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정함을 입었으니,(롬 1:1)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행 28:28)”
사도가 그토록 원하는 로마에 도착했는데, 그것은 영어의 몸으로 이끌려 오게 되었습니다.
물론 로마를 가고자 한 것은 자기의 소원이었으나, 이것은 순전히 천길 낭 떨어지를 보호장구도 없이 외줄을 붙잡고 있었더니, 외줄이 죽음의 수렁을 건너 이쪽 절벽에서 건너편 절벽을 옮겨진 것 같이 그리던 로마를 당도하게 된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먼저 로마에 있는 유력한 유대인들을 초청하여 자기의 상태와 영어의 몸이 되어 로마에 오게 된 것을 설명하고, 자기가 유대인의 법에도 합당하지 않은 대우로 유대인에게 고발을 당하여 영어의 몸이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로마인들의 영혼에 새겨지기를 원하는 복음을 말하자 그 중에는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않은 사람도 있어, 이사야 선지자의 글이 강하게 그의 마음에 생각났던 것입니다.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 도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 하였으니 그런즉 하나님이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을 알라 그들은 들으리라. 라고 행 28:26~28에서 증언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선택한 본문은 로마서 1:1절이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사도행전은 로마서신이 전해지고 약 4~5년이 지난 후에 언급한 말이지만 사도의 글을 통하여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사도행전 28:28의 말씀에 따라 '이방인인 우리에게 구원이 문이 열린 것'에 대한 관심을 끌게 합니다.
본래 구원은 이스라엘에게만 있는 전유물처럼 여겨졌고, 가끔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이나 보아스의 아내 모압여인 룻, 혹은 또 다른 이방여인들에게 값진 은혜가 선물로 부여된 처럼 성경은 구별하여 언급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구속사의 한 페이지에서 구원의 기쁨을 얻는다는 것은 이스라엘에게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역사에 등장한 이방인 여인들에게 주어진 은혜는 이스라엘이라고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성경이 명백하게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은 이스라엘에게만 있었습니다.
사건의 내막은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지으실 때 아담으로 인하여 사람들이 이 땅에서 번성하여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것을 원하시고 한 영혼만을 지으신 것입니다.(말 2:15) 이것은 하나님의 작정이라 하고, 이 작정 안에 있는 아담의 자녀들을 하나님의 아들들이며, 이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하나니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전지(모든 것을 아심)는 아담이 자기의 의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여 죄를 지을 수 있는 완전한 사람이기 때문에 계획과는 별도로 어떤 사실들이 나타날 것을 예지하시고 그것을 허용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창조계획에는 작정과 허용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사는 피조 세계에 드러나는 사실적이고, 사람들은 작정과 허용이라는 두 요소중 어느 하나에 속할 수 밖에 없는 필연적인 운명에 놓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작정으로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세계가 계획대로 세워져서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 성취되는 것이고, 허용은 하나님의 계획과 달리한 사실들이 일어날 모든 것들을 허용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작정에 속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허용에 속한 이방인으로 나타났으며, 이스라엘은 창조의 목적에 따라 하나님의 계획에 포함된 이세상에 나타날 하나님의 아들들의 가족이고, 모든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죄의 정욕을 일으켜 태어난 허용된 가족으로 분류되는 것입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하나님의 계획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들들이고, 그 하나님의 아들들이 죄를 범하고 정욕을 일으켜 낳은 정욕의 열매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거나 태어나지 않을 수 있는 죄의 정욕의 결과인 것입니다. 이는 만약 하나님의 아들들이 죄를 범하지 않았거나 하나님의 뜻을 알고 정욕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정욕의 열매가 이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정욕의 열매가 없었다면, 이방인인 저는 오늘 여기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정욕의 열매는 곧 하나님의 계획에 없는 존재들이고, 죄로 말미암은 존재들이기 때문에 죄에 속한 존재들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계획에 속한 작정과 하나님의 아들들이 죄의 정욕으로 말미암아 이세상에 태어나도록 허용하신 것으로 "작정과 허용"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수히 많은 사도들의 글이나 혹은 복음서, 또한 성경에서 이를 뒷밭침하고 있고, 사도행전 28장28에서도 언급한 것같이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구별은 성경이 명확하게 말하고, 로마서 9장이후에 사도가 다양한 방법으로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때 하나님의 구원의 뜻은 죄를 범한 이스라엘을 향하신 것이지, 죄로 말미암아 태어난 이차적인 죄의 열매들에게는 관심이 없으셨던 것이 분명합니다.
직접적으로 구약성경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것이 내가 야곱은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롬 9:13).라고 말씀하신것과, 아브라함의 가족에게서 이스마엘과 하갈을 내어 쫓으라고(창21:10, 갈 4:30) 하신 것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이런 말씀을 들을 때 우리의 자존심이 상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라면,
우리를 죄의 결과적 존재로 태어나는 것을 허용하셨고, 그에 대한 책임감이 없는 것에 대해서 도무지 믿지 못할 뿐만 아니라 받아들이기조차 싫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우리는 본래 하나님의 작정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고, 오직 하나님의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정욕으로 우리를 태어나게 하므로 순수한 죄의 열매로서 지옥 가기로 정해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탄생에 관하여 엄청난 비참을 증거하고, 우리의 본질에 관하여 너무도 매몰차게 거절하고 있으며, 이스라엘을 위해서는 가나안의 모든 사람들은 자비와 사랑을 눈의 티만큼도 받지 못하였습니다.
가나안인의 입장에서 볼때 하나님은 사랑이라고는 조금도 찾아 볼 수 없는 매정한 존재이시며 성경이 언급하는 모든 내용은 이방인의 입장에서 볼때 너무 불공평하고 부정의한 주장들뿐입니다.
성경은 일관적으로 이방인인 우리는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선언합니다.
이방인으로 태어나는 그 자체가 비극입니다.
우리는 이런 처우에 대해서 너무도 슬픕니다.
어쨌든 우리가 이렇게 존재하도록 허락하셨으면 우리를 책임져 주실 분이 하나님이 아니냐고 반문할 지라도 성경은 하나님의 작정을 내밀면서 우리의 존재를 줄기차게 거절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수많은 우리 형제들이 이 아픔을 가슴에 앉고 그 처절하고 고통의 절정이 있는 지옥으로 내려가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떠밀려 가야 했습니다.
어디로 가는지 조차 몰랐고, 한발 한발 내딛을 때마다 화끈거리고 뜨거워져도 떠밀려갈 수 밖에 없는 나락의 끝은 용암과 같이 들끓고 있는 불덩어리속이었습니다.
태어났다는 그 이유하나만으로 이 비극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방인의 운명, 비참한 인생을 살아야 했고, 존재했기 때문에 지옥을 가야만하는, 하나님의 창조의 작정 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버림을 받고 비참한 운명에 처한 사람들을 외면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세상에 나타난 것입니다. (요 3:16)
오랜 기다림이 지나고 하나님의 구원의 큰 일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이 죄를 지었고, 그 죄로 말미암아 영생을 잃어버리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아들을 보내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자기들을 구원하려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을 미워하였고, 나아가 이방인들의 손을 빌어 그 아들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을 미워해서 죽였으나, 실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그들을 대신하여 죽게하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끝까지 미워했고, 그 결과 하나님은 뜻을 바꾸어 하나님의 아들들을 대신하여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의 뜻에 맡기기로 하셨습니다.
죽임을 당하신 하나님의 아들은 실지로 당신의 형제들을 구원하려 오셔서 대신 죽어주셨으나 하나님의 아들들인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아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미워하게 되자 그들을 대신해서 이방인을 구원하시기로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가 한 말의 의미로, 자기는 이방인의 사도로 사명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죄를 짓고 정욕을 일으켜 낳지 않아도 되는 자식을 낳아 태어난 우리였습니다.
정말 불행의 표를 인침 받고 태어난 죄의 열매들로 영원한 멸망의 지옥의 나락으로 가야하는 존재들이었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아들들이 정신을 차리고 자기들의 죄로 인하여 태어나지 않아도 되는 우리를 낳았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우리를 살려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낳은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큰 죄였기 때문입니다.
어떤 상태로든지 우리는 죽을 운명과 지옥불에 던져질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비참한 존재였는데, 바로 그 죽음을 대신해서 죽으시고 우리를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하여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의 반열에 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전해지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도록 부르시는 하나님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부르심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버린 이스라엘과 같이 하지 말고, 우리를 구원하신 그 구원에 감사해서 세상에 빛과 소금의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아멘
2013, 0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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