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창조의 의미.
창조는 완전하시고 무결점이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충만함에 의해 넘쳐나듯이 발현되는 완전한 산물입니다. 이 산물은 하나님의 일부가 유출한 것이 아닌 하나님의 지혜가 만들어낸 순수한 창조 결과이며 그 지혜로 하늘을 지으셨고,1) 땅을 세우셨으며,(잠언 3:19) 만물의 존재의 근원이 되도록 충만하심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2) 이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형상을 갖춘 창조물이 아니라 창조 되어질 근본 물질로서 어거스틴은 “이 무형의 질료에 형상을 부여하사 종류를 나누어 주시기 전에는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으니, 색채도 모양도 물체도 영도 아니었음을 당신이 내게 가르쳐 주시지 않았나이까? 하오나 그것은 절대무는 아니었으니, [다만] 아무 형상도 없는 무형적 존재였을 따름이니이다.”3)라고 말하였습니다. 어거스틴은 최초 창조시에는 시간의 적용을 받지 않은 영원한 세계가 지속되었다고 보고 그곳을 바로 영원이라고 하였고, 하나님께서 영원의 세계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영원의 세계가 하나님의 지으심으로 존재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창조물의 근본이 되는 물질을 만들기 위해 손을 가지고 놀리시거나 아니면 팔을 흔들어 일을 하셔서 만드셨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팔을 흔드셔야하는 공간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공간이 있다면 시간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을까요? 팔을 올렸다 내렸다 손을 움직이는 시간 간격이 필연적이라면 시간과 공간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모든 것을 말씀으로 지으셨다4)고 했고, 우리가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은 모든 만물은 무형의 질료를 향하여 선포하심으로 불러내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어거스틴의 말을 빌러 하나님의 창조에 있어서 최초의 물질을 만들고 말씀으로 만물을 불러내셨으므로 처음 말씀과 불러내시는 말씀이 다르고 처음 지음을 받은 무형의 질료를 지으신 창조와 만물이 가변적인 시간에 따라 존재하는 형상을 가진 창조가 다르다고 한 말은 사실입니다.
어거스틴은....,
“하오면 당신은 어떻게 말씀하셨나이까?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마 17:5)이라 할 때같이, 그렇게 말씀하셨나이까? 이는 그 소리는 한번 났다가 지나가 버렸음이니이다. 그 소리는 시작과 끝이 있었나이다. 그 소리의 음절들은 울렸다가 사라져 갔으니, 첫 음절 다음에는 둘째 음절, 둘째 음절 다음에는 셋째 음절, 이런 식으로 모든 음절이 순서에 따라 울리고, 결국에는 마지막 음절이 울린 다음 침묵이 왔나이다. 하온즉 소리가 났던 것은 피조물의 진동 때문임이 분명하니, 이 진동은 비록 시간적인 것이었으나, 당신의 영원한 뜻에 봉사하는 것이었나이다. 시간적으로 형성된, 당신의 이 같은 말씀은 외부의 청각을 통하여 이해력을 지닌 영혼에 전달되니, 이 영혼 속에 있는 내부의 청각은 당신의 영원한 말씀을 향하나이다. 하온대 내부의 청각은, 시간적으로 소리가 발하여진 이 말씀을 소리 없이 이루어지는 당신의 영원한 말씀과 비교한 다음 이같이 말씀하였나이다.
“이 두 말씀은 서로 다르도다, 아주 다르도다. 시간적인 말씀은 아득히 내 아래에 있으니, 사실 존재하는 것도 아니도다. 이는 시간적인 말씀은 순간적으로 지나가고 마는 것임이라. 그러나 내 위에 계신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계시는 도다.”
하온즉 만약 당신이 지나가고 마는 시간적인 말씀으로 “천지가 있으라!” 말씀하사 천지를 지으셨다면, 천지 이전에 이미 물질로 구성된 창조 세계가 있었을 것이며, 당신의 음성은 시간적으로 진동하는 그 세계 속으로 발하여졌을 것이니이다. 하오나 천지 창조 이전에는 어떤 물질도 없었나이다. 만약 있었다 하여도, 당신은 그 물질을 지나가 버리는 음성으로 만드시지 않았음이 분명하나이다. 이는 당신이 천지를 [시간적인]말씀으로 창조하시기 위해서는 먼저 시간적인 음성을 창조 하셨어야 함이니이다. 하오나 시간적인 음성이 생겨난 근원이 무엇이든 간에 당신이 만들지 않으셨다면, 이 같은 음성은 절대 존재할 수 없었나이다. 하오면 시간적인 음성이 발하여질 물질세계를 만드시는데 사용하신 당신의 그 말씀은 대체 어떠한 말씀이니이까? 5)
와 같이 최초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라고 ‘모세가 성령의 계시로 말한 것은 곧 이어 “빛이 있으라” 라고 말씀하실 때 구분하여 말하였습니다.6)
우리는 어거스틴의 말에 의해 분명한 진리를 발견하여 영혼의 지성에 깊은 새김을 받아 창조의 비밀에 한 발 전진할 수 있으면 좋을 것입니다. 그것은 어거스틴이 말하는바 ‘무시간적이면서도 하나님과 같이 영원하지 않은 두 가지 존재를 만드신 것을 깨달음과 같이’7) 그의 깨달음에 더하여 우리의 지성에서 또 다른 하나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깨달음을 바탕으로 또 다른 더욱 심오한 지식을 깨닫고 신앙은 하나님께 더욱 나아가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 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어거스틴이 말한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영원과 시간을 만드셨고, 하나님은 영원 에 거하시는 것이 아니라 피조물에 의탁하지 않으신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영원과 시간에 각각의 조건에 맞는 지식을 보내셔서 영원에 속한 지식과 시간에 속한 지식을 주셨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이 지식으로 사람은 피조물 가운데 유일하게 영원과 시간에 적용된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영원의 지식에 적용될 수 있는 존재로는 영혼을 지으셨고, 시간에 적용된 존재로는 육체를 지으셔서 이 두 존재가 각기 별개의 인격을 지니고 있으나, 하나로 결합하여 한 인격이 되었으니 육체로는 가변적인 모든 세계의 피조물을, 영혼으로는 영원한 세계를 감각하고 지각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사람은 영원에 속한 지식의 일부를 이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영원의 바깥 전능하신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 지성을 영혼에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어거스틴이 말하는 무형의 질료 창조의 지식으로 말미암아 새로 깨달은 우리의 지식일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자기의 영혼이 깨달은 지식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형상을 가진 피조물을 무형의 질료에서 불러내실 때 그 때는 시간이 적용되어진 조건하에서 말씀하셔서 불러내셨으나,8) 모형을 가지지 아니한 최초의 창조는 시간이 적용되지 아니한 영원 속에 존재9)가 있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두말할 것도 없이 ‘최초 창조에 속한 영원한 무형의 질료가 존재하는 이 창조’라는 지식은 시간에 속한 지식이 아닙니다. 그 영원에 속한 지식이 시간에 속한 말로 말하여지고 구체적인 설명을 할 수 있도록 지각되거나 분명한 표상을 갖지 못하지만 그 지식은 있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려지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그것”을 시공의 한계에 제한된 인간의 지성에서 시공의 제한을 받지 않은 영원을 생각한다는 그것이 불가능한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으로 영원을 이해하고 사모하도록 영혼을 지으셨고 그 영혼에 의해 하나님을 향한 지각을 갖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깨달은 지식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신 분이시라도 영원한 지식의 세계 안에 거하시는 분이 아니시고, 그 영원에 지식을 보내신 분이시니, 하나님께서 지으신 최초의 상태를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 1:1)”라는 영원에 속한 지식으로 말하여 지고, 성경에 기록되었으며, 시간에 속한 사람의 영혼에 지식으로 지각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영혼을 영원을 지각할 수 있는 존재로 지으셨고, 영혼과 육체의 결합으로 지으신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이 지식이 하나님의 행위 사실을 표현함에 있어서 가장 적절한 표현이라고 한다면, 사람으로서 최초로 이것을 감각하여 표상을 영혼의 지성에 반영하고, 이 지식을 언어로 표현할 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변환 되게 하는 근거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사람은 지음을 받은 피조물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거나 어떤 지식에 대한 스스로의 판단력을 가진 존재로 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수많은 철학자들이나 과학자들이 사람을 일정 시간동안 한계적 자존능력을 가진 존재로서 자연적으로 이성 활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지성이 스스로 지식을 생성하고 판단하며 오성의 능력으로 지식을 확장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스스로 지성을 가지고 판단하며 생각하고 논리적으로 무엇을 이해하며 상상하는 추상력을 가진 존재로 보는 것입니다. 인류가 이 땅에 존재하기 시작한 이래로 이 논리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존재입니다. 실지로 아무런 능력을 가지지 못한 무능한 존재입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사람이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서 혼자 살게 되면, 지성 활동을 전혀 하지 못하고, 피조물인 짐승과 다름이 없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갓 태어난 어린 아이가 지적인 감각을 가지지 못한 영아 상태에 있을 때부터 짐승들의 돌봄을 통해 성장하였다면, 그 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함께 생활한 짐승과 같은 행동을 하게 됩니다. 짐승처럼 네발로 걷고, 음식을 손으로 먹고, 함께한 짐승이 먹는 것과 같이 육식성이면 다른 짐승을 잡아서 생으로 뜯어 먹을 것이며, 도구를 가지고 사냥하는 방법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언어도 극히 재한되어 같은 언어를 사용하여 의사소통을 할 것이며, 생존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늦추지 않은 경계의 자세는 가르쳐 주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하는 행동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나 짐승의 도움을 받고 자란 이 존재는 사람이면서 짐승으로 살아갑니다. 하지만 짐승이 사람과 다른 것은 쥐로 태어난 새끼 쥐가 개의 도움을 받고 자랐다고 해서 그의 속성이 바뀌지 않습니다. 쥐로 태어난 개는 어떤 환경에서 자라든지 쥐 이상이나 이하가 되지 않고, 개로 태어난 개가 호랑이 품에서 자랐고 호랑이와 함께 자랐다고 해서 호랑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호랑이와 함께 자라면 그는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 됩니다. 사람으로써 짐승입니다. 왜냐하면 말도 하지 못하고, 문화적인 환경을 이용하는 지적인 존재가 되지 못하고 야수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호랑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사람으로서의 기준을 육체의 속성에 두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이 있는 영혼에 두시고 사람 곧, 생령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지으신 사람은 다른 짐승들과 구별되게 지으셨으며 그에게 영혼을 더하여 주셨고, 태어날 때 선천적으로 지식을 지니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 상황과 교육에 의해 후 천적인 경험을 통해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1장1절)”는 이 지식에 대한 사람의 경험에 관하여 살펴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던 그때 하나님의 곁에서 하나님의 사역하시는 그 모습을 객관적으로 지켜보고,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말하였는지 확인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앞에서도 언급을 했었으나 두고 두고 해결해야 하는 과제로 등장하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 문제에 관한 질문이 사실에 관한 지식을 어떻게 언어로 표현하였는지 알고자 하는 것입니다.
두 말할 것도 없이 이 구절의 말씀을 기록한 사람은 모세입니다. 그렇지만 모세는 하나님의 창조사역의 현장에 있었던 사람은 아닙니다. 그것은 누구나 잘 아는 사실입니다. 모세가 창조기사를 성경에 기록하던 시기 이전부터 이 지식은 고대 근동지역의 창조 설화로 알려져 왔었습니다. 그래서 이미 모세도 알고 있었을 것이고, 그 지식에 관하여 어느 정도 믿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설화는 히브리 민족들에게만 전승된 것이 아니고 다른 이방 민족들에게 전승되어 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고대로 거슬러 올라 갈수록 창조 설화는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이것이 성경으로 기록되어진 것은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았던 시내산을 기점으로 새롭게 강화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의 전승으로 소유화 했고 이스라엘을 재외한 모든 민족들은 이 설화에 대해서 관심을 소홀히 하여 결국 그의 후손들에게 관심밖의 진정한 설화로 남겨지고 점차 후대로 내려올수록 잊혀져버리고 막연한 옛날이야기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만나서 계명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는 제 4계명을 쓰시고 그것을 설명하시면서 천지 창조와 6일 창조를 말씀하실 때 자기가 그때 까지 알아왔던 창조의 모든 전승들이 사실임을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이때 성령께서 모세의 마음에 거하셔서 거짓을 버리고 참 진리만을 받아들이도록 역사하시고, 창조에 관한 지식에 대한 확신하도록 성령께서 모세의 마음에서 조명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 전에도 천지창조에 관한 지식이 있었고, 하나님께서도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분명히 말씀 해주셨다면 이 지식이 처음 사람에게 알려지고 감성되어 그 사람의 영혼에 표상으로 반영되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고 지식을 언어로 표현한 그 사람에 대해서 분명히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에 고나한 모든 지식의 시작으로 우리가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의도는 모세에게 말씀하신 천지 창조의 확신에 관한 불신, 성령의 영감과 조명을 도외시하고 직접적으로 지식으로 접근하려는 불신앙의 자세가 아닙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확신으로 말씀하시기 이전에 천
지 창조의 지식이 있었고, 그것을 사람들에게서 알려져 있었고 전승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전승의 근원을 찾는 것은 지식이라는 것과 언어 사이의 상관성과 그리고 천지 창조의 최초 지식을 언어로 표현 그 사람이 가진 지식을 확인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창조’라는 언어로 표현되는 지식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살펴보고 그 지식이 사람의 영혼에 표상으로 반영될 때 사람의 영혼에서 일어난 반응으로 인해 사람이라는 존재가 하나님의 형상에 견주어 손색이 없는 탁월한 존재임을 인식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피조물인 사람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부여하신 하나님께서는 ‘지식’을 보내고, 사람은 그 ‘지식’을 감각하여, 감성에서 표상을 형성하여, 그 표상을 영혼의 지성에 반영하여, ‘지식’에 대한 정보를 언어로 표현하기 위해 자기의 지성에 있는 ‘부여받은 지식’ 가운데에서 검색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최초에 지음을 받았을 때에는 영혼의 지성에 지식을 부여 받은 것이 분명합니다. 만약 이 지식을 부여 받지 않았다면 사람의 영혼은 혼란스러운 기계에 불과할 것입니다. 경험적으로 살펴보더라도 사람은 결코 지식을 생성하는 존재가 아니라, 감성된 표상을 부여된 지식가운데에서 발견하고 그 지식을 언어로 표현함으로 자기 밖으로 드러낼 뿐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있어서 모든 지식은 관계를 통하여 감각되고, 감각된 지식이 표상화 되고 영혼의 지성에 반영되고, 반영된 그 표상을 일치한 지식과 연관하여 언어로 표현하도록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물론 영혼의 지성활동은 스스로 감성된 지식간의 연관을 통한 다양한 또 다른 지식간이 관계를 통하여 새로운 지식을 생성하는 일을 영혼의 지성에서 일어난다. 이런 지식은 생성될지라도 영혼의 지성 안에서 창조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지식을 근거로 해서 새롭게 확장되어지는 지식이 생성되어질 뿐입니다. 이것은 마치 영혼의 지성에 뿌려진 씨앗이 지성에 있는 다른 지식들의 양분을 받아먹고 자라서 싹이 나고, 가지가 자라며 잎이 무성하여지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것처럼, 하나의 지식이 영혼의 지성에 반영되어 관계된 지식으로 인식되고 인식된 지식이 자라나 새로운 지식으로 성장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작용으로 철학자들의 황당한 논리들이 나오고,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의 철학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조 지식도 마찬가지로 사람의 영혼의 지성에서 생성되어 나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며, 그 결과물인 천지가 사람에게 감각되어 표상화 되었으며, 그것이 영혼의 지성에 반영되어,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본유적 지식’에 의해 지각되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영혼에서 하나님의 천지 창조 지식이 지각되도록 한다는 것은, 이미 그 지식이 영혼의 표상으로 새겨져 있어야 하고 한 패이지 지식으로 정리 되듯이 지식 창고에 채워져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의 말대로, 지식은 육체의 감관을 통해 영혼의 지성으로 들어오고, 지성은 들어온 지식을 지식 창고에서 찾아내고, 그 찾은 것을 언어로 표현하는 영혼의 활동으로 인해 지각을 갖고 표현함으로 하나님의 형상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물 자체와 행동하는 사실인 지식을 지으신 것입니다. 그 지식이 사람의 육체의 감관에 관계를 갖기 위해서는 사람에 의해 관계를 갖는 환경에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사람의 육체의 감각에 의해 표상이 되고, 사람의 영혼의 지성에 반영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되려면 사람에게 적용되는 환경으로 시공간의 조건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창세기 1:1은 시공간이 만들어지기 이전, 사람이 형상을 입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최초의 사역이므로 사람의 환경에서 적용되는 지식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이 지식의 주관자시며 유일한 주권자이십니다. 아무도 이 지식을 증거 할 존재는 피조물 세계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두 아신 하나님께서는 이 지식을 사람에게 부여하셨고, 그 지식이 본유적 지식의 “창조에 관하여”라는 지식 안에 새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은 하나님께서 주신 본유적 지식에 의해 자기 스스로 하나님의 천지 창조를 알 수 있고 지식에 대한 확신을 스스로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1. 영원에서의 천지창조
(중략)
2. 시간에서의 천지 창조
(중략)
이런 가운데 하나님의 창조의 지식에 관한 분명한 의미를 발견하려는 노력은 이미 오래전부터 어거스틴에 의해 분명히 가르쳐 왔으나 오랫동안 외면해 오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앞에서 말한바와 같이 창조는 두 가지의 존재를 만드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창세기 1장 1절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에서의 천지 창조에 관한 말씀은 모든 시간적인 창조와 영원에 속한 창조를 함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원에 속한 창조와 시간적인 창조라는 별개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고 영원한 창조가 먼저 있었고 그 다음으로 시간의 창조가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지음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인 지식을 자기의 지성에 언어로 표현함에 있어서 다양한 사람이 공통적으로 인식이 가능한 통일된 지각을 가지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의문을 가져보면 알게 됩니다.
공통적으로 이해하기는 사람의 능력은 일부 태어날 때부터 구별되게 갖고 태어나지만 지성의 능력은 대부분 훈련과 습득에 의해서만 그 결과를 나타낸다는 사실들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식을 언어로 표현함에 있어서 사람이 자율적인 기능에 의해 표현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당신의 지혜와 지식을 본유적 지식 안에 주심으로 이해하도록 하셨으므로 이것은 어떤 규칙에 의해 적용되어 지도록 한 것이 분명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만유의 세계는 우떤 규칙에 의해 적용되어지도록 구조적으로 조직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수학자가 먼저 발견하였고 최근에 다양한 과학자들이 그 사실을 입증해 보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는 피조물인 사람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사람의 지성으로 결코 알 수 없는 어떤 규칙에 의해 적용되어 움직일 수 있고 존재하도록 하였다는 것입니다.
물론 막무가내로 생각하는 어떤 사람들처럼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지식과 언어의 통일된 규칙이 적용된 지성을 지으셨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면 그런 사람에게 더 이상 지식에 관한 설득이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깨달은 지식과 언어의 상관관계에 있어서 적용규칙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그 영혼의 지성에 심겨주신 규칙에 의해 적용되어진다고 볼수 있고, 이 규칙은 하나님의 형상에 있는 본유적 지식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영혼의 지성이 우리의 지성으로 발견하지 못하는 규칙에 의해 구조적인 조직을 가지고 적용하여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인식이 가능한 지식체계를 갖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이처럼 거대한 인류의 공통 조직이 지식 하나로 효과적으로 적용되게 하는 것은 놀라운 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조는 바로 우리 자신의 존재가 증명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입니다. 이 존재가 하나님에 의해서 지음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놀라운 영혼의 기능에 의해 완전하게 움직이며 조화를 이루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한시적으로 존재합니다. 이 피조물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지식을 지각하도록 만드신 하나님은 마땅히 영광을 받으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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