이나 행위 사실의 주체에 의해 그것을 감각하는 객관자가 있습니다.

주체는 객관자에 의해서 감각됩니다.

감각 되었다는 것은 지식을 가졌다는 것이 아니라 사물 자체와 행위 사실이 객관자의 감각 기관에 포착되었고 그것이 표상으로 영혼의 지성에 반영되었으며, 그 표상을 어떤 방법으로든지 조명을 받으므로 지식을 생성하여 가지고 그 지식으로 지각하여 인식할 때 감각된 것을 확실히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천지 창조도 역시 창조된 모든 피조물이 감각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자면 짐승이나 야수가 자기의 존재가 하나님으로부터 지음을 받았다는 지적인 지성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 존재에 대해서 명확한 지식을 가지지 못하고, 오직 유일하게 사람만 자기가 존재한다는 사실과 자기가 누구라는 것을 지각하고 인식하는 지식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객관자라는 것은 행위의 사실을 감각하고 그 감각에 대한 지식을 가지는 존재를 의미합니다.

포착된 사물의 형상과 행위 사실은 객관자의 감각에 의해 감성으로 표상화하여 영혼의 지성에 반영함으로 그 표상을 조명하여 주는 지식에 의해 표상에 대한 지식을 생성 지식을 영혼의 감성에서 감각을 가지고 느끼는 것을 지각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객관자가 지각을 가진다는 것은 지식의 대상자가 행위 사실을 드러냈을 때 이 지각을 통해 인식이 가능한 것입니다. 만약 지각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은 표상을 조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지식이 생성되지 않았다거나, 혹은 왜곡되거나 무지와 결함을 함의한 지식을 생성하였을 경우에 해당함으로 우리의 영혼에서는 이미 진리와 비 진리의 명확한 구별이 영혼의 감각기관의 지각으로 충분히 구별될 수 있습니다.

 

c. 지각된 지식의 표현

 

지각된 지식은 감성에 느껴진 감각의 정도에 따라 지성에 남겨지기도 하고 지식 전달 수단으로 드러내는데, 반영된 표상을 그대로 드러낼 수 없고 객관적으로 전달하거나 드러내기 위해서는 새로운 수단이 필요합니다.

사람은 자기가 지각한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표현하거나 전달하기 위해 언어를 사용하고 언어에는 감각한 행위의 사실과 객관적인 감각이 지식에 함의되어 드러냄으로 객관적 진리의 지식이 되어 다른 존재가 언어를 감각하여 영혼의 지성에 표상으로 반영하고 그 지식에 대한 조명을 받을 때 본래 행위의 사실을 지각하고 인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창조라는 단어를 귀로 듣거나 문자로 감각하여 표상화 하여 영혼의 지성에 반영하면, 지성 안에 있는 이미 선재한 지식이든지 아니면 이를 밝혀줄 특별한 지식으로 조명을 받는다면 우리는 그 단어에 대한 지식의 의미를 바르게 지각하고 인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각한다는 것은 행위의 사실을 동일한 느낌으로 감각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렇게 감각할 수 있도록 조명해주는 지식에 따라 지각되어집니다.

 

창조는 행위 사실이 지식으로 객관화 된 언어입니다. 이 지식을 보고 듣고 감각하여 영혼의 지성에 표상으로 반영하여 어느 지식이든지 조명을 받으면, 사람은 지식에 자기지식을 가지고 반영된 지식이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를 인식하게 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이와 같은 방법으로 인식을 할지라도 지각을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지각한 다는 것은 영혼의 감성이 지식에 대한 감각을 갖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감각은 분명하고 명료한 지식에 대해서만 느끼는 감각입니다. 실지로 영혼의 감성이 감각하는 지각은 모든 지식에 대해서 동일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명료함과 명료하지 않음이 구별됩니다. 그것은 지식의 완전성이 내포하는 힘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행위와 사실로 이 세계가 존재하기 시작할 때 있었고 아무에게도 감각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지으시던 그 때하나님의 행위 사실을 감각할 객관자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이 지식은 하나님께만 있었고, 하나님이 스스로 객관자가 되셨으니 이 행위 사실이 지식으로 증거 되어진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므로 지식을 드러낸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 지식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면서 지식을 드러내셨기 때문에 객관자가 되시며 자신의 일을 지식으로 사람에게 선포 하셨으니 최초에 지식이 있게 하신 분이시고 지식의 근원이 되시는 것입니다.

잠언 기자는 하나님께서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잠언 8:22)”라고 언급하였는데 여기에 는 곧 지혜였고, 지혜는 하나님의 천지 창조의 유일한 객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지혜는 사물이나 사람과 같은 객관자의 위치에 있는 자율적인 존재가 아니라 사물이나 사람과 같은 자율적인 존재에게 부여하여 그 존재로 하여금 독특한 가치를 드러내도록 하는 기능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 소유하거나 버릴 수 있는 것으로 표현하셨으며, 하나님께서는 이 지혜로 인하여 지식을 그 입에서 내셨으니 원하는 자에게 지혜를 마음에 주시고 그 지혜로 말미암아 영혼이 즐겁게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는 이 지혜와 지식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성령, 곧 성신에게 지혜와 지식을 부여하여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11:2)”이라는 표현으로 성령께서 지혜와 지식의 기능을 드러내시는 분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런 표현들은 물론 삼위 하나님을 증거 하는 지식이며, 이 지식 또한 하나님의 신에 의해 감동된 사람의 증거이기 때문에 천지를 창조하시는 그 때를 기점으로 이해를 구하기 위한 증거로 하기에 설득이 쉽지 않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던 그때 성자이신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함께 계셨으니 충분히 객관자의 역할을 하실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으나 하나님과 피조물과의 관계에 있어서 제 3의 존재를 세우려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고 언급하신 모든 내용의 지식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으며, 이지식이 피조물인 사람에게 주어졌으니 누가 최초로 언급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살펴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이 지식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지식을 받은 사람이고, 그에 의해서 모든 지식들이 사람에게 주어졌음을 알 수 있고, 그는 지식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 지혜로 객관자의 입장으로 이해가 되도록 하셨을 것은 분명합니다. 이것을 일컬어 성령의 감동하심이 함께 함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식에 의해 하나님의 일하시는 사역을 지식으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2) 본문 지식의 타당성

 

시간을 거슬러 우리가 천지 창조의 그 시간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는 그 장소에 있어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목격하고 우리 입으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심을 보았다고 말했다 가정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그 일을 창조라고 우리가 말한 것이 진리라고 하는 것은 과연 옳을까? 라는 의문이 발생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와 지식을 부여하심으로 우리는 진리를 말할 수 있게 된다는 가정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창조라는 언어가 아닌 다른 단어를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고, 다른 단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그 의미가 달라지는가 하는 문제와 다른 말로 창조를 표현 하였을 때 그것이 진리가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식을 언어로 드러내기 위해서 일치한 의미를 가지는 어떤 규칙이 필요합니다. 이 말은 언어가 다른 것과 언어와 지식이 나타내는 의미와 표현이 다른 것과는 구별됩니다. 영어와 한국어가 다르지만 같은 의미를 가진 언어 표현이 있는 것처럼 지식과 지식을 표현하는 언어의 의미가 일치하지 않으면 모든 질서에 혼돈을 초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식의 세계에는 결코 흐트러짐 이나 오류가 없는 분명하고 명백한 규칙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런 질서가 존재하지 않으면 혼돈을 막을 수 없고 하나님의 창조는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동일한 의미를 드러내는 분명한 규칙이 필요한데 과연 사람들에게 이런 규칙들이 존재하는가? 그리고 객관자는 그 규칙에 의해 지식을 언어로 생성하는 분명한 지식이 있었어야 할 것인데 그 지식이 객관자 입장에 있는 우리에게 어떻게 생성 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우리는 하나님의 천지 창조시 객관자가 아닌 것은 너무도 분명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던 그 현장이 있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장면을 보지도 못하였으며, 현재까지 하나님의 존재조차도 의문을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전도를 통하여 복음을 받아들이기 전까지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한 사람들이었고, 다윈론자들의 주장에 따라 창조라는 말은 말도 되지 않는 주장이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자기들의 조상은 동물의 한 종이라고 믿고 있었으며, 알 수 없고 확신할 수도 없는 어떤 생명체의 거듭되는 발전과 진화에 의해 사람이 되었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지식체계는 혼선에 빠져 있으며 불명료한 지식에 의해 더욱 진일보한 지식체계를 의지하지 않은 정체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믿음을 가지고 말한다는 것부터 면밀히 살펴서 옳고 명료한 지식으로부터 이끌림을 받고 믿고 있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을 뿐만 아니라 과연 어떤 면에서 명료하지 않은 지식들에 의해 우리의 신앙이 정체되고 세속화로 회기하고 있는 모습들을 찾아보아야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지식이 없는 맹목적인 믿음으로부터 알지 못하는 그 어떤 이끌림에 의해 끌려가는 어리석은 사람일 수도 있고, 우리를 이끌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도 알지 못하는 그 어떤 주장에 현혹되어 마치 자기만이 올바를 지식의 노선에 서 있다고 착각에 빠져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지식은 사람이 알지 못하고 발견하기 쉽지 않은 지식과 언어가 일치를 갖는 규칙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자연에는 이해할 수 없는 질서로운 규칙들에 의해 적용되어, 수열이나 활동, 식물들의 생장과 죽음, 불변하는 규칙에 의한 생식, 유전, 식물들의 모양에 드러난 수와 공간 배열, 변함없이 자전하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는 지구의 운행들, 밤 하늘에 빛나는 수많은 별들의 공간과 수의 배열 등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자기의 위치를 고수하고 운행하는 뭔가 알 수 없는 정해진 규칙에 따라 움직이고 운행되어지는 것처럼, 지식과 언어의 세계에 있어서도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규칙에 따라 철저하게 적용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행하신 창조 행위를 창조라는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규칙에 의해 하나님의 창조 행의의 현상이나 행위 사실의 표상을 규칙에 따라 지칭하는 것이므로 그 지식을 언어로 표현할 때 창조라고 표현하고 그것을 언어로 소리 나게 발음하는 것이 오류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세계에서 표현되는 모든 언어들은 육체의 감성 기관인 오감에 의해 감각된 표상이 언어화 되는 과정에 하나님께서 규정하신 규칙에 의해 적용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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