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닫는 자도 없으며 (롬3:10)”
‘깨닫다’라는 말은 ‘함께 모으다, 함께 놓다’라는 의미와 ‘이해하다’라로 번역될 수 있는 말입니다. 이 단어는 마태복음 13:13에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한다”라는 주님의 말씀에도 14,15,19,23,51절에서 병행 구절로 사용된 단어입니다. suniemi ‘συνιημι’ 는 전치사 ‘σιν’ ~with에서 유래한 말로 ‘to together’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고 찾을 수 있는 마태복음의 구절에서 보면, “보기는 보아도 보지 못한다” 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의미에서 확실히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이 의미는 사람이 눈으로 객체를 보지만 그것을 이해하거나 인식이 되어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피조물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문제를 이해하여야 분명한 답을 가질 수 있습니다.
'피조물'의 정의는 '만들어졌고, 제조하는 자에 의해 기능을 하도록 부여된 역할을 가진 조직들의 유기적인 작용에 의해 움직이고 활동하도록 지어진 존재'라는 것을 확실하고 분명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인식론적인 관점에서 피조물인 사람은, 구조적으로 각 기관들의 유기적 작용을 통해 활동을 하는 존재라는 필수적인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각 기관의 유기적 작용이란 사람의 구조는 영혼과 육체로 되어 있고 이를 별개의 기관이라 할 때 영혼과 육체의 유기적인 작용에 의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의식하지 못하고 생물체 구조들의 각각의 기능들의 유기적인 관계로 말미암아 생명활동을 하는 것이라는 과학적 입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많은 오류를 생산하는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피조물이며, 자기를 구성하는 부분적 기능들의 유기적인 관계를 통해 의식 활동을 한다는 것을 영혼의 존재와 연결한 관계의 의식이 필요합니다. 영혼의 존재와 그 역할을 인식하지 못하고 단순히 생물체로서 사람의 구성을 인식하고 있는 상태는 사람으로서 자신을 분명하게 바른 입장을 갖지 못한 인식에서 의식 활동을 하기 때문에 결코 옳은 인식을 가질 수 없습니다.
사람은 영혼과 육체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영혼은 지성 작용을 육체는 감성 작용을 하도록 구조적인 기능을 하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현재로서 사람들이 생존하여 육체로 사는 날 동한 영혼의 존재에 대해서 확신하지 못하지만, 두 구성의 존재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가진 때는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죽음을 맞이하는 그때 각자가 확실히 깨닫게 되고, 특별한 인식은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진리를 심어주시고, 그 진리가 영혼의 지성에서 조명하여 지식들을 가지고 영혼의 감성으로 지각되어 전인에서 지각된 지식을 인식한 때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기의 영혼의 존재를 자기가 인식하는 것은 철저히 주관적입니다. 이것이 객관적으로 사람들에게 인식되어짐으로 상대방의 영혼의 존재에 관하여 인식을 가지거나 혹은 느낌을 가질 수 없습니다. 다만 지식으로만 알 수 있을 뿐입니다. 그것은 영혼은 영의 상태이기 때문에 육체에 감각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지음을 받은 영혼과 육체는 서로 자기의 기능에 따라 유기적으로 작용하여 지식을 가지거나 생성하고 이를 인식하는데, 어느 한 부분 조직만으로 완전하게 지각하거나 인식을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살아서 활동한다고 할 때에는, 영혼이 육체에게 생성한 지식을 반영하여 활동하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모든 활동은 영혼이 내보낸 지식이 사람의 전인의 의지기관에 반영되었고 이것이 육체로 활동하도록 했기 때문에 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육체가 영혼으로부터 반영해주는 지식이 없이도 스스로 활동을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짐승들은 영혼을 가지지 않았고 지식이 없지만 그들이 활동하는 것과 같이 사람도 피조물이기 때문에 동물들처럼 활동할 수 있습니다. 동물들은 지적이지 않고 감정적입니다. 그들은 지적인 활동을 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애완견들과 같은 짐승들이 사람과 친숙하게 생활하고 말을 잘 듣고 판단하며 활동 하는 경향들을 보고 어느 정도 지식이 있어서 지능지수를 가진 존재들처럼 보이지만, 이런 판단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 지적으로 평가하는 것이지 실지로 동물은 영혼이 없기 때문에 그들에게 부여된 지능지수라는 것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도 영혼으로부터 반영해주는 지식이 아닌 감정적인 행동을 동물들과 같은 생물체로서의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감정적인 활동일 뿐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두 구성으로 지으셨고 이들이 서로 자기의 역할을 하여 지적인 활동을 가지 우수한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라고 말 할 때에는 모든 피조물들인 생물체로서 짐승들과 구별하여 지적인 기능을 가진 영혼과 육체로 지음을 받은 존재라는 특별한 의식에서 모든 지적인 인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사람은 육체와 영혼의 결합으로 인해 온전한 사람이 되었고, 이 두 구성으로 된 존재가 각기 역할대로 유기적인 기능에 의해 존재로서 사는 것이 하나님보시기에 선했던 것입니다.
이 두 구성은 각기 개별적인 역할을 하도록 주어졌습니다.
육체는 감각을, 영혼은 지성적 기능을 합니다.
사람이 존재로서 자기 외부의 객체에 대한 감각했을 때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상태를 동물적 상태라 하고, 이런 상태를 인식하지 않고 반응하는 것을 말합니다. 반면 외부의 객체를 감각할 때 이를 ‘인식한다.’ 라는 말을 무수히 많이 사용해 왔습니다.
그러면 인식이란 무엇입니까?
인식이란? ‘사람에게 감각된 자기 내 외부의 객체에 대하여 분별하고 판단하여 아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인식하였다’라는 말은 사람이 육체로 감각한 객체에 대해서 ‘알았다’는 말로 지적인 기능을 의미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람이 객체에 대해서 인식하는 기능을 육체에 두고 있습니다. 육체 중에서 머리에 있는 뇌에서 그 기능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그렇게 간단하게 판단하고 결정할 사안이 아닙니다.
인식 기능이란?
인식에 대한 기능적 역할을 의미함으로 인식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무엇이 그 기능을 하는지 분명하게 파악해 본다면 사람이라는 존재의 놀라운 신비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일반인들이나 생물학적인 의미에서 사람을 말할 때 육체의 기능적 의미로 모든 인식은 머리에서 대뇌 소뇌가 한다고 단순하게 결론합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어떻게 감각된 객체들을 인식하는가?”
예를 들어 산에 있는 무수히 많은 나무들을 보았습니다. 시각 활동을 육체가 한 것입니다. 이것은 감각입니다. 단순히 산에 나무가 있는 것을 본 것이고, 감각은 그 이상이 아닙니다.
반면에 이를 인식하였다는 것은 산과 나무를 사람의 인식기관에 넣었다는 것이 아니라 육체의 시각 활동에 의해 얻은 감각을 이해하였다는 것과 이를 육체로 표현될 수 있도록 지식화 된 것을 의미합니다. 인식 기능은 육체가 감각한 객체를 인식할 수 있도록 감각을 지식화 하는 역할을 말합니다. 이것은 인식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로 사람이 감각한 것을 표현하는데 매우 중요한 기능입니다. 예를 들어 감각한 것을 표현할 때, 감정적이고 혹은 미적인 조화 등을 꾸미거나 의미를 더하여 표현하기도 합니다. 단순히 보는 감각에서 뛰어넘어 새로운 의미의 감정을 전달할 수 도 있습니다. 육체의 감각으로부터 표현에 이르는 과정에서 이를 주관하는 어떤 기능이 사람에게 있습니다.
또 사람이 표현한 그 지식(언어, 문자)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고, 전달 받은 사람은 그것을 육체로 감각하고, 그것을 전달해주는 경험한 사람과 동일한 인식을 가지는 것입니다. 성경은 2천년 전부터 약 4천7백년전보다 훨씬 이전 하나님의 창조에서부터 교회의 탄생과 성령의 역사를 기록한 책입니다. 이 책안에는 수많은 글들로 표현된 언어들이 있고, 이 언어는 사람에게 들려지고 보여짐으로 사람이 인식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한 개인 안에서 감각이 지식화 되어 인식을 가지는 것이 사람의 머리인 뇌에서 일어나는 판단 작용이라고 말하는 현대 과학의 결론은 참으로 만화 같은 이야기입니다.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보는 것은 감각입니다. 아는 것은 지식입니다.
이는 보았는데 지식을 가지지 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다른 말로하면 인식 기능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육체로는 보는 감각을 가졌으나, 본 것에 대한 지식화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인식되지 않은 것입니다.
지혜가 있는 분들은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바로 이해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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